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17) 의사 결정 과정의 단계와 역할: 제3부(87~94항)

「최종문서」 제3부 87~94항은 시노드 교회에서 의사 결정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핵심은 의사 결정을 단순한 행정 절차나 권한 행사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공동체가 함께 식별하고 결정하며 실행하고 평가하는 교회적 과정으로 이해하는 데 있다. 곧 시노드 교회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모든 하느님 백성이 기도하고, 경청하고, 분석하고, 대화하고, 식별하고, 조언하면서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87항) 시노달리타스는 사명을 위해 ‘식별하고, 합의에 이르며, 결정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식별이 결여된 결정 과정은 시노드적 절차를 형식화할 위험이 있다. 교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 하느님 백성이 함께 참여하는 것은 교부 시대 이래 교회의 오랜 전통에 속한다.(88항) ‘주교’ 없이, 그리고 ‘사제들의 조언과 백성의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니힐 시네(nihil sine)’ 논리는 권력 견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친교적 본성에 근거한다. 이를 바탕으로 시노드 교회에서는 다양한 은사와 직무에 따른 ‘분화된 공동 책임성’이 강조된다.(89항) 의사 결정 과정은 식별·자문·협력을 통한 준비 단계와 관할 권위의 결정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이 둘은 경쟁하거나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 열려 있고 상호 신뢰하는 분위기에서 가능한 가장 폭넓은 합의를 추구한다. 또한 의사 결정은 결정으로 끝나지 않고 결정의 실행과 평가까지 포함한다.(90항) 여기서 ‘자문’의 교회적 의미가 드러난다. 권위자는 자문을 진지하게 들어야 하며, 일치된 자문 결과와 다른 결정을 내리려면 우월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권위는 자신의 자의적 의지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친교와 진리에 봉사하는 것이다.(91항) 이러한 교회적 결정 과정에서 자문과 결정 권한을 대립시키는 것은 부적절하다. 주교와 주교단, 로마 주교의 결정 권한은 양도될 수 없지만, 올바른 식별에서 나온 자문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곧 교회의 결정은 모두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되, 사목적 권위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92항) 그리하여 권위와 자문 참여자는 각각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권위자’는 자문 대상과 결정권자를 분명히 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또 ‘자문 참여자’는 양심에 따라 진실하고 명확하게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관할 권위가 이 모든 과정을 거친 뒤 내린 결정에 대해서 ‘공동체’는 자신의 견해와 달라도 이를 존중하고 실행하며 평가에도 참여해야 한다.(93항) 「최종문서」는 이 모든 과정이 실제 변화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하면서, 구체적인 변화가 없다면 시노드 교회의 전망은 빛을 잃을 것이고, 시노드 여정에서 힘과 희망을 얻은 이들이 오히려 멀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94항) 시노드 이행 단계를 맞이한 현재, 그 구체적인 실행 방법을 찾는 책임은 지역 교회에 있다. 한국교회의 시노드 이행 역시 이러한 구조가 본당과 교구 제도와 사목 실천을 얼마나 변화시키는가에 의해 검증될 것이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8-30 제3505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16) 사명을 위한 교회적 식별: 제3부(81~86항)

