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교회와 함께 민족과 함께] (52) 안중근 의사 복권

“일제 수탈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암살해 일제 치하의 제도교회에 의해 단죄됐던 안중근(토마스) 의사가 84년 만에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의 공개 사과로 의거의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한국 가톨릭교회 역사상 첫 공식미사로 김수환 추기경과 사제단이 공동 집전하여 8월 21일 오후 6시 서울 혜화동 가톨릭교리신학원 성당에서 봉헌된 안중근 의사 추모미사는, 안 의사 의거의 정당성을 기원하는 300여 명의 신자들과 학계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안 의사의 의거를 현양했다. 이날 안 의사 추모미사를 주례한 김 추기경은 미사 강론에서 ‘안 의사의 의거는 가톨릭 신앙과 상치된 것이 아니며 그 안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인정하고, ‘신앙심과 조국애는 분리될 수 없으며 일제의 무력 침략 앞에 민족의 존엄과 국권을 지키기 위해 행한 모든 행위는 정당방위와 의거로 보아야 한다’고 엄숙히 선언했다.”(가톨릭신문 1993년 8월 29일자 1면) 안중근 의사 의거, 84년 만에 정당성 인정 일제 강점기, 식민 지배하에서 독립에 대한 민족적 열망과 신앙에 바탕을 둔 의거를 행했던 안중근(1879~1910) 의사에 대한 공식적인 복권이 1993년 처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은 8월 21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봉헌된 안중근 의사 추모미사에서 안 의사에 대한 교회의 단죄를 두고 84년 만에 공개적으로 사과했습니다. 김 추기경은 이토 히로부미 암살 후 뮈텔 주교에 의해 살인죄로 단죄받았던 안 의사와 관련해, “가톨릭교회는 민족과 조국을 불의의 폭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전쟁 중에 행한 살인 행위는 범죄로 단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따라서 안 의사의 의거는 정당한 행위였으며, 우리는 그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날 미사는 제도교회를 대표하는 현직 교구장이 공식 집전한 첫 번째 추모미사였습니다. 일제 치하의 한국교회가 범한 과오를 사과하고 바로잡은 이 사건은 한국 현대교회사의 일대 전환점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이날 미사에 앞서 한국 가톨릭 문화사 연구회는 ‘안중근의 신앙과 민족운동’ 심포지엄을 가톨릭신문사와 한국 가톨릭 문화선양회의 후원으로 개최했습니다. 한국교회사연구 발표회 100회를 기념해 열린 심포지엄은 안 의사의 신앙과 민족운동을 학술적으로 재평가하고, 민족사 앞에 친일 행각의 과오를 범했던 한국교회에 올바른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신앙인 안중근의 의거와 교회의 단죄 신앙인 안중근에게 있어서 조국의 국권 회복은 신앙적 양심과 분리될 수 없는,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도정이었습니다. 그는 조선 천주교회의 존재 양식이 고통받는 민족을 구원하는 실천적 행동과 결부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하느님이 부여한 인류 공동의 평화를 파괴하고 대한의 독립을 짓밟는 일본 제국주의의 폭압을, 신앙인으로서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죄악으로 인식했습니다. 따라서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결행된 이토 히로부미 처단은 개인의 사사로운 원한이나 이념적 맹신에서 비롯된 단순 살인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을사늑약과 정미7조약이 황제와 국민의 동의 없이 군사적 위압으로 체결된 원천 무효의 조약임을 직시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의거는 국외에서 조직된 의병 부대인 ‘대한의군’의 일원이자 ‘의병 참모중장’ 자격으로 국권 회복과 동양 평화의 수호를 위해 감행한 전쟁의 일환이자 전술적 작전이었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주장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사법 재판과 신문 과정에서도 자신을 단순 살인범이 아닌 국제법상의 ‘전쟁포로’로 대우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교회는 그를 단죄하고 자동파문의 죄를 범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뮈텔 주교는 안 의사의 거사를 살인 행위로 단죄했고, 그가 살인자로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공적인 참회의 표지를 보여주지 않는 한 가톨릭교회의 자녀로서 어떠한 성사도 받을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당시 원산본당의 브레 신부 역시 독립운동이라는 정치 활동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안 의사에 대한 성사 집전을 거부했습니다. 다만 빌렘 신부는 1910년 3월 초 뤼순 감옥으로 직접 찾아가 안 의사에게 고해성사를 주고 그의 마지막을 지켰습니다. 빌렘 신부는 이로 인해 성무집행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안 의사에 대한 단죄는 일제강점기 후반기로 갈수록 심화된 천주교회의 조직적 친일 행태와 궤를 같이합니다. 당시 제도 교회는 식민지 통치 질서 안에서 교회의 안녕과 선교의 자유만을 확보하려는 ‘교회보호론’적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웠으나, 이는 실질적으로 일제 군국주의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과 굴종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일제 전시 체제기 경성교구에서는 수많은 친일 부역 행위가 자행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일제 강점 말기의 천주교회는 안 의사의 독립 투쟁을 철저히 외면한 것을 넘어, 식민 정권의 전쟁 수행을 적극적으로 보필하는 가슴 아픈 과오를 범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자기 성찰과 반성 1993년의 안중근 의사 복권은 한국교회 역사에서 획기적인 이정표를 제시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일제하 친일 행위’라는 교회의 뼈아픈 역사를 감추거나 변명하려 하지 않고, 진실 앞에 마주 서서 철저히 반성하고 사죄하는 용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교회가 민족사의 고통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음을 선언한 사건이었으며, 굴절된 교회사적 평가를 정상화함으로써 민족 복음화의 새로운 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복권으로 시작된 한국교회의 ‘기억의 정화’ 작업은 새로운 천년기를 여는 2000년 대희년을 맞아 민족사 속 교회의 잘못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습니다. 주교회의는 2000년 12월 3일, 200년 한국교회사 안에서 범한 잘못을 고백하는 과거사 반성 문건 「쇄신과 화해」를 발표했습니다. 총 7개 항으로 구성된 과오의 성찰 중 제2항은 일제 식민 지배하에서 정교분리를 빌미로 독립운동에 나선 신자들을 제재한 데 대한 안타까움을 표명하고 용서를 청했습니다.

