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말고 인간!] AI가 가르친다? 그래도 인간이 배워야 한다

지난 추석, 완벽한 차례상 위에는 정작 아무도 모르는 것이 하나 놓여 있었다. 며느리는 인터넷에서 ‘차례상 차리는 법’을 검색했고, 화면 속 정갈한 표는 홍동백서와 조율이시까지 순서대로 일러주었다. 상은 표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만으로 완성됐다. 그러나 정작 그 앞에 선 사람들 가운데, 대추가 왜 그 자리에 놓였는지 아는 이는 없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과 뉴멕시코주립대학교 공동연구진은 2025년 10월 발표한 논문에서 이 익숙한 장면의 속내를 밝힌다. 연구진은 만 명이 넘는 참가자를 모아, 한쪽은 생성형 AI의 요약으로, 다른 한쪽은 기존 방식대로 웹 검색 링크를 하나하나 찾아 읽게 했다. 그 뒤 각자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써 보게 했더니, AI로 배운 이들의 글은 유독 짧았고 구체적인 근거도 적었으며 서로의 글이 놀랍도록 비슷했다. 정보를 직접 찾아 나선 사람들과 달리, 힘을 덜 들인 자리에는 남는 것도 적었다는 뜻이다. 이 조언들을 누가 썼는지 밝히지 않은 채 1493명에게 평가를 맡기자, 사람들은 AI로 배운 이의 조언을 한결같이 덜 유익하고 덜 믿음직하다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AI는 정답을 가르쳐 줄 뿐, 그 정답에 이르는 길을 스스로 걸어야 비로소 배움이 된다고 짚는다. 차례상 앞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화면 속 표를 그대로 따라 하면 상은 차려지지만, 그 뜻은 차려지지 않는다. 대추는 씨가 하나여서 임금을 뜻하고, 밤은 세 톨이 나기에 삼정승을 뜻하며, 나물과 생선은 각각 땅과 바다의 결실을 대표해 나란히 놓인다는 것. 이런 이야기는 검색창이 아니라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나온다. 물어야 들을 수 있고, 그 이야기를 몇 번이고 되새겨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AI는 가르친다. 배움은 그 가르침을 스스로 붙잡고 씨름하는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화면 속 표는 상차림의 순서를 알려주지만, 그 순서 뒤에 담긴 마음까지 옮겨주지는 못한다. 조상을 기억하는 일도, 곁에 있는 가족을 헤아리는 일도, 누군가 가르쳐준다고 저절로 완성되지 않는다. 신앙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리서를 통째로 외운다고 믿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기도문을 수십 년 바치고도 그 뜻이 삶에 스며들지 않는 이가 있는가 하면, 짧은 한 구절을 붙들고 평생을 씨름하며 그 말씀을 자기 것으로 빚어낸 이도 있다.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배움은 저마다 다른 무게로 새겨진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결국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이 그 가르침과 씨름했느냐는 것이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가르침을 내놓아도, 그 가르침을 배움으로 바꾸는 몫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명절은 지나갔지만, 그 물음은 지나가지 않았다. 조상이 왜 그 자리에 대추를 놓았는지, 부모님이 왜 그 말씀을 하셨는지, 가르침만으로는 끝내 내 것이 되지 않는 그 이유를 다음에 만나면 다시 여쭤보자. 가르침은 한 번으로 끝나지만, 배움은 죽는 날까지 계속된다. AI가 가르친다? 그래도 인간이 배워야 한다. 글 _ 최홍규 안토니오(EBS 디지털교육기획부 연구위원, 미디어학 박사)