「최종문서」가 내세우는 교회적 식별의 모범은 예루살렘 사도 공동체의 “성령과 우리는 이렇게 결정하였습니다”(사도 15,28 참조)라는 말이다. 이 식별이 ‘교회적’이라 불릴 수 있는 이유는 사명을 위해 하느님 백성 전체가 함께 행사하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모든 시대의 신자를 진리 안으로 이끄시며, 사도들에게서 전해진 성전(聖傳)을 오늘도 계속 발전시켜 나가신다. 그리고 교회적 식별은 세례받은 모든 이에게 전해진 ‘신앙 감각’에 뿌리내리고 있다.(81항) 교회적 식별은 조직 관리 기술이 아니라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영적 실천이며, 내적 자유, 겸손, 기도, 상호 신뢰, 새로움에 대한 개방성, 하느님 뜻에 대한 순명을 요구한다. 개인이나 집단의 견해를 관철시키는 것도, 개별 의견을 단지 합산하는 것도 아니다. 각자 양심에 따라 말하면서도 다른 이가 양심으로 나누는 것에 귀 기울여, 함께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알아내려 한다. 더 많이 경청할수록 식별은 더 풍요로워지며, 특히 주변부에 있는 이들의 참여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82항) 모든 교회적 식별의 출발점이자 기준은 하느님 말씀의 경청이다.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자리에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말씀하신다. 전례(말씀 봉독 시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심), 살아있는 성전과 교도권, 개인·공동체의 성경 묵상과 대중 신심,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과 인류 역사의 사건들, 피조물(창조주의 활동과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현존), 또한 무엇보다 개인 양심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이런 말씀을 제대로 잘 듣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양심 형성과 신앙 감각의 성숙이 필요하다.(83항) 「최종문서」는 교회적 식별의 핵심 요소들을 여섯 단계로 나누어 제시한다. 식별 대상의 명확한 제시와 정보 제공, 기도·말씀 경청·성찰로 준비하는 적절한 준비 시간,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내적 태도와 공동선 추구, 서로에 대한 주의 깊고 존중하는 경청, 가장 폭넓은 합의의 도출 등이다. 마지막 단계에서 합의에 도달한 경우에는 그 합의를 정리해 참가자 전원에게 제시하고, 그에 대한 인정 여부를 표명하도록 한다. 또 이 식별을 바탕으로 결정이 성숙하며,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들을 포함한 모두의 동의를 요구하고, 공동체 안에서 수용 기간과 이후의 검증·평가로 이어진다.(84항) 식별은 언제나 구체적 맥락 안에서 이뤄지므로 그 복잡성과 특수성을 잘 이해해야 한다. 또 참으로 교회적 식별을 위해서는 적절한 성경 주해, 교부·성전·교도권의 가르침에 대한 지식, 다양한 신학 분과의 기여, 나아가 인문·역사·사회·행정학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85항) 시노드 교회를 위해서는 지역 교회, 특히 소공동체와 본당 차원에서 교회적 식별 문화를 확산·함양하는 양성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 식별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동반자·촉진자 양성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86항)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8-16 제3503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15) 과정들의 회심: 제3부(79~80항)

「최종문서」 제2부 ‘관계들의 회심’ 첫 장면이 고기를 잡으러 나서는 제자들을 묘사했다면, 제3부는 밤샘 고기잡이에도 불구하고 어떤 결실도 얻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요한 21,5-6) “그물을 던져라”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제목으로 삼으면서 제3부는 고기잡이의 실패 속에서 예수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비로소 풍요로운 결실을 얻는 제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79항은 먼저 기존 고기잡이 방식, 곧 지금까지의 사명 실천 방식에서 제자들이 실패했음을 떠올리면서 출발한다. 이어서 부활하신 주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쪽으로 던지라고 말씀하신다. 시노드 과정은 바로 이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이었고, 이제 참가자들은 ‘교회적 식별’, ‘정성을 기울이는 결정 과정’, ‘책임감 있는 설명’과 ‘내려진 결정의 결과에 대한 평가’라는 실천 사항이 바로 주님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교회가 기존의 사목적 관성에서 빠져나오려면 방향 전환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제도나 과정의 효율성 제고가 목적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주님 목소리에 대한 온전한 경청이며 그에 대한 응답이어야 한다. 80항은 제3부에서 다루게 될 세 가지 실천이 왜 분리되지 않고 긴밀하게 연결돼야 하는지 설명한다. 