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WYD 상징물’ 춘천교구 순례에 참석하고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상징하는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 춘천교구 순례가 2월 25일 강릉 솔올성당에서 시작됐다. 환영식은 이날 오후 3시 교구장 김주영(시몬) 주교님, 춘천교구 영동지구 신부님들을 비롯한 많은 신부님, 그리고 수도자와 평신도가 모여 성대하게 거행됐다. 성당에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진행됐다. 전국 교구별로 약 한 달 일정으로 순회하는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는 교계 언론 보도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행사에 참석할 수 있는 영광이 나에게도 주어졌다. 전국 교구의 첫 순회는 원주교구에서 이뤄졌고, 그 두 번째가 춘천교구인데 우리 교구에서도 영동지구 지구장 본당인 솔올에서 첫 순회를 하게 됐으니 본당 신자로서 얼마나 뜻깊은 일인가.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평일이라 주인공인 청년들의 참여가 적을 수밖에 없었던 점은 조금 안타까웠지만 영동지구 12개 본당에서 온 신자들로 인해 환영식 시작 전에 이미 400석의 성전 안에는 빈자리 하나 없이 꽉 차서 그 열기가 주님 부활 대축일이나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 때의 축제 분위기를 능가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신자도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성당 뒤편에서 입장하는 WYD 십자가는 사제 1명, 수도자 1명, 청년 4명, 장년 2명 등 모두 8명이, 성모 성화는 주일학교 학생 2명이 운반했는데, 행렬 순서는 향-촛불-향합-성모 성화-WYD 십자가-사제단 순이었다.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가 성당 중앙 통로를 지나며 제대 앞으로 옮겨질 때, 모든 신자가 일어나 고개를 숙여 경배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는 듯했다. 중앙 제대 앞에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를 정성을 다해 모시고, 독서와 복음 낭독, 강론 후에 참석한 신자들이 함께 바치는 십자가의 길 기도는 사순 시기에 절묘하게 마음의 울림을 주었다. 교구장 김주영 주교님 말씀대로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가 춘천교구를 순례하는 기간이 사순 시기와 겹치게 된 것도 신자들에게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여겨졌다. WYD 대회가 열리는 전 세계를 순례해 온 십자가와 성모 성화를 경배하는 나는 짧고 반복적인 음으로 울려 퍼지는 떼제성가 속에서 이런 지향을 두고 기도했다. “사랑의 하느님, 2027년 전 세계 젊은이들이 순례 여정 안에서 한국의 독특한 신앙 유래와 요즘 한창 핫한 이슈인 K-문화를 통해 이사야서 11장과 같은 평화로운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 갈 수 있게 해 주소서. 그리고 젊은이들이 두려움 없이 용기를 내어 친교와 일치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드립니다.”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는 3월 1일 솔올성당을 떠나 춘천교구 두 번째 순례지인 양양성당으로 이동했고, 3월 22~25일 주교좌죽림동성당까지 총 15개 성당을 순례한 뒤 수원교구로 인계된다.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가 순례하는 모든 성당에서 신자들이 내가 받은 뜨거운 은총을 체험하기를 기도한다. 글 _ 이철호 베네딕토(춘천교구 강릉 솔올본당 전 사목회장)