발행일 2026-10-18 제3511호 17면

[성미술 산책] 프라 안젤리코 <그리스도의 변모>

눈부신 토스카나의 태양 아래 아르노강이 유유히 흐르는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 바로 르네상스의 본산지인 이곳에는 보석과 같은 명소가 있습니다. 바로 도미니코회 산마르코 수도원 또는 프라 안젤리코 미술관이라 불리는 이곳 내부는 수사 화가인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87~1455)가 그린 벽화들로 가득 차 있지요. 성스러운 고요가 지배하는 평화로운 화면은 그 누구도 쉽사리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영성이 배어 있습니다. 성미술의 지향점인 예술과 영성이 일치된 화면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 수도원 2층에 오르자마자 마주치게 되는 <성모영보>를 시작으로 복도 양편으로 줄지어 있는 수사들의 독방에는 그리스도 생애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등신대 크기로 그려 놨는데 이는 명상과 기도를 돕기 위한 것입니다. 그중에서 제6독방에 그려진 <그리스도의 변모>를 감상합니다. 제자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데리고 타볼산에 오른 예수는 홀로 바위 위에 올라 서 있는 듯 보이는데, 실은 그가 산 정상에 서 있는 것을 나타낸 것이지요. 이같이 산을 바위 모습으로 표현한 것은 중세 동방 이콘의 영향입니다. 온통 천상의 신비로운 황금빛 배경 중앙에 순백의 옷을 입은 예수가 팔을 양편으로 활짝 펼치고 있고, 그 주위는 눈부시게 빛나는 새하얀 빛, 만돌라가 감싸고 있습니다. 이는 ‘빛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이자 곧 맞이할 그의 운명인 십자가 사건을 연상시킵니다. 화면 하단에는 이 광경을 바라보며 각양각색의 자세로 놀라워하며 바라보지 못하는 세 명의 제자가 있고, 좌측에는 고귀한 짙은 보라색 망토 차림에 겸손되이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성모 그리고 맞은 편에는 기도드리는 도미니코 성인이 있습니다. 여기 도미니코의 등장은 수사들을 깊은 관조로 이끄는 안내자 역할을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의 양팔 아래에는 구름 위 머리만 떠 있는 듯 초현실적으로 표현된 구약의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 좌측에는 율법을 나타내는 모세 그리고 우측에는 엘리야가 신약의 구세주 도래가 구약 시대부터 예정된 하느님의 역사임을 말해줍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마르 9,4) “그리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루카 9,30-31) 그리고 놀랍도록 정제된 눈부신 공간에서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발행일 2026-10-18 제3511호 14면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서] 라 베르나(La Verna), 프란치스코의 골고타 언덕(2)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성당을 나와 오른편으로 오르면 라 베르나 성지의 가장 중심이 되는 해시계의 광장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 장소는 1612년 자코포 리고찌(Jacopo Ligozzi)가 대성당 종탑 벽에 지금도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해시계를 만들어 놓은 데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광장에는 이 산의 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하늘과 계곡과 나를 이어주는 중심처럼 서 있으며, 카센티노 계곡의 탁 트인 전경을 감상할 수도 있습니다. 거대한 돌담으로 둘러싸인 넓은 공간은 바깥세상과 신성한 공간 사이의 경계를 상징하는 듯합니다. 광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은 성모 승천을 기념하여 14세기에 봉헌된 바실리카 대성당입니다. 성당 내부에는 안드레아 델라 롭비아의 수태고지, 예수 탄생, 예수 승천 등 테라코타 작품을 볼 수 있고, 유물 소성당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이 라 베르나에서 오상을 받을 때 입고 있던 수도복과 오를란도 백작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사용한 손수건, 밥그릇, 물잔과 오상의 옆구리에서 흐른 피가 묻은 천 조각, 라 베르나 산을 오를 때 사용한 지팡이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유물들은 성인의 시간으로 우리를 한 걸음 더 가까이 인도하는 듯합니다. 광장과 연결된 계단을 따라 아래에 있는 ‘사소 스피코(Sasso Spicco)’는 라 베르나 지역 전체에서 가장 강렬하고 거칠며, 영적으로 깊은 감동을 주는 곳 중 하나입니다. 깊고 좁은 협곡 위로 솟아오른 거대하고 인상적인 암벽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이 골고타 언덕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는 순간 땅을 뒤흔든 지진에 의해 이 거대하고 갈라진 바위들이 생겼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이 협곡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예수님의 현존이었습니다. 성인은 사소 스피코의 희미한 빛과 고립된 환경을 고독한 기도와 참회 그리고 그리스도 수난의 신비에 대한 깊은 묵상을 위한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선택했습니다. 사소 스피코 위에는 14세기 후반 모든 은수자의 주보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봉헌된 경당이 있습니다. 라 베르나 성지에서 가장 아늑하고 유서 깊은 장소 중 하나로, 1214년 프란치스코 성인이 라 베르나 산에 처음 올라와 기도하고 잠을 자던 첫 번째 초막이 있던 장소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성당 안에 보관된 가장 귀중한 보물은 바로 ‘약속의 탁자(Mensa delle promesse)’입니다. 현재 제대에 끼워진 이 돌은 성인이 잠자리이자 소박한 식사를 위한 식탁으로 사용했던 바위였을 것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어느 날 성인이 기도에 몰두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바로 이 바위에 앉아 그와 다정한 대화를 나누셨다고 합니다. 순례자들은 그 신비로운 돌을 만져보며 예수님의 현존을 지금 바로 여기서 느낄 수 있습니다. ‘오상 경당’을 가기 위해서는 바실리카 대성당과 연결된 ‘오상 회랑’을 지나야 합니다. 오상 회랑은 대성당과 오상 경당을 연결하는 건축적, 신학적 구조물입니다. 1578년에서 1582년 사이 건설된 이 길고 지붕이 덮인 통로는 원래 혹독한 겨울철에 산을 강타하는 매서운 바람, 비, 눈으로부터 수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회랑이 건설되기 전 수도자들은 험준하고 종종 얼어붙은 길을 따라 악천후를 무릅쓰고 경당에 가야만 하였습니다. 당시 행렬은 하루에 두 번, 낮과 밤에 진행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오후 3시에 경당 방향으로, 오후 3시30분에 대성당 방향으로 행렬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어느 날 밤 강한 눈바람 때문에 수도자들은 그날 밤 행렬을 포기하게 됩니다. 다음 날 아침 행렬을 위해 이곳에 모인 수도자들은 눈 위에 수많은 발자국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숲속 동물들이 수도자들을 대신해 행렬했던 것입니다. 이 기적적인 사건은 날씨와 관계없이 행렬을 할 수 있는 회랑 건설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복도의 벽면에는 피렌체 화가 바초 마리아 바치(Baccio Maria Bacci)가 20세기에 그린 프란치스코의 이야기가 18점의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현대적인 스타일이면서도 전통을 존중하는 이 그림들은 프란치스코의 회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감동적인 순간들을 묘사하며 순례자들에게 깊은 사색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회랑 중간쯤에 있는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깊고 축축한 바위틈 사이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침대가 보입니다. 아시시의 가난한 사람 성 프란치스코는 차갑고 습기 많은 곳에서 잠을 자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의 십자가 고통에 오로지 일치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라 베르나 성지의 신학적·영적 중심지인 오상 경당은 1263년 시모네 다 바티폴레(Simone da Battifolle) 백작의 요청으로, 1224년 9월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리스도 수난의 인장을 몸에 받은 바로 그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이 경당은 단순하고 소박한 건축 양식을 띠고 있으며 수도자들이 매일 기도하는 자리가 양옆으로 채워져 있고, 제대 정면에는 안드레아 델라 롭비아가 1481년경 제작한 기념비적인 테라코타 십자가상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흰색과 파란색이 주를 이루는 이 작품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둘러싸고 눈물을 흘리는 천사들과, 그의 발치에 슬픔에 잠긴 성모 마리아, 성 요한, 성 프란치스코, 성 예로니모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상 경당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는 제단 앞 바닥에 대리석 테두리로 표시된 곳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1224년 9월 14일경 프란치스코 성인은 자신이 세운 수도회 안에서 형제들 사이에 여러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극심한 고통과 혼란 속에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 있다고 여겨지는 여섯 날개를 지닌 세라핌 천사가 예수님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도록 프란치스코를 초대하며, 그의 손과 발과 옆구리에 그리스도의 상흔을 새겨 주었습니다. 이곳은 하느님께서 프란치스코의 오상을 통해, 세상 삶의 무게를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임을 우리 모두에게 드러내신 자비의 장소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희망입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

