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록으로 읽는 믿음과 삶] 여섯 번째 봉인이 열리다(묵시 6,12-17)

여섯 번째 봉인이 열리면서 묵시문학의 전형적 장면들이 등장한다. 큰 지진과 천체의 혼돈이 그러하다. 대개 이단들은 이러한 혼돈을 신의 심판이나 징벌로 이해하곤 한다. 더욱이 어느 나라의 지진이나 해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현실의 사건들을 묵시록의 혼돈과 관련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세상 종말의 문학적 수사를 실제 사건과 엮어내어 해석하는 일은 끔찍하다. 누군가의 희생을 빌미 삼아 묵시문학적 표현에 대한 설익은 해석을 내놓는 일은 폭력 그 자체다. 땅의 지진과 같은 묵시문학적 표현들은 구약성경 안에서도 발견된다.(아모 8,8; 9,5; 요엘 2,10) 후기 유다이즘, 그러니까 기원후 1~2세기의 묵시문학 작품들 안에서도 지진에 대한 서술은 흔하다.(2바룩 70,8) 태양이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으로 변하는 것도 묵시문학의 전형적 은유다.(이사 50,3; 요엘 3,4) 당시 사람들은 끔찍한 사건이나 자연재해를 종말의 상징으로 해석했고, 그 재해가 두려울수록 하느님을 향한 간절한 외침은 뚜렷했다. 이를테면, 묵시문학의 재앙적 서술은 암울한 현실 안에 위엄하신 하느님이 직접 개입하신다는 신앙을 내포한다. 공포스러운 장면은 실은 하느님을 향한 한 줄기 희망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하늘이 두루마리 말리듯 사라져 버리고 산과 섬 또한 제자리를 잃어버리는 장면 역시 묵시문학적 표현이다.(느헤 1,5; 예레 4,24) 묵시문학이 서술하는 천체의 혼돈이 마지막 시대 하느님의 직접적 개입을 암시하는 것이라면, 하늘이 사라지고 땅 위의 것들이 제자리를 잃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적 요소를 내포한 것이어야 한다. 물론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국한된 관점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개입을 못마땅해하는 이들이나, 하느님의 개입이 인간 세상이 원하는 행복, 기쁨, 성공 등의 장면들로 묘사되길 원하는 이들에겐 천체의 혼돈은 불편하다. 만약 우리가 진정 하느님을 찾는 이들이라면,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리는 장면에선 설레야 한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세상은 온통 물로 가득 차 있었다. 창세기 1장 6절에 하느님은 물을 갈라놓아 우주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창공을 만드시는데, 창공이라고 번역된 ‘라키아’(רָקִיעַ)는 ‘펼쳐진 공간’이라는 뜻을 가진다. 두루마리 펼치듯 생겨난 것이 창공, 곧 하늘이다. 프랑스 리옹의 성서신학자 프랑수아 마르탱은, 하늘이 두루마리 말리듯 사라져 버리는 것은 하느님께서 두루마리 펼치듯 창공을 만드시기 이전, 그러니까 창조 이전의 시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묵시문학의 재앙적 은유들은 이 세상을 접고 새로운 세상을 펼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재창조를 암시한다는 해석이다. 이런 해석은 주류의 해석이 아니지만, 적어도 세상 종말을 끔찍한 사건들로 도배하는 묵시문학 작품들의 의도에는 부합하는 듯하다. 끔찍한 사건 앞에 주눅 들어 죄의식과 자책에 허덕이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과 미래를 설계하고 기꺼이 하느님을 향한 신앙을 섬세하게 다듬기를 바라는 의도 말이다. 요한묵시록의 서사 흐름이 천체의 혼돈 이후 7장에서 십사만사천의 구원받은 이들을 소개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천체의 혼돈은 하느님 안에 구원을 누리는 이들의 등장을 위한 사전 작업인 셈이다. 그러나 세상은 재창조를 원하지 않는다. 요한묵시록 6장 15절에 일곱 개로 분화된 사회 계층이 등장한다. 당시의 인간 사회를 총망라하는 계층 분화의 관습적 예를 보여준다. 땅의 임금, 고관, 장수, 부자, 권력가, 종, 그리고 자유인…. 힘과 재능, 그리고 노력과 우연이 뒤섞여 우리 사회는 다양한 계층으로 형성된다. 이른바 기득권은 그 계층 구조 덕에 누리는 이익이 있어 세상의 변화를 싫어한다. 그러나 경쟁에 뒤처져 기득권으로부터 멀어진 부류는 세상의 계층을 차별과 소외로 인식하며 변화를 갈망한다. 15절과 16절은 신분과 권력, 그리고 노력 여하에 따라 형성되는 계층 분화의 세상을 한꺼번에 없앤다. 모든 계층은 산과 바위를 향해 숨겨달라고 아우성이다. 호세아서 10장 8절의 영향을 받은 이 아우성은 하느님께 불충한 이들이 겪는 징벌에 대한 두려움을 담고 있다. 징벌을 감당할 능력도, 의지도 없어서 다만 숨기를 바라는 나약함의 아우성이다. 창세기 3장 8절의 아담과 하와도 그랬다. 하느님이 찾는대도 아담과 하와는 숨었다. 하느님처럼 되고자 열매 하나를 나눠 먹은 결과는 하느님 앞에 나서지 못하는 인간의 처지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은, 그리하여 하느님을 제대로 반기지 못하는 인간의 현실은 무언가 답답하고 서글프다. 본디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모든 피조물을 관리하고 돌보는 ‘관계적’ 존재로 지어졌는데, 인간은 숨어있다. 인간은 그러므로 인간답지 않게 되었다. 이제 인간에게 하느님은 ‘진노’(嗔怒)의 주체일 뿐이다. 17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분들의 진노가 드러나는 중대한 날이 닥쳐왔는데, 누가 견디어 낼 수 있겠느냐?” ‘주님의 진노의 날’은 마지막 때에 등장하시는 하느님의 위엄을 가리키는 전통적인 예언의 말마디다.(요엘 2,11; 말라 3,2) 요한묵시록은 진노의 자리에 하느님은 물론이거니와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언급한다. 앞서 요한묵시록 5장에서 어린양은 세상 모든 사람을 속량해서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했다. 세상 모든 것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과 그분과의 인연을 다시 엮어 놓아 이른바 구원이란 걸 이루신 예수님을 ‘진노’의 주체로 해석하는 인간들의 아우성은 그리 달갑지 않다. ‘주님의 진노의 날’이 마지막 시대를 가리키는 시간적 은유라면, 그 마지막 시간에 우리는 주님을 어떤 모습으로 형용하고 은유할 것인가. 그 누구도 견디어 낼 수 없는 진노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당당히 반길 기쁨의 주체로 주님을 만나길 다만 바랄 뿐이다. 인간들의 아우성 이후에 요한묵시록 7장은 구원을 노래하는 십사만사천을 등장시킨다. 참 다행이다. 글 _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대구대교구 문화홍보국장)