발행일 2026-06-14 제3495호 8면

[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교회와 함께 민족과 함께] (51) 세기말, 시한부 종말론과 휴거 신드롬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다. 10월 28일 자정 서울 마포구 성산동 다미선교회 총본부와 부산을 비롯한 전국 각 지역의 선교회 지부에서는 1000여 명에서부터 적게는 수십 명에 이르는 신자들이 예배에 나와 ‘휴거’를 기다렸으며, 이들 주위에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경찰 병력이 파견돼 동태를 파악하는 등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휴거가 무위로 끝난 10월 29일 현재 이를 지켜본 신자들과 시민들은 허탈감에 빠진 일부 맹신도들에 의한 집단자살, 혹은 시한부 종말론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의 보복성 폭력과 같은 비상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와 함께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모태는 사실상 기성 교회라는 자성의 목소리와 이들을 다시 교회의 품 안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방법을 연구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교회 내에서 높게 일고 있다.”(가톨릭신문 1992년 11월 1일자 1면) 휴거는 없었다 세기말을 앞둔 1992년 10월 28일 밤, 다미선교회 산하 전국 173개 교회에는 흰옷을 입고 가슴에 ‘휴거’ 신분증을 단 8000여 명의 신도들이 예수의 공중 재림을 기다리며 광신적인 통성 기도를 소리 높여 바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휴거(携擧, the rapture)’란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 시 죽은 성도들이 부활하고, 살아있는 성도들은 육체의 변화를 받아 공중으로 들어 올려지는 종말적 사건을 가리킵니다. 미국 복음주의 계열의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 종말론에서 발전한 개념으로, 천주교 정통 교리와는 거리가 멉니다. 다미선교회 총본부 앞은 취재진과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방송사들은 내부 집회 실황을 전국에 생중계했습니다. 신도들은 “주님을 의심하지 말자”며 자정이 지나기 직전까지 영적 도취감 속에서 춤을 추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시계가 자정을 알려도 예수의 재림과 신도들이 하늘로 들어 올려지는 초자연적 휴거 현상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무거운 적막이 감돌았고, 곧이어 분노와 허탈함이 교차하는 아수라장이 펼쳐졌습니다. 일부 신도들은 찬송가 책을 단상에 내던지며 ‘사기’라고 절규했고, 부산과 대구 등지에서는 격분한 신도들이 목사의 멱살을 잡고 거칠게 항의하며 기물을 파손했습니다. 교회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신도들의 가족은 “그대로 받아줄 테니 안심하고 나오라”며 오열 속에서 휴거를 기다리던 신도들을 설득했습니다. 집단 투신이나 동반 자살과 같은 최악의 상황은 다행히 벌어지지 않았고, 대부분은 경찰과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허탈한 표정으로 귀가했습니다. 되풀이되는 시한부 종말론의 폐해 1992년 우리 사회를 뒤흔든 시한부 종말론과 휴거 소동은 종교적 일탈을 넘어 세기말적 사회 불안과 기성 종교의 취약성이 결합돼 폭발한 복합적 병리 현상이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고조된 극단적 종말 사상은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지구 멸망 예언 등 세속적 종말관과 결합하면서 급속히 확산됐습니다. 대중의 불안 심리를 파고든 이 신드롬은 급격한 현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빈곤층과 영적 갈증을 느끼던 기성 교회 신자들을 흡수하며 우리 사회에 깊은 상흔을 남겼습니다. 이 사태의 정점에는 다미선교회를 설립한 이장림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주장한 휴거설은 자의적 왜곡을 일삼는 신학과 소위 ‘직통계시’의 결합물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극단적으로 왜곡해 1999년을 종말의 해로 규정하고, 7년 대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성도들의 공중 휴거가 일어나야 하므로 1992년 10월 28일이 바로 그 시점이라고 선전했습니다. 휴거 예정일이 다가오면서 다미선교회·다베라선교회·갈릴리선교회 등 80여 개 종말론 집단에 속한 약 2만 명의 신도들은 일상을 포기한 채 집단적 광신 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가정을 팽개치고 기도원에 들어가거나, 전 재산을 헌납했습니다. 일부 집단에서는 통제와 복종 강요 과정에서 폭행과 인권 침해도 빚어졌습니다. 사태가 사회 병리 현상으로 비화하자 공권력이 개입했습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강력부는 이장림을 사기 및 외국환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수사했습니다. 수사 결과, 그는 신도들에게 1992년 10월 28일에 세상이 끝난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자신은 1993년이 만기인 환매조건부채권(RP) 등에 거액을 투자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결국 이장림의 행태는 종교 사기극에 불과했습니다. 천주교회까지 침투한 종말론 개신교 이단 신흥 종단의 시한부 종말론은 기성 교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당시 개신교 주류 교회들은 다미선교회의 극단적 행동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오히려 그 말세적인 분위기에 편승하거나 동조하는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한국 개신교계 전체의 대사회적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개신교 신흥 종단에서 일어난 이 광풍은 천주교회에까지 불어왔습니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천주교 신자들을 주요 포교 대상으로 설정하고 공격적이고 지능적인 선교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가톨릭신문 1992년 7월 5일자 ‘시한부 종말론, 천주교회 안에 침투’ 기사에 따르면, 종말론자들은 이른 새벽 영남 지방(부산, 대구 등)의 천주교 교우 가정만을 골라 가톨릭 신자들의 무지와 각성을 촉구하는 유인물을 배포하며 전국적인 영적 혼란을 획책했습니다. 종말론의 모태는 기성 교회 가톨릭신문은 ‘92년 종말설의 실상’, ‘시한부 종말론의 허구’ 등의 기획 연재를 통해 신자들이 종말론의 허구성과 폐해를 분명히 인식하도록 촉구했습니다. 특히 10월 25일자에는 4개월에 걸친 기획 기사를 마무리하면서 전문가 특별 좌담을 마련했습니다. 좌담에서는 특히 종말론자들의 대부분이 이미 기성 교회를 다니던 신도들이며, 그들이 중산층 중심의 게토화된 교회 안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 시한부 종말론의 원인 중 하나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즉, “기성 교회에서의 영적 보상의 불평등한 분배 구조가 이들을 교회에서 떠나게 만들고, 세상의 종말과 천년왕국의 임박을 알리는 시한부 종말론을 발생시키게 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시한부 종말론의 모태는 기성 교회라는 지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가톨릭신문은 11월 1일자 사설을 통해 다음과 같이 교회와 신앙 공동체의 근본적인 대처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첫째, 어머니답게 어떤 처지의 자녀라도 차별 없이 품에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정확한 교리 지식과 신앙인으로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일에 소홀해 허위 종말론이 출현하고 추종자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면 우리도 그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발행일 2026-06-07 제3494호 12면

[100년의 페이지, 그 안에 담은 이야기] (6) 가톨릭신문 속 월드컵

2026 FIFA(국제축구연맹) 북중미 월드컵이 6월 11일 개막해 7월 19일까지 이어진다. 한국 대표팀도 6월 12일 멕시코에서 열리는 체코전을 시작으로 장정에 오른다. 월드컵이 명실상부한 지구촌 축제로 불릴 정도로 관심을 끄는 스포츠 이벤트인 만큼 그동안 가톨릭신문도 월드컵에 관한 기사를 꾸준히 보도해 왔다. 가톨릭신문에서 찾을 수 있는 첫 월드컵 보도는 1982년 6월 27일자(제1311호)에 실린 기사다. 당시 기사는 스페인교회 주교단이 1982 스페인 월드컵에 참가한 24개국을 환영하며 “일치된 형제애에 공헌하길 바란다”고 당부했음을 전했다. 같은 해 8월 1일자(제1316호)는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탈리아의 소식을 상세히 전했다. 당시 기사에는 “수천 명의 로마 시민들이 이탈리아 국기를 몸에 두른 채 모든 분수대로 뛰어들었다”며 “7월 12일 산드로 페르티니 대통령이 퀴리날리궁에서 선수단에게 오찬을 베푸는 동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전화를 걸어 이탈리아 선수단의 훌륭한 승리에 축하의 인사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한국이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1986 멕시코 월드컵)에 진출하자, 가톨릭신문은 1985년 11월 10일자(제1480호)에 “월드컵 본선 진출은 축구인들의 숙원이자 민족의 숙원이었다”며 “이 순간 거짓과 시기와 증오는 사라졌다”고 기쁨을 표했다. 반면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벨기에에 패하자, 1면에 연재되던 신앙·시사 비평 칼럼 ‘걸림돌’을 통해 “한국팀에 대한 기대와 예상이 빗나가면서 잠을 자지 못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을 것”(1990년 6월 17일자(제1709호))이라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온 국민이 열광했던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보도가 가장 활발했다. 개막을 앞둔 2002년 3월 31일자(제2292호)에서는 창간 75주년 특집 ‘월드컵과 교회’를 통해 축구와 교회의 다양한 관계와 축구를 매개로 한 선교 방안을 제시했다. 전국 교구의 손님맞이 준비 현장도 전했다. 5월 19일자(제2299호)는 “서울대교구는 많은 외국인 관광객과 선수들이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미사를 봉헌하고, 대회 기간 중 매 주일 세 곳에서 외국어 미사를 거행한다”며 “한국교회와 명동성당을 소개하는 책자를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으로 펴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전주교구에서는 셔틀버스와 문화 행사 등을 준비하고, 수원교구에서는 무료 민박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회 기간 중 재미난 일화와 응원 열기도 조명했다. 6월 30일자(제2305호)에서는 가톨릭신문사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한국사목연구소가 준비한 ‘주 5일제’ 관련 학술 포럼이 한국과 스페인 간의 8강 경기 시간과 겹쳐 부득이하게 연기된다고 밝혔다. 전국 각 교구·본당·수도회 응원 현장의 열기를 취재하기도 했다. 기사에서는 “몇몇 수녀들은 경기를 관람하지 않고 성당에서 승리의 기도를 바쳤고, 대부분은 끝날 때까지 묵주기도로 한국의 선전을 기원했다”고 묘사했다. 7월 7일자(제2306호)는 수원교구가 ‘월드컵을 화해와 평화의 운동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북한 어린이들에게 축구공 2002개를 선물한 소식도 전했다.

