세계교회

[글로벌칼럼] 상처 입은 세계의 지도를 따라가는 교황의 여정

최용택
입력일 2026-03-10 17:24:45 수정일 2026-03-10 17:24:45 발행일 2026-03-15 제 3482호 6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Second alt text
레오 14세 교황이 2025년 11월 27일 첫 해외 사목방문지인 터키 앙카라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다. 교황은 올해 모나코 공국과 아프리카 4개국, 스페인 등을 방문한다. CNS 자료사진

교황청 공보실은 레오 14세 교황의 해외 사목방문 일정을 발표했다. 방문지는 모나코 공국, 아프리카 네 나라, 스페인, 그리고 람페두사다.

서로 전혀 달라 보이는 목적지들이지만, 교황청은 이들을 하나의 묶음으로 공개했다. 이는 로버트 프레보스트의 교황직이 로마에 굳게 뿌리내리면서도 끊임없이 길 위에 서 있는, 정주(定住)와 순례를 동시에 품은 사목이 될 것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특히 분명하게 드러나는 메시지가 있다.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미국 출신 교황은 유럽의 문턱이자 단층선이 된 섬, 지중해 이주의 교차로 람페두사에 선다.

이 날짜는 우연이 아니다.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사목 방문지였던 람페두사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때 람페두사는 단순한 지리적 장소를 넘어 도덕적 지형이 되었다.

그러나 여정의 시작은 모나코다. 이는 근대사에서 교황이 이 작은 공국을 방문하는 첫 사례가 된다. 화려함과 스펙터클의 이미지 이면에서 모나코는 생태적 책임과 인간 존엄 수호에 꾸준히 힘써 왔다. 이 선택은 작은 국가 역시 도덕적 진지함의 실험실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순방의 중심은 단연 아프리카다. 알제리는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출신 교황에게 개인적 울림을 지닌다. 이곳은 성 아우구스티노의 땅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리스도인 인구가 1%도 되지 않는 무슬림 다수 국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방문은 두 축 위에서 전개된다. 하나는 영적 계보, 다른 하나는 종교 간 대화다. 알제리의 정치적 상황 또한 미묘하다. 6월로 예상되는 총선은 중대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교황은 자유와 공존, 신앙과 공적 삶이 만나는 취약한 공간에 대한 질문을 안고 그 땅을 찾는다.

카메룬에서는 내전의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변호사와 교사들의 평화적 시위로 시작된 갈등은 분리주의 세력과 정부군 간의 무장 충돌로 번졌고, 심각한 인권 침해 의혹도 제기돼 왔다. 이 방문은 외교적 제스처라기보다 교황이 ‘가까이 있음’을 보여주는 행위다. 균열이 가장 깊은 곳에서 교회의 현존이 의미를 지님을 보여주는 자리다.

앙골라는 또 다른 역설을 안고 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주요 경제국이자 대표적 산유국이지만, 인구의 40% 이상이 빈곤선 아래에 있다. 정치권력은 수십 년간 소수 엘리트에게 집중돼 왔다. 최근 몇 년 사이 앙골라 가톨릭교회는 빈곤과 정치적 불관용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더욱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레오 14세 교황은 활력 있으면서도 시련 속에 있는 교회를 만나게 될 것이다. 앙골라교회는 민중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마지막 아프리카 방문지는 적도기니다. 1979년부터 집권해 온 테오도로 오비앙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재임 중인 국가 지도자 가운데 한 명으로, 비판자들은 그 체제를 ‘가족 중심의 권위주의’로 규정한다. 막대한 석유 자원과 광범위한 빈곤이 공존한다. 교황은 정권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방문한다. 이 구분은 중요하다.

여정의 마무리는 스페인이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안토니 가우디 서거 100주년을 맞아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새 중앙 탑을 축복하며 개막한다. 이는 신앙과 건축, 그리고 국가적 기억을 잇는 상징적 행위다.

카나리아 제도 방문은 람페두사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또 하나의 해상 경계, 아프리카 이주민이 유럽 해안으로 들어오는 또 다른 관문이기 때문이다.

레오 14세 교황은 편안한 목적지를 선택하지 않는다. 갈등이 남아 있고 억압의 그림자가 드리운 곳으로 간다. 동시에 인구학자들이 세계 가톨릭교회의 미래로 지목하는 아프리카, 곧 교회가 성장하고 있는 대륙으로 향한다. 무슬림이 다수를 이루는 땅에서 아우구스티노의 발자취를 따르며 종교 간 대화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드러낸다. 세속화의 피로를 겪고 이주 문제가 도덕적 분열선이 된 고령화된 유럽으로도 간다.

이 여정들은 단순한 일정표가 아니다. 상처 입은 세계의 지도를 그려 보이며, 멀리서 관망하기보다 그 안에 머물기를 선택한 교회의 길을 드러내는 순례인 것이다.

Second alt text

글 _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
예수회 사제로 교황청 문화교육부 차관보로 일하고 있다. 예수회 잡지 ‘라 치빌타 카톨리카’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저서로 「SNS 시대의 신학」과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대담을 엮은 「교황 프란치스코: 나의 문은 항상 열려있습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