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식자재 창고…반찬 하나를 더 줄였다”

2월 28일 시작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100일을 넘어섰다. 호르무즈해협 봉쇄와 에너지 기반시설 파괴 등으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전쟁이 만들어 낸 이익은 일부 기업과 자본에 집중되고 있다. 반면 피해는 가장 낮은 곳부터 찾아왔다. 전쟁으로 인한 물가 상승을 뜻하는 ‘워플레이션’은 복지 사각지대를 메워 온 무료급식소의 운영난으로 이어졌다. 식재료와 생필품 가격은 오르고, 민간 후원은 줄어든 탓이다. 한 끼의 온기를 전해 온 무료급식소가 흔들리고 있다. 물가 상승 흐름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자주 구입하는 쌀, 달걀, 라면 등 생활필수품을 대상으로 작성된 ‘생활물가지수’는 올해 5월 기준 123.19(2020년 기준 100)를 기록했다. 전쟁 전인 1월은 121.1로, 발발 이후 체감 물가가 2% 가까이 올랐음을 알 수 있다. 식재료와 생필품 지출 비중이 큰 무료급식소가 체감하는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줄어든 후원은 무료급식소의 살림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청주교구 관할 무료급식소인 ‘성 빈첸시오의 집’은 푸드뱅크에서 지급받던 물품이 줄어 부식을 축소하고, 식단 구성도 바꿨다. 고물가 속에서 유통기한 임박상품 전문 쇼핑몰이 확산되면서, 과거 기부로 이어지던 물량 일부가 판매 시장으로 흡수된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 영등포 ‘토마스의 집’도 후원 감소로 쌀이 부족해 수년 만에 처음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았다. 무료급식소가 전쟁과 물가 상승 같은 외부 충격에 취약한 배경으로는 ‘홀로서기’ 구조가 거론된다. 많은 시설이 후원 모집, 식재료 확보, 홍보, 행정 대응을 개별적으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톨릭 꽃동네 대학교 사회복지카리타스대학원 도건창(요한) 교수는 “재정 투명성을 이유로 지원 조직을 만드는 일을 꺼려하는 사회복지계의 경향이 현장 실무자에게 모든 부담을 안긴다”며 “이는 위기 상황이 닥칠 때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약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현장은 돌파구를 찾고 있다.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무료급식소 ‘명동밥집’은 적극적인 홍보로 후원처를 발굴하며 안정적인 재정 기반을 다지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식사 나눔을 넘어 의료, 심리 상담, 구직 지원 등 이용객의 자립을 돕는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다. 명동밥집 실무자 장석훈(시몬) 씨는 “이용객이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복귀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다른 시설들도 지역과 후원 기반에 맞춰 버틸 힘을 마련하고 있다. 대전교구 ‘성모의 집’과 사회복지법인 ‘안나의 집’은 각각 케이티앤지(KT&G)와 한국토요타자동차의 장기 지정기탁 후원금 덕분에 물가 상승 충격을 덜고 있다. 서울대교구 가락시장준본당 ‘하상바오로의 집’은 시장 상인들의 자발적인 식재료 기부가 운영에 보탬이 된다고 밝혔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식탁을 지켜 온 무료급식소는 사회교리가 가르치는 ‘연대성’과 ‘보조성’을 실천하는 곳이다. 이들에게 ‘지금,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있도록 모두의 관심과 연대가 요청되는 시점이다.(베네딕토 16세 교황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31항 참조) 청주교구 가톨릭사회복지 연구소장 김성우(이사악) 신부는 “그리스도인에게 무료급식소는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소중한 공간”이라며 “이곳에서 하느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가난한 이웃을 향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발행일 2026-06-14 제3495호 1면