발행일 2026-06-07 제3494호 2면

[Hearing the Intellectuals of the Global Church – Father James Martin]

This article is released on May 31, 2026, in both print and online formats. Father James Martin, a Jesuit priest, best-selling author, and consultor for the Vatican's Dicastery for Communication, is renowned for his social influence and his charisma in explaining complex theological discourses in everyday language. At the same time, he acts as a model of genuine gospel hospitality by building a bridge to the margins of the Church, especially LGBTQ+ believers. As the second guest in the Catholic Times' centenary project, Hearing the Intellectuals of the Global Church, we met with Father Martin to hear his ‘spirituality of encounter,’ which emphasises that we must focus on « meeting people where they are, » just as Jesus did. Finding God in All Things, Communicating Like Jesus Fr Martin has worked at America Media for over 25 years, an organisation that publishes the American Jesuit magazine America. For him, writing is part of the ‘Ministry of the Word’ that Jesuits have long been involved in. He explained, « The Ministry of the Word means not only proclaiming the Gospel at Mass and offering homilies, but all kinds of writing. » He revealed that the foundation of his pastoral activity is his primary vocation as a Jesuit to help people « find God in all things, » paraphrasing St. Ignatius Loyola, the founder of the Society of Jesus. This media activity is a work that helps mutual understanding between the Church and the world. While Fr Martin mostly deals with overtly Catholic topics such as saints and prayer, he has dedicated his life to explaining them in a language that the general public beyond the religious fence can understand. « There is an old Jesuit saying that the Jesuit helps ‘the church to understand the world, and the world to understand the church,’ he noted, I like that formulation very much. I’ve also been invited to help the secular media from time to time. That’s part of ‘helping the world understand the church.’ » The reason his books, such as Building a Bridge and Learning to Pray, have received global acclaim lies in his charisma for « making things easy, direct, simple and accessible » while maintaining spiritual depth. He noted that this is exactly Jesus' way of communicating. « When Jesus calls the First Disciples, he speaks to the fishermen — not like a carpenter but in their language, the language of fishermen, saying, ‘Come after me, and I will make you fish for people.’ Later on, in his parables, Jesus used things from nature and everyday life to help make the reign of God easier to understand. We need to do what Jesus did Make things accessible. » Walking with the Excluded In 2022, Fr Martin established ‘Outreach’, which is an online ministry platform that helps LGBTQ Catholics, their families, and pastoral workers share their faith experiences and feel more a part of the Church. Outreach serves as a bridge connecting the marginalised and the Church by publishing online essays, providing theological resources, and holding regular conferences. Fr Martin stated that « this is an extension of ‘walking with the excluded,’ which is one of the Jesuit Universal Apostolic Preferences, he said, LGBTQ people certainly are excluded, so I walk with them. The first step is saying that these people exist. » Furthermore, Fr Martin emphasised that we must go beyond focusing only on their alienation or pain. « We need to listen not only to their pain, but to their experiences of God. » This means that we must let them know that they are as welcome as anyone else in what is, after all, their own church. « Now, many people say, ‘But they are sinning’. Let me ask them back. ‘What sin is a young person who is gay, who has never entered into a relationship, and is simply trying to find his or her place in the church, committing ?’ We need to make the Church more welcoming. » Regarding the Church's role in embracing diversity while upholding its core teachings, Fr Martin noted that God loves everyone, that Jesus lived a life of mercy and compassion, and that the Holy Spirit is present to all. He stated that « Jesus is consistently reaching out to people on the margins, and that these are teachings true for everyone. » « In His public ministry, He meets a Roman centurion, a Samaritan woman and people with leprosy, all people who would have been considered ‘strange,’ ‘different’ or ‘other’. This is our task today with LGBTQ people, who are often excluded from their own church. So this is a core teaching that we are fulfilling when we reach out to this community. » Apathy towards Religion... the Solution is a ‘Personal Encounter’ with Christ Religious indifference is an urgent challenge facing the Church today. In the past, active antipathy toward religion was the issue, but now people feel that they can simply set religion aside. Fr Martin suggested that the urgent task before the church is to introduce people to the person of Jesus Christ, proposing the building of a relationship with the ‘real God’. This means getting to know Him in the Gospels, in the Sacraments, and in other people. He explained that « we should seek a relationship with God where God knows us and we know God, and that we are invited to be open and honest with God in our prayer. As open and honest as we would be with a close friend. » « As for not being able to develop a healthy relationship with God, I think many people simply haven’t been taught how to do this. In other words, people have experiences of spiritual moments with God but they are not encouraged to talk about them. We need to encourage them to do so ! » ‘Affective Collegiality’ Conquers Division… Hoping Seoul WYD Becomes the Seed Different perspectives clash within the Church over various issues such as gender, liturgy, and political leanings. In the U.S. Church, division among believers is sharp over support for the Republican and Democratic parties. What is the solution to such conflict ? « ‘Affective collegiality’ precedes ‘effective collegiality.’ » Fr Martin presented a remark by Cardinal Timothy Radcliffe, who quoted Pope St. John Paul II at the 16th Ordinary General Assembly of the Synod of Bishops. Fr Martin attended the Synod as a delegate. « In other words, if you want to really speak about difficult topics, you first must try to make friends with the other person. That means getting to know them, giving them the ‘benefit of the doubt’ and listening carefully to what they say. » Along with this, Fr Martin hoped that the 2027 World Youth Day (WYD) in Seoul would be a seed for such inclusion to blossom. « I’m sure it will be done well because the Korean church is so vibrant and alive. But I would also say that it’s important that people who feel excluded in other places — those with disabilities, who are LGBTQ, who may be struggling with their faith — feel welcomed at WYD. It should be about ‘todos, todos, todos,’ as Pope Francis often said. » To the Catholic Times and Its Readers Fr Martin diagnosed that the role of Catholic media is even more essential today in this era of de-religionisation. As the number of journalists who specialise in religion decreases, there are fewer people who can explain the Church. He said, « Catholics sometimes hear about their church from ill-informed sources. That’s an extra reason for us to rely on, and support, Catholic media, he added, the unique role of Catholic media is to present Catholic news and information with understanding ! » With this, he conveyed his greetings to the Catholic Times, which is approaching its 100th anniversary, and to the readers who have sent their long-standing support. « I hope that you can celebrate God’s work in you ! It’s a wonderful time for you to look back, reflect and be grateful for all that God has done through you. Finally, it’s a good time to discern the ‘signs of the times’: what are the new things that God is asking for us. » ■ About Father James Martin An internationally influential author, media expert, and spiritual figure, Fr Martin was born in the United States in 1960. He graduated from the Wharton School of 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 and was pursuing a career in business when he realised his calling and entered the Society of Jesus in 1988. Fr Martin excels at translating complex theological discourses into plain and clear language that anyone can understand, encouraging a personal relationship with God alongside humour and wisdom. With a deep interest in media ministry, he serves as an Editor-at-Large for America magazine and helps facilitate communication between the world and the Church as a consultor for the Vatican's Dicastery for Communication. His books, including Work in Progress, have been translated into dozens of languages, bringing spiritual comfort to believers and citizens around the world. Several of his notable books have been published in Korea, offering profound yet accessible spiritual guidance: ▲The Jesuit Guide to (Almost) Everything: A Spirituality for Real Life provided spiritual direction on real-life issues such as relationships, money, work, prayer, and decision-making, based on the lives of Jesuit saints and his own formation experiences. ▲Jesus: A Pilgrimage, which chronicles his journey experiencing the actual sites where Jesus walked in Israel, received critical acclaim for effectively leading readers to a personal encounter with Jesus by weaving together Gospel texts, a sense of being on pilgrimage, historical Jesus research, and spiritual reflection. ▲ Recently, Learning to Pray, which uses everyday language and personal experiences to guide readers through various methods of prayer, intentions, and prayer life according to liturgical seasons, etc. reported·translated by reporter Bak Juhyeon ogoya@catimes.kr