발행일 2026-03-15 제3482호 22면

[독자마당]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성공을 위한 기도

지금 우리 사회는 다시 한번 ‘정교분리’라는 헌법의 기본 조항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정치권력에 밀착될 때, 신앙은 복음의 빛을 잃고 정치의 언어를 닮아갑니다. 최근 일부 종교 집단과 정치권력의 부적절한 연계가 사회적 논란과 수사의 대상이 된 현실은, 종교가 어디에 서야 하는지, 우리 모두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앙은 태동기부터 세상 권력과 긴장 관계에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정치적 메시아가 되기를 거부하셨고,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역할 분담이 아니라, 신앙이 권력의 도구가 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신 선언이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세상의 양심으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정교분리는 종교를 약화시키는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종교를 보호하는 울타리입니다. 국가권력에 기대지 않을 때, 교회는 더 자유롭게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설 수 있고, 더 담대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습니다. 국가의 지원 없이도 존엄을 잃지 않는 신앙, 정치적 비난과 오해 속에서도 복음의 본질을 지켜내는 공동체, 이것이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할 교회의 얼굴이라 믿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 속에서 2027년 대한민국에서 열릴 ‘세계청년대회’(WYD)는 100만여 명의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참여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국가적으로 감당해야 할 더없이 큰 행사인 만큼, 우리 천주교는 이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미사 전후에 바치는 세계청년대회 성공을 위한 기도는 단지 출발에 지나지 않습니다. 2027 서울 WYD는 단순한 국제행사가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어떤 신앙의 길을 선택하는지 세계 앞에 고백하는 증언의 장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정치적 계산 없이 타 종교를 존중하면서도 분명한 가톨릭의 정체성을 지닌 성스러운 잔치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행사의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영혼의 깊이이며, 성공의 기준은 화려한 박수가 아니라 진실한 회개의 눈물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천주교회는 먼저 스스로를 성찰해야 합니다. 최근 사회적 지탄을 받은 일부 종파나 극단적 종교 단체들이 보여준 정치권력과의 유착, 불투명한 재정 운영 등을 반면교사로 삼아 말보다 삶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 앞에 겸손히 서야 합니다. 또한 청년들은 ‘동원된 참가자’가 아니라 ‘신앙의 주체’가 되도록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그들의 언어로 경청하고 그들의 상처에 동행하며 그들의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 교회만이 미래를 가질 수 있습니다. 2027 서울 WYD는 한국 천주교회가 무엇을 소유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정치적 영향력이 아니라 복음적 신뢰로, 물질적 지원이 아니라 공동체의 헌신으로 준비될 때, 이 대회는 비로소 은총의 사건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은 교회가 말할 때가 아니라, 살아낼 때입니다. 정치권력의 언어가 아닌 십자가의 언어로, 분노의 확성이 아닌 사랑의 침묵으로 세상에 다가갈 때, 사람들은 다시 우리 천주교회를 바라볼 것입니다. 정교분리의 원칙 위에서 더욱 빛나는 신앙, 세상 한가운데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 교회. 2027년을 향한 이 길이, 한국 천주교회가 다시 복음의 첫사랑으로 돌아가는 순례의 여정이 되기를 온 마음과 온 정신을 모아 기도합니다. 글 _ 전재학 대건안드레아(인천교구 부천 중3동본당) 원고량 8.5매 vividcecil@catimes.kr

발행일 2026-03-08 제3481호 22면

[독자마당] 가지와 호박

나의 고향은 삼면이 산으로 에워싸여 하늘만 올려다보이는 안동 권가 집성촌이었다. 이른 봄이면 엄마는 호미를 들고 산과 들로 일을 나가셨고, 넉넉지 않은 살림에 야산을 개간해 고추와 고구마를 수확했다. 엄마는 가끔 어린 내게 “안동 권가 양반 집에 속아서 시집왔다”며 신세타령을 하셨다. 반면 아버지는 고된 농사일보다 산천의 풍류를 즐기던 감성적인 분이셨다. 산과 들에서 고사리와 버섯을 채취하거나 미꾸라지를 잡아 오곤 하셨다. 그러면서도 양반의 법도만을 중시하셨으니, 내 눈에는 마치 이솝우화 속 ‘개미와 베짱이’ 같았다. 여름이 되어 연보라색 가지꽃과 담 울타리의 노란 호박꽃이 지고 열매가 맺히면, 엄마는 가마솥에 밥을 할 때 가지를 함께 쪄내셨다. 찬물에 잠시 담갔다 쭉쭉 찢어 집간장과 참기름, 깨소금으로 조물조물 무쳐낸 가지나물, 그리고 들기름에 볶고 새우젓으로 간을 한 애호박은 여름 밥상의 단골 메뉴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그 귀한 손맛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변화는 40여 년 전, 도시로 나와 중학교 자취생활을 시작하며 찾아왔다. 자취방 근처에 살던 친구 방에 놀러 갔다가 신기한 광경을 보았다. 옆방 아주머니가 연탄불 위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가지와 애호박에 밀가루와 달걀물을 입혀 노릇노릇하게 전을 부치고 계셨던 것이다. 시골에서는 접해보지 못한 식용유의 고소한 향과 전 요리는 너무나 생소하고도 특별했다. 나는 아주머니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등 뒤에서 요리 과정을 몰래 훔쳐보며, 어깨너머로 배운 그 낯선 맛에 마음을 빼앗겼다. 세월이 흘러 8년 전, 이스라엘 성지순례 길에서도 나는 가지와 호박을 만났다. 호텔에서 식사 도중 에어프라이어에 구워 수분이 적당히 빠진 그 요리에서 가지와 호박 본연의 깊은 맛을 느꼈을 때, 마치 타국에서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요즈음도 고향에 사는 언니와 동생 집에 가면 가지와 애호박 요리가 상에 올라온다. 한배에서 태어난 세 자매인데도 각자 출가한 집안의 가풍에 따라 요리법과 맛이 제각기 다른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 “사돈네 오이 먹는 방법도 다르다”는 옛말처럼, 우리는 각자의 삶에 맞는 맛을 만들어 가고 있는 모양이다. 가마솥 밥 위에서 쪄내어 엄마의 사랑 가득한 손길로 무쳐주셨던 그 가지나물과 애호박볶음. 어린 날에는 왜 그리도 무심했는지, 오늘따라 그 소박한 맛이 마냥 그리워진다. 이제 나의 인생도 어느덧 저물어가는 늦가을의 문턱에 서 있는 것만 같다. 그 옛날 가마솥 위의 가지처럼, 나의 삶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는 맛으로 익어가길 기도해 본다. 글 _ 권명자 모니카(의정부교구 남양주 지금동본당)

