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잠비아 농장 사업 참여하는 이석래 전 평창군수

“나 자신을 위해서만 살지 않고 시야를 넓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우며 사는 삶이 멋있지 않습니까?” 이석래(이시도르) 전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수는 2010~2014년 군수 재임 시절, 평창군에서 성필립보생태마을을 운영하는 황창연(베네딕토) 신부의 사업에 협력하면서 아프리카 잠비아 농장 운영에도 동참하게 됐다. 이석래 전 군수가 황창연 신부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평창군수 취임 전 평창영월정선축협 조합장으로 재직할 때 황 신부가 성필립보생태마을에서 펼치는 친환경, 생태계보전 사업들에 공감하면서부터다. 이 전 군수는 이후 황 신부가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현지 주민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진행 중이던 농장사업에도 2015년 2월 처음 동참한 이후 잠비아에 여러 차례 방문했다. “잠비아는 우리나라 1960년 정도의 경제 수준으로 아주 가난한 나라입니다. 잠비아에 있는 농장은 프란치스코 전교 봉사수녀회 설립자인 하이디 브라우크만 수녀님이 조성한 것인데 그곳에서 현지 주민들이 소와 닭 등을 사육하며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농장에서는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농업 교육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 전 군수는 축협 조합장와 군수 재임 경력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도와 실제 농사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잠비아에서 키운 옥수수로 사료를 만들어 농장 경영에 활용하는 사업을 돕고 있다. 아직 농업 이외에는 주민들이 종사할 만한 산업이 제대로 발전되지 않아 경제적으로 낙후된 잠비아 주민들에게 현지 농장 경영은 커다란 혜택이 되고 있다. “농장에서 농업 교육을 받고 일할 기회를 얻은 잠비아 주민들은 경제적으로 독립해 지역 사회로 나갑니다. 농장 운영이 단지 경제적인 도움만 주는 것은 아닙니다. 주민들이 농장에서 일하면서 가톨릭 신앙을 직간접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선교에서도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이석래 전 군수는 “가톨릭신자로서 흙에서 사람의 생명이 만들어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며 “잠비아에 생태환경을 살리고 현지인들의 자립을 돕는 농장이 추가로 설립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면 저도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발행일 2025-05-11 제3441호 21면

[입양의 날에 만난 사람] 가톨릭생명사랑가족모임 황보현 회장

“입양된 아이들은 어른들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진 생명이에요. 입양은 한 아이의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5월 11일 입양의 날을 앞두고 만난 수원교구 사회복음화국 산하 입양 가족 공동체 가톨릭생명사랑가족모임(이하 모임) 회장 황보현(빈첸시아·인천교구 상3동본당) 씨는 입양의 의미를 말하며 입양 자녀를 위해 부부 공동체가 신앙 안에서 자녀와 함께 해야 한다고 전했다. 황 씨는 남편과 함께 입양으로 얻은 두 아들과 가정을 이루고 있다. 황 씨는 결혼 후 여러 차례 임신에 실패해 입양을 결심하게 됐다. 황 씨 부부의 입양 과정은 신앙 안에서 이뤄졌다. “두 아이 모두 쌘뽈수도원 유지재단에서 운영하는 해성보육원에서 만났어요. 첫째를 맞이하기 전에는 1년 동안 태교하듯이 남편과 매일 아이를 위해 기도했어요. 기도 덕분인지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며 잘 자라줬어요. 남편이 둘째를 데려오자고 제안했을 때 새로운 아이를 맞이하는 게 두려워 거절했어요. 그런데 그날 주일미사를 드리고 말씀 사탕을 뽑았는데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요한 6, 20)고 적혀 있었어요. 그 말씀을 보니 하느님께서 걱정하지 말라고, 다 키워주신다고 데려오라고 하시는구나 생각했어요.” 황 씨는 두 자녀를 키우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입양이든 출산이든 방법은 상관없이 사랑하고, 같은 자리에 있을 뿐이다. 황 씨는 모든 게 하느님의 사랑 덕이라고 말하며, 자녀들의 신앙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희 부부는 신앙 교육에는 타협이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강요하는 것은 아니고 먼저 신앙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아이들이 그걸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해요. 첫째는 성인이 된 뒤로 주일학교 중고등부 교사를 하고 있고, 둘째는 학생으로 있어요. 중고등부 미사에서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면 기쁘고 감사해요.“ 황 씨는 한국입양홍보회 부천지부 대표, 홍보대사 등을 맡고 있지만 모임이 다른 단체들과 달리 친정 같다고 전하며 그 이유를 신앙에서 찾았다. “모임이 신앙 공동체이기 때문에 10년 넘게 잘 이어져 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매달 같이 미사를 드리고, 성지순례와 봉사활동을 하면서 신앙 안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지도 신부님과 모임 가족들이 아이들을 너무 예뻐해 주셔서 아이들도 만나는 시간만 기다려요.” 황 씨는 모임에서 더욱 뜻깊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마술을 배워 전문 마술사로 활동하는 등 입양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황 씨는 입양이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일이라며 더 많은 입양 가정이 신앙 안에서 함께 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입양 관련 단체에 다니다 입양 가정 중에 신자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더욱 많은 가정이 모임에 함께 하면서 신앙 안에서 서로가 든든한 방패가 돼줬으면 해요. 저희는 언제나 환영해요.”

