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이주 노동자’ 삶 비추다…「딸기 이론」

제29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산문 부문 수상자인 김숨(모닌느) 소설가가 새 장편소설 「딸기 이론」을 펴냈다. 전쟁으로 터전을 잃은 디아스포라 난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각장애인 등 사회의 그늘에 놓인 이들의 목소리를 문학으로 품어 온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여성 이주 노동자의 삶을 조명한다. 소설은 한 통의 긴 편지 형식으로 전개된다. 편지를 쓰는 이는 한국의 한 비닐하우스 딸기밭에서 일하는 미얀마 출신 여성 노동자 ‘샤빼’, 편지를 받는 이는 그와 함께 일하는 캄보디아 출신 여성 이주 노동자 ‘보파’다. 보파는 체류 기간이 지나 미등록 신분이 된 노동자로, 딸기밭 안에서도 가장 낮은 자리에 놓인 인물이다. 작가는 샤빼의 편지를 통해 딸기로 시작해 딸기로 끝나는 이주 노동자의 시간을 따라간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겠다는 꿈을 안고 한국에 왔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빚을 내면서 익힌 ‘아름답다’ 같은 한국어는 딸기 앞에서 쓸 일이 없다. 어릴 적 선생님이 말한 “행복은 영혼의 훌륭한 행위를 통해 얻어질 수 있다”는 문장을 떠올리며 딸기 따기가 훌륭한 행위가 되기를 바라지만, 하루의 끝에 이들이 돌아가는 곳은 폐가를 개조한 숙소다. 그렇게 같은 일상은 5년, 10년 그 이상 이어진다. 샤빼와 보파의 삶에는 각자의 고국이 겪어 온 폭력의 역사도 겹쳐진다. 샤빼의 고향 미얀마에는 군부 쿠데타와 내전의 상처가 남아 있고, 보파의 고향 캄보디아에는 인구 4분의 1이 희생된 ‘킬링필드’의 기억이 드리워져 있다. 작가는 두 인물을 통해 가난한 나라의 젊은 여성들이 어떻게 한국 농촌의 노동력으로 불려 오고, 또 어떤 이름으로 지워지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책은 이들을 불쌍한 존재로만 그리지 않는다. 샤빼와 보파는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노동자이면서도, 욕망과 질투, 분노와 희망을 지닌 한 사람이다. 소설의 첫 문장 “나는 한 사람으로 왔어”는 이주 노동자가 단순히 노동력이나 숫자가 아니라, 고유한 역사와 감정을 지닌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한다. 현실과 구분되지 않는 소설 속 세계는 묻는다. 인간이 인간을 파괴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살아갈 것인가. “보파, 지구와 비슷한 외계 행성이 발견됐대. 지구와 146광년 떨어진 그 행성은 딱 한 번 관측됐는데 쌍둥이라고 해도 될 만큼 지구와 닮았다고 해. 지구 어딘가에서는 인간이 인간을 파괴하고 있어. 그리고 지구 어딘가에서는 인간이 우주를 들여다보며 인간과 비슷한 존재를 찾고 있어. 친구가 되기 위해서.”(212쪽)

