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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 2026 해외 선교 사업 지원금 승인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이사장 정용진 요셉 신부)는 3월 31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제24차 정기 이사회를 열고, 2026년도 해외 선교 사업 지원금을 심의·승인했다. 이번 이사회에서 한국지부는 상시 지원 6건, 상반기 지원 7건 등 총 13건의 해외 선교 사업 지원 신청을 검토했다. 상반기 지원 승인 사업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성 빈센트 어린이집 우물 설치(보혈 선교 수녀회) ▲파푸아뉴기니 텐테 본당 교육관·게스트하우스 특별 사업(한국 외방 선교회) ▲모잠비크 마주네 본당 성전 증축(한국 외방 선교회) ▲필리핀 극빈 가정 교육 사업(성 골롬반 외방 선교 수녀회) ▲페루 ‘가르멜 산의 성모 공소’ 재건축(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잠비아 루위미션 간호대학 울타리 설치(프란치스코 전교 봉사 수녀회) ▲케냐 마쿠유 돈 보스코 진료소 의료장비 구입(살레시오 수녀회) 등 7개 사업으로, 지원금 총액은 1억8002만8770원이다. 아울러 상시 지원으로는 ▲한국 외방 선교회 제15기 선교 아카데미 ▲제28차 라틴아메리카 한국 가톨릭 선교사회 모임 ▲제21차 파종회 ▲제16차 해외 선교의 날 ▲제12차 해외 선교사 귀국 프로그램 ▲제14회 아프리카 한인 선교사 모임 등 6개 사업에 5350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한 이사회는 주교회의로부터 위임받아 관리 중인 ‘통일을 대비한 북한 선교지원금’ 이자 수익으로 8개 교구 국내 평신도 선교사 42명에게 4439만4000원을 지원하는 안건도 승인했다. 이사회에서는 최근 환율 급등과 세계 경제 상황 악화로 각국의 기부 관련 세제 혜택이 축소되는 추세여서 교황청 재정에도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는 진단도 나왔다. 정용진 신부는 “이 같은 대내외 위기 상황 속에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소임을 다해 줄 것”을 당부했다.

발행일 2026-04-12 제3486호 6면

조카에게 보내는 영성 편지 「예수, 내 인생의 의미」

영성 영역의 고전으로 불리는 헨리 나우웬의 「예수, 내 인생의 의미」가 새 판형으로 출간됐다. 분도출판사 소책으로 펴낸 기존 판을 새로이 다듬어, 변화된 맞춤법과 표기법에 맞게 본문을 정리했다. 나우웬이 인생과 신앙을 고민하는 스무 살 조카 마르크에게 보낸 편지 일곱 통을 엮은 이 책은 형식만큼이나 내용도 깊고 따뜻하다. 젊은 조카에게 보내는 다정한 편지라는 틀 안에 저자 자신의 영적 탐험기와 신앙 체험기가 오롯이 담겼다. 편지마다 나우웬은, 우리를 해방하시고 우리와 함께 고통받으시며 가장 낮은 자리를 택하신 겸손한 예수님을 소개한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이 자기 인생의 의미라고 고백한다. 나우웬은 남미의 가난한 이들에게서 기쁨과 감사를 다시 배웠고, 그뤼네발트가 그린 이젠하임 제단화에서 인류와 함께 고통당하신 주님을 보았다. 또한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 ‘내려오는 길’을 택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체감했다. 이처럼 그의 체험은 추상적 신학 논의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것들이다. 그 체험들이 고스란히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의 바탕이 되었다. 책은 영성 생활을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분을 더 알아 가고 그분과 연대하여 사는 것’으로 정의한다. 나우웬은 영성 생활의 정의와 방식이 다양하여 타 종교인은 물론 무종교인조차 영성을 말하는 시대에, 가톨릭 전통과 맺어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영성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제시한다. ‘예수님은 오늘날까지도 그 어떤 역사적 인물보다 훨씬 중요하며, 그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발생한 사건들 가운데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원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 예수님은 우리의 상식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신다. 나우웬은 루카복음의 엠마오 제자들 이야기와 마르트 로뱅의 삶을 통해 ‘예수님이 오늘도 우리 곁에 자신을 드러내신다’고 말한다. 특히 성체성사를 영성 생활의 중심으로 강조하며, 그 안에서 우리가 속박과 강압에서 해방된다고 역설한다. 마지막 편지에서 나우웬은 조카에게 세 가지 생활 양식을 당부한다. 미사와 전례를 통해 교회의 말씀을 듣는 것, 성경과 영적 독서를 이어 가는 것 그리고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다. 예수님 없이는 교회가 존재할 수 없고 교회 없이는 우리가 예수님과 관계를 맺을 수가 없다”는 그의 말은 개인적 영성과 공동체적 신앙생활이 분리될 수 없음을 일깨운다. 그가 제시하는 이 ‘말씀 듣기의 삶’은 독자를 더 깊은 영성의 길로 이끈다.

