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 청소년들의 자리

주일 오전 9시. 서울 홍제동본당 주일학교 개학 미사 현장을 찾았다. 모처럼의 휴일, 더 자고 싶은 마음을 뒤로한 채 성당을 찾았을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친구들을 다시 만난 탓인지 성당 안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학생들의 웃음과 재잘거림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일은 흔치 않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평소 취재를 하며 여러 본당 주보를 살펴보지만, 교구나 본당에 따라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려울 때가 많다. 형식은 대부분 비슷하고, 달라 봐야 글꼴 정도만 다른 경우가 많다. 내용 역시 전례 시기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담당 취재처 주보를 훑어보다 보면 이 주보가 어느 본당 것인지 한눈에 구분하기 어려울 때도 자주 있어 왔다. 그런데 지난주, 유독 눈에 들어오는 주보가 있었다. 알록달록한 색의 일곱 컷 만화가 실려 있었다. 바로 홍제동본당 주일학교 동아리 ‘봉우리’ 학생들이 직접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린 ‘신앙 만화’였다. 단순히 그림이 예뻐서가 아니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신앙을 바라보고 표현한 장면들이 주보 한쪽 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개학 미사와 교리 수업을 마친 봉우리 학생들을 교리실에서 만났다. 다음 달 주보 지면 구성에 대한 회의가 한창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은 생각보다 더 의욕적이었다. 학업과 여러 활동으로 바쁜 시간 속에서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주보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어른들이 마련해 준 틀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언어와 시선으로 신앙을 표현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작은 교리실에서 이어지던 회의는, 청소년들이 교회 안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처럼 보였다.

발행일 2026-03-15 제3482호 23면

한 그루 나무가 남긴 것

제주 서귀포 하논분화구. 황량하게 텅 빈 들판 한구석, 잎을 다 떨군 은행나무 앞에 섰다. 100년이 넘는 시간을 견딘 나무다. 70년 동안 잊혔다가, 신자들의 발걸음 끝에서 운명처럼 발견돼 하논성당이 있던 자리임을 드러냈다. 세차게 흔들리는 가지들이 그간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듯했다. 성당이 사라지는 것도, 사람들이 잊어가는 것도, 그리고 다시 누군가 찾아오는 것도. 아무 말 없이, 그러나 아무것도 잃지 않고 서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 자리를 찾아내기까지 쉽지 않았다. 지도에도 없었고, 기억도 희미했다. 신자들은 며칠을 헤매고 또 헤맸다. 그렇게 해서 다다른 곳이 이 나무 앞이었다. 누군가 끝내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발견이었다. 교회의 역사는 기록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과정을 지켜보며 새삼 깨달았다. 세계 여성의 날 기획 기사로 준비한 성녀 마크리나와 빙엔의 힐데가르트, 가경자 마들렌 들브렐의 삶을 살피며 그 나무와 어떤 접점이 느껴졌다. 이들의 삶 역시 조용히 중심을 떠받친 시간이었다. 제도의 한가운데에 서 있지는 않았지만, 교회가 가야 할 방향을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 준 이름들이었다. 신문은 늘 ‘지금’을 다루지만, 취재하다 보면 결국 ‘기억’을 다루게 된다. 이번 호에서 땅에 남은 기억과 책장 속에 남은 이름을 나란히 꺼내 보았다. 하나는 신자들이 찾아낸 자리였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다시 불러낸 이름이었다. 하논분화구의 은행나무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은 분명한 증언이었다.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중심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다. 기억은 스스로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가 다시 바라보고, 다시 부를 때에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발행일 2026-03-08 제3481호 23면

악한 종과 연탄재

2월 18일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사순 시기에 들어섰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는 40일의 기간 동안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을 묵상하며, 이에 동참하기 위해 나눔, 희생, 단식, 금육 등 자선과 절제의 삶이 권고된다. 신자로서 의무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취재하며 알게 된 봉사 모임 ‘연탄재’의 사연은 이러한 마음을 다시 돌아보게 해줬다. 대전교구 하기동본당 신자들을 주축으로 한 연탄재는 14년째 자선 활동을 해오고 있다. 긴 시간 동안 캄보디아의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해 물질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마음도 나눴다. 결연 청소년들의 안부를 묻고, 그들을 만나러 현지로 떠났다. 특별한 지원도 없이 회원들의 자발적인 모금과 봉사로 활동을 이어왔다. 회원들에게서 ‘가진 것을 전부 나누고자 하는’ 연탄재의 온기가 느껴졌다. 연탄재 방석준(요셉) 단장은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악한 종’이 되지 않기 위해 봉사를 한다고 말했다. 복음에서는 주인으로부터 받은 자비를 동료에게 전하지 않은 종이 결국 벌을 받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마태 18,23-35 참조) 이 비유는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자비를 다른 이에게도 전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다. 사순 시기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말이었다. 모임의 이름을 따온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에서는 다음과 같은 행들이 나온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시를 읽고 나니 연탄재의 사연과 복음 속 비유가 더욱 와닿았다. 하느님께 받은 것을 더 나눠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악한 종이 아닌, 연탄재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발행일 2026-03-01 제3480호 23면