곧 결정에 도달하려면 교회적 식별이 전제돼야 하며, 교회적 식별을 위해서는 책임감 있는 설명과 결정의 결과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불가분하게 연결돼 있는 이 세 가지 실천의 토대는 상호 신뢰다. 결정을 내리는 이들은 하느님 백성을 신뢰하고 경청해야 하며, 하느님 백성도 권위를 행사하는 이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목적은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과정들의 회심을 위해 주어진 세 개의 실천은 단지 기술적인 수준에서 훈련과 교육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교회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신학적, 성서적, 영적 차원의 양성이 필요하다. 곧 시노달리타스는 교회의 본질적 존재 방식(28항)이며, 위의 세 가지 실천은 이미 성경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며(사도 11장; 15장), 그리스도교 공동체 쇄신은 은총의 우선성을 인정함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이다.(44항) 그리고 이 양성은 증언, 사명, 거룩함(성덕), 봉사를 목표로 한다. 이 네 가지는 시노달리타스의 실천적 열매들이다. 교회적 식별, 의사 결정 과정, 책임 있는 설명과 평가가 체화된 공동체는 세상을 향해 더 분명하게 증언하고, 더 효과적으로 사명을 수행하며, 더 깊이 성화되고, 더 진정성 있게 봉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것들은 하느님 백성의 공동 책임성을 부각시킨다. 양성의 목표는 공동체가 함께 사명을 수행하는 책임을 더 잘 감당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양성은 모든 세례 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되 공동체에서 책임 있는 임무를 수행하거나 봉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양성도 요청한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7-26 제3501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14) 사명을 위하여 함께: 제2부(75~78항)

시노드 교회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핵심 조건으로서 ‘관계들의 회심’ 필요성과 구체적인 방향을 다루고 있는 「최종문서」 제2부가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제2부에서 관계들의 회심은 현재까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뤄져 왔다. 첫 번째는 개인들 사이의 관계, 곧 남녀, 세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한 관계의 쇄신이다.(50~56항) 두 번째는 은사, 성소, 직무들 사이의 관계로서 다양한 은사들이 어떻게 사명을 위해 함께 움직이는지 다루고 있다.(57~67항) 세 번째는 성품 직무자들과 공동체 사이의 관계로서 성품 직무가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조화에 봉사하는 직무라는 점이 강조된다.(68~74항) 이제 네 번째 부분은 관계들의 회심이 단지 태도와 마음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교회의 궁극적 목표인 선교 사명을 위해 평신도와 수도자가 성품 직무자들과 어떻게 함께 나아갈 수 있는지 말하고 있다. 먼저, 교회 역사 속에서 성품 직무와 구별돼 탄생한 몇몇 직무들의 가치를 상기시킨다.(75항) 이 직무들은 성령께서 주신 은사들이 공동체와 그 책임자들에게 공적으로 인정받고 사명에 봉사하도록 안정화될 때 생겨난다. 곧, 교회 안에서 어떤 특정한 은사들은 직무가 된다. 곧 독서직, 시종직, 교리 교사직과 같은 제정 직무는 준성사를 통해 수여되고 이것은 단순한 임무 부여를 넘어 교회의 삶과 사명에 참여하는 방식을 규정한다. 제정 직무와 달리 일정한 예식 없이 권위 있는 이의 위임으로 수행되는 고정적인 직무들도 있다. 그 예로 작은 교회 공동체를 조정하는 직무, 공동체 기도를 인도하는 직무, 자선 활동을 조직하는 직무, 비정규 성체 분배자 등이 제시된다. 이것은 규정 예식이 없더라도 공동체 앞에서 이뤄지는 위임을 통해 공적으로 임무를 맡길 때 그 직무 수행이 더 효과적이 될 것임을 권고한다. 「최종문서」는 이런 평신도 위임 직무들을 지역의 필요에 따라 더욱 확대할 것을 제안한다.(76항) 이 밖에 상호 협력과 분화된 공동 책임의 정신에 따라 평신도와 수도자들에게 더 많은 참여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에서 크게 5가지 사항이 제기된다.(77항) 교회의 식별과 의사 결정 과정에 평신도들의 더욱 광범위한 참여 촉구는 제3부 ‘과정들의 회심’ 앞에 배치돼 선도하고 있다. 