발행일 2026-10-18 제3511호 13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요한 드 브레뵈프 〈예수께서 태어나셨다〉

10월 18일은 복음 선포의 사명을 되새기는 전교 주일이다. 1926년 비오 11세 교황이 제정한 전교 주일은 올해 100주년을 맞았고, 레오 14세 교황 역시 “순례하는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교회”임을 재차 강조했다.(「만민에게(Ad Gentes)」, 2항 참조) 바로 다음 날 19일, 우리는 북아메리카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성 요한 드 브레뵈프와 성 이사악 조그, 그리고 동료 순교자들을 기억하게 된다. 전교 주일 이튿날, 머나먼 땅으로 건너가 그곳 사람들 곁에서 살아간 이들을 만나는 셈이다. 그중 브레뵈프(Jean de Brébeuf, 1593~1649)에게는 조금 특별한 노래 하나가 따라다닌다. 〈Jesous Ahatonhia〉. 웬다트(Wendat)어로 ‘예수께서 태어나셨다’라는 뜻이며 오늘날 휴런족 캐럴로도 알려졌다. 웬다트는 캐나다에 거주하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집단으로, 과거 휴런(Huron)족으로도 불렸다. 이는 오랫동안 웬다트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불렸다. 오늘날에는 브레뵈프가 직접 썼다는 전승과 함께, 공동체의 오랜 구전 속에서 다듬어진 곡일 가능성도 제시된다. 선율의 이력도 흥미롭다. 이는 16세기 프랑스에서 불리던 곡 〈한 젊은 처녀(Une jeune pucelle)〉에서 왔다고 추정된다. 본래 원치 않게 수녀가 된 한 여성의 비애를 담은 세속의 노래였지만, 성모 영보와 마리아의 응답을 묘사한 가사로도 바뀌었다. 이것이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선교사와 함께 바다를 건넜으며, 북미에 도착해 그곳 사람들의 말로 성탄 이야기를 품게 됐다. 당시 예수회원들은 노래가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일찍 눈여겨봤다. 브레뵈프의 동료 폴 르죈(Paul Le Jeune)은 1633년 기록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들이 숲에서 배운 것, 즉 교리 내용을 노래하는 소리를 듣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 곡 역시 그런 맥락에 있다. 유럽의 옛 선율과 북미의 말과 문화가 어우러졌고, 그렇게 수백 년 동안 이어졌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영어 가사까지 더해지며 원곡과는 사뭇 달라졌지만, 후렴에는 오래된 문장이 남아 있다. “예수께서 태어나셨다.” 성 요한 드 브레뵈프와 성 이사악 조그, 동료들은 모두 잔혹한 방식으로 순교했다. 17세기 중엽 웬다트 마을들은 이로쿼이 연맹의 거센 공격에 시달리고 있었고, 현장에 있던 선교사들도 그 소용돌이를 피하지 못했던 것. 이사악 조그 신부는 1642년 이로쿼이족 분파였던 모호크족에게 붙잡혔고 탈출해 프랑스로 돌아갔지만, 다시 북미로 향했다. 그리고 1646년, 결국 모호크족의 손에서 세상을 떠났다. 브레뵈프 역시 1649년 자신이 선교하던 땅에서 성 가브리엘 랄르망 신부와 함께 이로쿼이족의 잔혹한 고문을 받고 순교했다. 이른바 ‘북미의 첫 순교자들’이 된 이들은 1930년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예수께서 태어나셨다〉의 소박한 가락에는 낯선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말로 복음을 전했던 이들의 의지와 열망이 녹아 있다. 프랑스에서 출발한 곡은 대서양을 건너 웬다트족의 새 언어를 얻었고, 그리스도를 찬미하는 노래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같은 말을 기쁘게 되풀이한다. “용기를 내라. 사람들이여. 예수께서 태어나셨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10-18 제3511호 17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엘리자베트 자케 드 라 게르 〈유딧〉