발행일 2025-05-11 제3441호 21면

“이주여성이 이사장 되는 날까지…갈 길이 멀죠”

“잠시 하늘을 바라볼 시간조차 없는 바쁜 삶에 지쳐 무작정 과테말라에 갔던 경험이 저를 결혼 이주여성들을 위해 일하도록 만들었어요. 하느님께서 저를 이렇게 이끄실 줄은 몰랐죠.” 결혼 이주여성들의 자립을 돕는 알록달록 협동조합(공방)을 설립해 이주여성들에게 재봉 기술을 교육하고 이들이 직접 만든 생활용품 판매를 책임지는 신선화(마리아 막달레나) 이사장은 원래 봉제 공장을 20여 년간 운영하던 ‘사장님’이었다. 일하며 믿어온 사람들과의 관계가 틀어지고, 한국에서의 고단한 삶이 싫어져 사업을 정리하고 무작정 신부님, 수녀님들의 도움으로 스페인어를 배워 과테말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신 이사장은 “과테말라에서 중남미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치다 보니 국내에 들어와서도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중남미 공동체에서 봉사하게 됐다”며 “그러던 중 결혼이주여성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낮은 자존감 속 취업도 못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의 도움으로 서울시 시민참여예산 사업에 선정되며 2017년 서울 보문동 노동사목회관 1층 한쪽에 재봉 교육을 위한 공방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주여성들이 기술은 익혔지만 문화 적응, 한국인과의 소통 등의 문제로 전문 공장에 취업하기는 아직 쉽지 않았다. 그래서 협동조합을 만들어 직접 판매를 시작했다. 그렇게 2021년 설립된 ‘알록달록 협동조합’은 자립이라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이 친구들이 처음에는 공방 바로 앞에 나가 옷을 판매하는 것도 두려워했어요. 자신감도 없었고, 지나가던 행인이 ‘외국인이 왜 한국에서 돈을 벌려고 하냐’며 윽박지르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외부 행사, 플리마켓에 데리고 나가 한국 사람들과 부닥치게 했죠.” 신 이사장은 “공방이 지금보다도 알려지기 전에는 성북구와 구의회, 성당 등에서 주문을 해준 덕분에 일감이 생겼다”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홍보를 해 지금은 길상사에도 입점했다”고 말했다. 외부 활동이 많아지자 이주여성들도 자신감을 되찾고 점차 한국인 고객 응대에 적응해 나갔다. 공방을 찾는 고객이 지난해보다는 늘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신 이사장은 “이주여성이 직접 매장을 관리하고, 외부 활동도 저 없이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며 “내가 영원히 이사장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는 5월 10일부터 이틀간 서울 혜화동에서 열릴 유스 페스티벌 ‘희희희’에도 부스를 열게 됐다. 나가는 행사가 많아져 바빠졌지만, 신 이사장은 이주여성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생활면에서 보면 당연히 사업할 때가 좋았죠. 하지만 지금도 먹고 자는 데 큰 문제 없이 그때보다 훨씬 행복해요. 지금은 제가 하고 싶어 하는, 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발행일 2025-05-04 제3440호 21면