[COVER STORY - 무료급식소가 흔들린다②] 홀로 버티는 대신 ‘상생’의 식탁으로

무료급식소들은 물가 상승과 후원 감소 속에서도 ‘한 끼의 온기’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각 시설이 홀로 버티는 방식만으로는 위기를 넘기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을 이어 온 무료급식소 사례를 통해 후원과 봉사, 식재료 공급망, 교회와 공공의 연계가 어떻게 맞물려야 하는지 살펴본다. “모두 사랑합니다. 오늘도 식사 맛있게 하세요.” 5월 22일 오전.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무료급식소 ‘명동밥집’은 센터장 백광진(베드로) 신부의 인사와 함께 문을 열었다. 명동밥집은 매주 수·금·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무료급식을 제공한다. 하루 평균 이용객은 800여 명, 올해 6월 기준 누적 이용객은 63만 명을 넘어섰다. 식사의 질에도 공을 들인다. 짜장면과 같은 특식을 주기적으로 마련하고,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이하 우리농)를 통해 가톨릭농민회(이하 가농)가 생산한 친환경 유기농 식재료를 공급받는다. 관계 기관과 함께 이·미용, 목욕, 의료 지원은 물론 심리 상담과 구직 지원 등 자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한 끼를 제공하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이용객이 다시 사회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한 끼를 떠받치는 대들보들 명동밥집 역시 물가 상승의 부담을 피할 수는 없었다. 개소 초기 3500원이던 1인당 급식 단가는 현재 5500원까지 올랐다. 그럼에도 운영을 이어 올 수 있었던 데는 후원자와 봉사자, 기업의 꾸준한 지원이 있었다. 용도가 제한적인 정부·지자체 지원금과 달리, 정기 후원금은 현장의 필요에 따라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정기 봉사는 인건비 부담을 덜 뿐 아니라 업무 숙련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명동밥집 실무자 장석훈(시몬) 씨는 봉사자들을 “대들보와 같은 분들”이라고 했다. 대들보를 세우기 위해서는 홍보가 중요하다. 명동밥집은 SNS와 본당 방문 등을 통해 활동을 알리며 새 후원처를 발굴하고 있다. 장 씨는 “기업의 사회공헌이 중요해지면서 농협의 쌀 기부처럼 기업 특성에 맞는 후원도 요청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이 사례를 모든 무료급식소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명동밥집은 교구 기관의 운영과 홍보, 후원자와 봉사자, 기업 연계가 함께 맞물려 운영된다. 반면 많은 시설은 담당자와 봉사자 몇몇이 현장을 떠받치는 ‘홀로서기’ 구조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한 곳의 성공 사례를 그대로 따라 하는 일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운영 조건을 찾아 다른 현장과 나눌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현장 잇는 네트워크가 식탁 지킨다 무료급식소들의 사정은 천차만별이다. 비교적 잘 알려진 곳에는 후원금과 물품이 모이지만, 규모가 작거나 덜 알려진 곳은 필요한 지원을 제때 받기 어렵다. 도움이 필요한 곳과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따로 존재해도, 이를 서로 이어 줄 구조가 없다면 현장의 어려움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10여 개 무료급식소도 다른 급식소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무료급식소들을 연결하고 조정할 협의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협의체가 마련되면 식자재 수급 상황을 공유하고, 긴급 후원처를 연결할 수 있다. 봉사자 교육과 위생·안전 교육도 함께 진행할 수 있다. 규모가 작은 급식소가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공동 구매나 공공지원 신청 창구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 교구를 넘어 교회 차원의 전방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교구마다 사회복지 조직이 있지만, 별도의 협의체를 꾸리고 지속적으로 관리하기에는 여건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톨릭 꽃동네 대학교 사회복지카리타스대학원 도건창(요한) 교수는 “협의체 등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무료급식소 간 연계는 물론, 시설을 지탱하는 봉사자 교육도 가능해질 것”이라며 “이는 교회의 사회교리가 전하는 연대성과 보조성을 실현하는 방법”이라고 전했다. 맛있는 식사를 할 권리 무료급식소의 위기는 주방 안에서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식탁 밖 농업 생산비의 변화도 한 끼 단가를 밀어 올린다. 올해 초 본격화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충돌은 국제 비료 가격과 농기계 가동에 쓰이는 면세유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2026년 비료 가격 지수가 30% 이상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농가가 사용하는 면세유도 리터당 400원 이상 올랐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농이 실천해 온 자연순환형 친환경 농법, 곧 생명농업은 하나의 대안으로 주목된다. 가농에 따르면, 생명농업은 수입 농자재 의존도가 높은 관행농업에 비해 물가 상승의 충격을 덜 받는다. 가농의 친환경 농작물을 사용하는 일은 이용객에게 어떤 음식을 제공할 것인가 와도 맞닿아 있다. 무료급식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복지이면서도, 한 사람을 존중받아야 할 존재로 대하는 기본적인 돌봄이다. 서울대교구 우리농 손성훈(라파엘) 사업국장은 “가난한 이들에게도 맛있는 식사를 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좋은 식재료를 안정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비용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 가농 농작물은 관행 농산물보다 가격이 약 15% 높지만, 우리농은 명동밥집과 같은 복지시설에는 10~15% 할인해 공급하며 부담을 낮추고 있다. 일부 차액은 후원금으로 메우고 있으나, 이 방식만으로는 장기적인 공급을 담보하기 어렵다. 안정적인 구조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부나 지자체가 일정 부분 비용을 보조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우리농은 “무료급식소와의 직거래는 긍정적으로 검토할 만하지만, 일시적 기부나 소규모 거래에 그칠 우려가 있다”며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구매 부담을 실질적으로 낮출 수 있도록 정부나 지자체가 매입 대금에 대한 ‘차액 보전’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우리농은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서울 송파구와 협약을 맺고 가농 농작물을 복지시설에 공급한 바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관심을 갖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면 충분히 확장 가능한 모델이라는 뜻이다. 무료급식소는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는 최일선 현장이다. 그러나 그 역할이 선의와 헌신에만 기대어 지속될 수는 없다. 후원자와 봉사자, 기업, 교회, 공공기관이 서로 연결될 때 한 끼의 온기는 지속될 수 있다. 전국 곳곳의 무료급식소가 오늘 준비하는 한 끼는,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갈 힘이 되는 ‘오병이어의 식탁’이다.

발행일 2026-06-14 제3495호 11면

[특별기고] 회칙 「고귀한 인류」 해설(하) - 주요 내용

레오 14세 교황이 5월 25일 인공지능(AI) 시대의 인간 존엄을 주제로 한 첫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를 반포했다. 물리학자이자 사제로, AI 시대 교회의 역할을 성찰해 온 김도현 신부(바오로·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의 특별기고를 통해, 첫 회칙의 반포 배경과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지난 5월 25일 반포된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는 ‘인공 지능 시대에 인간 존엄성 수호에 관한 교황 레오 14세 성하의 회칙’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제에서 드러나듯 인공지능(AI) 시대에 인간 존엄성을 수호하는 것이 바로 이 회칙의 주제입니다. 이미 지난 주에 설명해 드린 바와 같이, 이미 우리에게 다가온 AI 시대는 AI의 오남용으로 인해 유물론적 관점의 확산과 대량 실업, 전쟁 활용과 환경 파괴 등 여러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문제는 복합적으로 하느님을 닮은 고귀한 존재인 인간이 지닌 고유한 가치에 흠집이 생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레오 14세 교황은 자신의 첫 회칙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고귀한 인류는 오늘날 중대한 선택에 직면해 있습니다. 새로운 바벨탑을 건설할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과 인간이 함께 지내는 도시를 세울 것인가 하는 선택 말입니다.”(1항) 여기서 교황은 이 회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두 가지 성경적 이미지를 사용하는데, 그 하나는 바벨탑 건설 이야기(창세 11,1-9 참조)이고,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 이야기(느헤 2-6장 참조)입니다. “사람들은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창세 11,4) 탑을 건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온 땅에 흩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자신들의 안정과 힘을 보장하고, 무엇보다도 ‘이름을 날리기’를 원했습니다. … 하지만 그 계획 안에는 깊은 위험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관계없이 구상된 프로젝트였으며, 다양성을 제거하는 획일성에 의존했고, 친교보다는 동질화를 선택한 계획이었습니다. … 따라서 바벨탑은, 아무리 거창해 보이는 노력이라 하더라도 자기 과시에서 비롯되고, 효율성을 위해 인간 존엄성을 희생하며, 하느님의 축복 없이 하늘에 도달하려는 모든 시도의 한계를 드러냅니다.”(7항) “바빌론 유배 이후, 일부 백성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도시는 여전히 폐허였고, 성벽은 무너져 있었으며, 성문들은 불타 있었습니다.(느헤 1-2장 참조) … 느헤미야는 윗자리에서 해결책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각 가문을 불러 모아 각자 맡은 구간의 성벽을 재건하게 했고, 그들의 우려를 들으며 노력을 조율하고 반대에 대응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도시가 한 사람의 주도로 다시 세워진 것이 아니라 모두의 공동 책임을 통해 되살아났음을 보여 줍니다. … 그것은 하느님을 중심에 둔 사업이었고, 돌을 다시 쌓기 전에 먼저 관계를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8항) 이어서 교황은 이 회칙이 작성된 의도를 다음과 같이 드러냅니다. “추상적으로 볼 때 기술 자체는 인간 문제의 해결책도 아니고, 본질적으로 악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실제로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것을 구상하고, 자금을 지원하며, 규제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핵심적인 선택은 기술에 대해 ‘예’ 또는 ‘아니요’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바벨탑을 건설할 것인가 아니면 예루살렘을 재건할 것인가의 선택입니다. 곧 하늘을 지배하려는 권력의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 현존 안에서 형제적 공존의 성벽을 함께 재건하는 백성의 길을 택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9항) 회칙은 AI를 절대로 거부하지 않습니다. AI의 개발과 사용을 거부할 것을 교황의 이름으로 신자들에게 명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AI의 선용을 통해 우리가 다 같이 ‘하느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을 재건’하도록 촉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AI의 오남용으로 인해 생겨난 여러 문제가 정리되고 인간 존엄성이 제대로 수호될 수 있을 거라고 교황은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황은 AI를 무장 해제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제가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무장 해제(disarm)’라는 표현을 사용하고자 합니다. … 무장 해제란 기술적 힘이 자동적으로 지배할 권리를 부여한다는 가정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무장 해제는 기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110항) 그래서 이 회칙은 총 245항에 걸쳐 마지막까지 ‘예루살렘 재건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루살렘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재건의 길 중간에 놓인 여러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고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회칙의 본문에서는 AI 시대에 생겨난 다양한 문제를 자세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이 회칙은 레오 13세 교황의 「새로운 사태」의 연장선상에서 사회 교리를 다루는 회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그래서 회칙의 앞부분은 레오 13세 교황부터 프란치스코 교황까지의 사회 교리의 발전 상황을 요약 정리한 후에 사회 교리의 여러 중요한 원리들 즉 인간 존엄성, 공동선, 보조성, 연대성 등을 제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후 교황은 AI 시대에 들어선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인간 존엄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강조합니다. 지적된 문제 중에서 특별히 중요하게 언급된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 실업, AI 시대의 새로운 노동력 착취, 전쟁에 악용되는 AI, 외교적 다자주의의 위기 등. 회칙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핵심은 하나입니다. 바로 ‘AI 시대에도 인간을 우선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도 느헤미야처럼 경청과 용기, 기도와 책임을 결합하도록, 그래서 기술 관료적 사고방식이나 당파적 이해관계가 우세해 보일 때조차도 인간의 도시가 살기에 더욱 적합한 곳이 될 수 있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241항) 우리 모두는 AI 시대에도 인간 존엄성이 수호되는 예루살렘을 재건할 소명을 받은 이들인 것입니다. 글 _ 김도현 바오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발행일 2026-06-14 제3495호 12면