[말씀묵상] 부활 제4주일, 성소주일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요한 10,27)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모상’, ‘하느님을 닮은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하느님을 닮았기에 하느님의 선한 마음, 깊은 지혜, 넓은 아량을 느끼며 감사드릴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대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꽃보다 더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로 사랑하시기에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과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각자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각자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이 다르기에 서로에게 서로를 필요로 하며, 한마음 한 몸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세월의 흐름 가운데 지난날을 돌아볼 때가 있습니다. 자기 삶의 어느 한 순간을 돌아보며 그때 이런 결정을 했더라면, 이렇게 했더라면, 이런 사람을 만났더라면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떠올리게 되는 시 한 편이 있습니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입니다. 자기 앞에 놓인 두 갈래 길 중에서 어느 한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두 길을 한 번에 다 걸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자신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궁금함과 미련이 올라옵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걷고 있는 이 길을 충실히 걸어가며 감사와 행복을 더욱 느낄 수 있어야겠다는 마음을 담은 시입니다. 우리는 지금껏 크고 작은, 중요하고 사소한 수많은 길들 중에 어떤 길을 선택하고 응답하였고, 또 그 길을 충실히 걸어왔습니다. 이런 인생 여정을 살아온 한 분 한 분에게 커다란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서 지금까지보다 더 아름다운 만남과 사건들이 자리하기를 기도합니다. 매일매일 가장 의미 있는 삶을 가꾸어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의미 있는 삶은 무엇일까요? 그 삶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아닐지요!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셨고,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느님의 자녀, 가톨릭신자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우리가 신앙인으로, 가톨릭신자로 부르심을 받아 세상에 구원의 기쁜 소식,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도록 초대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 가운데서도 사제직과 수도생활에로의 부르심에 응답한 이들을 생각하는 ‘성소 주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사제로 살아가면서 가장 답하기 어려운 물음들 중 하나는 ‘왜 사제가 됐냐?’는 것입니다. 어떻게 부르심을 느꼈고, 또 ‘예’라고 응답할 수 있었는지의 물음입니다. 어느 호젓한 밤 앞날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가운데, 인생살이의 제한된 시간 안에서 가장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를 고민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 곧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길이고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가기 위한 가장 좋은 삶은 ‘사제의 길’이라고 마음속에서 울려왔습니다. 그래서 “예, 여기 있습니다”라고 응답하고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때의 순수한 마음이 퇴색된 듯 느껴질 땐 부끄러움과 아픔을 느끼며, 조금이나마 더 잘 살아가려고 애쓴다고 여겨질 땐 하느님께 감사와 스스로에게 대견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르심에 응답했다는 사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해서 부르심과 응답의 그 순간을 되새기며 부족하지만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여러 신부님들, 수녀님들, 평신도분들을 선물로 보내주셨습니다. 이렇게 돌아보다 보면 문득 ‘나는 누군가에게 선물의 존재가 되고 있는가?’하는 물음을 던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다시 부르심과 응답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준비하며,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려고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계속 충실하라’고 권고하십니다.(사도 13,43 참조)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충실한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요한 10,28)고 약속하십니다. 하느님께 충실한 ‘희고 긴 겉옷을 입은 사람들’(묵시 7,9 참조)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의 우리여야 합니다.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성소의 길을 걷고 있는 젊은이들을 위한 기도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글 _ 조성풍 아우구스티노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본당 주임)