유딧이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움켜쥐고 칼을 댄다. 옆의 시녀도 온몸으로 저항을 막는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그림 속 두 인물은 강렬하다. 젠틸레스키가 성경 속 여인들의 이야기를 화폭에 담았다면, 또 다른 여성은 음악으로 풀어냈다. 프랑스 음악가 엘리자베트 자케 드 라 게르(Élisabeth Jacquet de La Guerre, 1665~1729)가 작곡한 〈유딧〉이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건반 연주로 루이 14세의 주목을 받은 그녀는 1694년 오페라의 일종인 서정 비극 〈세팔과 프로크리스〉를 선보였다. 프랑스에서 여성 작곡가의 대규모 극음악이 무대에 오른 첫 사례였다. 그러나 이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이후 그녀는 이런 작품을 다시 내놓지 못했다. 왕의 후원을 받았어도 당시 여성이 건반음악이나 소품이 아닌 극음악으로 입지를 다지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그녀가 1708년 내놓은 성서 칸타타집에는 구약 속 여성들의 이야기가 여럿 담겼다. 정확히는 〈에스테르〉, 〈수산나와 원로들〉, 〈유딧〉으로 총 여섯 곡 중 세 곡이 여자들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남성 중심의 음악계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했던 작곡가는 성경 속 영웅, 의로운 여인들에게 어떤 마음을 품었을까. 역경에도 물러서지 않는 이들의 모습에 자신을 이입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유딧〉의 첫 레치타티보는 “기근이나 전쟁으로, 베툴리아는 숨을 거두려 하고 있었다”는 구절로 시작한다. 이어 “그 성읍을 포위한 잔혹한 자는 자신과 유딧이 함께할 호화로운 잔치를 준비하게 했다”는 가사가 나온다. 유딧기 7장의 죽어가는 성읍과 12장 연회 장면을 곧바로 붙인 것이다. 홀로페르네스는 유딧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과음해 쓰러진다. 유딧은 칼로 그의 목을 베어 공동체를 구한다. 그 결정적인 순간에 앞서 프랑스어로 ‘잠’을 뜻하는 기악 악장 〈Sommeil〉이 흐른다. 옛 프랑스 음악에서 수면 부분은 주인공이 무방비해지고, 그 곁에서 다른 인물의 마음이 드러나는 심리적 장면인 경우가 많다. 라 게르의 잠 음악도 마냥 평온하지는 않다. 자장가처럼 조용하지만 선율은 계속해서 굽이치고 화성은 좀처럼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홀로페르네스는 잠들었지만, 그의 최후를 아는 청자는 쉽사리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우리는 한 여성이 칼을 들기까지의 시간, 잠든 홀로페르네스 옆에서, 유딧의 굳건한 결단의 시간을 함께 목도하는 느낌을 받는다. 판관기의 적장 시스라도 떠오른다. 야엘의 천막에서 우유를 마시고 깊이 잠든 그 역시 한 여성의 손에 죽음을 맞았다.(판관 4,17-22 참조) 유딧과 홀로페르네스, 야엘과 시스라. 잠든 지휘관의 평온과 그 곁에서 깨어 있는 여인들의 결심이 묘한 긴장을 이룬다. 독창과 간소한 악기 구성으로 연주하는 성서 칸타타는 성경 이야기를 실내의 청중 가까이 옮겼다. 자케 드 라 게르는 이 장르를 통해 무대에서 다 펼칠 수 없었던 자신의 극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가장 연약한 손으로도 그분 기적을 이루기에 충분하다(Et la plus faible main suffit pour ses miracles).” 〈유딧〉의 마지막 가사에는 여성과 과부, 여종처럼 당대 취약하던 이들도 하느님의 가장 위대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담겨 있다. 어쩌면 이는 당시 여성이 지닌 한계 속에서도, 음악으로 오롯이 자신의 길을 일구어갔던 작곡가의 신념이자 고백이었을지도 모른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10-11 제3510호 17면