발행일 2026-04-12 제3486호 15면

[하느님의 자비 주일 특집] 왜 ‘자비’는 부활 다음에 오나

주님 부활 대축일 다음 주일인 부활 제2주일을 교회는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낸다. 이 명칭은 2000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수녀를 시성하면서 공식 선포했고, 같은 해 교황청 경신성사부 교령을 통해 전례력과 미사 경본 안에 명문화됐다. 그러나 이 주일이 하느님의 자비 주일이 된 데는 단순히 전례력에 기념일 하나가 더해진 것이 아니라, 파우스티나의 신심과 부활 시기의 전례 그리고 이날 복음에 대한 교회의 이해가 서로 맞물려 있다. 하느님의 자비 주일의 기원은 20세기 초 폴란드 파우스티나 수녀의 영적 체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일기」에는 예수님께서 “부활 후 첫째 주일이 자비의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다는 기록이 있다.(299항) 이 요청은 49항과 570항 등에서도 반복된다. 그리고 699항에는 이 축일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예수님은 이 자비의 축일을 “모든 영혼, 특히 가련한 죄인들을 위한 피난처와 피신처”라고 부르시며, 그날 고해와 영성체에 오는 이들에게 특별한 은총을 약속하신다. 부활 제2주일이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자리 잡게 된 직접적인 영적·신심적 근거가 바로 이 기록들이다. 폴란드 크라쿠프대교구에서는 1985년 이 축일을 처음으로 전례력에 공식적으로 포함했고, 이후 폴란드 여러 교구로 확산됐다. 크라쿠프대교구장 시절부터 파우스티나 수녀의 시복·시성 절차에 깊이 관여했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서임 뒤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Dives in Misericordia)」 등을 통해 하느님 자비를 교회의 핵심 주제로 제시해 왔다. 전례적인 면을 볼 때 교회는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부활 제2주일까지 여덟 날을 하나의 큰 축일처럼 지내는 부활 팔일 축제로 거행한다. 그 마지막 날인 부활 제2주일은 축제의 절정을 이루며 주님 부활의 의미와 신비를 고양한다. 이날 미사에서는 전례력 가·나·다해 공통으로 요한복음 20장 19~31절이 봉독되는데, 여기에는 두 장면이 핵심으로 담겨 있다.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닫힌 문안에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또 부활 소식을 믿지 못했던 토마스를 위해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상처 난 손과 옆구리를 직접 보여 주시며 의심 속의 제자를 믿음으로 이끄신다. 하느님의 자비 주일 전대사 교령 등은 이 복음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교회에 죄의 용서 사명을 맡기신 장면을 특별히 상기시킨다. 부활 사건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동시에, 상처 난 몸으로 다가오시는 주님 안에서 죄의 용서와 관계 회복이 열리는 사건으로 교회 안에서 묵상 돼 왔다. 부활 팔일 축제의 마지막 날은 바로 그 자비가 교회의 사명으로 선포되는 날인 셈이다. 그래서 경신성사부 교령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부활 제2주일을 이러한 은총의 선물을 특별한 신심으로 기억하는 날로 정하고, 이 주일에 하느님의 자비 주일이라는 이름을 주었다”고 밝힌다.