[COVER STORY - 무료급식소가 흔들린다①] ‘고공행진’ 물가로 운영난 심각

복지 사각지대를 메워 온 무료급식소들이 이제 또 다른 사각지대에 놓이고 있다. 물가 상승과 후원 감소, 푸드뱅크 기부 축소가 겹치면서 따뜻한 한 끼를 이어 온 현장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장기간 무료급식을 이어 온 청주교구 ‘성 빈첸시오의 집’과 서울 영등포 ‘토마스의 집’ 사례를 통해 무료급식소가 처한 현실을 전하고, 청주교구 가톨릭사회복지 연구소장 김성우(이사악) 신부와 함께 안정적 운영을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치솟는 물가에 후원 줄어 “고기 등 식자재가 채워져 있어야 할 공간인데 지금은 이렇게 아무것도 없어요. 다 비어 있어요.” 5월 26일 청주시 수동. 청주교구 관할 무료급식소인 ‘성 빈첸시오의 집’을 담당하는 박경숙(루치아) 사무장은 텅 빈 냉장고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창고와 냉장고에 남은 식자재는 한쪽에 놓인 쌀 포대뿐이었다. 1991년 문을 연 성 빈첸시오의 집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100여 명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고 있다. 그러나 운영비는 몇 년째 그대로인 반면 식자재 값은 계속 오르고, 개인 후원도 줄고 있다. 현재는 매월 20여 명이 보내오는 3000~5000원의 후원금과 청주교구 내 본당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의 지원으로 버티고 있다. 지역 푸드뱅크의 도움마저 끊기면서 라면, 빵, 떡 등 부식 나눔도 축소됐다. 급식소 이용자들에게 부식은 단순한 간식이 아닌 한 끼다. 박 사무장은 “부식만이라도 마음 편히 드릴 수 있으면 한다”고 했다. 2024년까지는 교구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산하 간병사 협의회의 수익을 예산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업이 개인에게 이관되면서 고정 수입마저 끊겼다. 그럼에도 문을 닫을 수 없다. 홀로 식사를 해결하기 어려운 노인과 한 끼 식사비가 버거운 이들, 이주노동자와 취업 준비생까지 이곳을 찾기 때문이다. 급식소에서 만난 장기순 씨는 “여기서는 다들 배려해 줘서 좋고, 먹고 나오면 든든하다”고 말했다. 성 빈첸시오의 집은 식사 나눔 외에도 매월 첫째 주 화요일 이미용 봉사를 이어 오고, 비정기적으로 옷 나눔도 해 왔다. 지난 35년간 이곳을 이용한 사람을 100만 명이 넘는다. 2023년 12월에는 이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현재 20여 명의 정기 봉사자가 식사 준비와 배식을 맡고 있지만, 대부분 고령이라 젊은 세대의 참여도 절실하다. 오인근(마태오) 봉사자는 “은퇴하신 분들이 주로 봉사하고 있어, 뒤이을 젊은 봉사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래도 채워진다는 희망 운영난은 성 빈첸시오의 집만의 일이 아니다. 서울 영등포동 무료급식소 ‘토마스의 집’도 주 5회, 하루 400여 명에게 점심을 제공해 왔지만, 최근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지원 없이 민간 후원만으로 30년 넘게 운영돼 온 곳이다. 특히 쌀이 부족해 수년 만에 처음으로 영등포구청에 정부미 10kg들이 150포대를 신청했다. 토마스의 집에서 31년째 봉사 중인 박경옥(데레사) 총무는 “물가가 오르기 전과 비교하면 식재료 단가가 30%는 오른 것 같다”고 설명했다. 토마스의 집은 우선 식사 뒤 나누던 라면, 과일, 커피 등의 부식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비용만 하루 약 80만 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식을 줄이면 누군가는 한 끼를 거르게 된다. 어려움 속에서도 토마스의 집은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박 총무는 “힘든 시기를 겪을 때마다 얼굴 없는 천사들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며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일이기에 결국 다 채워 주실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성 빈첸시오의 집에는 ‘우리 식탁에는 항상 한 사람의 몫이 더 있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 한 사람의 몫이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도록, 가장 낮은 곳으로 전해지는 사랑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때다. ※ 후원 계좌 농협 351-0365-2137-03 빈첸시오청주이사회, SC제일은행 376-20-266225 김종국 토마스의집 ※ 문의 043-252-7820 청주교구 성 빈첸시오의 집, 02-2672-1004 서울 영등포 토마스의 집 [인터뷰] 청주교구 가톨릭사회복지 연구소장 김성우 신부 “체계적 연대로 지속 가능한 나눔 모델 구축해야” - 무료급식소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대부분 후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에 외부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자영업을 중심으로 서민경제의 상황이 좋지 않아 이런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자원봉사자와 후원자의 고령화도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30~40대 봉사는 현저히 줄어든 상황이고, 후원 역시 소위 ‘트렌디’한 사업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체계적인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교회 안팎의 연대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재단법인 바보의나눔과 같은 기관·단체 등과 공동 사업을 수행하거나, 지자체와 교구가 업무협약(MOU) 등의 협력 관계를 구축한다면 보다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은. 현재 정부나 지자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무료급식 사업은 주로 아동과 노인을 대상으로 한다. 노인의 경우 복지관과 연계한 ‘경로식당’ 사업이 이뤄지고 있어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문제는 중장년층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이다. 지역 종합사회복지관 등을 중심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중장년층을 위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용자 선정과 안정적 지원을 위해서는 더 많은 관심과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 - 벤치마킹할 수 있는 사례가 있다면. 독일에 ‘타펠(Tafel)’이라는 민간 푸드뱅크 시스템이 있다. 유통기한이 임박했거나 포장이 불량해 버려지는 식료품을 수거해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제도다. 타펠은 비영리법인으로 전국 지부가 유기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푸드뱅크와 달리 민간 기부와 후원만으로 운영된다는 점도 특징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교구 카리타스가 운영하고 있는 홈리스 지원 시설 ‘반창고 쉼터(Pflasterstube)’도 눈여겨 볼 만하다. 반창고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이곳은 주로 노숙인이 진료와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식사와 세탁·샤워 공간도 지원한다. 생필품 지급과 사회 복귀 프로그램도 병행하고 있다. 개별 시설 차원을 넘어 교구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한국교회의 특성에 맞는 모델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왜 무료급식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에서 “교회의 사회복지는 ‘지금,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을 주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31항 참조)고 강조했다. 여러 이유로 무료급식소를 찾는 이웃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지금 따뜻한 밥 한 그릇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한 끼를 통해 자신이 사회로부터 외면받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무료급식소는 사회복지서비스 대상자를 발굴하는 중요한 역할도 할 수 있다.