“새로운 복음화는 가난한 이들을 중심에 두는 것”

“아브라함은 75세에, 모세는 80세에 부름심을 받았습니다. 저는 훨씬 나이가 적고 건강하잖아요?” 올해 칠순인 신상현 수사(야고보·예수의 꽃동네 형제회)가 ‘순명’의 정신으로 꽃동네를 일구는 소명에 자원해 6월말 브라질로 떠난다. 신 수사는 포스두이구아수(Foz do Iguaçu)시에 있는 노숙인 요양원을 거점으로 꽃동네를 개척할 계획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이역만리 타국에서 꽃동네의 터를 닦는 일에 어떻게 스스로 나설 수 있었을까. 신 수사는 “새로운 선교지에 파견되어 생애를 바치는 것은 꽃동네 수도 생활 38년 동안 깊이 품어 온 꿈이자, 하느님의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라고 밝혔다. “2006년 아프리카 우간다 성령대회 강의를 마치자마자 정글에 흩어져 사는 에이즈 환자·고아들을 방문했습니다. 쓰러져 가는 진흙집에서 중풍 환자 할머니가 홀로 고아 5명을 돌보고 계셨죠. ‘수사님은 제 기도의 응답입니다, 꽃동네가 우리 손주들을 책임져 주세요’라고 할머니가 제게 애원했어요. 아픈 할머니의 그 힘없고 작은 음성은, 제가 아니었더라도 누구에게나 하느님의 목소리로 울려 퍼졌을 거예요.” 포스두이구아수시에서 운영하던 요양원은 여느 시설들처럼 의식주에만 집중했고, 입소자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시설을 떠나는 일이 반복되며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시청이 포스두이구아수교구에 시설 수탁을 제안했고 교구장 세르지우 데 데우스 보르게스 주교는 이웃 나라 파라과이의 꽃동네 노숙인 시설 ‘자비의 집’을 견학한 후, 한국 꽃동네에 수도자 파견을 요청했다. 보르게스 주교는 신 수사가 브라질을 방문했을 때 “노숙인에게 의식주뿐 아니라 그들의 한 가족이 되어 영혼을 낫게 하는 꽃동네가 필요하다”고 부탁했다. 꽃동네는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남·북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럽 20개 국가에 진출해 있지만 신 수사를 비롯한 꽃동네 가족에게 브라질 진출은 뜻깊다. 신 수사는 “급격한 도시화와 가난한 이에 대한 무관심으로 빈곤율이 매우 높은 브라질에 꽃동네의 ‘가장 보잘것없는 이를 한 사람 한 사람 섬기는 영성’만 한 특효약은 없기 때문”이라고 의미를 표했다. “성공하기 위해 가는 게 아녜요. 여느 꽃동네 수도자처럼, 버림받은 영혼 하나라도 구하기 위해 갈 뿐이죠.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단 한 명이라도 구할 수 있는 일에 제가 한 알의 밀알이 될 수 있으면 해요.” 생소한 포르투갈어를 배우며 두 달 앞으로 다가온 파견을 준비 중인 신 수사. 그는 “‘새로운 복음화란 교회의 순례 여정에 가난한 사람들을 중심에 두는 것’이라는 교황님 말씀(제5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대로, 소외된 이들에게 헌신하는 분들의 노고가 더 비춰졌으면 한다”고 전했다. “특히 전 세계에서 영혼 구원 사업을 펼치는 선교사들과 꽃동네 가족들이 힘냈으면 합니다. 일선에서 뜨겁게 헌신하시는 우리 형제자매들과 후원자들께 전합니다. ‘콩 토두 우 메우 코라상, 아무 보세이스!’(Com todo o meu coração, amo vocês, 온 마음으로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 후원 문의 043-879-0151~9 (재)예수의꽃동네유지재단 회원관리실