발행일 2026-03-08 제3481호 22면

[독자마당] 삼월의 하늘

매년 3월이 오면 매곡성당에서 강론하시던 강희재 요셉 신부님이 떠오른다. 당시 나는 천주교에 막 입문하여 교육받던, 백지상태였기에 신부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더욱 신기하기만 했다. 비록 성찬 전례 때가 되어도 성체를 영하지 못하는 예비 신자였음에도, 집 근처 매곡성당을 두 눈 반짝이며 평일 미사까지 참례하던 열성적인 시절이었다. 신부님은 참으로 성실하셔서 많은 일을 도맡으셨고, 복음의 전파자로 수많은 양 떼를 위해, 하느님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사목하셨다. 나는 예비신자로서 늘 맨 앞자리에 앉아 신부님의 가르침을 머릿속 깊이 저장하느라 두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익혀 나갔다. 강희재 신부님은 1975년 경기 이천에서 태어나 2003년 9월 19일 사제품을 받으셨다. 젊은 감각과 열정으로 하느님의 큰 그릇이 되신 신부님은, 훌륭한 인품과 유창한 말씀으로 누구라도 강론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으셨다. 서글서글한 성품과 유머를 겸비하셨던 분, 무더운 여름날 성전을 청소하는 신자들에게 일일이 아이스크림을 사주시며 격려해 주시던 세심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지금은 성당 사무실 벽의 사진 속에서만 뵐 수 있는 분이 되었다. 신부님께서 다른 소임지로 떠난 뒤 자주 뵙지 못했다. 그러다 2018년 3월 28일, 신부님께서 수술 후 회복하던 중 선종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교구 복음화 부국장 소임을 수행하며 쏟으셨던 헌신을 알기에, 신부님의 회복을 바라는 신자들의 기도는 더욱 간절했다. 그러나 신부님은 그 기도를 뒤로하고 하늘의 별이 되셨고, 3월 30일 장례미사에서 우리 수원교구 식구들은 황망한 마음으로 이별 아닌 이별을 나누어야 했다. 신자들의 오열을 뒤로하고 하느님 곁으로 가신 신부님. 15년간의 사제직을 수행하신 신부님은 사제들의 영원한 안식처인 안성 미리내성지에 고단했던 삶의 영을 뉘셨다. 봄마다 붉은 진달래는 피고 지며 신부님의 넋을 달래고 있다. 많은 이의 가슴에 깊이 남으신 신부님의 영전에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신부님께서 하늘나라에서도 패기 넘치는 군대의 일원으로 기쁘게 임하시길 빈다. 여전히 3월의 하늘은 신부님을 다시 하늘나라로 올리신 날을 기억하게 한다. 그곳에서도 또 다른 하느님의 일을 하고 계실 신부님, 주님께서 신부님의 공로와 노고를 굽어살피시어 영원한 안식에 머물게 하시길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글 _ 이영숙 로사(수원교구 안양 매곡본당)