발행일 2026-06-14 제3495호 10면

[특별기고] 회칙 「고귀한 인류」 해설(상) - 회칙 반포 배경

레오 14세 교황이 5월 25일 인공지능(AI) 시대의 인간 존엄을 주제로 한 첫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를 반포했다. 물리학자이자 사제로, AI 시대 교회의 역할을 성찰해 온 김도현 신부(바오로·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의 특별기고를 통해, 첫 회칙의 반포 배경과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2025년 5월 8일 선출된 레오 14세 교황은 5월 10일 추기경들에게 행한 공식 연설에서 ‘레오’라는 이름을 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 길을 이어가도록 부름받았음을 느끼면서 레오 14세라는 이름을 선택하였습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 주된 이유는 레오 13세 교황님께서 역사적인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통하여 제1차 산업혁명의 상황에서 사회 문제를 다루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교회는 인간 존엄성과 정의와 노동을 수호하는 데에 새로운 도전이 되는 또 다른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분야의 발전에 대응하기 위하여 사회교리라는 교회의 유산을 모든 이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관점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회칙이 바로 「고귀한 인류」입니다. 그래서 이 회칙은 제1차 산업 혁명기의 「새로운 사태」가 그러했듯이, 제4차 산업 혁명기인 AI 시대의 여러 사회적, 윤리적, 신앙적 문제들에 대한 교도권의 공식 입장을 표명하는 대단히 중요한 사회 교리 문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AI가 발전하고 있는 이 시점에 교황은 AI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회칙을, 그것도 첫 회칙으로 반포한 것일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AI는 처음부터 ‘유물론’적인 관점에 따라서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AI는 미국 시카고대학교 심리학과의 워런 매컬러(Warren McCulloch)와 월터 피츠(Walter Pitts)가 1943년에 발표한 한 수학 논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이 활동했던 1900년대 초, 인간 두뇌의 구조와 전기 생리학적 현상에 관해 연구하던 연구자들이 ‘두뇌와 디지털 회로의 작동 구조가 유사하다’는 사실을 밝혀내자, 매컬러와 피츠는 인간의 두뇌를 일종의 디지털 회로로 이해하면서 회로를 분석하는 수학적인 방법을 통해 우울증과 같은 인간의 여러 심리적인 문제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대담한 제안을 한 수학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비록 그들의 제안은 그 후 심리학 분야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인간의 두뇌를 일종의 디지털 회로로서 분석한 그들의 방식은 후에 ‘디지털 회로를 잘 만들면 인간의 두뇌처럼 학습이나 추론을 할 수 있는 인공두뇌를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로 발전하게 되면서, 이후 AI의 탄생에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매컬러와 피츠가 인간의 두뇌를 디지털 회로로서 해석한 그 방식이 지극히 유물론적이었다는 점입니다.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은 육체와 영혼이 결합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두뇌 작용을 영적인 부분은 배제한 채 그저 물질적으로만 이해했던 그들의 접근 방식은 결국 AI의 탄생 시점부터 현재까지 교회의 인간관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둘째, 2022년 말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등장한 챗지피티(ChatGPT)를 비롯한 여러 생성형 AI들이 전 세계의 수많은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됨으로 인해 심각한 사회적 문제인 ‘대량 실업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대표적인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Amazon)은 작년과 올해 총 3만 명의 직원을,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으로 유명한 메타(Meta)는 올해 5월 8000명의 직원을 해고했습니다. 국내에서도 2025년도 공인회계사 합격자 1200명 중 실제 회계법인 등에 채용된 인원은 연말 기준으로 300명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모든 일은 AI가 회사 업무에 본격적으로 도입됨으로 인해 생겨난 현상입니다. 효율성과 인건비 절감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의해 인간이 직장에서 밀려나는 대량 실업 문제는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셋째, 올해에 이르러 AI는 전쟁에 직접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1월 미군이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전 대통령을 체포한 작전에서 세계적인 AI 스타트업 기업인 앤트로픽(Anthropic)의 생성형 AI인 클로드(Claude)가 활용된 것이 알려졌습니다. 올해 2월 말부터 시작된 미군의 이란 공습 작전에서도 클로드가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의 한 군사용 로봇 회사가 개발한 전쟁용 AI 휴머노이드 로봇도 정찰 임무를 위해 우크라이나의 전쟁터에 투입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AI 휴머노이드 로봇이 활용된 전쟁이 되었습니다. 넷째, AI 기술을 선도하는 전 세계의 여러 회사가 운영하고 있는 데이터 센터들은 엄청난 양의 전력을 사용합니다. 2025년 12월 국제 통화 기금(IMF)의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 센터의 총 전력 소비량은 2023년에 이미 세계 10위 전력 사용 국가인 프랑스 전체의 전력 소비량을 넘어선 상태인데, 2030년이 되면 그 양이 약 세 배로 폭증해서 세계 3위 전력 소비 국가인 인도의 2023년도 소비량에 맞먹게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와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 정부는 폭발적인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다수의 발전소를 신규 건설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와중에 올해 3월 초 미국 정부와 7개 주요 빅테크 기업 간에 “기업들이 데이터 센터 운영으로 인해 새롭게 발생하는 전력 수요를 충족하는 데 필요한 발전 자원과 전력을 직접 건설하거나, 외부에서 도입하거나, 구매”하기로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영향력 있는 민간 기업들은 그들의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자체적으로 발전소를 지을 수 있게 되며, 그 결과는 어쩌면 공동의 집인 지구의 환경에 심각한 재앙을 초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레오 14세 교황은 레오 13세 교황이 135년 전 제1차 산업 혁명이 만들어낸 여러 심각한 상황을 바라보던 바로 그 눈길로 우리의 현 상황을 지켜보면서, 「새로운 사태」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사회 회칙인 「고귀한 인류」를 반포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새로운 회칙이 반포된 배경의 심각성을 잘 이해하게 되면 그만큼 그 회칙의 구체적인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글 _ 김도현 바오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발행일 2026-06-07 제3494호 11면