[AI 말고 인간!] AI가 읽는다? 그래도 인간만이 아로새긴다

전철에서 마주 앉은 승객들의 손끝은 하나같이 화면 위를 오간다. 뉴스 기사 하나를 다 읽었다고 느끼며 화면을 내려놓지만, 정거장 두어 개를 지나면 방금 읽은 제목조차 흐릿해진다. 반면 손끝으로 책장을 넘기며 읽은 문장 하나는 며칠이 지나도 문득 떠오른다. 같은 글자를 읽었는데, 왜 하나는 스치고 하나는 마음에 새겨지는가. 이 물음에 ‘뇌파’로 답한 연구가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사범대학 산하의 언어 및 인지 뇌과학 연구실은 2024년 5월, 뉴욕 대도시권의 중학생 59명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아이들에게 여러 편의 설명문을 종이 인쇄물과 노트북 화면으로 각각 읽힌 뒤, 읽은 내용과 관련 있는 단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게 하면서 뇌파를 살폈다. 눈길을 끈 것은 대놓고 관련 있거나 대놓고 무관한 단어가 아니라, 있는 듯 없는 듯 애매한 단어를 마주했을 때였다. 화면으로 읽은 아이들의 뇌는 이 애매한 단어를 보고도 “이건 상관없는 말이네” 하고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반면 종이로 읽은 아이들의 뇌는 같은 단어를 보고 “어, 이거 아까 읽은 거랑 통하는데” 하듯 반응했다. 연구진은 이 차이를 종이로 읽은 글일수록 아이들 머릿속에 더 촘촘한 의미의 연결망이 형성됐을 가능성을 보여 주는 신호로 해석했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따로 있다. 문제를 얼마나 맞혔는지, 얼마나 빨리 풀었는지를 보면 종이든 화면이든 아이들의 성적은 큰 차이가 없었다. 시험지만 놓고 보면 둘 다 똑같이 잘한 셈이다. 그런데 뇌는 달랐다. 겉으로 드러난 이해도는 비슷했지만, 그 이해가 머릿속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렸는지를 보여 주는 뇌파 신호는 종이 쪽이 더 뚜렷했다. 성적표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뇌 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벌어지고 있던 차이였다. 우리가 읽기에서 스스로 알아채기 어려운 차이가 의미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는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결과는 요즘 우리가 겪는 읽기와 겹친다. 화면을 밀어 올리며 글을 읽을 때, 우리는 다음 문장과 기사로 넘어가는 데만 마음이 가 있다. 이해했다는 감각은 들지만, 그 문장을 오래 붙들어 이미 알던 것과 이어 붙이지는 않는다. AI에게 요약을 맡길 때는 더하다. 결론만 받아 쥐면 다 읽은 것 같지만, 정작 문장과 문장을, 새로 안 것과 이미 알던 것을 스스로 이어 붙이는 수고는 건너뛰게 된다. 그 수고야말로 스치는 정보를 마음에 아로새기는 유일한 방법인데 말이다. 읽는다는 것은 정보를 옮겨 담는 일이 아니다. 한 문장이 다음 문장과 만나고, 그 만남이 이미 알고 있던 것과 부딪히며 마음에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흔적이 깊을수록 나중에 다시 꺼내 쓸 수 있는 ‘앎’이 된다. AI는 방대한 텍스트를 순식간에 훑어 그럴듯한 요약을 내놓지만, 그 요약을 받아 든 사람의 마음에 흔적이 남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화면을 넘기는 손가락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리 마음에 새겨지는 흔적은 오히려 옅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이에게 책 한 권을 손에 쥐여 주는 일이 새삼 중요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완독의 경험, 긴 문장을 끝까지 따라가는 인내, 다시 앞장으로 돌아가 확인하는 손의 움직임. 이 모든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에 무언가를 아로새기고 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끝까지 읽은 책은 언제였는가. AI가 읽는다? 그래도 인간만이, 아로새긴다. 글 _ 최홍규 안토니오(EBS 디지털교육기획부 연구위원, 미디어학 박사)

발행일 2026-10-11 제3510호 17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힐데가르트 성녀 〈오 동정녀 교회여〉