발행일 2026-03-01 제3480호 22면

[독자마당] 고령 운전, 어르신 운전

고령 운전자 사고율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계시지요? 그래서인지 요즈음 운전하다 보면 ‘어르신 운전중’이라고 붙이고 다니는 차를 종종 보게 됩니다. 문득 ‘저 표지판이 나를 보호해 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나도 하나 붙여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다만 ‘어르신 운전중’이라는 표현은 좀 위선적으로 느껴져 본당 사무장님께 부탁해 ‘고령 운전자임’이라고 적은 문구를 코팅해 차 뒷유리에 붙이고 다녔습니다. 이후 2개월여 시일이 지나면서 이 문구가 자주 의식이 되고, 뒤따라오는 운전자가 나를 어떻게 볼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혹여 작은 위반이라도 하면 “어허~ 나이 먹은 사람이 불량 운전(?)하네”라고 손가락질할 것 같고, 수십 년 몸에 밴 운전 습관에 뒤통수를 맞을 것 같았습니다. 때로는 괜히 붙였나 하는 부담이 생기고 신경이 쓰였습니다. 한편으로는 내 삶이 언제 정지될지 모르는 초고령의 말년에,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스스로 경계하게 만드는 좋은 징조라며 위안으로 삼았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시선은 이마 앞 후사경(백미러)에 매달려 있는 수호성인 메달로 향하고, 핸들 왼쪽 아래 방향 지시 장치에 걸려 있는 묵주에 손이 가면서 불그레한 광대뼈에 열기가 솟음을 느꼈습니다. 얼마 전, 평소 자주 만나는 교우들과 찻집에 앉아 이 솔직한 심정을 신앙고백처럼 털어놓았습니다. 근래 저의 운전 자세와 심정 변화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꺼내자마자 세상 물정에 밝은 한 자매가 당장 그 표지판을 떼라고 권했습니다. 요즘 세상에 고령 운전자임을 스스로 노출하는 것은 고의적인 사고나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조언이었습니다. 똑똑한 체하며 살았어도 세상의 이면은 볼 줄 모르는 순진한 저에게, 깨우침을 주는 그 자매의 말 한마디가 어찌나 정신이 번쩍 나고 고마운지 즉시 차로 달려가 표지판을 떼어냈습니다. 최근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 36%가 차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처지라고 합니다. 저 또한 걱정이 앞섭니다. 차 없이는 어망에 걸린 물고기처럼 꼼짝 못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령’, ‘초고령’이란 말이 그렇게 썩 반갑게만 들리지는 않고, 가끔은 우리 사회가 노인 운전자를 폄하하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노인은 늘어나는데 참된 ‘어르신’은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인가. 한창때는 마음 다스림이 문제요, 나이 들면 몸이 문제, 이제는 심신 둘 다 문제인 지금, 어떻게 하면 이웃과 사회에 표양이 되는 안전한 운전자, 나잇값 하는 참된 어르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물론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이사 42,3) 하신 말씀처럼 주님께서 남은 제 인생의 길목을 잘 지켜주시리라 믿고 의지합니다. 비록 세상의 시선이 차갑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고령’이라는 단어 속에 우리 사회가 여전히 높을 고(高)자를 앞에 놓아 예우해 주니 그 또한 고마운 일입니다. 오늘도 운전대를 잡을 수 있어 참 행복합니다. 이제 83세 아내 수산나와 순두부찌개 점심을 먹으러 집을 나서려 합니다. 한 노인의 푸념 섞인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글 _ 김정철 바오로(전주교구 용머리본당)