발행일 2025-05-11 제3441호 18면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원한 악녀 헤로디아

중국사에는 3대 악녀(惡女)가 있다. 바로 한나라의 여태후(呂太后)와 당나라의 측천무후(則天武后), 청나라의 서태후(西太后)이다. 이들은 높은 권력을 쥐락펴락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무참히 죽였고 나라의 근간을 크게 흔들었다. 한나라의 초대 황제, 유방의 부인인 여태후는 유방의 소실, 척부인과 그녀의 아들인 유여의와 갈등이 심했다. 자신의 아들, 혜제가 왕위에 오르자 유여의를 독살하였고 척부인은 산 채로 손발을 자르고 눈을 뽑고 약을 먹여서 귀머거리로 만든 다음에 돼지우리에 던져버렸다. 중국사에서 유일한 여황제인 당나라 측천무후는 자신이 황후 자리에 오르는 데 반대한 공신들을 모두 무자비하게 숙청했다. 일설에 의하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아들과 딸마저 죽였다고 하니 악녀가 맞다. 청나라의 서태후는 3명의 황제가 집권하는 동안 권력을 휘둘렀다. 그녀는 아들들이 나이가 어려 수렴청정했는데 아들이 성인이 되어 갈등이 생기자 황제들을 죽였다. 당시 국제 열강의 침략으로 청나라의 국력이 쇠퇴하고 있는 중에도 서태후의 생각은 오로지 자신의 권력 유지였다. 악녀들의 행동은 일종의 사이코패스 성형을 보인다. 다른 이의 고통에 전혀 공감을 못 하며 살인에 대한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신약성경 속에서 헤로디아는 그의 딸과 함께 대표적인 악녀이다. 그는 필립보 임금과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시숙 헤로데 안티파스와 결혼하였다. 세례자 요한은 여러 차례 헤로데 왕에게 “동생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은 왕으로서 법도에 맞지 않다”고 계속 진정했다. 헤로데는 군중들의 여론이 두려워 일단 세례자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다. 비판을 받은 헤로디아의 마음은 세례자 요한을 죽이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마침 헤로데의 생일 축하를 위한 연회에서 헤로디아의 딸인 살로메가 춤솜씨를 뽐냈다. 헤로데는 기뻐서 살로메에게 “소원을 말해보아라.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고 했다. 헤로디아는 지체 없이 살로메에게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귀띔했다. 헤로데도 세례자 요한이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병사를 보내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게 했다. 잠시 후 경비병은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돌아왔다. 사람들은 피가 흐르고 있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살로메는 쟁반에 담긴 세례자 요한의 목을 받아서 헤로디아에게 주었다. 헤로디아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보면서 너무 기뻐했다. 헤로디아와 살로메와 같은 인물은 정말 비정하고 무섭다. 자신을 비난한다고 해서 살인도 주저하지 않는 비정함이 끔찍하다. 인간의 악행은 도대체 어디까지 갈까?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사실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감정이다. 중요한 것은 정말 실행에 옮기는가이다. 인간은 분노와 화를 잘 조절하지 못하면 한순간에 파멸할 수 있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05-11 제3441호 18면