발행일 2026-04-12 제3486호 10면

아픔과 무관심의 자리 찾아 부활 기쁨·희망 나누다

한국교회는 성주간과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거룩한 전례를 거행하며 죽음과 악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한 마음으로 경축했다. 동시에 교회는 부활의 기쁨이 성당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소외되고 상처 입은 이웃들에게도 전해지도록 거리와 삶의 현장으로 나아갔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권력자나 강한 이들이 아니라 눈물 흘리던 이들과 약한 이들에게 먼저 나타나셨듯,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곁에서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와 노동사목위원회 등 5개 단체는 4월 5일 서울역에서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택 촉구를 위한 주님부활대축일 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미사에는 빈민사목위원장 오주열(안드레아)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 박상훈(알렉산데르) 신부를 비롯해 동자동 사랑방 주민과 사제·수도자·활동가 등 100여 명이 참례했다. 이들은 공공주택 사업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주민들을 위로하며, 부활의 기쁨이 동자동 쪽방촌에도 깃들기를 기도했다. 박상훈 신부는 강론에서 “부활 신앙은 곧 다른 사람을 돌보라는 초대”라며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삶의 새로움이 허망한 것으로 남지 않게 하려면, 다른 형제자매들이 머물 ‘지붕’을 염려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려는 우리의 태도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고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자동 쪽방촌은 2021년 국토교통부에 의해 공공주택 사업지구로 선정됐으나, 주택 소유주들이 민간 재개발을 요구하며 갈등이 빚어져 5년째 재개발이 멈춰있는 상황이다. 사실상 사업이 중단되면서 5년 새 150명이 넘는 주민이 비좁은 단칸방에서 열악한 환경과 씨름하다 세상을 떠났다. 동자동 사랑방 대표 차재설 씨는 “씻는 것마저 불편한 공간에서 재개발이라는 ‘봄’을 기다리며 살던 한 할아버지가 ‘나도 살아생전 평온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라고 한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 서울대교구 총대리 구요비(욥) 주교는 4월 5일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에서 운영하는 장애영유아 거주시설 ‘디딤자리’에서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고, 시설에 선물을 전달했다. 구 주교는 이날 “디딤자리 어린이들의 영혼에는 사랑을 향한 의지가 담겨 있다”며 “디딤자리가 아이들이 사랑 안에서 애벌레에서 찬란한 나비로 자라나 희망을 전할 수 있도록 돕는 하느님의 집이 되길 기원한다”고 전했다. 이어 “교회가 지닌 교육·의료 시설 등을 바탕으로 장애 아동의 전인적 구원을 돕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2005년 개원한 디딤자리는 장애로 인해 가정 내 보호가 어렵거나 입양이 보류된 만 0~6세의 장애 영유아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가정공동체 형식의 소규모 거주시설이다. 현재 디딤자리는 전원해야 하는 아이들이 자립생활을 경험하고 훈련할 수 있는 ‘체험홈’ 마련이 과제로 남아 있다. 만 12세까지의 아동도 수용할 수 있지만, 공간이 부족하고 건물 증축도 어려워 외부 공간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디딤자리는 이를 위한 도움의 손길과 함께, 입소가 필요한 장애 영유아를 기다리고 있다. ※ 후원계좌 국민 487101-01-246065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디딤자리 ※ 문의 02-987-6009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디딤자리 ◎ 수원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는 4월 5일 수원시 이목동에 자리한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바다의 별’을 찾아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봉헌했다.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가 2003년 문을 연 바다의 별에는 현재 공동생활가정 몬띠의 집, 마르따의 집, 바르나바의 집 등에서 50여 명의 장애인이 생활하고 있다. 이용훈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장애를 지닌 분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존중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수도회는 물론이고 이용자 가족들과 지역사회가 함께 관심을 갖고 시작된 이곳은 하느님의 사랑이 가장 아름답고 눈부시게 빛나는 공동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바다의 별을 이용하는 분들과 봉사자, 직원 모두는 주님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났고 이미 충분히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며 “부활하신 예수님의 평화와 기쁨이 여러분 모두의 삶 안에 따뜻하게 머물길 빈다”고 전했다. ◎ 제주교구는 주님 수난 성금요일인 4월 3일 제주시 한림읍 성 이시돌 새미 은총의 동산 야외 십자가의 길에서 ‘4·3과 함께 걷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봉헌했다. 교구는 올해 성금요일이 ‘제78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과 겹침에 따라 “나를 위해 울지 마라”(루카 23,28)를 이번 행사의 주제 성구로 정하고, 4·3이 단지 아픔과 슬픔에 머무는 기억이 아니라 희망과 생명으로 나아가야 할 여정임을 묵상하며 십자가의 길을 봉헌했다. 14처 기도를 마친 후 신자들은 새미소 대형 십자가 아래 모여 물과 피를 상징하는 대형 천을 들고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봉헌했다. 교구장 문창우(비오) 주교는 성체 강복을 하며 십자가의 길을 마무리했다. 앞서 교구는 4월 2일 서귀포시 강정천에서 교구장 문창우(비오) 주교 주례로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를 봉헌했다. 문 주교는 강론에서 “갈등과 힘의 논리로 갈라진 공동체를 치유하는 길은 예수님처럼 서로의 발을 씻어 주고 보듬는 사랑, 빵을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생명을 선택하고 평화를 이루는 삶이 교회가 걸어가야 할 생명과 평화의 순례라고 전했다. 미사 중에는 발씻김 예식도 열렸다. 마산교구장 이성효(리노) 주교도 4월 2일 경남 함안의 지적장애인 생활시설 ‘로사의 집’을 찾아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를 봉헌하고, 시설 생활자들의 발을 씻어 주며 주님 만찬의 의미를 되새겼다.