발행일 2026-07-19 제3500호 15면

건축가 사제가 읽어 주는 「르네상스 성당」

저자 강한수 신부(가롤로·의정부교구 건축신학연구소장)가 2025년 본지에 연재했던 「르네상스 성당 스케치」를 재구성한 책이다. 또한 저자의 전작 「로마네스크 성당」과 「고딕 성당」에 이은 중세 유럽의 성당 건축 완결판이기도 하다. 시대는 자신의 믿음을 건물로 구현한다. 르네상스 시대, 인간은 처음으로 수학적 비례와 고전의 언어로 신의 공간을 설계하려 했다. 하늘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성으로 하늘의 질서를 해독하고 재현하려 한 것이다. 그 야심과 아름다움, 그리고 좌절과 타협의 기록이 「르네상스 성당」에 담겼다. 저자는 14세기 피렌체부터 16세기 베네치아와 알프스 너머까지 이어지는 약 300년의 르네상스 여정을 건축가의 생애와 그들이 남긴 성당을 축으로 따라간다. 책은 단테와 조토가 피렌체에서 다가올 르네상스 시대의 씨앗을 뿌리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의 피렌체 대성당 돔, 브라만테와 라파엘로, 미켈란젤로가 차례로 손을 댄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과 팔라디오가 베네치아 석호 위에 세운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까지 이어진다. 저자는 르네상스 건축의 핵심 장면들을 건축물의 설계 원리, 건축가의 인간적 면모와 함께 엮어 서술한다. 마지막으로 알프스를 넘어 프랑스, 영국, 독일이 르네상스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다룬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중동의 건설 현장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는 저자는 2017년 로마 사피엔자 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고대·중세 건축사 연수를 받았다. 이러한 이력 덕분에 책은 거장들의 분투기를 담으면서도 건축 기술과 신학적 의미가 한 문장 안에 공존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둥의 비례와 돔의 구조를 설명하면서도 그 공간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그 안에 들어선 사람이 무엇을 느끼도록 설계되었는지 놓치지 않는다. 유럽 성당 여행을 앞둔 독자에게는 공간을 읽는 눈을 길러주는 안내서가 되고, 서양 미술사와 문화사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는 르네상스라는 시대를 가장 구체적인 형태로 만나는 입문서가 된다. 교회 전례와 성당 내 공간의 관계를 아는 독자라면 그 서술에서 한 겹 더 깊은 맥락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강 신부는 이에 대해 모르는 독자도 독서가 막히지 않도록 그 경계를 세심하게 조율한다.

발행일 2026-07-19 제3500호 15면

[인터뷰] 순교에서 증거자의 시대로…「양들이 있어 나는 걸었네」 펴낸 류한영 신부

“저는 조선에 들어온 후 한 번도 휴식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7월 한 달 동안만 같은 집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고 언제나 시골 방방곡곡을 돌아다녔습니다. 중국에서 서울까지 여행한 것을 빼고도 1월부터 지금까지 거의 5천 리를 걸어 다녔습니다. 저는 이처럼 긴 여행과 이 모든 고된 일을 하면서도 하느님의 은혜로 건강은 늘 좋았습니다.”(최양업 신부가 도앙골에서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1850년 10월 1일자 편지) 한국교회 두 번째 사제이자 12년 동안 조선 각지를 누비며 신앙을 전한 ‘땀의 순교자’.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1821~1861) 신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그의 생애와 업적은 명성에 비해 신자들에게 상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류한영 신부(베드로·청주교구 성사전담)가 펴낸 「양들이 있어 나는 걸었네」는 최 신부의 생애와 영성을 신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낸 대중서다. 그는 “사람들이 신부님을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름 석 자 정도만 아는 경우가 많다”며 “그동안 연구한 내용을 알기 쉽게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출간 계기를 설명했다. 책은 최양업 신부가 스승 선교사들에게 보낸 서한과 그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그의 유학과 사제서품, 거듭된 조선 입국 시도, 귀국 후 교우촌 사목과 선종까지의 여정을 따라간다. 가계도와 연표, 유학로와 조선 입국로, 교우촌 분포도 등을 수록해 그의 생애를 한눈에 살필 수 있도록 했다. 교우촌을 찾아다닌 사제의 모습뿐 아니라 통번역가와 교육자로서의 면모도 비춘다. 부제품을 받고 홍콩에 머물던 최 신부는 페레올 주교가 프랑스어로 작성한 「기해·병오박해 순교자들의 행적」 가운데 기해박해 순교자 73위의 행적을 라틴어로 번역했다. 이 자료는 교황청에 전해져 훗날 한국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에 밑거름이 됐다. 한글 교리서와 「천주가사」를 보급하고, 신분과 성별을 넘어 모든 이를 하느님의 자녀로 대한 모습도 담겼다. 류 신부는 1998년 최양업 신부의 서한을 신학적으로 연구한 것을 시작으로 26년 넘게 그의 삶을 살펴왔다. 1999년 청주교구 배티 순교 성지에 부임해 양업교회사연구소 관장 등을 지냈고, 2001년부터 2019년까지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총무로 시복시성 추진 실무를 맡았다. 그는 배티 순교 성지에 부임한 뒤 어느 날 성지 경당에서 “제가 최양업 신부님의 유업을 잘 잇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했지만, 당시에는 자신이 이어야 할 유업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류 신부는 “신부님은 홍콩에서 순교자들의 행적을 번역해 교황청에 전했다”며 “주교회의에서 시복시성 업무를 시작한 뒤 신부님의 뒤를 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신부님의 보이지 않는 이끄심이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최양업 신부의 시복 시성 추진 과정과 전망을 담았다. 류 신부는 실무자로서 경험한 성덕 심사와 2016년 가경자 선포 과정을 설명하고, 올해 3월 최양업 신부의 전구로 보고된 치유 사례가 교황청 시성부 의학자문위원회 심사를 통과한 의미도 전한다. 류 신부는 최양업 신부의 시복이 한국교회에도 새로운 의미를 지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교회의 기초를 순교자들이 쌓았다면, 이제 그다음에는 평생 복음을 실천한 이들의 성덕을 발견하는 ‘증거자의 시대’가 와야 합니다. 그 문을 열 첫 인물이 최양업 신부님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었던 신부님의 삶은 우리에게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발행일 2026-07-19 제3500호 15면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 자서전 북토크 열려