입력일 2026-06-04

[세계교회 지성에게 묻다] 제임스 마틴 신부 “변두리에 손 내밀자는 예수님 가르침은 보편적 진리”

예수회 사제이자 베스트 셀러 작가, 그리고 교황청 홍보부 자문위원인 제임스 마틴(James Martin) 신부는 사회적인 영향력뿐 아니라 복잡한 신학적 담론을 일상적 언어로 풀어내는 카리스마로 유명하다. 동시에 교회 변두리, 특히 성소수자(LGBTQ) 신자들을 향해 다리를 놓으며 진정한 복음적 환대의 모범을 보인다. 가톨릭신문 창간 100주년 기획 ‘세계교회 지성에게 묻다’의 두 번째 순서로 마틴 신부를 만나 “예수님이 그러하셨듯 우리도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야 한다”는 그의 ‘만남의 영성’을 들어본다.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찾기, 예수님처럼 소통하기 마틴 신부는 미국 예수회 잡지 「아메리카」를 펴내는 ‘아메리카 미디어’에서 25년 넘게 종사해 왔다. 그에게 글쓰기는 예수회 회원들이 오래전부터 이어온 ‘말씀의 사목(Ministry of the Word)’의 하나다. 마틴 신부는 “말씀의 사목이란, 미사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강론을 하는 것뿐 아닌 모든 종류의 글쓰기를 의미한다”며 “예수회 설립자이신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께서도 말씀하셨듯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도록’ 사람들을 돕는 예수회원으로서의 소명이 사목 활동의 바탕”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미디어 활동은 교회와 세상 사이의 상호 이해를 돕는 작업이다. 마틴 신부는 대부분 성인이나 기도 등 뚜렷하게 가톨릭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이를 종교 울타리 너머의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푸는 데 평생을 헌신해 왔다. “‘예수회원은 교회가 세상을 이해하도록 돕고, 세상이 교회를 이해하도록 돕는다’는 오랜 격언이 있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표현이죠. 저는 때때로 교회 밖 미디어를 돕는 일에도 초대받았습니다. 이 또한 ‘세상이 교회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의 일부예요.” 그가 펴낸 「다리 놓기(Building a Bridge)」나 「기도하는 법(Learning to Pray)」이 세계적 호응을 거둔 이유도, 영적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이를 단순명료하게 전달하는 카리스마에 있다. 무엇이든 쉽고, 직관적이고, 단순하고, '접근할 수 있게(accessible)‘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소통 방식”이라고 마틴 신부는 설명했다. “예수님께서는 어부들에게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목수의 언어가 아니라 그들의 언어인 어부의 언어로 말씀하셨습니다. 훗날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설명해 주실 때도 자연과 일상의 사물들에 비유해 쉽게 풀어주셨죠. 그러니 우리도 예수님께서 하신 대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든 접근부터 할 수 있어야죠.” 소외된 이들과 함께 걷다 마틴 신부는 2022년 ‘아웃리치(Outreach)’를 설립했다. 성소수자 신자와 가족, 사목자들이 신앙 경험을 공유하며 교회 안에서 소속감을 잃지 않도록 돕는 온라인 사목 플랫폼이다. 아웃리치는 관련 온라인 에세이를 게재하고 신학적 자원을 제공하거나 정기 컨퍼런스를 여는 등, 소외된 이들과 교회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해내고 있다. 마틴 신부는 이것이 예수회의 사목 지침 ‘보편 사도적 선택(Universal Apostolic Preferences)’ 중 하나인 ‘소외된 이들과 함께 걷기’의 연장선임을 밝혔다. 이어 “성소수자들은 분명 소외된 이들이기에, 나는 그들과 함께 걷는다”며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부터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마틴 신부는 신자들의 소외감이나 고통에만 주목하는 것을 넘어 “그들이 경험한 하느님에 대해서도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들 역시 결국 자신들의 교회인 이곳에서 다른 누구와 마찬가지로 환영받는 신자임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이가 묻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죄를 짓고 있잖아요.’ 그러면 저도 되묻겠습니다. ‘관계를 맺은 적도 없고, 그저 교회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노력하는 게이 청년이 대체 무슨 죄를 짓고 있다는 말이죠?’ 우리는 교회를 더 환대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핵심 교리를 유지하면서도 다양성을 포용하는 교회의 역할에 대해 마틴 신부는 하느님은 모든 이를 사랑하시며, 예수님은 자비와 연민의 삶을 사셨고, 성령께서 모든 이에게 현존하심을 들어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자는 이 가르침은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진리”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공생활 동안 로마 백인대장, 사마리아 여인, 한센병 환자들을 만나셨어요. 이들은 당시 기준으로 ‘이상한’, ‘다른’ 혹은 ‘남(others)’으로 여겨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자신의 교회에서조차 종종 배제되는 이들을 대하는 우리의 과제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공동체에 손을 내미는 것은 바로 핵심 교리를 실천하는 것이죠.” 종교 무관심… 해법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 종교 무관심은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시급한 과제다. 과거에는 종교 자체에 대한 적극적 반감이 문제였다면, 이제는 사람들이 종교를 삶에서 단순히 제쳐둬도 상관없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마틴 신부는 “해법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person)’을 소개하는 것”이라며 실재하는 하느님과의 관계 맺기를 제안했다. 이는 곧 복음서와 성사, 다른 사람들 안에서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며 “하느님이 우리를 알고 우리가 하느님을 아는 관계를 추구하며, 가까운 친구에게처럼 거짓 없이 활짝 열린 마음으로, 기도 안에서 하느님께 개방적이고 정직해지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느님과 건강한 관계를 발전시키지 못하는 건, 많은 사람이 단순히 그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하느님과 함께하는 영적인 순간을 많이 경험하지만, 정작 그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기회가 살면서 주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줘야 해요!” 분열을 이기는 ‘정서적 동료애’, 서울 WYD가 그 씨앗 되기를 젠더, 전례, 정치 성향 등 온갖 이슈로 교회 안에도 서로 다른 관점들이 대립한다. 미국교회도 공화·민주당 지지를 둘러싸고 신자들 간 분열이 첨예하다. 이러한 갈등의 해법은 무엇일까. “정서적 동료애(affective collegiality)는 실질적 동료애(effective collegiality)에 앞섭니다.” 마틴 신부는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말을 인용한 티머시 래드클리프 추기경의 발언을 제시했다. 마틴 신부는 대의원 자격으로 시노드에 참석했다. “어려운 주제에 대해 진정 대화하고 싶다면 먼저 상대방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상대를 알아가고, ‘의혹보다는 선의(benefit of the doubt)’를 가지고 대하며, 상대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것을 의미하죠.” 그러면서 마틴 신부는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가 그러한 포용이 싹트는 씨앗이 되기를 기대했다. “한국교회는 매우 활기차고 ‘살아있는(alive)’ 교회이니 분명 잘 해낼 거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 즉 장애인, 성소수자, 신앙에 대해 힘겨운 고민을 이어가고 있을 사람들이 WYD에서는 환영받는다는 걸 느끼게 해줬으면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자주 말씀하셨듯, 이 대회는 ‘모두, 모두, 모두(todos, todos, todos)’를 위한 것이어야 하니까요.” 가톨릭신문과 독자들에게 마틴 신부는 오늘날 탈종교화 시대일수록 가톨릭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종교 전문 기자가 줄어들면서 교회를 설명해 줄 소통 창구도 적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신자들이 종종 잘못된 정보원으로부터 교회 소식을 듣게 되는데, 이는 우리가 가톨릭 미디어에 기대와 신뢰를 잃지 않고, 또한 지원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라며 “가톨릭 뉴스와 정보를 ‘이해’하고 전달하는 것은 가톨릭 미디어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창간 100주년을 앞둔 가톨릭신문과, 오랜 성원을 보내온 독자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여러분 안에서 하느님께서 이루신 역사를 기쁘게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이루신 일들에 감사하고, 또 하느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새롭게 무엇을 바라시는지 시대의 징표 안에서 식별하기에 참 좋은 때입니다.” ■ 제임스 마틴 신부는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작가이자 미디어 전문가, 영성가인 마틴 신부는 1960년 미국에서 태어나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을 졸업하고 경영인의 길을 걷던 중, 부르심을 깨닫고 1988년 예수회에 입회했다. 마틴 신부는 복잡한 신학적 담론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하고 명료한 언어로 풀어내는 데 탁월하며, 유머와 지혜를 곁들여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맺기를 독려한다. 특히 미디어 사목에 깊은 관심을 쏟아 「아메리카」의 상임 편집 위원(Editor-at-large)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교황청 홍보부 자문위원으로 세상과 교회의 소통을 돕고 있다. 「Work in Progress(편역: 미완의 여정 / 국내 미출판)」 를 비롯한 저서는 수십 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신자·시민에게 영적 위로를 전했다.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발견하기」(가톨릭출판사)는 예수회 출신 성인들의 삶과 마틴 신부 자신의 예수회 양성 경험을 바탕으로 관계, 돈, 일, 기도, 의사결정 같은 현실 문제에 신앙적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스라엘에서 예수가 실제 거닐었던 현장을 직접 체험한 여정을 담은 「예수, 여기에 그가 있었다」(가톨릭출판사)는 복음서 본문, 순례 현장감, 역사적 예수 연구와 신앙적 묵상을 함께 엮어 예수와의 인격적 만남을 효과적으로 이끌어 호평을 받았다. 최근에는 다양한 기도의 방법과 지향, 전례 시기에 따른 기도 생활에 대해 체험을 곁들인 일상의 언어로 안내하는 책 「기도, 할수록 좋네요」(바오로딸)가 한국에서 출간됐다.