발행일 2025-04-27 제3439호 21면

[장애인의 날에 만난 사람] ‘바다의 별다방’ 전경순 대표 바리스타

“이웃에게 나눌 커피를 만드는 제가 자랑스러워요.” 지적 발달 장애를 지닌 전경순(로사·50·수원교구 율전동본당) 씨에게는 특별한 부업이 있다. 바로 찾아가는 푸드트럭 ‘바다의 별다방’의 대표 바리스타로 활동하는 일이다. 전 씨는 ‘바다의 별다방’을 떠올릴 때마다 커피와 먹거리를 나눌 생각으로 얼굴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 ‘바다의 별다방’은 사단법인 경기도장애인복지시설연합회의 재활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장애인거주시설 ‘바다의 별’이 운영하는 순환 나눔 사업이다. 이 사업을 통해 ‘바다의 별’에 함께하는 장애인들이 소외된 이들을 찾아 나눔을 실천하고, 또 지역사회를 찾아 빵과 음료를 판매하면서 장애인 인식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 “지금도 커피를 만들 때는 떨려요. 혹시 맛이 없을까봐요.” ‘심한 장애’에 해당하는 전 씨에게 푸드트럭 바리스타는 큰 도전이었다. 처음에는 만들 수 있는 음식도 적었고, 특히 뜨거운 음료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 씨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바리스타 교육을 받으면서 노력했다. 그 결과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는 물론이고 카페 라떼, 고구마 라떼, 딸기 라떼에 핫도그까지 다양한 음식을 만들게 됐고, 벌써 6년째 ‘바다의 별다방’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 씨가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는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맛있는 커피’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커피를 나누는 것이 전 씨의 큰 기쁨이다. 게다가 지역사회에서 판매를 하면 전 씨에게 수익금이 돌아온다. 덕분에 가족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립기금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전 씨는 판매보다 지역아동센터를 비롯해 장애인, 노숙인 등을 위한 기관 등을 찾아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좋아한다. 전 씨는 “커피를 늘 먹는 사람보다 자주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며 “나눌 때가 더 행복하다”며 밝게 웃었다. 전 씨는 ‘바다의 별다방’을 찾은 손님들에게 직접 음식을 전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 밝게 웃고 어울리면서 장애에 대한 선입견을 걷어낸다. 작년에는 발달장애인 인권강사 양성과정을 이수하고, 초등학교 등을 찾아 인권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전 씨는 “글을 읽는 것은 어렵지만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 있다”며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자랑스러운 내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전 씨는 앞으로도 ‘바다의 별다방’을 통해 음식을 나누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지역사회에서 자립을 향해 꾸준히 나아갈 계획이다. “저도 힘들 때 커피를 한 잔 마시면 개운하고 행복해요. 제가 만든 커피를 마시는 분들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발행일 2025-04-20 제3438호 25면

“연극은 살아있는 기도…배우·관객 모두 신앙 성장”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는 하느님의 다양한 모습을 삶으로 표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은 연극과 같죠. 청주교구 가톨릭 연극단 ‘이마고 데이’(Immago Dei)는 하느님의 다양한 모습을 무대 위에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연극의 활동이 살아있는 기도를 함께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9월 청주교구 평신도 연극단을 만든다는 소식에 60여 명의 신자가 함께하고자 마음을 모았다. 문화적 혜택을 누리기 어려운 시골 본당에서 성극을 했으면 좋겠다는 교구장 김종강(시몬) 주교의 제안에 평신도를 중심으로 연극단이 꾸려진 것이다. 연극단 지도를 맡은 청주교구 영운동본당 주임 안광성(타대오) 신부는 “청주교구 연극단 이마고 데이는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뜻처럼 하느님을 닮은 우리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 청주교구민들과 함께 살아있는 기도를 함께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모집 이후 50여 명으로 추려진 단원들은 네 팀으로 나눠 연습에 돌입했다. 9월 창단공연을 앞두고 3월 9일 영운동성당에서 ‘빌라도는 살아있다’로 연습무대를 꾸민 단원들은 직접 준비한 무대의상을 입고 발성이나 연기에 어색함 없이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15분의 짧은 공연이었지만 열심히 준비해 연습 공연을 올렸는데 신자분들이 너무나 좋아하셨어요. 단원들도 신자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함께 자연스럽게 성화가 되는 변화가 느껴졌습니다.” 전문 연극인이 아니기에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더 나은 공연을 위해 2주에 한 번 있는 연습에 단원 대부분이 출석한다. 수요일 저녁에는 자발적으로 연기 공부를 위해 단원 10여 명이 매주 모이고 있다. 본업이 있는 대부분의 단원들이 이처럼 열정을 다하는 이유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도의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연극단에 대한 단원들의 진심을 아는 박 신부는 9월에 예정된 최양업 신부님의 삶을 주제로 한 창단공연에서 모든 단원들이 짧게라도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신경 썼다. “저희 연극단은 인원이 많기 때문에 강론시간에 맞춘 짧은 연극을 연습해 교구 안에 있는 시골 본당 여러 곳을 많이 다닐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또한 교회기관에서 하는 특강 중간에 연극 공연을 하면 사람들이 특강 내용을 더욱 잘 이해하고 머리에 감성적으로 각인되는 효과가 있을 수 있어 앞으로의 활동에 기대가 큽니다.” 이마고 데이는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는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 안 신부는 “연극을 하는 사람, 보는 사람 모두가 살아있는 기도를 함께하며 청주교구 신자들의 신앙이 풍요로워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발행일 2025-04-13 제3437호 21면