발행일 2026-02-15 제3479호 22면

[독자마당] 안성기 배우의 죽음을 바라보며

“어렸을 때부터 참 좋은 친구였다, 성격도 좋고….”(조용필) “진심으로 존경하는 선배이자 한 사람으로서도 인격적으로 존경하는 분….”(박중훈) “배우의 품위와 인간의 품격을 지켜준 분… 저에게 선배님은 ‘살아있는 성인’이셨습니다.”(정우성) 고인이 된 배우 안성기(요한 사도)를 추모하는 수많은 사람의 말을 곱씹어 보며 한 사람의 훌륭한 삶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가에 새삼 놀랐다. 감탄과 감동, 탄식과 슬픔, 아픔, 아쉬움, 안타까움이 끝없이 이어졌고,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떤 이의 죽음도 남의 일인 양 무심하게 지나치지를 못하는 나이가 된 지금에 와서야, ‘죽음이 곧 삶의 거울’이라는 말을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다. 죽고 나서야 고인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로 그 사람의 삶을 되돌아보기 마련이라 그런 말이 나왔나 보다. 친구들이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면서 나의 부모님 세대부터 지금까지 많은 죽음을 보아왔기에, 언젠가는 나도 세상을 떠난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지만 친지나 이웃의 부고(訃告)를 접할 때마다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특별히 가깝게 지내던 분의 부고를 전해 받으면 그 쓸쓸함과 허전함이 유달리 더 오래간다. 살아오는 동안 많은 사람이 내 곁을 스쳐 갔다. 어떤 사람은 ‘좋은’ 기억으로 또 어떤 사람은 ‘나쁜’ 기억으로 남았다. 그 모든 사람이 나를 철들게 했고 어른으로 성장하게 했다. 돌아보니 다 고마운 인연이었고, 축복이며 은총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살아계시는 동안 무언가를 이루려고 애쓰셨을 고인의 노력과 의지, 유족과 함께 나누었을 삶의 기쁨과 고통을 두루 연상하고 기억해 본다. 고인에게는 영원한 안식을, 유족에게는 하느님의 위로와 평안이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안성기 배우가 아들의 어린 시절에 써준 편지가 많은 사람에게 특별한 감동을 주었는데, 구구절절 마음에 새기고 삶의 지표로 삼을 만한 것이기에, 다시 한번 읽으면서 옮겨 적어본다. “아빠는 아들이 항상 겸손하고 정직하며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는 최선을 다하고 시간을 꼭 지킬 줄 알며, 실패나 슬픔을 마음의 평화로 다스릴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어라. 야망과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자신을 잃지 말고, 끝없이 도전해 보아라. 그러면 네가 나아갈 길이 보인다. 이 세상에서 참으로 바꿀 수 없이 필요한 것이란 바로 착한 사람이란 것을 잊지 말아라.” 글 _ 배정수 프란치스코(서울대교구 답십리본당)