십자가 아래 한 여인이 서 있다.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손에는 잔을 들었다.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는 피가 흘러나와 잔에 담긴다. 여성은 누구일까. 바로 의인화된 교회(Ecclesia)다. 빙겐의 성녀 힐데가르트(Hildegard von Bingen, 1098~1179)가 본 교회의 모습이다. 여기서 교회는 살아 있는 인격체처럼 등장한다. 그녀는 어머니이자 동정녀이며,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신부다. 「스키비아스」 제2부 제6환시에서 교회는 십자가 아래에서 신랑인 그리스도의 피를 받는다. 힐데가르트는 이를 통해 십자가 희생과 성찬례를 하나로 잇는다.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가 교회에 주어지고, 교회는 다시 그 몸과 피를 성찬례 안에서 받아 모시며 살아간다. 이를 떠올리게 하는 힐데가르트의 성가가 있다. 안티폰 〈오 동정녀 교회여(O virgo Ecclesia)〉다. 노래는 교회를 한 여인에게 말하듯 부른다. 후반부 가사는 이렇다. “오, 구세주의 피는 얼마나 귀한가(O quam preciosus est sanguis Salvatoris), 그 피는 왕의 깃발 아래에서(qui in vexillo regis), 교회를 그분께 신부로 맺어 주었다(Ecclesiam ipsi desponsavit).” 여기서 ‘왕의 깃발’은 십자가를 가리킨다. 십자가는 처형 도구였지만 옛 신학적 맥락, 그리고 힐데가르트에게는 신랑과 신부가 결합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즉 그리스도의 피가 교회를 그분의 신부로 맺어 준다는 것. 교회를 여성으로 그리는 것은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성경에서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혼인 비유로 설명된다.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에페 5,25 참조) 요한묵시록에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신부가 등장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역시 이를 명확히 한다. “하늘의 예루살렘인 교회는 순결한 어린양의 순결한 신부로 묘사된다.”(「교회 헌장」 6장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성모 마리아와 사랑받는 제자를 서로에게 맡기셨고, 그분 옆구리에서는 물과 피가 흘러나왔다.(요한 19,26-27,34 참조) 교부 전통은 이 물과 피를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의 표상으로 보았고, 새 아담 그리스도의 열린 옆구리에서 교회가 태어난다고 해석했다. 힐데가르트는 이러한 언어를 눈에 보이는 형상과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힐데가르트의 교회는 피와 몸, 탄생과 혼인, 사랑과 결합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이런 맥락에서 성찬례 역시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와 교회가 다시 만나는 자리다. 천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성녀의 음악은 여전한 질문을 던진다. 교회란 무엇인가. 왜 이는 십자가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는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고, 머리이신 그분의 살과 피로 자라나는 지체다. 힐데가르트가 보았고 노래했던 아름다운 여성. 그녀에게서는 그리스도에게서 태어나 그분 생명으로 살아가는 온 교회의 신비가 응축되어 있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10-04 제3509호 16면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서] 라 베르나(La Verna), 하느님을 만난 거룩한 산(1)