“보편교회 선교 사명 수행에 중추적 역할 기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숫자 ‘60’은 역사의 한 주기를 마무리함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가 60년 동안 보편교회에 보여준 헌신과 노력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경험들이 새로운 출발을 위한 든든한 밑거름이 되리라 믿습니다.” 바티칸 시국 행정부 차관 에밀리오 나파(Emilio Nappa) 대주교가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 설립 6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방한했다. 2022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교황청 전교기구 총재를 역임한 나파 대주교는 한국지부가 앞으로도 보편교회의 선교 사명을 수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를 기대했다. “1990년대 후반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의 결정으로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한국교회는 교황청의 재정적 지원을 더 이상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세계 곳곳 어려운 교회와 교구를 돕기로 한 것이지요. 이러한 한국교회의 너그러움은 오늘날 세계 여러 교회의 귀감이 됩니다” 나파 대주교는 “한국지부는 단순히 한국교회 기구가 아닌 보편교회 기구로 한국의 선교사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선교 사명을 수행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하고 있다”며 “이는 1200여 개에 이르는 선교 지역 교구의 선교사들이 생활하고, 성당을 짓고, 교리교사를 양성하는 데 필수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지부가 더욱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한국교회 각 교구에 전교기구를 담당하는 지부를 두는 것도 필요하다 본다”며 “한국지부와 각 교구 간 긴밀한 소통 속에 세계 교회의 어려움을 더욱 잘 이해하며 보편교회와의 협력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파 대주교는 전교기구 활동과 지원의 핵심이라 할 선교에 관해서는 ‘비범함’을 키워드로 꼽았다. “모든 믿는 이는 복음 선포의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선교는 단순히 복음을 직접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믿음과 희망, 사랑의 정신으로 일상의 작은 일들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정신으로 하느냐입니다. 평범한 일을 비범한 정신으로 행하는 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이탈리아 나폴리가 고향인 나파 대주교는 한국과 이탈리아가 역사적으로, 그리고 민족적 성향도 닮은 점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의 주교님들과 신자분들의 환대를 받으며 감정이 풍부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을 지닌 제 고향에 온 느낌을 받았다”며 “퇴원 후 성녀 마르타의 집으로 돌아오신 교황님께 한국 신자분들의 환대, 그리고 교황님의 쾌유를 청하는 기도와 응원을 직접 전하겠다”고 밝혔다. “가톨릭이라는 단어는 신앙을 통한 하나의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세계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도 형제자매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순간 도움을 전할 수 있는 건 큰 축복입니다.” 3월 26일 입국한 나파 대주교는 이날 주교회의 정기총회 중인 한국 주교단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기념미사’를 함께 봉헌했다. 이후 주교회의를 찾아 상임위원회 주교들과 오찬과 간담회를 열고, 28일 대구대교구, 29일 수원교구, 30일 서울대교구 등을 방문한 후 31일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 60주년 기념미사에 함께했다.