발행일 2026-01-25 제3476호 22면

[독자마당] 본당 설정 50주년에, 나는

생각해 보면 참으로 겁 없이, 다가올 험난한 미래를 모른 채 2024년 4월 ‘25주년사 편찬위원회 발대식’에 참여했다. 클라라 위원장을 비롯해 바울리나, 플로라, 미카엘라 자매, 솔로몬 형제, 그리고 나까지 여섯 명이 편찬위원으로 함께했다. 얼마 뒤 사제관 1층 소회의실이 위원들의 회의실로 정해졌고, 그곳엔 미카엘라 자매가 부직포로 정성껏 만든 ‘집현전’이라는 명패가 붙었다. 갈곶동본당 공동체가 걸어온 자취를 기록하기 위해 지혜를 모으자는 뜻으로 솔로몬 형제가 지은 이름이었다. 그 명패는 1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첫 회의에서는 업무를 분담했다. 솔로몬 형제가 오산의 역사와 본당 관련 통계 자료를 맡았고, 나머지 자매들은 일곱 분의 역대 사제들을 나누어 맡아 본당의 역사를 사진과 글로 기록하기로 했다. 내가 맡은 시기의 자료는 너무도 부족했다. 창고 속 먼지 쌓인 기안 철과 주일학교 자료를 뒤졌고, 관계자들의 기억을 조각조각 모아 빈틈을 채워 나갔다. 2025년 11월 출간을 목표로 우리는 한배에 올랐다. 신부님별 사목 활동 정리는 2024년 연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위원들 모두 본업과 성당 봉사를 병행하다 보니 작업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6월 말에 1차 초안을 출판사로 보내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고, 그때부터는 ‘활자와의 싸움’이었다. 오타와 맞춤법은 AI의 도움을 받았지만, 숫자와 날짜, 고유 명사를 끝까지 확인하고 책임지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이었다. 눈이 빠질 듯한 통증과 뼈를 깎는 인고의 시간이 이어졌다. 주중에는 각자의 하루를 마친 뒤 원고 앞에 앉았고, 주말에는 미사 후 카페에 모여 머리를 맞댔다. 노트북을 사이에 두고 같은 문단을 들여다보며 문장의 맥락과 날짜의 정확성을 하나하나 짚어 갔다. 세 차례의 교정을 목표로 달린 끝에 9월 말 모든 작업을 마무리했고, 10월 1일 마침내 출판 승인을 받았다. 드디어 2025년 10월 26일,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본당 설정 25주년 기념 미사 날, 우리는 우선 표지만 완성된 가본(假本)을 봉헌했다. 그리고 우리가 애초 목표로 했던 11월 23일에 594쪽에 달하는 책이 도착해 신자들에게 구역별로 순조로이 배포되었다. 책을 받아 든 순간, 벅찬 감동보다는 “진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고통의 순간도 많았다. 일의 진척이 더뎌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을 위원장님은 책이 거의 완성될 무렵 활자만 봐도 속이 울렁거리는 후유증을 앓았다. 나 역시 내 일을 미뤄둔 채 매달려야 하는 상황에 울화가 치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주님께 위로를 청했다. 고된 작업은 나를 더 자주 주님께 데려갔다. 집현전에서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위원들 곁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태 7,13)는 말씀 덕분이었다. 여정은 끝났지만 아직 완전히 그 기억에서 빠져나온 것 같지는 않다. 시간이 더 흘러야 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기록을 정리하며 수많은 신자와 봉사자의 겹겹이 쌓인 시간을 보았다. 엄마 품의 아이는 어느새 청년이 되었고, 한때 성당을 날쌔게 누비며 봉사하던 자매님들의 걸음은 느려졌다. 성전 건립을 위해 식당 한쪽에서 손수 밥을 짓던 어르신들은 사진으로만 만날 수 있다. 사람의 스물다섯이 젊음의 시간이라면, 공동체의 스물다섯 해는 성숙이 시작되는 계절일 것이다. 그 시간을 기록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앞으로 본당이 차츰 단단히 영글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또한 내게 허락된 특별한 은총이 될 것이다. 갈곶동본당 설정 50주년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글 _ 김윤희 루치아(수원교구 갈곶동본당)