발행일 2026-05-31 제3493호 11면

[100년의 페이지, 그 안에 담은 이야기] (5) 교회가 바라본 불교

5월 24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한국교회는 삼국시대부터 한국에 자리 잡은 불교 신앙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며 불교의 경축일을 맞아 매년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가톨릭신문이 보도한 부처님 오신 날 축하 메시지와 불교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가톨릭신문에 보도된 첫 축하 메시지는 1987년 5월 10일자(제1554호)에 보도된 하느님의 종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의 축전으로 추정된다. 기사는 김 추기경이 “조계종 성철 종정에게 ‘석존탄신의 뜻깊은 날을 맞아 자비의 가르치심이 겨레와 온 누리를 화평의 길로 이끌어 주기를 마음으로 축원하며, 종교인 모두가 나눔과 섬김으로써 인류의 참 생명에 헌신할 다짐을 하는 날이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라는 내용의 축전을 보냈다”고 밝혔다. 또한 1997년 5월 18일자(제2053호)는 종교 간 일치를 위한 김 추기경의 노력이 매년 지속돼 왔음을 알리고 있다. 교황청 종교간대화 평의회(현 종교간대화부)는 1995년부터 불교 신자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가톨릭신문은 1996년 5월 19일자(제2003호)에서 당시 평의회 의장 프란시스 아린제 추기경이 사랑의 문화를 만들기 위한 종교 간 상호협력을 제의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종교간대화부는 올해 5월 1일에도 ‘무기를 내려놓으며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평화를 위한 불자들과 그리스도인들’ 제목의 메시지를 발표했다. 교황청 종교간대화부는 올해 5월 1일 ‘무기를 내려놓으며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평화를 위한 불자들과 그리스도인들’ 제목의 메시지를 종교간대화부 장관 조지 제이콥 쿠바카드 추기경 명의로 발표했다. 한국교회는 2000년 첫 공식 메시지를 발표했다. 2000년 4월 30일자(제2198호)는 당시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장이던 고(故) 최기산(보니파시오) 주교가 불교계에 축하 메시지를 전했음을 보도했다. 아울러 기사는 “교황 또는 주교 개인 명의로 메시지를 발표한 일은 있으나 한국교회가 주교회의 차원에서 경축 메시지를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새천년을 맞아 다종교 사회인 한국에서 종교 간 대화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가톨릭신문은 이처럼 타 종교와 친교를 형성할 수 있는 배경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영향이 있다고 풀이한다. 고(故) 한스 큉 신부의 기고로 공의회의 성과를 논한 1966년 4월 10일자(제514호)는 “교회가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다고 해도 타 종교의 영성·윤리·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증진해야 한다”며 “교회는 힌두교와 불교, 이슬람교를 존중한다”고 평했다. 또한 공의회 문헌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 「우리 시대」를 바탕으로 1968년부터 1969년까지 8회에 걸쳐 ‘대화를 위한 시리즈 - 자비에 관하여’를 연재했다. 가톨릭신문은 2024년부터 ‘이웃종교 만남’ 지면을 통해 불교계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와 종교인들의 활동상과 종교 간 친교를 위한 노력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발행일 2026-05-24 제3492호 2면

[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교회와 함께 민족과 함께] (50) 낙태법 폐지 100만 서명운동