이어서 교회 안에서 더 책임 있는 직책에 평신도 임명, 수도자들의 삶과 은사를 인정하고 지지하며 교회의 책임 있는 직책에 임명, 교회법 절차에서 판사 역할에 더 많은 평신도들의 참여, 교회 기관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존엄성과 권리 존중 등이 제시된다. 마지막으로는 ‘경청과 동반의 직무’를 신설하는 방안에 대해 시노드 총회에서 있었던 논의를 소개하며 각 지역 교회에서 더 적절한 방안을 모색할 것을 제안함으로써 열린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78항) 이것은 시노달리타스 문화가 교회 안에 정착되려면 경청이 바로 그 첫걸음이고, 이어지는 ‘과정들의 회심’ 역시 경청에서 시작됨을 말하고자 한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7-12 제3499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13) ‘조화’에 봉사하는 성품 직무: 제2부(68~74항)

「최종문서」 68~74항은 시노드 교회 안에서 성품 직무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설명한다. 「최종문서」에서 ‘조화(harmony)'가 성령의 본질적 속성(42항, 154항)임을 감안하면, 이 ‘조화에 봉사하는 성품 직무’라는 소제목은 성품 직무가 어떻게 성령의 활동에 봉사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곧 주교, 사제, 부제는 모두가 복음 선포와 공동체 건설에 봉사하며, 성령께서 이미 교회 안에 부어 주고 계신 조화가 깨지지 않도록, 그것이 더 잘 드러나도록 섬기는 직무이다.(68항) 주교는 성령께서 개인과 공동체에 주시는 선물들을 인식하고 식별하며 일치 안에서 모으는 임무를 수행한다.(69항) 주교는 성령께서 이루시는 것을 알아보아야 하고, 거기에서 무엇이 공동체 전체의 조화에 기여하는지 식별해야 하며, 각자의 은사들이 그 고유함을 유지하면서도 조화를 이뤄 일치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임무를 주교는 혼자만의 특권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사제와 부제들과 함께 수행한다. 「최종문서」는 주교 직무를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와 함께, 공동체를 위한 직무라고 명시한다.(70항) 그렇기에 주교 선출에서도 하느님 백성이 더 큰 목소리를 갖기 바라고, 주교 서품과 관련한 예식들을 통해 교구 공동체와의 관련성이 지속적으로 강조된다. 「최종문서」는 하느님 백성이 주교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과 이상화가 아니라 교회의 사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주교 직무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한다.(71항) 신부들이 “은사들을 식별하고 지역 교회를 동반하며 이끄는 데에서 주교에게 협력한다”(72항)는 표현은, 신부들도 조화의 식별과 수렴에 참여하는 존재임을 말한다. 주교 혼자 모든 은사를 알아볼 수 없으며, 신부들은 주교가 닿지 못하는 공동체의 구석구석에서 조화의 요소들을 알아보고 주교와 나누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한 사제단의 다양성은 ‘차이들의 조화’(1항)를 실천하는 것이다. 부제직과 관련해서는, 이 직무가 사제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봉사 직무를 위한 것이라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을 재확인한다.(73항, 「교회헌장」 29항) 그리하여 부제는 온갖 사회적 상황 안에서 ‘선포된 복음과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삶 사이의 관계’(「최종문서」 73항)를 드러내 보인다. 이것은 부제 직무가 교회 내부의 조화와 세상 사이를 연결하는 존재임을 뜻한다. 부제는 온 교회 안에서 모든 이,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을 향한 인식과 봉사의 방식을 증진한다. 「최종문서」는 성직주의를 “자기 이익을 위하여 권력을 사용하고 하느님 백성을 섬기기 위해 부여된 교회 권위를 왜곡하는 것”(74항)으로 정의하고 있다. 성령께서는 조화 자체이시고(42항), 성직주의는 그 조화를 깨트리기 때문이다. 이에 성품 직무자들 사이의 공동 책임, 그리고 하느님 백성의 다른 지체들과의 협력을 강조한다. 임무와 책임의 명확한 분담, 다른 이에게 위임할 수 있는 것을 용기 있게 식별하는 것 등이 바로 성직주의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권고한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6-28 제3497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12) 사명을 위한 은사, 성소, 직무(2): 제2부(64~67항)