발행일 2026-01-18 제3475호 22면

[독자마당] 수원교구 천리본당 이영호(베르나르도) 총회장을 추모하며

수원교구 용인 지역은 김대건(안드레아) 성인의 숨결이 살아있는 골배마실과 은이성지 그리고 미리내성지를 가슴에 품고 있다. 천리성당은 은이성지, 미리내성지와 삼각형을 이루는 중간 지점에 있다. 은이성지는 은이(隱里)라는 지명이 뜻하듯 용인 지역이 한국교회 교우촌의 산실임을 말해 준다. 1801년 신유박해 후 교우촌 건설의 주역으로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복자 신태보(베드로)는 신유박해로 폐허가 된 신앙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해 용인의 순교자 가족 40여 명과 함께 강원도 산골로 이주해 풍수원 교우촌을 세우고, 계속된 박해로 쓰러져 가는 교회를 다시 일으키려 교회 재건에 온 힘을 다했다. 복자 신태보가 엄혹한 박해 속에서도 교우촌 건설을 위해 온 힘을 다했던 것처럼, 200년 후 그를 닮으려 용인 천리성당에서 75세의 노구를 이끌고 자기 직분에 늘 정성을 다하던 이영호(베르나르도) 총회장은 2025년 12월 7일 주일 오전 8시 미사를 봉헌하고, 10시30분 교중미사를 준비하던 중 아낌없이 봉사하던 성당 구내에서 갑작스레 쓰러졌다. 그는 평소에도 천리본당의 평일과 주일 모든 미사에 빠짐없이 참례하며 본당 신자들에게 신앙의 귀감이 됐다. 안타깝게도 다시 깨어나지 못하고 그토록 고대하던 주님 품에 안겼다. 마치 선종을 준비하듯이 이 총회장은 그가 2021년 펴낸 소설 「대장강(大長江)」을 영어와 중국어로 번역해 본당 주임신부님에게 맡겼다. 김대건‧최양업(토마스)‧최방제(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세 명의 신학생이 190년 전 중국을 거쳐 마카오로 유학을 떠났던 ‘도보 6개월’의 험난한 대장정 모습을 그려낸 역작이다. 정영철(안토니오) 주임신부는 이 총회장이 중국어 번역본은 중국대사관 영사에게, 영어 번역본은 주한 교황대사관 몬시뇰에게 추천사를 부탁했다고 전했다. 이 총회장은 조선교회의 첫 교구장인 하느님의 종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 입국을 위해 마카오-푸간-양쯔강-황허-산시성-서만자에 도달했던 여정을 불과 4년 만에 그대로 복기하듯이 밟아 마카오를 향해 떠났던 조선의 세 신학생의 ‘육로 대장정의 신비’를 중국과 교황청 그리고 온 세상에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10여 년 전 어느 날, 미리내성지에서 성 김대건 신부‧페레올 주교‧강도영(마르코) 신부‧최문식(베드로) 신부가 나란히 묻혀 있는 묘소에서 이 총회장이 소신학교 35회 동문인 필자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했던 모습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그 당시 은하수의 고향 미리내에서 이 총회장이 꿈꾸고 구상했던 대하드라마는 결국 2012년 「독립군 의민단」이라는 역사소설로, 2021년 「대장강」이란 대하소설로 모습을 드러냈다. 조광(이냐시오) 고려대 명예교수는 간도지방의 교우촌을 배경으로 구성된 「독립군 의민단」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추천사를 썼다. 독립군 의민단의 본거지였던 간도 팔도구 주임이 최문식 신부였다. 지금도 이 총회장은 교우촌과 교우촌으로 연결된 한국교회사에 담긴 ‘섭리의 마중물 역사’를 천국에서 쉼 없이 그려내고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Ad majorem Dei gloriam!)’ 글 _ 소신학교 35회 동문 변진흥 야고보

발행일 2026-01-11 제3474호 22면

[독자마당] 성경 필사와 초서(抄書)

성경을 필사한 지 벌써 30년이 지났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부산에서 군 장교로 근무하던 시절 군종신부님이 저녁 주일미사 강론을 통해 “개신교에서는 많은 신자가 성경을 필사하는데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무턱대고 문방구에 들려 새 만년필과 잉크를 구입했다. 그런데 막상 집에 돌아와 성경을 펼쳐보니 깨알 같은 작은 글씨에 기가 질렸다. 늘 보던 성경의 글씨가 이렇게 작았던가! 그래도 한 번 베껴볼까? 그렇게 막연하게 시작한 성경 필사다. 그로부터 2년 2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 신약과 구약 모두를 필사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지금과는 달리 성경을 필사하는 일정한 양식도 없었고, 주교님의 축복장 수여 여부도 몰랐다. 일반 노트에 성경을 베끼는 것이 불경스러워 나름 예의를 갖추어 검은색 작은 바인더 노트 위에 새 만년필로 한 자 한 자 베낀 것이 모두 13권이다. 그리고 성경별로 시작 전후에는 주모경을 바쳤다. 필사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기도의 덕분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필사를 마쳤을 때 신부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개신교에서 성경 필사를 마친 사람은 간증(干證)을 하는데 형제님도 한번 하실래요?” 내가 극구 거절했더니 몇 주 후에 신부님은 좋은 만년필을 선물해 주셨다. 군 생활로 인한 잦은 이사 때도 필사본은 늘 잊지 않고 챙겨 다녔다. 초서(抄書)는 곧 ‘베껴 쓰기’다. 눈과 마음으로 읽는 것보다 손을 움직여 베껴 쓰다 보면 방금 전의 희미해진 기억도 곧잘 떠오른다. 나는 아직도 30년 전에 필사한 성경의 여러 구절이 떠오른다. 특히 시편이 그렇다. 이것이 베껴 쓰기의 힘이다. 성경 필사의 힘이다. 독서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굳이 방법을 논할 것은 없지만 사람에 따라, 취향에 따라 각각 다르다. 한양대학교 국문학과 정민 교수는 가톨릭신문에 기고한 ‘초서의 힘’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글을 쓰다가 생각이 막히면 나는 빈 종이를 꺼내 초서를 시작한다. 문득 예전 읽었던 글을 찾아 베껴 쓰기도 하고, 논문을 준비 중인 글을 다시 베껴 쓰기도 한다. 또박또박, 따박따박 베끼는 동안 글과 대화하고, 글쓴이의 생각 속에서 헤엄친다. 그러고 나서 그 아래에 내 생각을 다시 메모해 둔다. 서류봉투의 뒷면이나 포장지의 뒷면에 적은 메모가 묘목이 되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큰 나무로 자라난다.” 성경 필사 후 나는 한국천주교회사를 연구하면서 많은 책을 컴퓨터에 통째로 입력했다. 필사 대신 선택한 방법이다. 원고지 7000매가 넘는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를 비롯해 천주실의, 칠극, 사학징의, 벽위편, 주교요지, 추안급국안, 백서, 수기, 상재상서 등 모두 32권이다. 한국천주교회사를 연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주옥같은 서책들이다. 컴퓨터를 검색하면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론 그때그때 필요한 메모도 기록해 놓았다. 성경 필사처럼 손으로 베껴 쓴 것이 아니고 눈으로 읽으면서 손가락으로 책을 베낀 것이다. 베껴 타자를 쳤으니 초타(抄打)라고 하면 될까! 가끔 필사한 성경 노트를 꺼내본다. 많은 세월이 흘러서인지 종이의 색깔도 내 나이와 같이 누렇게 변했지만, 그때마다 내 필체의 온기를 느끼게 되고, 베껴 쓴 글자와 대화를 하면서 세월의 향기에 푹 젖기도 한다. 지금도 정성을 다해 성경을 필사하는 모든 분에게 박수와 경의를 표한다. 글 _ 박용식 스테파노(수원교구 북여주본당)