고(故) 황복만 수사를 기억하며

살레시오회 황복만(필립보 네리) 수사가 2월 5일 선종했다. 2019년부터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의 쓰레기 매립장에서 지내는 현지 아이들을 위해 직업전문학교를 운영해 온 선교사다. 최근 테테레(Tetere)라는 공동체로 부임한 지 열흘 만에 뇌출혈로 하느님 곁으로 갔다. 고인을 만난 건 2024년 12월 서울 신길동 살레시오 한국관구에서였다. 그는 휴가를 얻어 한국에서 잠시 쉬던 중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였음에도 황 수사는 곧 돌아갈 선교지에 대한 부푼 계획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공간이 없어 아이들 수업을 체육관에서 하는데, 건물을 따로 지을 거고 지원도 받아야죠! 뭐 건물이라 해도 컨테이너지만 그게 어디겠어요?” 여러 질병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 주는 게 바람이라던 황 수사. 그곳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정작 자신의 건강은 챙기지 못했던 것 같다. 젊은 선교사에게도 고된 낯선 오지에서 자신의 한 몸을 다 바친 것이다. 인근에 한국인 선교사도 거의 없는 현지에서의 삶이 외로웠을 법하다. 하지만 선교 이야기를 하는 내내 황 수사의 눈은 그 어떤 청년들보다도 생기가 가득했고, 미소는 천진난만했다. 휴가 때 그를 진료한 의사의 만류에도 왜 선교지 복귀를 고집했는지 알 것 같다. 그렇게 작년 겨울 한국에서의 휴식은 황 수사의 마지막 휴가가 됐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선교지에서 눈을 감았다. 편하고 안락한 한국에서의 휴가 중에도 온통 선교지의 쓰레기 매립장의 아이들만을 생각하던 그를 보며, ‘선교 사명’이란 결국 자신이 가는 곳에 대한 사랑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어린이처럼 순수했던 황복만 수사의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발행일 2026-02-15 제3479호 23면

세상을 따스히 밝히는 이들

주일 오전 6시30분. 아직 세상은 깜깜하다.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영하 10도를 오가는 맹추위를 뚫고 그분들도 오고 계시겠지. 성가소비녀회에서 운영하는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의 무료 병원인 ‘성가복지병원’에 도착하니 마침 봉사자분들이 작업복을 입고 시작기도를 하려던 중이었다. 졸음 가득한 기자와 달리 너무나 밝은 얼굴이다. 이곳에는 10년 넘게 주일 아침마다 봉사를 하는 부자(父子)가 있다. 아버지 유병상(안드레아) 씨와 아들 유현재(니콜라오) 씨가 현재 담당하는 일은 병원 2층 전체 청소다. 능숙하게 청소 도구를 잡은 이들은 바로 자기 담당 자리로 흩어져 묵묵히 청소에 열중했다. 일이 마무리되자 인터뷰가 이어졌다. 두 부자는 “신문에서 취재하러 오니 오늘은 더 열심히 일한 것 같다”고 소탈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야기 중 아들 현재 씨가 “수녀님과 저희와 함께하는 봉사자들의 격려와 배려가 큰 도움이 됐다”며 “다른 곳에서도 팀워크를 이룰 때 적극적으로 나서는 자세와 책임감을 체득할 수 있었다”고 전한 말이 큰 울림으로 남았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역시 헤아려 주는 관심, 따뜻한 감사와 격려 그리고 서로 위하는 마음이다. 이렇게 또 한 번 배운다. 1990년 무료 병원으로 전환한 성가복지병원은 정부 보조금 없이 후원자들의 후원금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꾸려가고 있다. 또한 무료 급식소 ‘쉼터’도 운영하며 독거노인이나 노숙자들에게 매주 두 차례 따뜻한 점심 식사를 제공한다. 이런 곳이 존재하기에 따스한 햇살이 세상을 다시 비추는 것 아닐까? 어느덧 밝아진 바깥을 향해 문을 나선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7)