프란치스코 성인이 세상에서 가장 머물고 싶었던 장소는 어디였을까요? 아마도 성인에게 세상의 중요한 장소는 두 군데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곳은 사람들을 만나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장소이고, 다른 한 곳은 하느님을 만나 고요한 침묵 속에서 말씀을 듣는 장소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계명이자 예수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마태 22,37-39) 성인에게 이 장소는 사람들과, 하느님과 사랑을 나누는 곳이었습니다. 마을에서 설교라는 방법으로 사랑을 주었고 구걸이라는 방법으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은둔소에서는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며, 하느님의 사랑으로 스스로를 충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성인은 베네딕도 수도원처럼 사람을 피해 산속에 머무는 혼자만의 은둔 생활이 아니라 마을로부터 너무 멀지도 않은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장소를 선택하여 머물기를 좋아하였습니다. 성인의 은둔소 중 가장 높은 해발 1120m에 있는 성지 ‘라 베르나(La Verna)’는 언뜻 생각하면 베네딕도 수도원처럼 산속 깊숙한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람들이 살던 마을 ‘키우지 델라 베르나(Chiusi della Verna)’에서 2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1213년 몬테펠트로의 산 레오 성에서 프란치스코의 설교에 감명을 받은 키우지의 영주 오를란도 백작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라 베르나 산을 프란치스코와 형제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라 베르나 산이 매우 험준하고 거룩한 곳이라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고행하거나 은둔 생활을 하기에 아주 적합하다고 말하며, 자신의 영혼 구원을 위해 이 산을 내주고자 했습니다. 소유를 원치 않던 프란치스코는 백작의 말처럼 속죄와 기도 생활에 적합한 산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형제 둘을 먼저 보냈습니다. 그 말이 다르지 않음을 듣고 1214년부터 오상을 받던 1224년까지 여섯 번 이 산에 오르게 됩니다. 지금은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로 대부분 순례자가 다니고 있지만, 프란치스코와 동료들이 다녔던 돌길을 통해 올라가는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울창하고 거대한 너도밤나무와 전나무 숲으로 뒤덮인 산은 마치 신비로운 기운을 품고 있는 듯 장엄하게 솟아 있습니다. 햇빛이 거의 새어 들어오지 않는 오래된 나무들 사이로 오르는 길은 마음을 고요와 사색으로 이끌고, 순례자를 일상의 번잡함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해 주며, 800년 전으로 돌아가 이 길을 오르던 프란치스코의 마음은 무엇이었을지도 생각하게 해 줍니다. 라 베르나 성지에 도착하기 전 가파른 길 때문에 숨이 차오르기 시작할 즈음 조그만 경당이 나타납니다. 문이 닫혀 들어갈 수는 없지만 문 중앙에 뚫려 있는 작은 격자 틈으로 어둑한 안을 들여다보면 새 떼에 둘러싸인 프란치스코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전기 「프란치스코의 잔꽃송이」는 프란치스코가 처음 라 베르나에 오르는 도중 강하고 공격적인 맹금류부터 작고 연약한 참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새들이 요란한 날갯짓으로 프란치스코를 환영하였다고 합니다. 험준하고 고립되어 보이는 이 장소가 얼마나 거룩한 장소인지를 하느님께서 당신의 피조물을 통해 보여 주신 표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당은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1602년에 세워졌습니다. 새들의 경당을 지나 약 100m 길을 오르다 보면 중세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만나게 되고 문 위에 써진 라틴어 문장은 다시 한번 이곳이 거룩한 장소임을 되새겨 주며 마음을 가다듬고 들어가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Non est in toto sanctior orbe mons(이 산보다 거룩한 산은 세상에 없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정면에는 이곳에서 가장 먼저 프란치스코 성인이 봉헌한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성당이 있습니다. 1216년 프란치스코는 기도 중에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발현한 동정 마리아의 환시를 보았고, 마리아는 프란치스코에게 이 성당의 크기와 지을 장소를 직접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성당 내부는 칸막이로 나뉘어 있습니다. 성당에 들어서면 앞 공간은 1250년부터 10년간 확장된 곳이고, 수도자들의 기도 좌석이 있는 안쪽 부분은 프란치스코가 직접 봉헌한 공간입니다. 칸막이벽 양쪽에는 롭비아 가문의 안드레아와 그의 아들이 만든 유약을 발라 구워 만든 테라코타 두 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 프란치스코와 성 안토니오가 함께 있는 예수 탄생이고, 다른 하나는 십자가에서 내려져 마리아와 사도 요한이 함께 무덤에 모시는 피에타입니다. 값비싼 대리석이 아닌 진흙이 주재료인 테라코타는 가난이라는 프란치스코의 성향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의 예술 작품들은 모두 테라코타로 되어 있습니다. 수도자들의 기도석이 있는 제단 위에는 역시 안드레아가 단독으로 1488년에 만든 테라코타 부조가 있습니다. 중심에는 얼굴과 여섯 개의 날개로 표현되는 세라핌과 케루빔에게 둘러싸인 동정 마리아가 있고 그 아래에는 왼쪽부터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 사도 성 토마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 보나벤투라가 동정 마리아의 승천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모 마리아는 성 토마스에게 당신의 성스러운 허리띠를 내려 주고 있는데,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의 상처 난 옆구리에 손을 넣었던 성 토마스가 또다시 동정 마리아의 승천을 믿지 못하자, 마리아는 당신의 허리띠를 내려 주었다고 합니다. 현재 이 성유물은 피렌체 근교에 있는 프라토 대성당에 모셔져 있습니다. 중앙 제대 아래에는 1262년에 선종한 오를란도 백작의 무덤이 있습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

발행일 2026-10-04 제3509호 13면

[성미술 산책] 피터르 브뤼헐 <맹인들의 우화>

한눈에 보기에는 농촌의 정겨운 소소한 일상을 담은 친근한 그림으로 보이지만 정곡을 찌르는 ‘진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도덕적 메시지를 담은 16세기 플랑드르 미술의 거장 피터르 브뤼헐의 <맹인들의 우화>입니다. 뒤로 하늘로 높이 솟은 교회가 보이는 평화로운 전원 풍경이 있습니다. 앞쪽으로 맹인들이 서로의 지팡이에 의지하며 앞으로 향합니다. 누더기 차림에 각양각색의 눈 질환을 앓는 이들은 대체 어디로 향하는 걸까요? 과연 목적지에 무사히 이를 수 있을까요? 그런데 벌써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얼핏 보기에 다섯 명으로 보이지만 선두에는 역시 맹인인 리더가 한 명 더 있어서 총 여섯 명인데, 그는 앞의 구덩이에 빠져 뒤로 나동그라져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연하늘색 복장의 남성은 연달아 넘어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휑하니 안구를 드러내 움푹 팬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느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루카 6,39-41) 두 번째, 세 번째 줄줄이 넘어질 이들을 생각하니 그저 안타깝고 안쓰럽습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 하지만 일이 조금 잘 풀리는 듯하면 자아도취에 빠지는 어리석은 인간입니다. 브뤼헐은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이끌어 자신은 물론 그를 따르는 이들을 구덩이에 빠지게 하곤 합니다. 선두에서 인파를 이끄는 일이 얼마나 막중하고 엄중한 일인지, 리더는 단지 공동체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선두에서 주어진 역할’에 충실히 임하는 자임을 망각하고, 겁 없이 또는 교만함으로 총대를 메곤 합니다. 그런데 이는 리더만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가 어리석은 자임을 알아보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분별력 없는 공동체의 공동 책임입니다. 사제이자 철학자였던 에라스뮈스(Erasmus, 1466/1469~1536)는 인간 세상을 바라보며 외쳤습니다. “세상에, 이런 쇼는 없다. 이 무슨 연극이란 말인가. 어리석은 이들의 행동은 얼마나 기이한가!” 그렇습니다. 브뤼헐은 어리석은 인간 세상을 ‘블랙 유머’에 녹여내 보여 줍니다.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엄중하게 전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화면에 특유의 유머를 담아 관객을 무장 해제시키면, 그 깊고 진실된 메시지에 스며들게 됩니다. 멀리 보이는 교회 종탑은 무질서한 세상이지만 이 세상에 구원의 희망은 있다고….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발행일 2026-10-04 제3509호 14면