발행일 2026-04-12 제3486호 11면

“예수는 OK 교회는 NO”라는 시대에 던지는 질문 「하느님을 잊은 그대에게」

“생의 마지막에서 하느님께서 삶을 평가하실 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일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는가?” 현대 유럽을 대표하는 신학자인 저자 파울 M. 쭐레너 신부가 이 책에서 독자에게 던지는 핵심 물음이다. 하느님을 믿는 이가 줄고 교회를 향한 시선이 차가워진 시대, 저자는 세속화된 유럽 사회를 배경으로 하느님 망각, 교회 위기, 신앙의 공적 책임을 다루면서 답 대신 질문을 택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길잡이 삼아 교회 문헌과 복음을 끌어와 독자를 신앙과 교회를 새롭게 성찰하는 자리로 초대한다. 한편, 영적 에너지와 창조적 역동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는 교회 현실을 직시하면서 교회를 “하느님의 구원 행위에 응답하며 하나의 봉사를 수행하는 공동체”로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머리말과 3개 장으로 구성된 책에서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신학적 통찰을 토대로 오늘의 교회와 신앙을 재점검한다. 1장 ‘열정의 하느님’은 현대 사회에서 ‘종교적’이라는 말이 부정적 뉘앙스를 띠는 현상과, 자신을 ‘종교적이지는 않지만 영적’이라고 규정하는 이들이 늘어난 상황을 다룬다. 무신론자, 실용주의자, 신앙인을 막론하고 각자가 삶 안에서 하느님을 얼마나 가까이 두고 있는지가 핵심 질문으로 제시된다. ‘사랑하는 연대야말로 인간다움으로 나아가는 왕도’라는 저자의 언급처럼, 이 장은 신앙을 추상적 교리가 아닌 삶의 구체적 실천으로 되묻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 기도에는 열심이지만 세상과 피조물 보전을 위한 실천에는 무관심한 신앙 태도를 비판한 대목도 함께 인용한다. 2장 ‘무언가주의 세상’은 체코 신학자 토마시 할리크의 개념 ‘무언가주의자’를 소개한다. 하느님을 세상의 창조주이지만 역사에는 개입하지 않는 익명적 ‘무언가’로 이해하며, 하느님 없는 세계가 더 인간적이고 도덕적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흐름이다. 저자는 근대 이후 유럽 역사를 자유·정의·공존·평화를 위한 투쟁의 역사로 규정하고, 그 투쟁의 주체로 여전히 하느님과 교회를 지목한다. 신자들이 평화를 위한 투쟁에 나서지 않을 경우, 교회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되묻는 대목은 이 장의 핵심을 이룬다. 3장 ‘앗숨(Adsum) 교회’는 교회 제도와 개혁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저자는 교회를 예수 사건을 기억하려는 모임에서 출발해 제도화된 공동체로 설명하면서, ‘예수는 OK, 교회는 NO’라는 문구로 표현된 제도 교회에 대한 불신을 마주한다. 울리히 벡과 위르겐 하버마스를 인용해 제도의 본래 목적이 자유를 위한 장을 마련하는 것임을 상기시키고, 탈성직주의와 여성 성직자 임명, 평신도 역할 확대 등 교회 내 권력 구조를 둘러싼 논의도 이어간다. 또 오늘의 교회가 겪는 현상을 몰락이 아닌 전환으로 규정한다. 콘스탄티누스 시대 유산으로서의 교회 형태가 저물고 새로운 형태의 교회가 태동하는 과도기라는 진단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글들은 단순한 단상이 아니라, 신학을 포함한 여러 학문 분야 간의 경계에서 생겨난 대화와 경청, 통찰의 산물”이라며, “이 미니어처들은 삶과 현실, 교회와 세상, 하느님과 인간이라는 복합적인 주제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추며 독자 안에 새로운 질문과 해석의 지평을 열어줄 것”이라고 밝혔다.