[대구대교구 부교구장 김종강 대주교] 삶과 신앙

청주교구장 김종강(시몬) 주교가 5월 26일 대구대교구 부교구장 대주교에 임명됐다. 증조부 때부터 신앙을 이어 온 가정에서 자란 김 대주교에게 ‘애주애인(愛主愛人)’, 곧 ‘주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삶의 나침반이었다. 이 가르침은 사제의 길 위에서 사람들 곁에 머물며 함께 걷는 동행과 겸손의 사목으로 이어졌다. 교구를 넘어 한국교회 안에서 시복시성, 청소년·청년 사목,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준비에 헌신해 온 김 대주교의 삶과 신앙을 소개한다. ‘애주애인(愛主愛人)’ 1965년 1월 2일 충청북도 청주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김 대주교는 매일 저녁 가족이 함께 묵주기도를 봉헌하는 독실한 신앙인 가정에서 성장했다. 청주교구 오창본당 가곡공소 회장이었던 큰아버지의 영향으로 김 대주교는 주일뿐 아니라 평일에도 공소를 드나들며 자연스럽게 신앙을 익혔다.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부친 고(故) 김철배(야고보·1991년 선종) 씨가 강조했던 ‘주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뜻의 ‘애주애인(愛主愛人)’은 훗날 김 대주교의 삶을 이끄는 나침반이 됐다. 기타를 잘 치고 운동도 잘해 주변에 늘 사람이 많았던 청년 김종강. 내덕동 주교좌본당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던 그를 사제의 길로 이끈 이는 당시 본당 주임신부였던 장봉훈 주교(가브리엘·청주교구 제3대 교구장)였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이 많았던 청년은 장 주교를 통해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과 나누는 길을 배웠고, 마침내 사제 성소에 응답했다. 동행과 겸손으로 전한 사랑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2) 1996년 6월 28일 사제품을 받은 김 대주교는 수품 성구를 삶으로 살아내고자 노력해 왔다. 그가 전한 사랑의 방식은 ‘동행’이었다. 본당 주임 시절에는 지역 주민들에게 기타를 가르치고 청년들과 운동하며 어울렸다.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시절에도 신학생들과 함께 기도하고 생활하며 ‘동행’의 사목을 실천했다. 로마 성바오로 국제선교신학원에서는 특유의 친화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두 차례 부원장에 선출됐다. 김 대주교와 함께했던 이들은 그를 “형 같고, 아버지같이 편안한 분”으로 기억한다. 그의 친화력은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먼저 다가가고 듣고 함께하려는 ‘겸손’에서 비롯됐다. 김 대주교의 청주교구장 임명 당시, 권환준 신부(시몬·청주교구 양업고등학교 교목)는 “고민이 있다면 언제든 들어주신 아버지 같은 분이자, 함께 운동하며 친구처럼 곁에 있어 주신 분”으로 그를 기억했다. 신학교 동기인 정용진 신부(요셉·주교회의 관리국장)도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하거나 내세운 적이 없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동행하려 노력하는 분”이라고 전했다.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기도하며” 교구민과 함께 사제 생활의 기쁨을 “기도하고 사람들과 소소한 행복을 나누며 평범한 일상을 살았던 것”에서 찾아 온 김 대주교는 2022년 3월 19일 제4대 청주교구장에 임명됐고, 같은 해 5월 2일 주교품을 받고 교구장에 착좌했다. 이후 4년간 주교 서품 성구이자 사목표어인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루카 22,32)는 말씀을 바탕으로, 희망의 증인으로 하느님 사랑과 은총을 교구민에게 전해 왔다. 김 대주교는 사목교서를 통해 코로나19 이후의 공동체 쇄신, 가경자 최양업 신부를 비롯한 신앙 선조들의 영성을 강조했다. 이주민 환대와 생태적 회개,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향한 교회의 역할도 사목의 방향으로 제시했다. 교구 사목 안에서는 생명 중심 문화 조성을 위한 ‘생명의 날’을 제정하고, ‘충북도민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축제’와 교구 연극단 ‘이마고 데이’ 등을 기획하며 지역의 정체성에 기반을 둔 문화사목도 적극 펼쳐 왔다. 시복시성과 청년 사목, 한국교회 미래를 향해 김 대주교는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최양업 신부, 조선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등의 시복 추진을 이끌며 한국교회의 순교 신앙과 증거자들의 삶을 잇는 데에 힘써 왔다. 특히 올해 3월 교황청을 찾아 최양업 신부 시복을 위한 기적 심사 첫 단계 통과를 확인한 김 대주교는 신자들의 기도에 감사를 표하며, 복자 선포 때까지 계속 함께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청소년·청년 사목에도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청주교구 청소년사목국장을 맡아 지역 청소년과 청년들의 신앙 여정에 동행했다. 2023년부터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 대주교는 매년 청소년 주일 담화를 통해 청소년과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세상 속에서 복음을 증언하는 주역으로 살아가도록 격려하고 있다. 2027 서울 WYD를 향한 준비에도 힘을 쏟고 있다. 김 대주교는 주교회의의 2027 WYD 교구대회 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전국 각 교구의 교구대회 준비가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이끌고 있다. 2024년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 인수 행사에 한국 대표단으로 함께한 데 이어, 상징물 국내 순례와 교구대회 준비 과정을 조율하며 한국교회가 전 세계 젊은이들과 함께 걸어갈 여정을 준비하고 있다.