“태아의 생명을 죽이지 말라.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정부의 낙태 합법화에 대한 일련의 법 개정 사안과 관련, 7월 13일 CCK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를 사실상 허용하고 있는 형법 제135조 개정안에 대한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이 법안의 국회 통과 저지를 위한 100만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낙태법 반대 성명과 낙태법 폐지를 위한 100만 서명운동 등 낙태 문제에 관한 일련의 주교단의 결단은 하루 평균 4100여 명의 태아가 살해되고 있는 현 사회 풍토와 이를 허용, 법적으로 묵인하고자 하는 정부 시책에 대해 인명 경시 사상을 척결하고 새 생명을 수호하려는 교회의 단호한 의지 표명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주교단은 ‘새로운 낙태법의 제정, 시행으로 인한 개개인의 인간성 황폐화는 물론 사회 전체의 윤리도덕성 추락을 묵과할 수 없다’며 ‘교회는 수태 순간부터 인간 생명이 시작됨을 믿고 태아의 생명이 어떠한 경우라도 보호되고 존중되어야 함이 교회 공식 입장’이라고 공포했다.”(가톨릭신문 1992년 7월 19일자 1면 중에서) 1992년 한국 천주교회가 전개한 낙태법 폐지 100만 서명운동은 한국 현대 교회사와 사회 운동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종교적 교리를 수호하기 위한 교회 내부 운동이 아니라 국가의 인구 정책이라는 거대 담론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생명권’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공론장에 끌어올린 최초의 대규모 시민운동이었습니다. 특히 주교단이 태아의 생명 수호를 위해 실정법 폐지를 요구하며 낙태 반대를 주장하고 서명운동을 전개한 것은 한국교회 200년 역사상 최초의 큰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한국 사회는 수십 년간 지속된 국가 주도의 가족계획 정책으로 인해 낙태를 도덕적 죄악보다는 경제적 선택이나 피임의 보조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가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105만 명 이상의 서명을 끌어낸 것은 보이지 않는 생명에 대한 사회적 양심을 일깨운 사건이었습니다. 낙태 묵인으로 출산율 낮춰 1992년의 서명운동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정부의 강력한 인구 억제 정책과 그로 인해 조성된 사회적 분위기를 이해해야 합니다. 1961년 박정희 정권은 경제 발전을 위해 인구 증가를 억제해야 한다는 논리 아래 강력한 가족계획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피임 기구 보급, 불임 수술 장려, 그리고 사실상의 낙태 묵인을 통해 출산율을 급격히 낮추려 했습니다. 이에 교회는 1961년 9월 「인구 문제와 산아 제한」이라는 주교단 사목교서를 통해 이러한 국가적 개입이 자연법과 하느님의 질서에 위배된다고 경고했으나, 경제 성장의 열망에 사로잡힌 사회적 흐름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낙태 논쟁의 법적 분수령은 1973년 유신 정권 아래에서 제정된 「모자보건법」이었습니다. 이 법은 제14조에 인공임신중절의 허용 한계를 명시함으로써, 형법상 낙태죄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낙태의 합법적 통로를 열어주었습니다. 당시 허용된 사유는 본인 또는 배우자의 우생학적·유전적 장애, 전염성 질환, 강간 및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그리고 보건학적 이유로 인한 임신부의 건강 위험 등이었습니다. 주교단은 이 법이 “생명 경시 풍조를 초래하고 모체 건강을 파괴”한다며 강력히 반대했으나, 유신 체제의 강력한 국가 권력 앞에서 제도의 시행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형법 개정안 제135조 1980년대 이후 인구 정책은 더욱 급진적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둘도 많다’는 구호 아래 1자녀 갖기 운동이 전개되었고, 이 시기 한국의 낙태 건수는 연간 150만 건을 웃돌며 세계 1위 수준의 낙태율을 기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신생아 출생 수보다 낙태되는 태아의 수가 두 배 가까이 많았으며, 이는 낙태가 일종의 사후 피임 수단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주는 비극적 지표였습니다. 그러던 중 1992년 4월, 당시 법무부는 기존 형법의 낙태 처벌 조항을 유지하면서도, 실제로는 「모자보건법」의 허용 범위를 완화하는 개정안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대해 교계가 가장 우려했던 점은 개정안이 배우자의 동의 없이도 임신한 여성과 의사의 결정만으로 낙태를 가능하게 했고, 시술 의사와 심의 의사를 구분하지 않아 사실상 ‘낙태 자유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컸다는 점입니다. 특히 당시 산부인과 병원 수입의 상당 부분이 낙태 시술에서 발생하고 있었는데, 개정안이 통과되면 무제한적인 낙태가 조장될 것이 자명했습니다. 교회 전체 참여, 석 달 만에 100만 서명 달성 서명운동은 6월 12일 청주교구 사제단의 서명과 입법 반대 선언으로 시작됐고 전국 교구로 빠르게 확산됐습니다. 7월 13일, 주교단이 「형법 개정안 제135조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고, 100만 서명운동의 개시를 선포했습니다. 각 본당은 주일 미사를 통해 서명운동의 취지를 설명해 신자들의 동참을 이끌었고, 신자들은 길거리 서명운동을 벌이며 시민들의 양심에 호소했습니다. 서명운동은 네 가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첫째, 영성 및 교육적 접근이었습니다. 태아의 발달 과정과 생명의 신비를 알리는 시각 자료를 배포하고 순회 강연회를 개최해 주일학교 어린이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자에게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교육시켰습니다. 둘째는 시각적 실상 고발이었습니다. 낙태 현장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사진전을 열어, 낙태가 추상적인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구체적인 ‘살인 행위’임을 알렸습니다. 셋째, 범종교 및 사회적 연대입니다. 천주교뿐만 아니라 이웃 종교 지도자들이 서명에 동참함으로써 낙태 반대가 보편적 가치임을 입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압박입니다. 서명운동이 고조되던 1992년 말은 대통령 선거 국면과 맞물려 있었습니다.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을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은 대선 후보들에게 낙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요구했고, 유력 후보들이 낙태 반대 의사를 공식 표명했습니다. 결국 서명운동 시작 단 3개월 만인 1992년 10월, 최종 집계 결과 105만9000명의 서명을 모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100만 서명운동의 성과 서명운동의 가장 직접적인 성과는 독소 조항들의 일방적 통과를 저지한 것입니다. 비록 형법상 낙태죄가 크게 강화되거나 「모자보건법」이 폐지된 것은 아니었으나, 정부로 하여금 낙태 허용 범위를 무분별하게 확대하는 정책이 거센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수 있음을 명확히 인식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성과는 한국 사회 전반의 ‘생명 경시 풍조’에 경종을 울리고 낙태를 심각한 윤리적·사회적 문제로 부각시킨 점입니다. 특히 서명운동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교회 내부에 강력한 생명 수호 인프라를 구축하는 계기가 됨으로써, 2000년대 이후 더욱 전문화되고 조직화된 생명운동을 전개하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발행일 2026-05-24 제3492호 8면