「최종문서」 제64항은 혼인을 단순한 생활 형태가 아닌 성사적 성소로 조명한다. 여기서 혼인성사의 은총은 가정 내부만이 아니라 교회 건설과 사회적 임무로까지 확장된다. 이것은 가정을 사목의 ‘대상’에서 ‘주체’로 재정의하는 시각의 전환이다. 가정은 자신 안에서 복음을 살아내고 세상에 이를 전달하는 선교 공동체가 된다. 따라서 교회는 이런 가정들과 세상을 연결하는 관계망을 더 만들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65항은 축성생활이 시노달리타스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다룬다. 축성생활은 오랫동안 공동 식별과 공동체적 삶을 실천해 왔기에 시노드 정신의 살아있는 모델이 될 수 있다. 또 오늘날 많은 수도회가 접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 문화적 맥락과 구성원들의 다양한 출신지를 고려할 때 풍요로운 상호 문화의 실험실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동시에 지역교회의 목자들과 수도회 책임자들이 은사 교환을 통해 공동 사명을 강화하도록 초대받는다는 점에서, 축성생활이 고립된 영역이 아니라 지역교회와 긴밀히 연결돼야 함을 촉구한다. 제66항에서는 은사와 직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드러낸다. 선교 사명은 세례 받은 모든 이의 것이며, 평신도의 첫째 임무는 세상 안에 복음 정신을 침투시키는 것임을 재확인한다. 그리고 평신도의 은사 가운데 일부를 직무로 제도화하는 문제를 다룬다. 직무 설정의 절차로는 공동체의 필요 확인, 목자와 공동체의 공동 식별, 관할 권위의 결정이라는 시노드적 과정이 제안된다. 공동체의 식별 과정 거쳐 사명과 직무로 열매 맺어 평신도 직무와 관련해서는,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자의교서 「일부 직무」(1972년)를 통해 평신도에게 독서직과 시종직의 전례 직분을 부여한 바 있는데, 최근 시노드 과정을 앞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의교서 「주님의 성령」(2021년)을 통해 이를 여성에게도 확대했다. 또한 「최종문서」는 이동성이 높아진 오늘의 현실에서 특정 지역이나 공동체에 한정된 기존의 직무에 대한 재성찰 역시 요청하고 있다. 제67항은 신학의 봉사적 기능을 다룬다. 신학자들은 하느님 백성이 계시를 깊이 이해하고 현실에 적절히 응답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신학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공동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행위로 자리매김한다. 곧 신학도 시노달리타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신학자끼리, 그리고 신학자와 목자들이 서로 경청하고 대화하며 식별하는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성령께서 세례받은 모든 이에게 부어 주신 은사는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공동선을 위한 것이며, 혼인·축성생활·평신도·신학의 다양한 성소 안에서 공동체의 식별을 거쳐 사명과 직무로 열매 맺는다. 교회는 여성·어린이·청소년·장애인은 물론 가정과 수도 공동체를 포함한 모든 세례받은 이를 수동적 대상이 아닌 능동적 사명 주체로 인정하고 파견하며 동반함으로써 관계의 진정한 회심을 이룬다. 시노달리타스란 의사결정 방식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성령의 자유에 뿌리를 둔 은사의 다양성이 공동체의 식별과 목자의 권위와 신학의 봉사 안에서 온전히 존중받고 사명으로 수렴되는 복음적 관계의 근본적 재구성이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6-14 제3495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11) 사명을 위한 은사, 성소, 직무(1): 제2부(57~63항)

「최종문서」 57~67항은 ‘사명을 위한 은사, 성소, 직무’라는 제목 아래 교회 구성원들의 역할과 사명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 안의 여러 신분과 직무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항들은 제2부 ‘관계들의 회심’이 요청하는 교회의 새로운 관계 방식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핵심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회심’은 개인의 내적 변화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 자체가 성령 안에서 새롭게 변화돼야 함을 뜻한다. 따라서 이 항들은 바로 이러한 관계의 회심이 실제 교회 안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이 부분의 신학적 기초는 「최종문서」 57항에 제시된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에 놓여 있다.