발행일 2026-05-31 제3493호 10면

[청소년 주일 특집] 인천교구 가톨릭아동청소년재단 청소년 봉사단 ‘이즈밍’

청소년 주일은 청소년들이 복음의 가치를 삶 안에서 실천하는 주체로 성장하고, 우정과 정의, 평화를 향한 열망을 키워 가도록 북돋는 기념 주일이다. 이러한 취지에 맞춰 스스로 사회 문제를 인식하고 실천에 나서는 청소년들이 있다. 인천교구 재단법인 가톨릭아동청소년재단(이하 재단) 청소년 봉사단 ‘이즈밍(YISMing)’이다. 이즈밍은 청소년들이 보호와 돌봄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며 평가하는 자기주도형 활동을 펼치고 있다. 청소년 주일을 맞아 그 의미를 현장에서 실현해 가는 이즈밍을 소개한다. 봉사 기획부터 실행까지… “그 어려운 걸 자꾸 해냅니다, 저희가” 이즈밍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재단 내 위축됐던 청소년 사업을 다시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출범했다. 단순 참여형 프로그램을 넘어 청소년들이 직접 활동을 만들고 운영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에 2023년 청소년 참여기구 형태로 시작된 이즈밍은 2024년 3월 청소년 봉사단으로 정식 발대식을 올리고 현재 3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가톨릭아동청소년재단의 ‘청소년주의(YISM)’와 영어 현재진행형 접미사 ‘-ing’의 합성어로 ‘맑은 청소년주의를 실천하다’라는 뜻을 담은 그 이름대로다. 운영 방식도 일반 봉사활동과 다르다. 활동 주제와 프로그램명, 준비물, 안전 수칙 등 큰 틀을 청소년 단원들이 직접 정한다. 인간애와 같은 전인격적 가치는 이웃을 향한 자발적이고도 구체적인 시도와 책임 있는 행동 안에서 드러난다. 이에 재단은 봉사단 지도자들이 미리 준비한 프로그램 안에서 활동이 진행되던 초창기와 달리 1기 하반기부터 이즈밍 운영 방식을 바꿨다. 단원들이 직접 지역사회와 연결되는 활동을 기획하고 경로당 선배시민(노년층)을 만나는 자기 주도형 활동으로 전환했다. 지도자들은 최소한으로 개입한다. 기획이 현실적으로 무리하거나 안전 문제가 우려되는 경우, 또는 선배시민과 청소년 간 활동 속도 차이를 조율해야 할 때만 방향을 조정한다. “어르신들께는 좀 더 천천히, 그리고 크게 설명해 드려야 해”와 같은 세부 가이드라인만 귀띔해 주는 방식이다. 세대와 세대를 잇다 이즈밍은 팀별로 사회 문제와 지역사회의 필요를 고민하고 활동 주제와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운영하며 월 1회 정기 활동을 펼친다. 세대 연대, 환경 보호, 동물 보호, 지역사회 나눔, 디지털 문화 교류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세대 연대 활동은 단원들의 주력 활동으로, 1세대 선배시민과 3세대 청소년이 만나 세대차를 뛰어넘은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단원들과 선배시민은 함께 모둠을 꾸려 경험과 생각을 나누고 보드게임, 편지 쓰기, 만들기 등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을 이어간다. 노인을 수동적 돌봄 대상이 아니라 후배 시민을 돌보며 사회를 함께 가꾸는 주체적 시민으로 바라보는 ‘선배시민교육’도 함께 듣는다. 디지털 문화 교류 활동에서는 청소년 단원들이 선배시민들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안내하는 데 그치지 않고 AI 활용 프로그램도 직접 기획했다. 선배시민 사진을 애니메이션 이미지로 변환해 인화·선물하고, AI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미지를 생성하는 방식까지 안내했다. 디지털 기술이 낯선 선배시민들이 최신 문화를 직접 체험하도록 한 활동이다. 선배시민은 삶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고, 청소년들은 밝은 에너지와 새로운 문화를 전하는 이러한 교류 속에서 단원들은 배려와 책임감도 자연스럽게 익혀가고 있다. 2기부터 활동 중인 손아영(미카엘라·작전동본당) 양은 “선배시민들이 오히려 더 많이 챙겨주셨다”며 “항상 웃으며 반겨주시고 활동 중간중간 고맙다고 인사해 주셔서 매번 즐겁고 보람차게 활동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직접 봉사해 보니 세상 문제는 어른이나 특정 누군가가 대신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작은 실천이 모여야 해결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미완성’이 아니라 ‘주체’인 우리들 이즈밍 단원 연령대는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다양하다. 학년, 관심사, 경험이 모두 다른 만큼, 회의에서 프로그램 방향과 역할 분담, 활동 방식 등을 정할 때 여러 아이디어와 의견이 엇갈리기도 한다. 어른의 지시에 따라가기보다 스스로 ‘주도’해야 하는 봉사이기에 단원 간 의견 조율이 불가피하지만, 그 과정 또한 단원들에게는 평화를 체득하는 교육이 된다. 지도자들은 결론을 제시하지 않고, 대신 고학년 모둠장들이 단원들의 의견을 취합해 발표·토론하면서 스스로 합의점을 찾아가도록 유도한다. 이는 단원들에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법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도 자연스럽게 익힐 기회를 준다. 활동을 거듭할수록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청소년들이 선배시민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모둠 안에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모습이 늘기도 했다. 이는 청소년들이 우정·정의·평화에 대한 이해와 감각을 확장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있다. 1기부터 활동해 온 홍승민(하상 바오로·운양동본당) 군은 “지금 제가 하는 봉사는 아주 작은 첫걸음이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꼈다”며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처럼 힘든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우정은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그 안에서 서로 배우는 관계이고, 정의는 모두가 보편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며 “평화는 우정과 정의가 함께 공존할 때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교회와 사회에서 청소년은 여전히 보호와 교육, 지도의 대상으로만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2023년 세이브더칠드런 조사에서도 아동·청소년 참여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배경으로 ‘아동·청소년이 미숙하다는 성인의 편견’이 지목됐다. 이즈밍은 이러한 통념을 넘어 청소년이 스스로 기획하고 실천하는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재단 청소년동행본부장 유종선(시몬) 신부는 “청소년들은 아직 미완성의 존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미 하느님께서 주신 선함과 가능성을 가지고 세상 안에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소중한 주체”라고 말했다. 이어 “어른들의 역할은 청소년을 대신해 모든 것을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스스로 걸어갈 수 있도록 믿어주고 기다려주며 필요할 때 곁에서 함께해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즈밍은 올해부터 인천 시니어타운 ‘마리스텔라’와 인연을 맺고 더 다양한 선배시민과 세대 교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발행일 2026-05-31 제3493호 12면