[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교회와 함께 민족과 함께] (49) 교회 환경운동의 본격 태동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평화로운 사회 발전의 토대인 수많은 윤리 가치들은 생태 환경 문제와 구체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면서 ‘오늘날 자연에 대한 마땅한 존중의 결여, 자연 자원의 피폐, 점차 악화되는 생활의 질적 저하로 인해 세계 평화가 위협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90년 1월 1일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을 통해 이같이 강조한 교황은 ‘과학기술 발전의 무차별 적용으로 오늘날 생태계는 위기에 직면했다’면서 ‘환경의 오염이나 파괴는 생명과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점차 상실시켜 인간 경시에 이르고 마는 비자연적이고 환원주의적인 세계관을 낳게 됐다’고 개탄했다.”(가톨릭신문 1990년 1월 1일자 1면) 한국교회 환경운동의 공식적인 출발점은 1991년입니다. 1984년 울산 온산 지역의 대규모 공단 폐수 오염에 따른 ‘온산병’ 발병과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등으로 당시 큰 사회적 파장이 일었습니다. 이는 국가 주도의 압축적 산업화가 낳은 환경 재난들이었습니다. 이런 재난들로 인해 우리 사회는 환경오염과 파괴가 인간 삶의 질적 저하, 심지어 생존의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가운데,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90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 ‘창조주 하느님과 함께하는 평화, 모든 피조물과 함께하는 평화’를 발표했습니다. 이 담화는 무분별한 산업 개발과 소비주의가 자연환경을 훼손하고 있음을 경고하며, 생태계 보호가 신앙인의 도덕적 의무이자 참된 평화를 향한 과제임을 천명했습니다. 이 담화는 한국교회가 환경 문제를 공식적인 사목 과제로 채택하는 결정적인 신학적 근거를 제공했습니다. 환경보전 인식의 대전환 한국교회가 교황 담화에 응답하면서 교회 환경운동이 본격적으로 태동했습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1991년 환경 보전에 관한 교황 담화 자료집을 발간하고, 개인과 본당, 교구 단위의 구체적인 실천 과제를 제시했습니다. 이어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가 산하에 ‘하늘땅물벗’이라는 생태 사도직 모임을 구성하고 월례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1992년에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주관으로 교회 내 22개 환경운동단체가 참가한 ‘푸르름을 만드는 잔치’가 처음 열렸고 이듬해에는 ‘환경상’도 제정됐습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1991년 ‘창조질서 보존을 위한 생활 수칙 70가지’ 포스터와 자료집 ‘생명과 해방으로 가는 길’을 제작, 보급한 데 이어,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창조질서 보존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공청회는 교회 안에서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낸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농촌사목 분야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생명공동체 운동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1990년 가톨릭농민회는 제20차 대의원대회에서 사람과 땅, 자연을 살리는 생명 농업 실천을 공식 결의했습니다. 안동교구의 생명 공동체 운동이나 대구대교구의 푸른평화운동본부 등은 이러한 유기적 생명관에 기초해 비신자를 포함하는 폭넓은 연대 활동을 전개하며 초기 환경운동의 외연을 확장했습니다. 1994년에는 환경교육의 내실화, 환경운동의 정착 및 확산, 타 단체와의 연대 활동 등에 있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됩니다. 서울과 대구대교구 등에서 환경전담사제가 임명됐고 전국 환경사제모임이 결성됐습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생활실천부는 환경 문제를 전담하는 ‘환경보전부’로 개칭했고, 대구대교구 푸른평화운동본부가 지역 환경운동의 구심점이 됐습니다. 교회 환경운동의 정체와 답보 한국교회는 환경운동을 신앙 실천의 하나로 수용하게 됐지만, 초기의 열정과는 달리 1990년대 중반 이후 교회 환경운동은 제자리걸음에 머물게 됩니다. 초기의 환경운동은 쓰레기 분리수거, 합성 세제 감축, 자원 재활용 등 생활 실천 운동에 집중됐습니다. 공해 문제에 대한 구조적, 정치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는 한계를 보였고, 주로 개인의 도덕적 절제와 희생을 요구하는 윤리적 차원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나마도 점차 운동의 동력과 방향성을 잃고 답보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가톨릭신문은 기획기사를 통해 주기적으로 교회 환경운동의 이러한 문제를 진단했습니다. 1996년에는 교회 환경운동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며, 본당 환경 분과나 단체가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답보 상태임을 지적했습니다.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은 10여 개가 못 되고 이들 단체의 책임자들은 ‘기존의 환경운동이 개인적 희생과 노력을 요구하는 만큼 눈에 띄는 성취감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가톨릭신문 1996년 4월 21일자 1면) 2003년에는 ‘본당 중심 환경운동 답보 상태’라는 취지의 기사에서, “교회 환경운동의 손발이 없어 환경보전운동이 생활 속의 실천 운동으로 확산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서울대교구의 경우 교구 전체 본당 가운데 환경분과가 설치된 본당은 불과 7곳뿐이고 실질적으로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곳은 단 2곳으로 집계되고 있다.”(가톨릭신문 2003년 6월 1일자 1면) 본당 환경분과는 생활 실천 운동을 추진하거나, 지역사회의 환경 관련 사안들에 대한 참여가 이뤄지는 현장이라는 점에서 환경운동의 ‘손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 환경운동, 특히 본당 단위의 풀뿌리 교회 환경운동은 사실상 오랫동안 침체 상태였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태 관련 현안에 대한 범종교 연대 1990년대 중반 이후 교회 환경운동이 초기의 활력을 잃고 정체기에 접어들었지만, 2000년대 초반 거대한 환경 파괴 현장에서는 천주교의 예언자적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았습니다. 국가 주도의 대규모 토목 공사인 새만금 간척 사업과 천성산 고속철도 터널 공사 반대 운동 등에서 천주교는 피조물의 생명권을 수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새만금 갯벌 살리기 운동은 종교계 연대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당시 문규현 신부와 불교계 수경 스님 등은 도심 한복판에서 ‘3보 1배’의 고행을 통해 생명 살상의 실체를 고발해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를 계기로 2001년 결성된 5대 종단 연대 기구인 ‘종교환경회의’를 통해 천주교는 이웃 종교와 함께 생태 보전, 탈핵, 기후위기 대응을 공동으로 논의하고 실천하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1990년 교황의 세계 평화의 날 담화를 계기로 본격화된 교회 환경운동은 오랜 기간의 정체기를 거쳐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 반포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회칙은 인류의 환경 위기를 ‘근본적인 영적 위기’로 규정하고, 자연환경의 위기가 인간 및 사회의 위기와 별개가 아니라는 ‘통합적 생태론(Integral Ecology)’을 제시하며, 인류 전체의 가치관과 삶의 양식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생태적 회개(Ecological Conversion)’를 촉구했습니다.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8면

[Hearing the Intellectuals of the Global Church – Father Anselm Grün]