발행일 2026-01-04 제3473호 22면

[독자마당] 새해에는 감사한 마음이 깃들게 하소서!

아침에 눈을 뜨면 감사의 마음으로 물들이게 하소서. 기뻐서 큰 소리로 지금의 이 시간을 찬미하게 하소서. 큰 소리가 온 누리에 퍼져 모든 이가 기뻐하게 하소서. 그리고 어떤 처지에도 감사, 감사하게 하소서. 감사가 사랑으로 자라고, 사랑이 행복으로 자라나 평화가 가득히 넘치는 시간을 만들어 주소서. 만나고 싶은 이를 만나고, 가고 싶은 곳을 두루 갈 수 있고, 먹고 싶은 것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건강도 허락하여 주소서. 생각도 행동도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도 주소서. 활짝 열린 마음으로 내가 아닌 네가 되어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또 맑은 영혼으로 욕심을 버리고 기쁘고 떳떳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항상 사랑으로 충만하여 감사하고 만족하는 마음이 깃들게 하소서. 친구와 함께 도란도란 인생 이야기 나누며 웃음이 가득히 넘치는 사랑의 길을 즐겁고 편안히 걸어가도록 축복과 은총을 주소서. 때로는 보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감정이 솟구쳐 서로의 마음이 격려와 위로되어 가슴을 부둥켜안고 사랑의 눈물도 흘리게 하소서. 성실한 친구는 든든한 피난처로서 보물입니다. 성실한 친구는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어떤 저울로도 그의 가치를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성실한 친구는 생명을 살리는 명약입니다. 그 친구는 바로 내가 한없이 좋아하는 마음이 넉넉한 아내입니다. 사랑하는 친구의 꿈이 내 꿈이 되고, 나의 꿈이 친구의 꿈이 되어 하나 되게 하소서.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바람을 기다립니다.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단, 친구가 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뿌리 깊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가슴에 그리움이 뜨겁도록 불타게 하소서. 사랑을 주고받는 성실한 친구로 늘 더 가까이 곁에 있겠습니다. 친구를 보듬으며 함께, 같이 온전한 사랑을 나누렵니다. 2026년 병오년 새해에도 저희의 가정에 평화가 깃들기를 간구드리며, 희망을 가득히 담아 하느님의 곁으로 힘차게 달려갑니다. 아멘. 글 _ 박기섭 바오로(안동교구 목성동주교좌본당)

발행일 2026-01-01 제347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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