“나이를 의식하지 않아요. 할 수 있는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거죠.”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잔느·91) 작가가 자신의 삶과 예술을 녹인 책 「김윤신, 전기톱을 든 여인」(김윤신·권근영 지음/300쪽/2만2000원/안그라픽스)을 펴냈다. 김 작가는 6월 2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부대 행사로 마련된 북토크에서 독자들을 만났다. 이날 행사는 공동 저자인 권근영 중앙일보 미술 전문 기자가 사회를 맡았다. 권 기자는 함경남도 원산과 안변에서 보낸 유년기부터 한국전쟁과 피란, 프랑스 유학, 아르헨티나 이주와 현재 작업으로 이어지는 김 작가의 삶과 작업을 사진 자료와 함께 소개했다. 김 작가는 “자연이 다 친구였다”며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홀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던 어린 시절, 산과 들은 어린 김윤신에게 말을 건네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권 기자는 작가의 초기 소나무 조각을 두고 “어머니가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던 기억, 하늘로 뻗어 올라가는 기도 같은 형태가 겹쳐 보인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유학 시절 세례를 받고 ‘잔느’라는 이름을 얻은 김 작가에게 나무와 돌을 마주하는 일은 단순히 재료를 다루는 일을 넘어, 그 안에 깃든 생명의 결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그를 상징하는 조형 언어는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이다. 서로 다른 둘이 하나를 이루고, 다시 하나가 나뉘어 또 다른 하나를 이룬다는 뜻으로, 김 작가는 “나무와 돌, 작가의 정신이 하나가 돼 새로운 형태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는 작가의 조각 세계를 이루는 핵심으로, 자연과 인간, 재료와 정신이 서로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예술로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책 제목 속 ‘전기톱’에 얽힌 이야기도 이어졌다. 김 작가는 아르헨티나에서 큰 나무를 다루기 위해 처음 전기톱을 잡았다. 그는 “처음에는 두렵고 몸이 떨렸지만, 시간이 지나며 톱과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전기톱이 나무를 깎아내는 도구를 넘어, 나무 안에 숨은 결을 따라가는 통로가 된 셈이다. 김 작가는 끝으로 관객들에게 “다듬지 못한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다”면서 “그런데 그 마음에 집중하지 말고, 자신이 힘들 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라”고 전했다.