발행일 2026-04-12 제3486호 15면

“은밀한 교만이 부끄러워” 청년 이해인 수녀의 고백

1976년, 이해인 수녀(클라우디아·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녀회)의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 출간은 ‘시집은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다’는 당대의 통념을 깼다. 수도자의 삶 속에서 길어 올린 기도와 성찰을 맑고 소박한 언어로 담아낸 이 시집은 출판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반세기 동안 수많은 독자의 책장에 꽂혀 위로와 희망을 전해 왔다. 이 수녀가 산문집 「해인의 바다」, 그리고 「민들레의 영토」 50주년 기념판 두 권의 책으로 그 세월을 되짚었다. 「해인의 바다」는 첫 시집이 세상에 나오던 1976년 무렵, 종신 서원 전후에 쓰인 일기와 피정 노트를 중심으로 엮은 산문집이다. 수도 공동체 안에서의 크고 작은 갈등, 피정 중에 정리한 묵상, 부산 광안리 바다와 골목을 오가며 남긴 메모들이 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이 수녀는 책머리에서 “예비 수녀 시절, 요한 23세 성인 교황의 「영혼의 일기」를 감명 깊게 읽으며 언젠가 제 수도원 일기의 일부가 공개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막연히 꿈꿔 왔다”고 밝혔다. 반세기를 간직해 온 그 바람이 이번 출간으로 비로소 결실을 본 셈이다. 형식 면에서 책은 1976년의 기록을 봄·여름·가을·겨울 네 부분으로 나누고, 5부에 2024~2025년의 짧은 글들을 덧붙였다. 20대의 기도문과 현재의 문장이 한 책 안에 나란히 놓이면서, 같은 작가의 어휘와 시선이 반세기를 사이에 두고 어떻게 달라졌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부록에는 종신 서원을 앞두고 떠난 8일간의 피정에서 남긴 묵상 글이 실려 있다. 책 속에서 이 수녀는 스스로를 ‘벗기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느끼며, 느린 성격과 반복되는 실수, 공동체 안에서의 오해를 솔직하게 기록한다. “조그만 민들레가 되고 싶다 해 놓고도 장미의 화려함을 부러워하고, 남에게 필요 이상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은밀한 교만이 늘 부끄럽다”는 고백도 숨기지 않는다. 독자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위로의 시인 이해인’이 아니라, 여느 신앙인과 다르지 않은 내적 동요를 겪는 한 젊은 수도자를 만나게 된다. 수도 생활을 하며 시를 쓰던 첫 마음, 시의 언어 뒤편에 자리한 내면의 여정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제목의 배경이 된 ‘바다’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 ‘민들레’와 함께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60여 년의 수도 생활 내내 곁을 지켜온 부산 광안리 바다는 시와 기도를 떠올리게 해 준 곳으로, 이 수녀에게 기도의 거울이자 하느님의 사랑이 들어오는 통로다. 표지도 이를 바탕으로 두 가지 디자인을 담았다. 반대로 접었을 때 이해인 수녀와 광안리 바다의 이미지가 함께 펼쳐진다. 이해인 수녀는 「민들레의 영토」 출간 5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수도원에 처음 들어와 살아 보려 했던 한 수도자 지망생의 내면 고백이며,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을 향한 그리움과 초심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해인의 바다」가 그 초심이 어떤 흔들림 속에서 싹텄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이라면, 「민들레의 영토」 50주년 기념판은 그 씨앗이 반세기 동안 맺은 열매다. 두 책을 나란히 읽을 때, 비로소 한 수도자이자 시인의 여정이 온전히 드러난다. 기념판에는 이해인 수녀의 50주년 기념 인터뷰와 오랜 세월 간직해 온 애장품, 이 수녀가 특히 마음에 남는 시로 꼽은 ‘민들레의 영토’, ‘장미의 기도’ 두 편이 안선재 수사(Anthony Graham Teague·떼제공동체)의 영문 번역으로 실렸다.