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1코린 12,4-6)라는 말씀처럼, 교회 안에는 다양한 은사와 성소와 직무가 존재하지만 그것은 모두 같은 성령 안에서 공동선을 위해 주어진다. 교회 안의 다양한 성소와 직무는 세례를 통해 받은 사명과 성덕의 부르심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는 표현들이다. 그러므로 시노달리타스는 단순한 조직 운영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은사가 조화를 이루며 공동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의 존재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58~59항은 평신도 이해의 중요한 전환을 보여 준다. 오랫동안 평신도는 성직자의 활동을 보조하는 존재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종문서」는 평신도를 세상 안에서 복음을 살아가는 고유한 선교적 주체로 강조한다. 평신도들은 가정과 직장, 사회와 정치, 문화와 디지털 환경 안에서 복음의 정신을 드러내도록 파견된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교회 공동체의 역할이다. 교회 공동체는 단지, 내부 활동을 유지하는 조직이 아니라, 신자들을 세상으로 파견하고 그들 삶의 자리에서 수행되는 사명을 지지하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 59항에서 이것을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강조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60항에서는 여성들의 은사와 성소가 교회 안에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여기서 성경과 교회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이뤄진 여성의 역할을 확인하고, 여성의 지도력 수행, 여성 부제직 문제 역시 계속 식별돼야 할 과제로 남겨 둔다. 나아가 설교와 교리교육, 공식 문서에서 사용되는 언어와 이미지까지 성찰해야 한다고 요청한다. 이는 관계들의 회심이 교회의 문화와 표현 방식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변화임을 의미한다. 61~63항은 각각 어린이, 젊은이, 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과거에는 이들이 주로 보호와 돌봄의 대상이었다면, 「최종문서」는 그들을 교회의 능동적 주체로 바라본다. 이는 모든 이들, 특히 주변화된 이들의 목소리를 교회의 중심에 놓으려는 시노달리타스의 방향성을 잘 드러낸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5-31 제3493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10)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오늘의 세계와 교회: 제2부(53~56항)

「최종문서」는 시노드 과정에서 교회가 직면한 복잡한 현실을 ‘맥락(상황)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성찰한다. 교회가 자신의 사명을 실천하는 자리는 결코 단일하지 않다. 각 지역 교회는 고유한 문화적 풍요로움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사명 수행의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맥락 안에는 복음의 논리에 반대되는 폐쇄적 관계의 논리가 존재한다. 「최종문서」는 이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가르침을 따라 ‘죄의 구조’(「사회적 관심」, 36항)라고 칭한다. 곧 구조적 죄는 관계를 폐쇄시킨다. 이러한 구조는 장벽을 세우고 두려움을 조장한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회개뿐만 아니라 구조적 쇄신과 관계들의 회심이 동시에 필요하다. 「최종문서」는 오늘날 인류가 처한 비극적 상황을 관계의 단절과 균열이라는 관점에서 구체화한다. 전쟁과 무력 충돌, 무력에 의한 평화 건설, 이익을 위한 피조물과 인간의 착취 역시 이와 같은 신념에 기인한다. 이러한 세상의 논리는 교회 안에서도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있다. 남녀 불평등, 인종 차별, 장애인 차별, 이주민 배척 등의 장벽 역시 폐쇄성의 원리에서 말미암는다. 통합 생태론의 차원에서도 공동의 집인 지구와의 관계 균열이 인류 전체를 위협하고 있으며, 특히 태아부터 노인까지 인간 생명을 경시하고 버리는 가장 비극적인 폐쇄성이 만연해 있다. 시노드 과정에서 세상과 교회의 맥락은 늘 관련돼 있다. 세상의 악은 교회 안에서도 나타난다. 「최종문서」는 그동안 교회 내부에서 자행된 다양한 학대와 권력 남용 희생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성적 학대뿐만 아니라 영적 학대, 경제적 남용, 권력 남용, 양심의 학대 등 성직자와 교회 직분자들이 가한 끔찍한 잘못들을 하나하나 거명한다. 