발행일 2026-07-12 제3499호 15면

[새 책] 「삶은 사유가 아니라 돌파다」

사람은 부와 명예를 얻으면 행복에 이를 수 있을까. 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삶의 의미를 묻는 이들에게 자신의 고뇌와 깨달음을 전한다. 이 책은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로 부와 명성을 얻은 톨스토이가 이후 마주한 질문, 곧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간 기록이다. 톨스토이의 「참회록」과 「인생론」 가운데 주요 대목을 엮었다. 「참회록」이 허무 앞에 선 한 인간의 고백이라면, 「인생론」은 그 고백이 생명과 사랑, 행복에 대한 사유로 확장된 글이다. 톨스토이가 극심한 허무 속에서 찾은 해답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 안에 있었다. 힘들게 일하면서도 감사함을 잃지 않고,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그는 삶을 지탱하는 힘을 발견한다. 땀 흘려 일하고, 지금 주어진 삶에 충실하며, 타인을 사랑하는 삶이야말로 허무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깨닫는다. 총 5부로 구성된 책은 생각에만 머무르지 말고 ‘지금’의 삶을 살아 낼 것을 강조한다. 아는 자보다 걷는 자가 진리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걸음의 끝에는 사랑이 있다. 톨스토이에게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나 도덕적 의무가 아니다. 죽음의 두려움과 삶의 허무를 넘어 인간을 참된 생명으로 이끄는 힘이다. “사랑은 생명 그 자체이다. 불합리적이고 고통스럽고 소멸해 가는 생명이 아니라, 행복하고 영원한 생명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이 사실을 안다. 사랑은 이성이 내린 결론도 아니며, 어떤 활동의 결과도 아니다. 사랑은 사방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기쁨으로 가득한 생명의 활동 그 자체다.”(134쪽)

발행일 2026-07-12 제3499호 15면

흔들리는 삶 속 여섯 사제의 ‘영성 처방전’…「사제들의 시대 공감」

마음이 흔들릴 때 사람들은 답을 찾는다. 왜 상처가 생겼는지, 미워하는 마음을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는지 묻는다. 이 질문들에 여섯 사제가 신앙적 응답을 건넨다. 가톨릭출판사의 웹진 ‘가톨릭북플러스’에 실린 글 중 독자들의 공감을 얻은 글을 선별해 엮은 책이다. 이들은 각자의 삶과 사목 현장에서 만난 질문을 바탕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딛고 다시 하느님께 향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한다. 첫 번째 키워드는 ‘상처’다. 명형진 신부(시몬·인천가톨릭대학교 복음화연구소 소장)는 자신을 ‘유리 멘털’의 소유자라고 고백한다. 과거 누군가의 말에 깊은 상처를 받은 그는 사제로서 너그럽지 못한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 명 신부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토마스 사도에게 상처 난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신 장면을 묵상하며, 상처가 새로운 관계의 출발점이 됐음을 풀어낸다. 그는 상처가 하느님과 나누는 진정한 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음을 밝히며, 상처를 잘 받는 마음이 약점이 아닌 하느님과의 대화 통로가 된다고 강조한다. 상처가 하느님과의 대화를 여는 자리라면, 그 대화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할 수 없는 한계 앞에서 더 깊어진다. 문재상 신부(안드레아·대전가톨릭대학교 영성관장)는 그 자리에서 필요한 태도로 ‘의탁’을 말한다. 독일 유학 시절 박사 과정에서 인생 최대의 시련을 만난 그는 “이 일이 당신의 교회에 필요하시다면 이 공부를 마치게 해 주시고, 그렇지 않다면 그저 이대로 흘러가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하며 온전한 의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 경험으로 자신의 욕심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문 신부는 한계 앞에서 필요한 것은 포기가 아니라 하느님께 맡기는 의탁임을 일깨운다. 방종우 신부(야고보·가톨릭대학교 교수)는 ‘미움’을 다룬다. 미워하는 마음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용서는 쉽지 않다. 방 신부는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마태 5,22)이라고 전한 예수님의 말씀을 전한다. 미워하는 마음을 품으면 우리 스스로 불행해지며, 설사 자신이 의인이라 할지라도 원수와 똑같이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방 신부는 미움을 암세포에 비유한다. 암세포는 인간의 신체가 죽으면 자신 역시 소멸하는 것을 모른 채 세력을 확장하다 끝을 맞는다. 그는 이처럼 미움은 결국 그 마음을 품은 사람 자신을 무너뜨린다고 설명하며, 누군가를 미워하기보다 먼저 자신을 사랑으로 보듬고 나아갈 것을 권한다. 사랑으로 마음을 돌보는 일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다. 심재현 신부(치릴로·살레시오회·서울시립청소년드림센터)는 이를 ‘부르심’의 자리로 바라본다. 흔히 ‘성소’를 사제나 수도자의 길로 떠올리기 쉽지만, 그는 성소가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부르심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이 각자의 자리에서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고 거룩하게 살아가야 함을 되새긴다. 은성제 신부(요셉·서울대교구 대치동본당 주임)는 ‘신앙의 성장’을 이야기한다. 성당과 멀어진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에게 그는 신앙교육에 앞서 자녀와 인격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한다. 본당에서의 직책이나 봉사가 자녀와의 인격적 관계를 형성해 주지는 않으며, 자녀는 가정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모두 보는 정확한 눈을 가진 존재임을 짚는다. 그러면서 부모가 해야 할 영역과 하느님께 맡겨야 할 영역을 식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신앙생활 안에서도 사람은 흔들리고 두려움을 마주한다. 때로 버거운 삶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재밌는 영상이나 뉴스 등으로 시선을 돌리기도 한다. 이한석 신부(요한 사도·가톨릭대학교 교수)는 절망에 빠져 죽기를 청했던 엘리야 이야기를 통해, 모든 소음이 지나간 뒤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음을 전한다. 그는 엘리야가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만났듯, 우리 삶의 흔들림도 아직 끝나지 않은 하느님의 이끄심 안에서 바라보도록 이끈다. 책의 말미에는 사제들이 직접 쓴 기도문이 수록됐다. 기도문은 책에서 만난 사유와 묵상을 실제 삶에서 기도로 이어 주는 길잡이가 된다. 서울대교구 총대리 구요비(욥) 주교는 추천사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흔들리는 순간에도 늘 함께 계신다”며 “이 책이 그 약속을 일상에서 다시 새기게 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하느님께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길을 비추어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발행일 2026-07-12 제3499호 15면