발행일 2026-04-05 제3485호 19면

[이달의 잡지] 2026년 4월

■ 경향잡지 ‘경향 돋보기’에서는 50일의 부활 시기를 맞아 주님 부활의 전례적·성서적 의미를 살펴본다. 아울러 매일의 일상에서 부활을 증언하는 삶은 어떤 것인지 그에 대한 묵상을 나눴다. ‘바티칸 이모저모’는 ‘성좌의 외교, 또 다른 모습의 선교사’ 제목으로, 힘의 논리와 세속 권력, 첨단 무기의 유혹을 물리치고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증진하는 교황청의 외교 활동에 대해 살폈다. 이번 호 ‘교황님의 기도 지향’ 코너에서는 성소의 위기를 겪고 있는 사제들이 다시 일어나 ‘진짜’ 사제로 거듭나도록 돕는 묵상과 성찰문을 담았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900원> ■ 빛 ‘전례력 돋보기’에서는 부활 시기와 관련 있는 몇 가지 뜻깊은 전례 전통과 관습을 소개한다. ‘책 읽기, 삶 읽기’에서 이번 호에 소개하는 책은 구사카베 요의 「사람이 늙는다는 것」이다. ‘가 보고 싶었습니다’에서는 제주교구장 문창우(비오) 주교가 살아남은 이들은 살아가야 했기에 입을 닫았고 희생된 이들은 말할 수 없었기에 잊힌 비극 4·3에 대해 말한다. <대구대교구/2500원> ■ 생활성서 이번 호에서는 ‘쓸모의 쓸모’를 특집 주제로 했다. 장애로 한계 지어진 삶을 뚫고 존재의 울림을 들려주는 임재원 작가의 이야기, 나이 많은 여자들을 어머니 대하듯 하라는 성경 가르침을 실천하려 노력하는 일본의 한국인 요양보호사 카이의 경험담 등이 소개됐다. 전쟁 폭력으로 무고한 이들이 죽어가는 현실에서, 종교 본연의 쓸모는 무엇일지 정경일 박사에게서 들었다. ‘김민 신부의 낮은 목소리’는 ‘전쟁의 시대 속 교회’에 대해 나눴다. <생활성서/4800원> ■ 월간 꿈CUM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 강석진 신부(요셉·최여겸 마티아 수도원장)가 「뮈텔 주교 일기」를 바탕으로 과거 한국교회의 시복시성을 위한 숨은 노력을 소개했다. 노성기 신부(루포·광주대교구 나주본당 주임)가 1700년 전 교부 대 바실리우스의 설교 ‘단식과 절제’를 번역해 실었다. 박현민 신부(베드로·수원교구 중견사제연수원)가 삶의 시련과 고통 그리고 극복과 관련한 내용을 심리학적 시각에서 다뤘다. <월간 꿈CUM/5000원> ■ 참 소중한 당신 ‘함께 걸어갑니다’를 특집으로, 각자의 신앙 여정은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걷는 길이라는 사실을 돌아봤다. ‘인터뷰-깨소금 신앙’에서는 북한 이탈 청소년들과 20년째 함께하는 ‘총각 엄마’ 김태훈 제랄드 씨를 만나 아이들과 기쁘게 동행하는 일상을 들었다. ‘마음의 정원에 불어오는 바람’은 분노에 더디신 하느님을 닮아 가는 호흡기도에 관해 설명했다. <미래사목연구소/4000원>

발행일 2026-04-05 제3485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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