[말씀묵상] 부활 제3주일, 생명 주일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시기 전 티베리아스라고도 불리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제자들을 마지막으로 만나시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이야기는 베드로를 포함한 일곱 제자가 물고기를 잡기에 가장 좋은 때인 밤에 배를 몰고 나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밤새 허탕을 치고 맙니다. 어부로 잔뼈가 굵은 베드로가 있었음에도 말입니다. 이상합니다. 범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습니다. 이윽고 아침이 될 무렵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등장하십니다. 마치 짙은 어둠이 삼켜버린 것만 같았던 태양이 다시 떠오르는 느낌입니다. 부활과 참 잘 어울리는 이미지입니다. 그래서 옛 교우들은 부활 새벽에 산에 올라가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하고, 태양이 뜨고 있음을 알리는 수탉은 부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호숫가에 서신 예수님께서 약 100미터쯤 떨어진 배 위의 제자들에게 말을 건네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는 데 사용하신 ‘얘들아’(παιδία)라는 단어가 의미심장합니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요한 21,5) 사실 이 단어로 제자들을 부르는 것은 어색합니다. 7세 미만의 어린아이들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이 단어를 사용하실까요?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당신을 배신하고 버린 제자들이지만, 예수님의 눈에는 그들이 괘씸한 죄인이 아니라 마냥 무섭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서 도망쳐 버리고만 가련한 어린아이들로만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십니다. 오른편은 상서로운 방향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했더니 153마리나 되는 고기가 잡혔습니다. 오리게네스 교부에 따르면 당시 알려져 있던 물고기 종류가 153가지였다고 하니, 153마리의 물고기는 온 세상 사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첫 제자들을 부르신 장면(루카 5,1-11 참조)과 흡사한 이 장면은 예수께서 비록 제자들이 당신을 배반하고 떠났어도 그들을 다시 불러 모든 민족을 낚는 어부로 거듭나게 하심을 보여줍니다. 제자는 스승을 버렸으나, 스승은 제자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이내 예수님을 알아본 베드로는 옷을 입고 그분께로 헤엄쳐 갑니다. 벗은 몸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죄인의 반응입니다.(창세 3,10 참조)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한 죄책감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의 구원이라는 중차대한 사명을 부여해 세상으로 파견하기 전 손수 한 끼 식사를 챙겨 먹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빵과 생선을 나누어 먹이시는 모습은 최후의 만찬 때 성체성사를 세우신 일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이 이미 말씀하신 대로 모든 사람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선택하신 죽음이니 너무 미안해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성체성사 안에서 늘 일치하고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질문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이에 베드로는 슬퍼졌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슬픔은 곧잘 깨달음의 매개체가 되곤 합니다. 베드로도 슬픔을 통하여 세 번 배반한 자신에게 세 번 사랑을 고백할 기회를 주심으로써 마음을 치유해 주시는 주님의 자비를 깨닫게 됩니다. 특이한 점은, 예수님이 두 번은 ‘아가파오’(ἀγαπάω)라는 동사를 사용하여 질문하시고 마지막 질문에는 ‘필레오’(φιλέω)라는 동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세 번 모두 ‘필레오’라는 동사로 대답합니다. 우리말 성경은 이 단어들을 모두 사랑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두 동사가 의미하는 바는 다릅니다. 필레오는 사람들 사이의 사랑을 묘사하는 데 주로 사용되고, 아가파오는 신적인 사랑을 가리키는 데 사용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아가파오로 물으시는 첫 두 개의 질문에 필레오로 대답한 것은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사랑이 아직 미숙함을 고백하며 그것을 채워 주시기를 바라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고백과 요청에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필레오로 질문하신 다음 당신 양들을 돌보라 명하십니다. 형제에게 향하는 필레오에 주님께로 향하는 아가파오의 비밀이 숨어있다는 말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형제를 사랑하면서 하느님 사랑을 배우라는 가르침으로 이해됩니다. 글 _ 함원식 이사야 신부(안동교구 갈전 마티아본당 주임)

발행일 2025-05-04 제3440호 18면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입맞춤으로 스승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

2014년 8월 18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명동대성당에서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마지막으로 로마로 귀국하는 사목방문의 마지막 날이었다. 미사가 끝나기 전 교황님 제의실로 가는 데 경찰 통제선 안쪽에서 한 어머니가 울고 있는 아이와 같이 나에게 손짓했다. 가서 들어보니 어머니가 교황님께 축복을 받으려고 꼭두새벽부터 기다렸는데 입장하실 때 교황님이 다른 쪽을 향해서 인사를 하셔서 안수를 못 받았다고 했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간절해 나는 아이를 데리고 제의실로 가서 기다렸다. 미사가 끝나고 교황님께서 복사단과 함께 들어오셨다. 한여름의 빡빡한 한국 사목방문 4박5일의 일정을 다 마친 교황님은 너무나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교황님께 다가갔다. 그러자 교황님은 걸음을 멈추고 지친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따듯한 미소를 띠시며 아이와 악수했다. 내가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자, 교황님은 아이를 안으시고 볼에 입맞춤하셨다. 아이가 준 편지도 받아서 직접 제의 안으로 챙기셨다. 그때 보았던 교황님의 따듯한 미소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입맞춤은 예로부터 평화와 우호의 상징으로 계약의 조인에도 사용되었다. 발이나 손에 하는 입맞춤은 겸손과 자발적 복종, 존경의 표시이다. 지금도 외국 성지순례 때 보면 성인상의 발등에 고개를 숙여 입맞춤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제자가 스승을 배신해 악인들에게 넘겨줄 때 입맞춤 장면이 언급된다.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라고 하는 자가 앞장서서 왔다. 그가 예수님께 입 맞추려고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유다야, 너는 입맞춤으로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느냐?’ 하고 말씀하셨다.”(루카 22,47-48) 입맞춤은 본래 애정과 헌신의 표시였지만 주님을 배반한 유다에 의해 악용돼 배반의 표시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해 돈을 받고 팔아버려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는 죄책감에 시달려 자살로 생을 끝마쳤다. 예전에는 유다가 ‘예수의 13번째 제자’라고 알려지기도 했는데, 13명의 사도단은 실제로 없었다. 지금도 서양권에서 성행하는 숫자 13을 기피하는 문화는 유다가 그 시작이었다. 유다는 사도단의 살림을 맡을 정도로 예수님의 신뢰를 받았다. 단체에서 돈주머니를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는다. 그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죄인들의 손에 팔아넘긴 이유는 성경에 명확히 나오지 않는다. 스승이 유다인을 로마로부터 독립시킬 정치적 지도자가 아니라는 점이 그를 실망하게 했을까? 그저 상상만 할 뿐이다. 가끔 일하다 보면 진짜 걸림돌은 내부에 있는 경우가 많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패튼 장군이 자주 이야기했다고 한다. “앞으로 진격하는데 방해를 놓는 것은 독일군이 아니라 오히려 같은 편이 발목을 잡는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05-04 제3440호 18면