이용훈 주교 삶과 신앙 돌아보다 「느지지 소년의 사제 일기」

한 소년이 간직한 사제의 꿈은 작은 시골 마을 ‘느지지’에서 시작됐다. 어머니의 품과 같은 정겨운 마을에서 자란 소년은 삶의 굽이마다 함께하신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사제의 길에 들어섰다. 수원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가 자신의 삶과 신앙 여정을 되돌아보는 묵상집을 펴냈다. 이 책은 이 주교의 저서 「인생 그리고 행복」, 「지상에서 천국처럼」과 월간 「외침」에 연재한 ‘주교일기’ 내용을 선별해 보완하고 재구성한 것이다. 책은 크게 ‘임마누엘 하느님’, ‘하느님 백성 한가운데서’, ‘지상에서 천국처럼’ 등 3개 장으로 구성됐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회고는 소신학교와 대신학교 시절, 사제품 순간의 떨림,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와 총장으로서 미래의 사제들을 양성하던 시간으로 확장된다. 이 기록들은 아프리카 남수단에서의 사목 경험, 교구장으로서 신자들과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는 말씀을 실천해 온 삶으로 이어진다. 또한 책에는 교구장과 주교회의 의장이라는 직책이 가져온 중압감에 대한 고백도 담겨 있다. 그럼에도 이 주교는 2024년 9월 사도좌 정기 방문에서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한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느님 백성을 사랑하고 사제와 백성 한가운데 머무르라”는 말을 마음에 새긴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신 시간을 공동선을 위해 쓰겠다고 다짐한다. 이 다짐은 이 주교가 책을 통해 가장 강조하는 ‘기도’와 연결된다. 그는 수년 전 사제 연례 피정에서 3시간 동안 성체조배를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성체 앞에 앉아 오롯이 주님을 마주한 180분. 그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마주한다. 이 주교는 수많은 청원기도를 바치고 성경을 읽었음에도 고작 30분밖에 흐르지 않은 것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전한다. 그러나 반성 속에서 성체조배를 마친 뒤 그가 얻은 것은 평화였다. 마음 깊이 주님을 만난 묵상과 기도의 시간 덕분에 일상에서 완전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콜카타의 성녀 마더 데레사 수녀의 일화도 함께 전한다. 함께 환자와 빈민을 돌보던 수녀들이 기도 시간을 줄여 달라고 청하자, 데레사 수녀가 오히려 기도 시간을 1시간 더 늘렸다는 이야기다. 이를 통해 이 주교는 그리스도인이 기도의 힘으로 살아가고 봉사해야 함을 일깨운다. 이 주교의 경험과 데레사 수녀의 이야기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최우선 과제가 기도임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는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신앙인들에게 “일이 많다고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가 차지할 틈은 어디에도 없다”며 “기도 없이 어떤 선행을 하거나,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다”고 강조한다. “신앙인은 자주 습관적으로 주님 품 안에, 불타는 그분의 사랑 속에, 그 원천적인 사랑(amor fontalis) 속에, 사랑의 불덩어리이신 하느님께 푹 잠겼다 나와야 한다. … 이 세상에서 일상적인 활동과 움직임을 접는 날에 이런 천상의 행복을 맛보기 위해 신앙인은 오늘의 고단한 시간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삶의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목적이다. 결국 하느님 생명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고 죽는 것이다.”(165쪽)

