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기, 다시 쓰는 가족

[함께 살기, 다시 쓰는 가족] 더하기가 아니라 비우기로 배우는 가족

황혜원
입력일 2026-03-11 08:35:37 수정일 2026-03-11 08:35:37 발행일 2026-03-15 제 3482호 16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예수님의 공부법, “비워 내는 일”
비움은 포기가 아니라 식별, 더하기보다 남김에 대한 분별

우리는 공부를 ‘더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더 풀고, 단어를 더 외우고, 경험을 더 쌓아야 안심합니다. 아이가 뒤처질까 불안한 마음에 자연스럽게 무엇인가를 얹습니다. 더 많이 가질수록 안전해 보입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만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다른 길을 보여 줍니다.

유대교 전승에 따르면 율법은 육백여 개가 넘는 조항으로 정리됩니다. 수백 가지 세세한 규정 속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어디까지가 깨끗한지, 누구와 함께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구분하며 살아갔습니다. 삶은 복잡해지고, 신앙은 무거워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모든 율법을 단 두 문장으로 묶으십니다.

“네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그 많은 규정이 두 가지 사랑으로 수렴됩니다. 복잡함은 사랑 앞에서 단순해집니다. 많이 지키는 신앙이 아니라, 무엇을 식별하여 남길 것인가를 묻는 신앙이 됩니다. 쌓는 공부가 아니라 덜어 내는 공부입니다. 신학은 이를 ‘케노시스’, 곧 자기 비움이라 부릅니다. 자신을 비워 하느님의 뜻이 머물 자리를 내어 드리는 길입니다. 비움은 포기가 아니라 식별입니다. 무엇을 더할지보다 무엇을 남길지를 분별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공부법에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질문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던지신 질문은 수백 번에 이릅니다. 반면 예수님이 받은 질문에 직접적이고 단정적으로 답하신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정답을 보여주는 답안지 제공자이기보다, 멈추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질문자에 가까우셨습니다.

“무엇을 찾느냐?”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질문은 멈추게 합니다. 그리고 자기 안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빠른 답으로 제자들을 안심시키기보다, 질문 속에서 스스로 변화하도록 기다리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사회는 ‘더하기’의 방향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2024년 통계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의 80%가 사교육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아이 열 명 중 여덟 명이 학교 수업이 끝난 뒤 또 다른 시간표로 살아갑니다.

그 시간을 떠받치는 것은 부모의 시간입니다. 교육의 흐름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면 더 일하고 더 벌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아이는 배우느라 바쁘고, 부모는 마련하느라 바쁩니다. 함께 머무는 시간은 사라집니다. 식탁과 거실은 각자의 화면 불빛 아래 흩어집니다. 그만큼 대화는 짧아지고, 질문은 멀어집니다. 오늘의 가족은 멈추는 삶을 잃어갑니다. 멈춤은 뒤처짐이라고 여깁니다.

이 지점에서 예수님의 공부법이 다시 떠오릅니다. 육백여 개의 복잡함을 두 가지 사랑으로 덜어 내셨던 분. 수백 번 질문하시며 사람을 멈추게 하신 분. 예수님의 공부법은 더 채우는 기술이 아니라, 덜어 내는 용기입니다. 사랑만 남기고, 나머지를 비워 내는 일. 

우리 가족의 거실과 식탁이 정답을 점검하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질문과 마음을 나누는 자리라면 어떨까요. 더 빨리 가는 가족이 아니라 더 깊이 머무는 가족.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비움의 공부로 초대하십니다.

Second alt text
글 _ 유형선 아우구스티노(가족인문학연구소 공동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