발행일 2025-04-06 제3436호 21면

“연민의 하느님 시선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삶 기록”

“사람이 고통받는 현장에서 사진 찍습니다” “사진은 개인적 유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든 순간에는 소명의식 같은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고통받고 있는 현장에 저를 부르셨고, 저는 사진으로 응답할 뿐입니다. 세상과 인간을 위하시는 연민의 하느님 모습을 사진으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아픔을 겪는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을 사진에 담고 있는 장영식 작가(라파엘로·부산교구 전포본당)는 노동 현장이나 사회 현안이 벌어지고 있는 곳에서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본래 어릴 적부터 사진에 관심이 많아 흑백 사진을 찍다가 몸담고 있던 교직을 떠난 1990년대부터 본격적인 사진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제가 지금처럼 사회적 약자들과 부조리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2011년 1월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인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영도조선소 제85호 크레인 고공 농성을 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입니다. 제85호 크레인 고공 농성도 그렇고,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운동 현장에서 제가 사진을 찍은 것은 하느님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의 자리에 계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진작가로서 지금, 바로 여기,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은 어디에 계실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장 작가는 오늘날에는 사진기를 손에 드는 사람은 누구나 사진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사진을 통해 현실을 왜곡 없이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작가라고 해서 특별한 자부심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현대사회는 이미지 시대이기 때문에 언어보다 이미지가 더 중요시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미지를 통해 현실을 왜곡할 수 있는 위험도 뒤따릅니다. 사진 뒤에서 사진이 말하고자 하는 언어를 읽어야 합니다. 항상 제가 붙박고 살고 있는 현실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고 재현하는 사진가로서의 역할에 성실하게 임하고 싶습니다.” 장 작가는 지금도 구미 한국옵티칼지회, 서울 세종호텔,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벌이는 현장 등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아픔의 현장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신앙에서 힘을 얻기에 가능한 일이다. “저는 현장에 사진기와 묵주를 꼭 지니고 갑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을 기억하고 연민의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국가의 부조리에 의해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힌다면 그것은 바로 하느님이 짓밟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아담아, 너 어디에 있느냐?’라고 부르실 때, 응답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장 작가는 “안동교구 정양모(바오로) 신부님과 부산교구 고(故) 서공석(요한 세례자) 신부님의 신학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다”면서 “최근 한국사회 현실에서 교회가 시대적 징표를 올곧게 읽고 예언자적 소명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순 시기를 거룩하게 보내는 참된 회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발행일 2025-04-06 제3436호 21면

“삶의 위기 속 깨달은 ‘행복’ 나누고 싶어 봉사”

“저뿐 아니라 가능한 많은 이들이 이웃 사랑을 베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려운 이웃들은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삶을 살면 자기 자신의 삶도 하느님께서 바꿔주십니다. 제가 위기를 극복하게 된 것처럼요.” 자원봉사활동 누적 1만5000여 시간으로 3월 14일 정부가 수여하는 국민추천포상 국민포장을 수상한 퇴직공무원 윤영근(로베르토·수원교구 군포 부곡동본당) 씨는 봉사활동의 중요성에 대해 이처럼 말했다. 윤 씨는 “나보다 잘난 사람과만 비교하면 봉사나 후원하기 어렵다”며 “대중매체에 나오는 소위 잘 사는 1%가 아니라 다수의 소외되고 외로운 이들을 바라보면 봉사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윤 씨가 본격적으로 봉사와 후원의 삶을 산 건 1980년 그가 21살이던 때 창원시 공무원으로 임용되면서부터다. 이후 공직생활 40여 년간 공무원 동료들과 함께 만든 밴드로 없는 시간도 끌어모아 자선 음악회를 열거나 직접 하모니카 공연을 하며 후원을 이어나갔다. 윤 씨는 “공무원으로 일하며 알게 된 건 열악하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음에도 복지정책의 까다로운 요건을 통과하지 못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이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라며 “공무원 밴드만으로는 어려웠겠지만 공직생활 중 알게 된 여러 음악인들이 도움을 줘 바쁜 가운데에서도 공연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윤 씨는 이에 그치지 않고 아내·자녀와 함께 검소하게 생활하며 월급 일부를 매번 어려운 이웃을 위한 후원으로 쓰고 있다. 그는 “우리 가족은 차도 없고, 여름에 에어컨도 쓰지 않는다”며 “술도 담배도 하지 않다 보니 멀어진 지인들도 있지만, 그 덕에 이웃사랑에 쓸 여유를 얻었다”고 했다. “6살 때 어머니가,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아버지가 차례로 세상을 떠나셨어요. 그런데 세상은 제가 돈을 벌어서 공부하며 살아남아야 했죠. 우유 배달부터 막걸리, 신문 배달까지 안 해본 게 없었습니다.” 윤 씨가 월급까지 아껴가며 이웃을 돕게 된 이유는 그의 과거에서 찾을 수 있었다.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난 윤 씨의 어린 시절은 당시 또래들보다도 힘겨웠다. 심지어 청소년 시절 비포장도로를 자전거로 타고 가다가 사고로 한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고 말았다. 환경을 극복하고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취업이 힘들었다. 윤 씨는 “공무원은 시험만 잘 보면 학력과 상관없이 일할 수 있다는 말에 입대해 공부를 병행했고, 전역을 앞두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회상했다. 윤 씨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며 살아왔기에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신앙생활하며 하느님께 받은 행복을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제가 공무원이 되고 또 기회를 얻어 대학원까지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오랜 기간 봉사하니 받은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또 그것을 나누고자 지금도 지역에서 틈틈이 봉사하고 있습니다.”