[대구대교구 부교구장 김종강 대주교] 임명 발표 이모저모

“친애하는 대주교님, 이 서한을 통해 레오 14세 교황께서 지금까지 청주교구 주교였던 김종강 시몬 주교님을 대구대교구 부교구장 대주교로 임명하셨음을 기쁜 마음으로 알려드립니다.” 5월 26일 오후 7시 대구대교구청 세례자 요한 경당. 대구대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가 주한 교황대사 조반니 가스파리 대주교의 서한을 대독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종강 대주교 임명 발표식 현장 이모저모를 전한다. ◎… 임명 발표식에서 대구대교구 장신호(요한 보스코) 주교는 “김종강 대주교님 임명 소식을 듣고 축하 인사를 드렸을 때, 대주교님은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는 제가 부족한 믿음 하나 가지고 가겠다’고 말씀하셨다”며 “교구 사제단과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며 힘껏 응원하겠다”고 했다. 김성교(루카) 교구 평신도위원회 총회장은 “2025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희망의 대순례’ 때 대주교님과 함께할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친화적이고 유머러스한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전 신자를 대표해 부교구장으로 임명되심을 환영하며, 새 사목 여정에 힘이 되어 드릴 수 있도록 기도하겠다”고 전했다. 김 대주교의 사제서품 동기인 김기진 신부(대건 안드레아·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 대표이사)는 “대주교님은 동기 사제들의 부모님이 선종하시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실 만큼 정이 깊고 동기애가 각별한 분”이라며 “교회의 뜻 안에서 새 소명을 잘 이어 가실 수 있도록 곁에서 힘껏 돕겠다”고 했다. ◎… 뜻밖의 소식을 접한 청주교구 사제와 신자들은 교구장 주교의 대구대교구 부교구장 임명을 축하하면서도 좋은 목자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제4대 교구장으로 봉직하며 희망의 증인으로 하느님 사랑을 전해 온 목자였기에 그 마음은 더 각별했다. 교구 사무처장 주영길(토마스) 신부는 임명 발표식에서 “교구 입장에서는 너무 슬프고 아쉬운 일이지만, 그래도 보편교회 차원에서 고려한 교황님의 뜻이니 순종해야 한다”며 “이웃 교구로 가시는 것이니 슬퍼하기보단 김 대주교님과 대구대교구 그리고 한국교회 전체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교구장 비서 김인환(히폴리토) 신부는 “항상 사제들을 배려하고 따뜻이 대하시던, 심지어 설거지 같은 궂은일도 함께해 주시던 분”이라며 “배울 점이 많고 사제들의 모범이 되셨던 좋은 목자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크다”고 전했다. 조중태(유스티노) 청주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은 “권위의식 없이 다가와 눈높이에 맞춰 말씀해 주시던 분을 떠나보내게 돼 다들 어안이 벙벙하다”며 “섭섭한 마음 대신 축하하는 마음으로 대주교님께서 좋은 사목을 펼치실 수 있도록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 대구대교구 부교구장 임명 소식을 전한 가톨릭신문과 주교회의 SNS에도 놀람과 아쉬움, 기대와 기쁨이 교차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청주교구 신자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언제나 인자하시고 남을 먼저 배려해 주시는 대주교님”이라며 “대구대교구 신자들도 뜻밖의 소식에 놀라셨겠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좋은 분을 보내주신 것에 대해 주님께 감사하실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또 다른 청주교구 신자는 “늘 낮은 자리에서 교구민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시고, 따뜻한 모습으로 함께해 주셨던 대주교님의 사목은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적었다. 이 글에 한 대구대교구 신자는 “조금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좋은 목자를 뺏어가는(?) 느낌도 들어 청주교구 신자들에게 죄송한 마음도 든다”는 댓글을 달았다.

입력일 2026-05-29

김종강 대주교 “제게 주어진 십자가 질 용기 청합니다”

“지금은 그저 제게 주어진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용기를 청합니다. 제가 이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이기를 소망합니다.” 대구대교구 부교구장에 임명된 김종강(시몬) 대주교는 5월 26일 임명 발표식 후 열린 인터뷰에서, 임명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왜 나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렸다고 밝혔다. “준비가 더 잘 된 분들도 많을 텐데, 왜 제게 이런 부르심이 왔는지 알기 힘들었습니다. 대구대교구라는 큰 교구에서 사목하기에 저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비록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더라도, 이곳에서 섬김의 삶을 살아간다면 하느님의 뜻이 제 눈에 보이고, 또 알아들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실 김 대주교에게 대구는 낯선 곳이 아니다. 사제의 꿈을 키우던 시절, 그는 7년 가까이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지냈다. 충청도 출신인 그에게 처음 만난 경상도 사람들의 화끈하고 적극적인 모습은 때로 낯설고 당황스럽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 안에서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았고, 깊은 형제애를 나눴다. 그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대구라는 낯선 곳에서 성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과 즐겁게 지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본 추억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데, 또 제가 성숙해지는 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시 못자리로 돌아온다’는 생각, 다시 배우러 온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 대주교는 임명 소식을 듣고 며칠 동안 눈물을 흘렸다고 털어놓았다. 청주교구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교구 신자들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족한 저를 목자로 믿고 기도해 주셨던 청주교구의 신자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입니다. 부족한 저를 정말로 사랑해 주셨고, 어디서나 환대해 주신 신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사제를 임명하는 제 입장에서 교황님의 뜻을 거절할 수 있는 그 어떤 명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임명 사실을 전한 주한 교황대사 조반니 가스파리 대주교도 “다양성 안에서 신앙과 삶의 모습을 좀 더 폭넓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김 대주교를 설득했다고 한다. “부족한 제가 ‘하느님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큰 도구라는 의미에서 하느님께서 대구대교구라는 길을 마련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김 대주교는 대구대교구 신자들을 향한 기대도 드러냈다. 청주교구 신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대구대교구 신자들도 똑같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목자를 맞이하고 사랑해 주시리라 믿는다고 했다. “청주교구 감곡매괴성모순례지본당 초대 주임 임 가밀로 신부님의 말씀처럼 ‘저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좋아지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발을 디딜 때부터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준비하고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입력일 2026-05-27