[말씀묵상]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예루살렘의 구도시(old city)에는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고 하는 순례지가 있습니다. 본시오 빌라도의 법정에서 시작해 골고타 언덕까지 이어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으신 ‘고통의 길’입니다. 지금은 옛날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시끄러운 시장이 됐습니다. 비아 돌로로사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며 골고타까지 가다 보면, 순례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상인과 행인들의 눈길이 꽂혀옵니다. 2000년 전 예루살렘에서 형틀 나무를 지고 올라가는 나자렛 사람 예수의 행렬을 많은 이들이 구경하였듯이 말입니다. 동물원 원숭이를 보듯 구경하며, 메시아가 저럴 수는 없다고 혀를 찼을 터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골고타가 예루살렘 성 바깥에 자리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죄인들의 형 집행이 이루어졌고, ‘해골터’라는 지명 뜻처럼 무덤도 있었습니다. 십자가형은 당시 형벌 가운데 가장 잔인한 종류로서, 베드로도 이 형벌이 두려워 예수님과 한패가 아니라며 세 차례 부인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죄인은 고통에 시달리다 서서히 죽었다고 하니, 예수님이 당일 운명하신 것이 놀라운 일이었습니다.(마르 15,44) 예수님의 메시아 신분이 그런 십자가 위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 점이 가장 놀라운 일이지만 말입니다. 마르코복음 15장 39절에 따르면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본 이방인 백인대장이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하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무엇을 보고 그런 말을 한 것일까요? 이는 예수님께서 운명하실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지는(마르 15,38) 광경을 그가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전은 예부터 주님의 현존이 상징적으로 자리하신 곳으로서 에덴동산을 재현하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성전이 에덴동산을 재현하는 곳임을 암시해 주는 실마리는 성경에 여럿 존재합니다. 첫째, 에덴동산에서 원조들이 하느님을 자유롭게 뵐 수 있었듯이, 성전도 하느님께서 인간을 공식적으로 만나 주시던 공간이라는 점입니다. 둘째, 두 곳 모두 죄 없는 상태, 정결한 상태여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원조들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건 죄를 지어 합당한 정결함을 잃어서였고, 옛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에 들어가기 전 반드시 정결 예식을 치러야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5장의 벳자타 못과 9장의 실로암 못이 예수님 시대 사용한 대표적인 정결 예식터였습니다. 셋째, 커룹의 존재도 공통됩니다. 창세기 3장 24절에 따르면 에덴동산의 입구에서는 커룹이 불 칼과 함께 지켰고, 성전에는 지성소의 계약 궤에 커룹이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원조들이 에덴동산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커룹들이 지켰듯이, 지성소 또한 커룹이 자리해 있음으로써 일반 백성의 접근을 상징적으로 제한하는 구실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두 곳의 공통점은 ‘기혼’이라는 지명에서 드러납니다. 기혼은 에덴동산에서 흘러나온 네 강 가운데 하나이자(창세 2,13) 예루살렘 성에 자리한 샘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옛 예루살렘의 중심에는 성전이 봉헌돼 있었고, 기혼 샘은 성전 아래에서 흘러나오는 형태였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기혼강이 흘러나왔다는 에덴동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요컨대, 옛 이스라엘 백성은 부분적으로나마 성전에서 에덴동산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완전한 회복은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현존을 상징한 지성소에는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사제만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레위 16,2.29.33) 그러나 신약 시대에 교회의 신랑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단 한 번의 희생 제사로 그 금지된 정원, 곧 에덴동산을 상징한 지성소의 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신비가 이방인 백인대장의 고백 안에 담겨 있는 셈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토마스는 예수님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확인하고 그분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 보고서야 믿지만, 이방인 백인대장은 지성소의 휘장이 둘로 갈라지는 장면을 보고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통의 신비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다만 에덴동산을 상징적으로 재현해 준 성전은 기원후 70년 로마에 의해 무너졌고 현재는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에덴동산을 상징한 성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당신께서 성전이 되셨고(요한 2,20-21 참조), 또한 우리 모두가 그 이후 성령을 모신 성전이 됐기 때문입니다.(1코린 3,16; 2코린 6,16 참조). 글 _ 김명숙 소피아(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

발행일 2025-04-27 제3439호 18면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세관에 있는 마태오를 부르신 예수님