[AI 말고 인간!] AI가 인식한다? 그래도 인간만이 체감한다

봄볕이 따스한 화단 앞, 아이가 쭈그려 앉아 장미 한 송이에 손을 뻗는다. 손끝에 닿는 매끄러운 꽃잎의 감촉, 코끝을 스치는 진한 향기, 손가락에 살짝 묻어나는 이슬. 이 감각들이 뒤섞이는 순간, 아이는 비로소 ‘장미’를 알게 된다. 이 앎은 누구도 말로 다 가르쳐 줄 수 없다. 그런데 요즘 AI에게 “장미를 아느냐”고 물으면, 막힘없이 색과 향과 촉감까지 유려하게 설명한다. AI는 정말 장미를 아는 것일까, 아니면 장미에 대한 말들을 알 뿐일까. 오하이오주립대학교와 홍콩이공대학교를 비롯한 공동연구진은 2025년 6월, 이 물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4,442개 영어 단어를 놓고,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축적해 온 대규모 언어 평가 자료와 질문에 답을 내놓는 생성형 AI인 오픈AI의 챗지피티(GPT-3.5, GPT-4), 구글의 팜(PaLM2)과 제미나이(Gemini)의 응답을 나란히 비교했다. 비교한 특성은 세 갈래였다. 우선 어떤 단어가 좋은지 나쁜지, 흥분되는지 차분한지, 크기는 얼마만 한지처럼 몸의 감각이나 움직임과 관련 없는 차원을 비교했다. 또한 촉각과 청각, 후각, 시각, 미각 같은 오감으로 경험하는 차원을 비교하면서, 손과 발, 입, 몸통을 움직여 경험하는 운동 차원도 비교했다. 쉽게 말해 머리로 판단하는 것, 감각으로 느끼는 것, 몸으로 행하는 것을 따로 물어 비교한 셈이다. 결과는 차이를 분명히 보여 줬다. 몸과 직접 닿지 않는 차원에서 AI는 인간과 매우 비슷하게 답했다. 그러나 냄새와 촉감을 묻는 감각 차원에서는 일치도가 눈에 띄게 떨어졌고, 손발과 몸통을 움직여 경험하는 운동 차원에서는 인간과의 유사성이 거의 사라졌다. 이미지까지 배운 GPT-4와 제미나이는 시각 차원에서는 살짝 나았지만 운동 차원에서는 똑같이 무력했다. 흥미로운 사실도 있다. 연구진이 처음 “당신은 이것을 얼마나 경험하는가”라고 묻자, AI는 몸이 없어 냄새 맡거나 만질 수 없다고 답했다. 결국 질문을 “인간이라면 얼마나 경험할까”로 바꿔야 했다. AI 스스로 몸이 없다고 고백한 순간, 이 연구의 결론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던 셈이다. 인식과 체감은 다르다. AI의 인식은 방대한 텍스트에서 패턴을 뽑아내는 일이다. 인간이 평생 읽을 수 있는 양을 아득히 뛰어넘는 글을 학습하고도, AI는 장미 한 송이의 향기를 몸으로 겪은 적이 없다. 반면 인간의 체감은 몸을 통과한다. 손끝으로 만지고 코로 맡고 발로 걸어 본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하나의 개념이 완성된다. 이것이 체화된 인지, 곧 몸이 체감의 통로라는 오래된 통찰이다. 향기를 맡아 본 적 없는 이가 아무리 유창하게 향을 설명해도, 그것은 체감이 아니라 체감의 흉내일 뿐이다. 우리는 요즘 몸을 쓰는 일을 점점 줄여 간다. 화면을 두드리는 손가락 하나로 세상을 다 안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수를 손끝에 찍어 이마에 긋고, 두 손을 모아 무릎을 꿇고, 이웃과 손을 맞잡아 인사하는 몸짓에는 말로 옮길 수 없는 체감이 담겨 있다. 몸을 움직여 살아낸 시간만이 진짜 체감을 빚어낸다. 오늘 당신은 세상을 얼마나 몸으로 체감하고 있는가. AI가 인식한다? 그래도 인간만이, 체감한다. 글 _ 최홍규 안토니오(EBS 디지털교육기획부 연구위원, 미디어학 박사)

발행일 2026-10-04 제3509호 16면
기사 더보기더보기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