발행일 2026-07-05 제3498호 15면

‘참된 비움’의 영성…「M. 에크하르트의 중세 고지 독일어 작품집」 국내 첫 완역

현대 사회의 소음에 지친 신앙인들에게 ’내면의 비움’을 선사할 영적 대작이 마침내 온전한 우리말로 번역됐다. 부산가톨릭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이부현(바오로) 명예교수가 30년 연구 성과를 집대성해 국내 최초로 완역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중세 고지(高地) 독일어 작품집」(전 6권)이 바로 그 결실이다. 이번에 출간된 완결판인 ‘작품집 Ⅳ, 1-2’를 끝으로, 에크하르트가 남긴 독일어 설교 117개 텍스트와 주요 영성 논고를 왜곡 없는 원음으로 만날 수 있게 됐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도미니코회 수사 신부이자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8)는 학술어인 라틴어 대신, 민중의 언어인 ‘중세 고지 독일어’로 설교했던 인물이다. 지식의 상아탑에만 머물지 않고 수도자들과 평신도들에게 직접 하느님을 만나는 생생한 언어를 건넸던 그는, 이 과정에서 독일 철학과 신학의 초석을 놓은 ‘삶의 스승’이기도 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에크하르트 사상의 핵심은 ‘신과의 신비적 합일’이다. 그는 인간의 유한한 이성이나 지식, 혹은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는 결코 하느님을 온전히 만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가 제시하는 영성의 길은 파격적이면서도 단순하다. 하느님 외의 모든 것을 손에서 내려놓는 ‘내맡김(Gelassenheit)’과 인간적인 욕망이나 종교적 고정관념마저 버리고 떠나는 ‘초연함(Abgeschiedenheit)’이다. 모든 소유와 자아를 철저히 비워낼 때, 비로소 가장 깊은 본연의 자리인 ‘영혼의 근저’(Grund der Seele)에서 살아계신 하느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에크하르트의 영성은 현대 존재 철학뿐만 아니라 동양의 선불교 사상과도 깊이 맞닿아 있어, 오늘날 현대 사상계에서도 동서양을 잇는 영적 가교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기존의 국내 소개서들이 영어판이나 현대 독일어판을 단편적으로 번역한 것과 달리, 이번 전집은 700년 전의 중세 고지 독일어 사본을 직접 번역하고 역주를 덧붙여 사상의 원형을 그대로 복원했다는 점에서 학술적·교회사적 가치가 크다. 역자 이부현 교수는 “유럽에서 이미 깊이 인정받고 있는 에크하르트 사상의 심오함을 국내 독자들에게 원전의 생생한 목소리로 전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며 “신앙의 깊은 본질을 고민하는 이들이 에크하르트의 영적 원음(原音)을 들으며 내면의 참된 평화를 찾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발행일 2026-07-05 제3498호 15면