예수님과 마태오가 처음 만난 장소는 세관이었다. 마태오는 세리였다. 유다인에게 세리라고 하면 창녀에 버금가는 죄인이었다. 세리는 유다인 사회에서는 배척을 받는 직업으로 같은 유다인들에게 두 배 내지 세 배의 세금을 징수하는 등 부당한 이익을 취해서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로마제국의 앞잡이와 같은 일을 하는 세리들은 유다인 사회의 ‘왕따’를 당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세리들을 이방인과 같이 취급했고 겉으로는 내놓고 표현하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경멸했다. 당시에 로마의 징세 제도에서 세리들은 미리 담합을 벌여 다음 해의 세금 징수권을 따냈다. 세리로 등용된 이들은 자신이 사용한 돈 이상으로 이익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통행세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임산부를 2명으로 간주하는 등 비상식적인 세금 징수로 유다인들은 세리를 이방인 취급하여 ‘개’라고 부르곤 했다. 세리도 돈을 많이 벌고 호의호식했지만, 마음속에는 평화가 없었다. 인간에겐 돈과 재물보다도 중요한 것이 많다. 명예와 평화로운 마음을 회복하고 싶은 것은 인간 모두의 본성이다. 마태오도 적당히 법을 이용하여 재물을 많이 축적했던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진정한 친구나 지인보다 돈으로 얽혀있는 인간적인 만남이 많았을 것이다. 마태오는 주변 유다인이 자신을 도둑과 개처럼 멸시하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살고 있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죄인들과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도 들은 터였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저 다른 보통 사람들과 동등하게 대해주시며 손을 내밀어 주셨다. 전혀 새로운 만남에 감동한 마태오는 충실한 제자가 되었다. 사도들의 명단 속에는 항시 마태오라는 이름이 들어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태오 복음서만이 세리 출신의 제자를 특별히 부각시키고 있다.(10,3 참조) 마태오 복음서는 유다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다인들을 위해 쓰였다. 마태오 복음서는 ‘팔레스티나 복음서’로 간주될 만큼 팔레스타인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는 교리서와 같은 책이다. 마태오 복음서는 그 선교의 대상이 되는 유다 세계와 유다 문화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집필연대는 내적 특성을 고려하여 마태오 복음서는 서기 70년 예루살렘 함락 이후 10여 년이 지난 80~85년에 결정적으로 편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화에서 마태오는 성경(에제 1,10; 묵시 4,7)에 언급된 ‘네 생물’에서 유래한 상징에 의해 날개 달린 사람, 다시 말해 천사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마태오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복음서를 시작한 것에 대해 리옹의 주교이자 교부인 이레네오 성인이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마태오는 세리였던 경력으로 인해 은행원과 경리, 회계사와 세무 직원들의 수호성인이 되었고, 교회 미술에서도 장부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표현되기도 한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04-27 제3439호 18면

[말씀묵상] 주님 부활 대축일

알렐루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사도 10,40) 이 증언은 그리스도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님이시고 구세주시며,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죽음을 받아들이시고 죽음을 이기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믿음의 가장 중요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다면 복음은 그저 역사 속의 한 의인의 이야기를 넘어서는 것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상식을 넘어서는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복음서의 저자들은 이 부활 사건을 명백히 전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려한 수식어 등으로 독자를 현혹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체험하고 목격한 것을 담백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는 여러 번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시는데, 때로는 비유적으로, 때로는 직접적으로 예고하십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요나의 표징에 빗대어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마태 12,40) 하셨고, 요한복음에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 하셨습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직접적으로 당신이 고난을 받아 죽으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고 세 차례나 예고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모든 예고를 제대로 알아듣거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그것을 믿게 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빈 무덤을 목격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여인들의 증언을 듣고, 먼저 예수님을 만난 다른 제자들의 증언을 듣고도, 결국 그들이 직접 예수님을 뵙기 전까지는 믿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뵈온 이들의 증언을 믿지 않는 제자들의 불신을 꾸짖으시고(마르 16,11-14 참조),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을 믿게 하시려고 두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주시고 만져보게 하셨고 음식을 함께 드셨습니다. 복음은 이렇듯 솔직하게 부활을 믿기가 어려웠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경험을 통해, 보지 못하고 믿어야 하는 이들을 독려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이 부활을 믿고 있습니까? 이 어려운 일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나요? 애초에 부활을 믿는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기는 하였나요? 믿음이 가벼운 선택일 리는 없지만, 박해 속에서 목숨을 걸고 믿어야 하던 사도들이나 초대 교회의 신자들과 그 무게가 같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고 새 생명을 살아가려 한다면 우리도 목숨을 걸고 그분을 믿고 그분의 뒤를 따라야 합니다. 그러기에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새 생명을 믿어야 죽음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보지 않고도 믿어야 하는 이들에게 성공적으로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박해 시대에 기꺼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신앙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신자들의 수가 날로 늘어났습니다. 그들은 언변이나 논리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헌신으로 부활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보여주었습니다. 무력한 죽음의 형틀인 십자가가 구원의 표징이 되었고 부활의 확증이 되었습니다. 믿기 어려운 것을 믿기 쉽게 가공해서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믿기 어려운 것을 믿어서 목숨을 바치는 삶으로써 믿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 믿음은 같은 믿음으로 이어지다 이 땅에서도 순교자들을 내었고 그분들의 믿음을 통해 우리의 믿음도 주어진 것입니다. 알렐루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올해에도 우리는 서로 부활을 축하하며 부활 인사를 나눕니다. 우리는 우리가 전해 받은 이 믿음을 어떻게 또 전할 수 있을까요? 부활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무엇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요? 사도들과 교회를 도와주신 성령께서 깨우쳐주시고 이끌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글 _ 변승식 요한 보스코 신부(의정부교구 안식년)