발행일 2026-02-08 제3478호 23면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

“넌 절대로 내가 있는 곳까지 추락하지 못해.” 가스라이팅 성 학대 피해와 치유를 다룬 문제작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를 꿰뚫는 대사다. 피해자 제르미의 반복적 외상 침습, 파멸로 치닫는 삶, 곁을 지켜준 이를 통한 회복 과정을 그렸다. 작중 제르미는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희생정신 때문에 성 학대 피해로 내몰렸다. 이처럼 죄 없이 극형을 받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가자 지구 피난민 이스라는 한밤중 폭격 피해로 오른손과 다리를 절단당했다. 회복도 못 한 소녀가 병원에서 마주한 건, 살아남음조차 원망하게 되는 절망뿐이었다. 폭격 직전만 해도 담소를 나누던 동생의 싸늘한 주검이었다. 2025년 전 세계 50개국 넘는 분쟁 지역의 사망자 25만 명, 강제 이주민 1억2210만 명의 현실이다. 신의 부재만이 압도하는 세상에서, 서로 사랑하는 인간들을 통해 현존을 드러내는 하느님을 찾았다. 1월 22일 인보 성체 수도회 서울 수도원에서 만난 농아 심재기(91·루치아) 수녀 인터뷰에서였다. 농아임에도 스스로 세례받고, 성소를 갈망하고, “나를 불러주고 받아주신 하느님과 수녀님들을 사랑한다”며 50년 이상 수도복 재봉 소임을 다한 심 수녀, 둘만의 수신호까지 만들어 소통했던 40년 단짝 고(故) 신봉립(안토니아) 수녀, 손짓과 수어를 조금이라도 익혀 소통했던 가족 수녀들의 사랑 이야기였다. 제르미는 의붓형 이안의 동행으로 파멸을 면했다. 학령기가 되면 퇴소해 ‘엄마 수녀님’과 생이별하고 또다시 버림받게 되는 해성보육원 아이들을 위해 가톨릭아동청소년재단이 그룹홈 2개소를 열고자 분투 중이다. 우리는 어떤 신이 지배하는 세상을 살고 싶은가.

발행일 2026-02-01 제3477호 23면

생명을 살리는 말

올해부터 수원교구 주보 1면에 복음 캘리그라피 작업을 하는 박경희 작가는 매일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캘리그라피 작업을 한 성경 구절을 올리고 있다. 20자 남짓한 짧은 구절. 작가는 그 짧은 구절을 쓰기 위해 한참 동안 기도하고 사람들 마음에 잘 닿을 수 있게 고민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간다고 말했다. 쓰는 이의 정성과 마음을 더해 새롭게 완성된 하느님 말씀은 보는 이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마음이 맑아지는 기쁨을 준다. 종이에 인쇄된 글자에 불과했던 하느님 말씀은 이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때 생명력을 얻고 선한 마음을 퍼뜨리는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4년 하느님의 말씀 주일 강론에서 “사회 속 소셜미디어들이 언어의 폭력성을 떠올리게 할 때, 우리는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조용한 말씀에 가까이 귀 기울이고 그 말씀을 묵상하자”고 요청했다. 미디어를 통해 수많은 말을 보고 듣는 사람들. 날카롭고 뾰족한 말은 때로 누군가가 생을 포기하게 하기도 하고, 더 많은 나쁜 말을 양산해 이 세상이 살아갈 만하지 못하다고 여겨지게 한다. 성경 속에 덮여 있는 말은 힘이 없지만, 세상에 꺼내 놓았을 때 비로소 생명을 살리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느님 말씀의 가치를 알고 있는 우리다. 하느님의 말씀 주일을 보내며 “우리는 예수님보다 우리 자신에 대해 더 많은 말을 하는 것을 멈추고, 우리 자신의 생각이나 문제보다 예수님과 그분의 말에 집중하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을 실천하면 어떨까.

발행일 2026-01-25 제3476호 23면

“신자세요?”