[이달의 잡지] 2026년 7월

■ 경향잡지 ‘경향 돋보기’는 농민 주일 30주년을 맞아 그 발자취를 짚고, 토종 씨앗으로 농사를 짓는 백인선 수녀(엠마·성가소비녀회)의 체험과 통찰을 전한다. 안영배 신부(요한 사도·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담당)와 이승현 신부(베드로·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본부장)의 글도 실렸다. ‘교구의 재발견’에서는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와 희망의 순례를 통해 기도의 공동체를 가꾸고 있는 원주교구장 조규만(바실리오) 주교를 만났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900원> ■ 빛 ‘책 읽기, 삶 읽기’에서는 헬렌 켈러의 자서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읽어 본다. ‘가 보고 싶었습니다’는 한국 최초로 치즈를 생산해 낸 지정환 디디에 신부(1931~2019)의 흔적을 따라 임실성당을 찾아간다. ‘시로 만나는 하느님’에서는 영국의 시인이자 사제인 존 던 신부(1572~1631)의 <열일곱 번째 명상>과 함께한다. <대구대교구/2500원> ■ 생활성서 특집은 ‘더위를 삽니다’를 주제로 꾸며졌다. 뜨거운 여름, 땀 흘려 일하며 보람을 찾는 택배기사와 9년 차 농부 등의 여름나기 이야기가 담겼다. ‘김민 신부의 낮은 목소리’는 레오 14세 교황의 첫 회칙 「고귀한 인류」를 해설하고, 회칙이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 질문을 전한다. ‘영화를 읽는 시간’에서는 전경훈(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번역가가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의 시간>을 통해 기존의 남성성과 오늘날 ‘인셀’ 문화를 함께 조명한다. <생활성서/4800원> ■ 월간 꿈CUM ‘강론’에서는 이용삼 신부(요셉·수원교구 안식년)가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마태 13,35) 말씀을 주제로 법(法)과 순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사 전례해설’에서는 박정배 신부(베네딕토·수원교구 와동본당 주임)가 성찬의 전례 중 영성체 예식을 전한다. ‘신앙의 눈으로 본 수학’에서 수학 강사 윤지섭(요셉) 원장은 수학 공식을 이용해 신앙을 가질 때와 갖지 않을 때의 이득 관계를 설명한다. <월간 꿈CUM/5000원> ■ 참 소중한 당신 ‘신앙의 마중물’을 특집으로, 우리의 신앙을 끌어올리는 다양한 마중물에 관해 살펴본다. ‘인터뷰-깨소금 신앙’에서는 신앙생활 길잡이 시리즈를 펴내는 김성열(마태오) 씨를 만나 평신도를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그 배움을 ‘책’이라는 도구로 전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보통날 특별한 순간’에서는 서희정 작가가 일상생활에서 만난 악마의 유혹과 그 속에서 느낀 주님의 도우심을 들려준다. <미래사목연구소/4000원> ■ 사목정보 ‘미래 세대를 위한 에코 선언’을 주제로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원장 조경자(마리 가르멜) 수녀를 만나 땅을 ‘딛고 설 발판’이 아닌 ‘대화하는 벗’으로 마주하며, 비료와 농약 없이 생명을 키워 내는 이야기를 듣는다. 특집에서는 기후 위기와 환경 문제를 신앙의 관점에서 성찰하며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돌보아야 하는 인간의 책임을 재인식하고, 실질적인 생태적 삶의 방향에 관해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교회 활성화 단체’에서는 편리함 대신 ‘불편한 행복’으로 살아가는 수원교구 ‘하느님을 닮은 사람들’을 만난다. <미래사목연구소/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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