발행일 2025-04-20 제3438호 22면

[묵시록으로 읽는 믿음과 삶] 어린양의 삶과 죽음(묵시 5,6ㄴ-14)

어좌 한가운데 자리 잡은 어린양은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 ‘살해된 것처럼 서 있는’(ἑστηκὸς ὡς ἐσφαγμένον) 어린양이 과연 가능한가. 죽었는데 서 있는 게 가능한 일일까. 주석학자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역사적 사건과 연결하여 어린양의 모순적 양태성을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어린양은 분명 죽었고, 또한 분명 살아 있다. 죽음과 삶은 물리적 시간의 전후에 머무르지 않는다. 죽음과 삶은 하나다. 흔히들 말한다. 예수님은 죽음을 물리치고 승리하여 우리 모두에게 생명을 주셨다고. 요한묵시록의 어린양은 이러한 이분법적 신앙 고백엔 그리 관심이 없는 듯하다. 요한묵시록은 삶을 죽음의 대척점에서 고민하지 않는다. 모두가 승리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죽음을 물리친 자리가 아니라 여전히 죽어가는 자리를 동시에 껴안는 자리로 묘사된다. 그 이유는 너무나 뚜렷하여 선명하다. 우리 주 예수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이고, 그분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여전히 세상의 찬바람을 끝끝내 버티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사라진 게 아니다. 영원한 생명을 살아내는 신앙인 곁에 예수님의 죽음은 현실의 죽음 위에 포개져 사유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린양’의 형상은 단순히 역사의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만을 놓고 고민한 결과가 아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위에 신앙인의 삶과 죽음이 포개져 ‘어린양’의 형상으로 소개된 것이다. 문법적으로 살펴봐도 그렇다. ‘살해된 것처럼 서 있는’으로 번역된 분사 형태의 동사들은 어린양을 꾸미는 형용사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스말은 남성, 여성, 중성을 문법적으로 구별하는데, ‘살해되었다’는 동사는 남성형 분사다. ‘어린양’(ἀρνίον)은 중성 명사이기에 중성인 명사와 남성인 동사의 결합은 문법적으로 틀린 것이다. ‘살해되었다’는 동사가 남성형이라서 몇몇 주석학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어린양을 통해 바라보지만, 중성인 어린양에 대한 해석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더욱이 ‘살해되었다’는 동사는 ‘스파조’(σφάζω)로 쓰여있다. 목을 잘라 제물로 바치는 행위를 가리키는 동사다. 살해된 어린양을 굳이 예수님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한묵시록은 11장의 두 증인 이야기에서 주님의 죽음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이 잘려 죽은 이는 누구일까. 어린양이 중성 명사라면 굳이 남성으로서의 예수님만을 언급하기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예수님의 죽음에 신앙의 증거로 함께 한 모든 순교자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예수님의 죽음은 실은 많은 신앙의 증거로 피가 끓어오르는 생명의 자리가 아닐까. 어린양은 예수님을 증언한 신앙인의 숱한 죽음 위에 새롭게 살아가는 모든 신앙인의 삶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역사적 사실관계에 머물러 성경을 읽다 보면 무리수가 발생한다. 성경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신앙의 해석과 상상을 가미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친다. 역사의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 모든 신앙인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은 그분의 삶은 물론이거니와 그분의 죽음마저 우리에겐 생명의 선물로 사유하고 상상하는 자유를 어린양을 통해 마련하신다. 예수님을 두고 상상을 펼쳐나가는 요한묵시록 5장은 6절 후반부터 우주론적인 차원으로 뻗어 나간다. 권능을 가리키는 뿔과 지혜를 암시하는 눈을 각각 일곱 개씩 가진 어린양은 하늘과 땅을 이어놓는 친교의 상징체로 소개된다. 어린양의 일곱 눈이 온 땅으로 파견되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공간은 천상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양의 눈은 땅으로 파견되어 하늘과 땅이 어린양의 형상 안에 통합되는 것이다. 네 생물과 스물네 원로는 이러한 친교와 통합을 이렇게 노래한다. “주님의 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속량하시어 하느님께 바치셨기 때문입니다.”(묵시 5,9) ‘주님의 피로’라고 번역된 그리스말은 ‘너의 피로’(ἐν τῷ αἵματί σου)라고 되어 있다. 천상의 ‘어린양’은 지상을 대표하는 네 생물과 스물네 원로에게 ‘너’라는 친근한 이웃이 된다. 어린양은 자신의 희생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을 하느님께 이끌었다. 묵시문학은 ‘모든’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네 가지 범주로 표현하는 습성을 지닌다. 모든 민족이라고 해도 충분할 터인데, 굳이 종족, 언어, 백성, 민족으로 구별하여 표현한다. ‘모든 이’가 진정으로 ‘모두’, 어린 양을 통해 하느님과 하나 되는 것으로 어린양을 통한 신앙의 상상은 마무리된다. 천상의 주님이 지상의 ‘너’가 되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너의 피’, 곧 예수님의 희생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속량하다’라고 번역된 그리스말 동사 ‘아고라조’(ἀγοράζω)는 다분히 상업적 의미를 지니는데,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물건을 구입할 때 사용하는 동사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희생을 부정적 사건으로 보지 않고 하느님과 하나 되기 위한 필연적 과정 혹은 치러야 할 대가를 말할 때 이 동사를 사용한다.(1베드 1,18 참조) 하느님이신 예수님은 거저 우리 사람을 구원하신 게 아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라서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우리를 구원하신 게 아니란 말이다. 하느님은 참된 인간으로서 바보 같은 죽음을 맞닥뜨리셨고 바보같이 돌아가셨다.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친교의 원동력은 끝없이 내려놓고 비워내고 스스로를 대가로 지불하는 하느님의 바보 같은 사랑 덕분이었다. 예수님은 오늘도 어린양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우리에게 주어진 나날들은 실은 죽어가는 시간의 연속이다. 죽음이 생명일 수 있는 건,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이 세상 모든 이와 더불어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봉인을 열어 보이실 어린양은 그러므로 새롭고 신비한 천상의 놀라움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끝내 살아내는 숱한 일상의 희로애락을 다시금 살펴보게 할 것이다. 그 일상이 죽음을 향할지라도 우리 믿는 이들에겐 천상이요, 생명이 된다. 글 _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대구대교구 문화홍보국장)