[제29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시상식 이모저모

제29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시상식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삶을 10년 넘게 소설로 증언해 온 김숨(모닌느) 소설가와 한국 현대 시단을 대표하는 황동규 시인의 수상으로 깊은 감동을 안겼다.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소설과 깊어질 대로 깊어진 시의 세계가 나란히 조명된 이날 시상식은, 인간의 고통을 넘어 평화와 희망을 추구하는, 교회와 문학의 가치가 어우러진 현장이었다. ◎… 시상식에는 격식보다 진심 어린 말들이 넘쳤다. 가톨릭신문사 사장 최성준(이냐시오) 신부는 직접 수상작을 읽어낸 소회를 인사말에 담았다. “「간단후쿠」는 무겁게 와닿아 읽기를 주저하다가 힘들게 읽어냈다”며 김숨 소설가를 ‘기억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의 작가라고 했다. 황동규 시인에 대해서는 신학생 시절 그의 시에서 받은 감동을 떠올리고, “원숙한 언어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전한다”고 말했다. 한국가톨릭문학상 제정 때부터 함께해온 신달자(엘리사벳) 시인은 “29회라는 평범한 숫자가 가슴 뭉클하다”며 소회를 밝혔다. 경과 보고 말미에는 「가문비나무의 노래」 저자 독일의 바이올린 장인 마틴 슐레스케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두 수상자에게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울림이 있는 작품을 계속 써 주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 한국가톨릭문학상 운영위원으로 새로 위촉된 문학평론가 우찬제(프란치스코) 교수는 “구상 선생님, 구중서 선생님, 신달자 선생님께서 과업을 시작하신 그 자리에 심부름하게 돼 영광”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문학은 어둠을 빛으로 인도하는 소명에 동참하고자 하는 예술”이라며 “한국가톨릭문학상이 의미 있는 등대가 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심부름하겠다”고 덧붙였다. ◎... 1회부터 후원을 이어온 우리은행에서는 정진완(스타니슬라오) 은행장 대신 참석한 조세형 부행장이 축하의 말을 전했다. 조 부행장은 “한국가톨릭문학상이 문학이라는 언어를 통해 신앙과 삶을 성찰하게 하고,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전해주는 소중한 상”이라고 의미를 짚었다. 이어 “2027년 열릴 세계청년대회가 한국 천주교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의 연대와 평화, 나눔의 가치를 되새기는 뜻깊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 수상 소감에서 김숨 소설가는 “한국가톨릭문학상이 아이처럼 순수하게 기쁘게 받는 첫 상이 되어주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동안 문학상을 몇 차례 받았는데 그때마다 불안, 두려움, 공허함 같은 것이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은 넘쳤지만 기쁨은 너무 왜소했다”는 그는 지난 10년 동안 만나온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떠올렸다. 이어 “그분들이 제게 주신 것은 이야기뿐만 아니라 시간이었고, 시간을 내어주는 것은 생명을 내어주는 것”이라면서 “할머니들에게 생명의 빚을 졌고, 그 빚을 ‘쓰는 시간’으로 갚겠다”고 전했다. ◎...김숨 소설가와 서울대교구 삼각지본당 신자들과의 따뜻한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다. 2025년 9월부터 매월 본당 글쓰기 모임을 동반해 온 그는 회원들이 선물한 옷을 입고 단상에 올랐다. “평소 옷 선물을 부담스러워하는 편인데, 이번 상은 불안과 공허함을 내려놓고 기쁘게 받을 수 있어 옷도 감사하게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시상식에 참석한 글쓰기 모임의 백진숙(데레사) 씨는 “성모 성월에 장미꽃 같은 옷을 선물하자고 회원들이 마음을 모았다”고 들려줬다. “처음에는 고사하시다가, 평생 귀하고 소중한 때 글쓰기 모임을 기억하며 입겠다고, 또 찢어지면 꿰매 입겠다고 하셔서 모두 행복했다”는 백 씨는 “작가님에게 이번 수상이 한없이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 “척추협착증으로 가능한 한 움직이지 않고 미완의 작업을 마무리하려 했는데, 수상 소식에 기운을 얻어 새 시 두 편을 완성했다”고 말문을 연 황동규 시인은 화가 조광호(시몬) 신부, 오정희(실비아) 소설가, 신달자·이태수(아킬로) 시인 등을 거론하며 가톨릭과의 오랜 인연을 소개했다. “가톨릭이 품고 있는 ‘두루 비춤’의 정신이 조선 후기 북학·실학파에서 정약용·정약종 형제로 이어지며 한국 가톨릭의 특성이 됐다”고 역설한 그는 “정지용(프란치스코) 시인과 구상(요한 세례자) 시인이 걸어온 그 길을 잇게 되어 큰 영광”이라고 했다. ◎...시상식은 한국 문학계와 교계의 축하가 함께한 가운데 풍성하게 이어졌다. 시상식장 입구에는 대한민국예술원 손진책 회장과 나태주 시인 등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원로들의 축하 화환이 줄지어 놓였다. 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이철수(스테파노) 사무총장 신부, cpbc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사장 성기헌(바오로) 신부,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김진택(토마스 아퀴나스) 회장 등 교회 내 인사들도 참석했다. 역대 수상자들도 함께했다. 제3회 수상자 이태수 시인, 제20회 수상자 이인평(아우구스티노) 시인, 제23회 전기문학 부문 수상자 이숭원 문학평론가, 제27회 수상자 김재홍(요한 사도) 시인 등이 함께해 29회 동안 한국가톨릭문학상이 쌓아온 문학적 신뢰와 무게를 새삼 확인시켰다.

발행일 2026-05-24 제3492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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