발행일 2025-03-30 제3435호 21면

[인터뷰]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수상하는 브라우크만 수녀

“처음에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의료인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어서 상을 안 받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상은 저 혼자만이 아니라 원주가톨릭병원에서 오랜 세월 같이 일했던 모든 분들에게 주는 상이라는 생각이 들어 받기로 했습니다.” 원주가톨릭병원장 하이디 브라우크만 수녀(Heide G. Brauckmann·프란치스코 전교 봉사 수녀회)는 제41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수상의 기쁨을 43년 동안 원주가톨릭병원에서 함께 봉사한 이들과 함께 나눴다. 브라우크만 수녀는 원주가톨릭병원이 지금까지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후원자가 있습니다. 원주시 문막읍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오던 형제님이 진료를 받고 약값을 주시면서 꼭 봉투 하나를 같이 주고 가셨어요. 봉투 안에는 큰돈이 들어 있었고, 원주가톨릭병원 초창기에 병원을 꾸려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이번 상을 받으면서 이름을 감추고 원주가톨릭병원을 후원해 주셨던 여러분들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1943년 독일 베스트팔렌(Westfalen)에서 태어난 브라우크만 수녀는 1966년 한국에 선교사로 입국하기 전 독일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한국에서 선교사로 일하며 교육 분야에도 뜻이 있었지만 가난하고 피폐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한국인들에게 더 큰 봉사를 하기 위해 간호학을 공부했고, 보다 전문적인 활동의 필요성을 느껴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해 1975년 의사면허를 취득했다. “당시 원주교구장이셨던 고(故) 지학순(다니엘) 주교님께서 저에게 결핵 환자들 치료를 부탁하셨어요. 1980년대 초만 해도 한국에 결핵 환자들이 많을 때입니다. 1981년 지 주교님의 협조를 얻어 원주교구청 3층에 진료소를 개설했는데 교구청 통로를 환자들이 가득 채울 정도로 환자들이 많았어요. 그때는 원주에 병원이 몇 개 없었습니다.” 그 후 1982년 원주시 학성동에 ‘원주가톨릭의원’을 개원했고 현재의 원주가톨릭병원으로 성장했다. 브라우크만 수녀는 올해 개원 43주년이 된 원주가톨릭병원 발전 방향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우리 병원 이용자들 대부분은 노인들입니다. 임종을 앞둔 노인들을 위한 호스피스 기능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병원 공간의 한계 때문에 호스피스 병동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주지역에는 아직 이주노동자들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한국 문화가 낯선 이주노동자들에게 의료 혜택을 주는 활동도 앞으로 강화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브라우크만 수녀는 한국 의학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의사는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고 이런 마음으로 일하면 의사 스스로도 인격적으로 성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와 주식회사 보령이 주최하는 제41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시상식은 3월 24일 오후 5시 서울 이촌동 대한의사협회 지하 1층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발행일 2025-03-23 제3434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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