교회가 피해자와 생존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은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치유와 정의, 화해를 향한 것이다. 교회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겸허히 용서를 구함으로써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직시를 통해 교회는 자신의 사명을 새롭게 정의한다.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 상처받은 관계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것이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다. 이를 통해 교회는 비로소 하느님과 인류가 일치를 이루는 ‘성사’가 될 수 있다.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교회는 성령께서 모든 문화와 장소에 뿌려 주신 복음의 씨앗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상호 신뢰와 용서의 함양, 환대의 공동체 형성, 사람들과 지구의 삶을 증진하는 경제 건설, 갈등을 화해로 전환하는 능력 등의 열매를 맺는다. 역사적으로 종교 간에 자행된 적대 행위, 특히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분열과 적개심이라는 추문을 극복하려는 시노드 여정의 새로운 경험이 관계적 회심의 중요한 표징으로 제시된다. 시노드 과정에서 우리는 세상과 교회 안에 깊게 뿌리내린 폐쇄적이고 착취적인 관계의 어둠을 직시하고, 배척당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함으로써, 성령께서 이끄시는 관계적 회심과 일치의 사명으로 나아간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9) 관계들의 회심, 삶으로 고백하는 신앙: 제2부(49~52항)

「최종문서」 제2부는 시노드 교회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핵심 조건으로서의 ‘관계들의 회심’ 필요성과 구체적인 방향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처음 인용되는 성경의 무대는 시몬 베드로를 비롯한 많은 제자의 고향인 티베리아스 호수이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을 경험했지만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베드로와 함께 고기를 잡으러 기꺼이 동행한다. 「최종문서」는 이 장면에서 시노드 여정에 베드로의 후계자와 함께하는 교회 공동체를 본다. 시노드의 길에서 교회가 깨달은 것은 모든 관계의 소중함이다. 참으로 교회를 살아있게 하고 교회 구조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은 ‘관계’라는 전망이다. 전 세계의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과의 관계와 인간들 사이의 관계, 심지어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어 주는 교회를 열망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시노드 과정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경청 되고 있다는 기쁨을 표현했고, 이것은 혼인 상태, 성적 정체성 등 특정 상황으로 인해 교회 내에서 배제되거나 판단 받는 사람들의 고통에 함께하는 것에 이른다. 「최종문서」는 이러한 관계들을 돌보는 것은 교회의 조직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그 자체로 복음 선포이며,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보여 주는 신앙적 증언이라고 본다. 따라서 ‘관계의 회심’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에 선택이 아니라 필수 조건이다. 관계들의 회심에서 기준이며 모범이 되는 분은 복음서의 예수님이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자 했고, 누구도 배제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만났고, 그들의 필요와 믿음에 귀 기울였다. 그들에게 자비로운 아버지의 얼굴을 보여 주셨고, 그들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고, 삶을 변화시켜 주셨다. 「최종문서」는 바로 오늘의 교회 역시 현대 사회의 파편화된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진심을 다해 형제자매의 소리를 경청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만나시고 치유하시는 그 구원의 방식에 동참해야 한다고 요청한다. 「최종문서」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관계 회심’의 핵심 영역을 가리킨다고 본다.