This article is released on March 25, 2026, in both print and online formats. The Catholic Times is launching its centenary project, Hearing the Intellectuals of the Global Church, seeking answers to the questions facing the Church today, through the voices of those who have long pursued the essence of faith, the mission of the Church, and the questions of the age within the global Church. Through dialogue with intellectuals of the global church, we hope to discover words of insight to which the Korean Church should listen, in these rapidly changing times. The series' first instalment features Fr Anselm Grün, the inaugural interviewee, whose books are regularly found in the religion sections of bookshops, with hundreds of them translated into many languages around the world, reaching tens of millions of readers. Yet the central message of the monk, who has lived for more than half a century at Münsterschwarzach Abbey of the Order of St. Benedict in Germany, is simple: « entrust yourself to God just as you are. » He speaks about his writings and spiritual experiences, his advice for those living in an anxious age, his message to The Catholic Times as it approaches its centenary next year, and his words of encouragement to the Korean Church and its young people preparing for World Youth Day (WYD) 2027 in Seoul. Still active at eighty Fr Grün turned eighty on 14 January 2025. Yet he remains fully active. At the abbey’s retreat house, he gives spiritual formation courses and leadership courses for executives, and at the request of various institutions, including Berlin’s Ministry of Labour and the Federal Intelligence Service, he also takes part in leadership training. At a spiritual healing centre for priests, religious and Church employees experiencing spiritual crisis, he quietly accompanies them as a spiritual director. Asked about the secret of his prolific writing, he said « I try to explain things in the simplest language possible, so that people may find real help in their own lives as they try to live out Christian spirituality. Rather than putting moral admonition or instruction to the fore, he added, I try to speak to the wisdom that resides in the human soul, and I write with a constant awareness that within every person there is a longing for God and for spirituality. » The central theme running through his writings is ‘healing’: he traces his focus on this theme to the Desert Fathers of the early fourth century. « The spiritual journey of the Desert Fathers was always a path that transformed and healed the human person, he said, as I came to see afresh that Jesus’ public ministry, too, was essentially directed towards healing and restoration, I became more deeply interested in healing and inner growth. » Asked what core message he most wants to convey to readers through his books, the priest replied, « Faith frees us from the pressure constantly to display ourselves, justify ourselves and prove ourselves. » He explained: « Faith allows us to lay down the burden of having to make ourselves into better people, and went on to say, only when we acknowledge what is within us as it is and entrust it to God does change truly begin; only what we fully accept and offer to God can, in God’s hands, move beyond mere ‘change’ and be transfigured. » As the most important virtue for discovering one’s true self and growing spiritually, he named « honesty. » Speaking of his own practice, he said, « I remain quietly before God and entrust to him everything that rises up within me, he added, in that quiet encounter, I come to know myself by facing even the dark sides that I had long kept suppressed in ordinary life. » The era of AI… consolation comes not from a screen but from human encounter AI is now penetrating deeply even into the realms of counselling, consolation and spiritual advice. On this point, Fr Grün drew a clear line, stressing that « modern technology must be used carefully, but we must not be dominated by it, he said, AI in particular cannot provide ‘consolation’, because consolation requires not words read from a computer screen, but a concrete encounter with another person. » As a practice for preserving spirituality in such an age, he proposed « a healthy ascetic discipline (Askese): we need a good form of restraint, a discipline that resists constantly filling ourselves with information, he said, when we entrust to God in prayer what we read and hear, we can escape the danger of circling endlessly around the world’s problems and becoming powerless because of them. » Fr Grün has long stressed the balance between work and faith, spirituality and everyday life. « To maintain this harmony, he said, the most effective way is to have a personal daily ‘ritual’ (Rituale), because it gives a person a ‘sacred time’ that belongs to God and to oneself alone. » « What is just as important is one’s inner attitude. Only when we are fully engaged from within do we avoid burnout, because we are constantly drawing strength from the inexhaustible spring of the Holy Spirit. » He explained, « this is precisely what St Benedict’s teaching, ‘Ora et Labora’ — pray and work — means. It means working not out of the ‘ego’, which seeks to display itself before others and prove itself, but out of the power that wells up from the inner centre, the ‘true self’ (Selbst). » Asked what the deepest spiritual experience of his long life as a monk had been, he answered, « It is bringing everything I have gone through to God and facing him there, he continued, only then does inner transformation truly begin. What I have learned is that what matters is not simply changing myself, but becoming new in an essential way. When I accept myself as I am and offer myself to God, everything within me can at last be transfigured. » To the Korean youth looking forward to Seoul WYD Looking ahead to World Youth Day (WYD) 2027 in Seoul, Fr Grün turned his thoughts to Korean young people: « We should be grateful that so many young people in the Korean Church are serving and taking an active part in the Church, he said, I hope that young people in the Korean Church will be an example to young people in Europe, who have to preserve their faith in a secularised world. » To young people weighed down by employment pressures, competition and anxiety about the future, he offered this counsel: « You must never lose hope. Hope is different from expectation. Our expectations may end in disappointment, but hope cannot be disappointed, he added, hope is not about drawing a concrete picture of the future, but about trusting that life, whatever form it may take, will be led towards the good. » The priest repeatedly stressed, « I hope young people will come to feel that, in this uncertain age, faith offers us support and stability, and that the Church can be the very place from which hope is drawn. » What he hopes for from The Catholic Times Speaking of The Catholic Times as it marks its 99th anniversary this year, Fr Grün said, « on the one hand, it must face the problems of the age with courage; on the other, it must provide a space for reflection in which people may be invited into silence, he added, for that, faith must be proclaimed in a language that people today can understand. » And to the readers, most of all, he commended gratitude for those who have gone before them in faith. « I hope people will carry within themselves a spirit of gratitude for the many who walked the path of faith before them. We live upon the roots of faith they laid down, and we share in the strength of faith they possessed. » The priest also asked people to trust that the Christian Gospel remains, even in these times, good news that brings healing and courage: « in this confused age, this Gospel offers hope, concluding the interview with these words: I hope the faithful of the Korean Church will become leaven in Korean society, fostering reconciliation and hope. » ■ About him Fr Anselm Grün is one of the most prominent spiritual writers of the modern age and a prolific author whose work has deeply resonated with readers across the world. Born in Germany in 1945, he entered a Benedictine monastery in 1964 and went on to study philosophy, theology and business administration, following a path that has brought together monastic life, scholarship and practical work. His spirituality brings together the tradition of the Desert Fathers, Scripture, modern theology and psychology. Through this, he offers a way of encountering God in daily life, in emotions and in human relationships. Emphasising moderation and balance rather than excessive asceticism or idealism, he has continued through his writing and lectures to help modern people, burdened by anxiety, woundedness and exhaustion, to accept themselves and move towards healing. His nearly 200 books, written in accessible language on happiness and emotion, friendship and community, and the miracles of everyday life, have been translated into dozens of languages and have become spiritual guides for millions of readers worldwide. Having visited Korea several times for lectures and meetings, Fr Grün has brought to people living amid the realities of division, competition and exhaustion a message of reconciliation, healing and self-acceptance. ■ His handwritten message in celebration of the journal's 99th anniversary Dear readers, I congratulate The Catholic Times on its 99th anniversary, and I pray for God’s blessing upon you all. May the writings in this newspaper strengthen your faith, so that you may become trustworthy witnesses who proclaim the Gospel of Jesus in Korean society. May our Lord’s blessing always accompany your path, and may you yourselves become a blessing to the people of Korea. Yours, Fr Anselm Grün reported by Lee Juyeon milki@catimes.kr translated by reporter Bak Juhyeon ogoya@catimes.kr

입력일 2026-05-13

[100년의 페이지, 그 안에 담은 이야기] (4) 가톨릭신문이 전한 성모 신심

5월은 성모 성월이다. 1622년 교황 우르바노 8세에 의해 제정된 이후 교회는 이 시기 성모 마리아의 모범을 따르고 특별한 은총을 청하며 공경을 표한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주보성인으로 삼고 있는 한국교회는 태동기부터 특별한 성모 신심을 간직해 왔다. 가톨릭신문이 전한 한국교회의 성모 신심을 돌아보자. 가톨릭신문의 첫 성모 신심 보도는 1928년 8월 1일자(제17호)로 추정된다. 당시 기사는 “세상에는 천주교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공경하기보다 성모 마리아를 존경한다고 단언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성모를 공경하는 이유는 첫째는 하느님의 어머님, 둘째는 영원한 동정, 셋째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이시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1920년대부터 올바른 성모 신심에 관한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해 온 가톨릭신문은 한국교회 성모 신심이 박해 시기인 19세기부터 형성돼 있었음을 밝힌다. 1996년 5월 5일자(제2001호)와 2004년 8월 15일자(제2411호) 등에서는 박해 당시 순교자들이 묵주 기도에 의지했으며, 압수된 물품 중에는 묵주, 성모 상본 등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성모 신심 단체의 활동도 여러 차례 소개했다. 1953년 발행된 지면들에서는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운동을 안내하고, 도입 소식을 알렸다. 같은 해 5월 15일자(제125호)는 “성모님의 ‘죄인들의 회개와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에 응답하는 운동이 곧 푸른 군대”라며 “회원은 매일 묵주 기도를 바치고 희생하며, 죄를 멀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1974년 5월 19일 파주 자유의 다리에서 개최된 ‘제1회 통일 기원 기도회’ 소식도 지면에 실었다. 1962년 12월 16일자(제355호)에서는 레지오 마리애 창설 10주년을 기념해 1953년 7월 28일 광주대교구 목포 산정동본당에서 첫 쁘레시디움이 조직된 사실과 이는 기도와 활동으로써 그리스도 왕국을 건설하는 운동임을 설명하고 있다. 다채로운 성모 성월 행사도 보도했다. 1949년 6월 1일자(제76호)에는 대구대교구 계산동 주교좌본당 학생들이 성모상 행렬에 참여한 소식이 담겨있다. 기사는 “성모 성월을 기념해 성모님께 꽃다발을 봉헌하고, 성가 제창과 공동 기도를 드린 후 행렬에 들어갔다”며 “이날은 북한의 종교 박해 속에서 고통받는 주교와 성직자들, 그리고 교우들을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뜻깊은 행사”였다고 전했다. 또한 2010년 5월 23일자(제2698호)에서는 부산교구 양산 물금본당이 5월 한 달간 ‘성모 성월 축제’를 지내며 ‘파티마의 성모님 가정 순례’, ‘성모님과 함께하는 어린이날·어버이날’ 등의 활동으로 성가정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명시했다. 올바른 성모 신심을 촉구하는 역할도 해 왔다. ‘파티마 제3의 비밀’ 공개 전 유언비어와 나주 윤 율리아 관련 문제 등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를 요청했다. 1996년 5월 5일 자(제2001호) 사설에서는 “성모 신심이 그 열성만큼 삶 속에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며 “‘마리아를 닮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라는 인식을 새롭게 하면서 성모 신심을 생활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발행일 2026-05-10 제3490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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