발행일 2025-04-20 제3438호 23면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천둥의 아들’ 충직한 제자 야고보

세계 어디서나 간호사가 되면 나이팅게일의 정신을 물려받자는 뜻에서 '나이팅게일 선서'라는 것을 하게 된다. 나이팅게일(1820~1910)은 간호사로 영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854년 크림 전쟁으로 부상병이 많이 발생하여 간호사를 모집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녀는 이 뉴스가 주님께서 자신을 부르신다는 확신을 갖고 야전병원으로 향했다. 그때까지 여성이 전쟁터에 가서 부상병을 간호하는 일은 없어 나이팅게일의 부모님 반대했다, 그러나 그녀의 확고한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그녀는 전쟁터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거의 잠도 자지 않은 채 부상한 병사들을 돌보았다. 늦은 밤에도 램프를 켜서 들고 부상병들을 간호하는 그녀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녀의 이런 봉사의 모습은 널리 퍼져나가 세계인의 관심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전쟁이 끝나자, 영국은 그녀를 위한 대대적인 환영대회를 준비했다. 이 소식을 들은 나이팅게일은 눈에 띄지 않게 몰래 고향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리고 주변에 “나는 위대한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느님의 명령에 따른 것뿐”이라고 이야기했다. 나이팅게일은 모든 간호사의 모범이 됐지만 그저 항상 주님의 도구였을 뿐이라고 자신을 낮추었다.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있다. 국적, 신분에 상관없이 사람의 생명은 모두 소중한 것이기에 나이팅게일과 같은 소명의식을 가진 의료인들이 더욱 필요하다. 야고보는 열두 사도 중 한 명으로 요한의 형이다. 즉흥적이고 열정적인 성격 탓에 예수님께 꾸지람(?)도 들어 ‘천둥의 아들’이란 별명을 갖고 있었다. 야고보는 스페인과 수의사, 의사, 목수의 수호성인이다. 또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동명이인이라 교회에서는 그를 ‘대(大)야고보’라고 부른다. 그는 동생 요한과 함께 아버지를 도와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어부로 일하고 있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님을 따랐다.(마태 4,21-22 참조)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예수님의 최측근으로 스승의 말씀을 충직하게 따랐던 제자였다. 야고보는 사마리아와 유다 지역에서 복음을 열정적으로 전파하였고 이베리아반도까지도 다녀갔다는 교회전승이 전해진다. 그런 이유인지 모르지만 9세기경 야고보의 유해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장되어 모셔졌고, 당시 알폰소 국왕은 그 묘지 위에 150년에 걸쳐 웅대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건축하였다. 스페인과 유럽의 신심이 약화되던 시기에 젊은이들이 야고보 사도의 무덤을 순례하는 피정 프로그램이 오늘날의 꾸르실료 신심운동을 탄생시켰다. 현재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까지의 순례길은 세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순례지다. 지금도 대성당 안에 그의 유골함이 전시되어 있다. 순례 끝에 충실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야고보 사도를 만나는 것도 또 다른 기쁨이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04-20 제3438호 22면
기사 더보기더보기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