(52항) 성의 다름은 인간 관계성의 바탕을 이루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성의 다름은 차별이나 불평등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세례성사 안에서 남녀는 완전히 동등한 품위를 지닌다.(갈라 3,28 참조) 교회는 이러한 남녀의 다름을 하느님의 선물로 환영하고 상호 존중하는 관계를 살아감으로써 복음을 증언해야 한다. 그렇지만, 시노드 과정에서 드러난 많은 여성의 고통과 아픔은 교회가 자주 이 부분에서 실패해 왔음을 보여 주고 있다. 「최종문서」가 언급하고 있는 관계들의 회심은 바로 그 실패와 상처 위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계속해서 강조한다. “시노드 교회는 관계들의 진정한 회심 없이는 불가능하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5-03 제3489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8) 사회적 예언으로서 시노달리타스: 제1부(47~48항)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노달리타스를 공식적으로 제창하면서, 교회의 자기 이해를 교회 내부를 넘어 인류 전체를 향한 보편적 소명으로 확장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교대의원회의 제정 50주년 연설’에서 “시노드 교회는 민족들 가운데 들어 올려질 깃발과 같다”고 표현하며, 교회가 역사 안에서 인간 존엄과 공동선을 증언하는 예언적 주체임을 강조했다. 이 연설은 시노달리타스를 교회의 구성적 차원으로서만이 아니라 대안적 삶의 양식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최종문서」 제1부의 마지막 두 항(47~48항)은 시노달리타스가 지니는 이러한 사회적, 예언적 차원을 명시적으로 발전시킨다. 47항이 읽어 내는 오늘의 세계는 불평등의 구조적 심화,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뢰 약화, 권위주의적 통치의 확산, 시장 중심 논리가 인간과 창조 세계의 취약성을 압도하는 현상, 대화 대신 힘에 의존하는 갈등 해결 방식이 횡행한다. 이런 세상에서 시노달리타스는 그 지배적 논리를 비판하는 동시에, 이와 전혀 다른 관계 양식을 교회 안에서 구현하고 이를 통해 세상에 증언하는 삶의 방식이다. 「최종문서」는 이를 포용, 경청, 가난한 이들과 창조 세계에 대한 돌봄, 공동 책임성 등의 요소로 구체화한다.(48항) 이 관계 양식은 개인주의적 고립과 전체주의적 획일성이라는 양극단을 동시에 거부하며, 공동선을 위한 상호 의존성과 상호 돌봄을 지향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경청’의 신학적, 사회적 의미이다. 시노드 교회에서 경청은 단순한 소통 기술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의 식별 행위이며, 무엇보다 가장 가난하고 주변화된 이들의 목소리를 우선적으로 받아들이는 선택을 포함한다. 이는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돼 약자의 목소리가 구조적으로 배제되는 사회적 현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며, 교회를 하나의 ‘대항 문화적 표징’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점에서 시노달리타스는 단순한 참여 확대가 아니라 관계의 재구성을 요구하는 근본적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예언적 사명은 「찬미받으소서」에서 제시된 통합 생태론을 통해 인간과 사회, 창조 세계 사이의 상호 연결성을 강조함으로써 시노달리타스의 관계적 비전을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이는 교회의 시노달리타스가 단지 인간 공동체 내부의 문제를 넘어 창조 질서 전체를 향한 책임으로 나아가야 함을 시사한다. 덧붙여, 「최종문서」 79~102항이 강조하는 교회적 식별, 의사결정, 투명성, 책임 있는 설명, 평가의 문화는 권력의 집중과 불투명성이 만연한 현대 사회의 거버넌스(governance, 통치) 구조에 대해 대안적 모델을 제시하는 ‘실천적 증언’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시노달리타스는 분열과 불평등, 배제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 안에서 새로운 인간 공동체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사회적 예언이다. 또한 단순한 이상 제시가 아니라, 교회가 실제로 살아내야 할 삶의 형식이며, 그 실천을 통해서만 비로소 설득력이 있는 복음적 증언이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4-19 제3487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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