사람을 함부로 갈라서 생각하면 안 될 일이다. 그런데 가톨릭신문 기자로 살다 보니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는 몹쓸(?) 사람이 되고 말았다. 두 부류란 바로 ‘신자’와 ‘비신자’다. 만나는 사람은 물론이고, 미디어에 나오는 사람들이 신자인지도 궁금하다. 사적인 자리에서도 대화 속 인물에 대해 혼잣말로 “신자인가?”하고 되뇌다가 “직업병”이라며 핀잔을 듣곤 한다. 그 직업병 덕분에 찾은 취재원도 여럿이다. 신자인지 알아보는 쉬운 방법은 “성당을 다니는지”를 묻는 것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보통 “교회 다닌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례명’까지 있다면 확실하다. 다만 ‘가톨릭’인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정교회나 성공회 신자들도 ‘성당’을 다니고, ‘세례명’이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신입 기자 시절 ‘세례명’까지 있는데 가톨릭 신자가 아닌 걸 알고 속으로 당황한 기억이 있다. 성사로서 세례를 거행하는 정교회와 성공회의 세례는 가톨릭교회에서도 유효하다. 일부 개신교회의 세례도 그렇다. 가톨릭교회도 이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그리스도교 신자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갈라진 형제’라 부른다. 교회는 “가톨릭 신자들이 일치 활동에서 갈라진 형제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가르친다.(「일치교령」 4항) 물론 갈라진 형제들은 가톨릭교회의 성사에 참여할 수 없고, 서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도 많다. 그럼에도 우리가 ‘일치’를 말하는 이유는, 역시 우리가 믿는 주님이 ‘한 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1)라고 하신 예수님의 기도를 잊지 말아야겠다.

발행일 2026-01-18 제3475호 23면

새해를 맞이하며

지난 12월 24일 운전 중이던 기자에게 ‘기쁜소식 출판사’ 전갑수(베르나르도) 대표가 전화를 걸었다. 수원교구 천리본당 이영호(베르나르도) 총회장이 얼마 전 갑자기 선종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가톨릭신문 지면을 통해 이 총회장의 삶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이 총회장 이름을 들었을 때는 생소했지만 「독립군 의민단」을 쓴 작가이자 교회사 연구자라는 설명을 듣고 ‘아, 그분’이라고 떠올릴 수 있었다. 75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본당의 모든 미사에 참례했고, 교회사를 파헤친 저술 활동도 계속 이어갔다고 한다. 이 총회장과 소신학교 동문인 변진흥(야고보) 박사가 신문사로 보내온 추모글을 읽으면서 이 총회장이 타고난 성실성과 의지로 평생을 산 인물이고 그렇기에 사후에도 그의 삶이 많은 이에게 기억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025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는 서울대교구 신도림동본당이 생명분과 주관으로 ‘하늘나라 기도편지’를 미사 중 봉헌하는 과정을 취재했다. 처음에 본당 주보에서 ‘하늘나라 기도편지 봉헌’이라는 공지를 보았을 때, 궁금증이 일었다. 하늘나라 곧, 하느님께 하고 싶은 말을 적어 쓴 편지가 하늘나라 기도편지였다. 자필로 쓴 50여 통의 편지는 저마다 글씨체는 달랐지만 그 안에 담긴 간절함은 하나같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앞둔 시점이어서 그런지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을 그리워하는 편지들이 여러 통 보였다. 그리움의 대상에는 부모님은 물론, 형제자매와 자녀도 있었다. 이영호 총회장처럼 많은 이에게 기억되지 않더라도 남겨진 가족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이를 기억한다면, 산 이와 죽은 이 모두에게 소중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발행일 2026-01-11 제3474호 23면

본질의 자리

수도원 순례를 20년 가까이 이끌어온 사제를 인터뷰하고 돌아오는 길에, 머릿속에 남은 것은 특정한 답변이 아니라 하나의 감각이었다. 이 여정이 오래 지속된 이유에 대한 설명은 충분했지만, 끝내 마음에 남은 것은 ‘왜 수도원을 찾는가’라는 물음이었다. 그것은 개인의 취향이나 영적 체험의 차원을 넘어, 그리스도교 신앙이 무엇으로 이어져 왔는지를 되묻게 하는 질문이었다. 그가 이끈 수도원 순례의 방향은 일관됐다. 오랜 시간 이어졌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의미인 것은 아니었다. 수도원은 무언가를 더하는 공간이 아니라, 군더더기처럼 덧붙여진 것들을 하나씩 걷어내며 본질을 드러내는 자리였다. 그래서 이 순례는 수도원을 통해 신앙의 핵심과 원천, 목표와 길을 다시 확인하려는 과정에 가까웠다. 인터뷰를 하면서 오래된 수도원이 지닌 힘을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 완벽한 복음적 가치를 살아보고자 했던 열망에서 출발한 수도원에서, 수도자들은 넘어지고 실패하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삶을 반복해 왔다. 복음적 완덕은 단번에 성취된 이상이 아니라, 인간의 나약함을 끌어안고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선택들의 축적 속에서 형성돼 왔다. 그 시간의 두께가 수도원의 영성을 이루었다. 이렇게 볼 때 수도원 순례는 과거를 향한 향수가 아니다. 종교가 선택지처럼 소비되는 시대에, 신앙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다시 묻는 작업이다. 더 나은 체험을 기대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신앙이 처음 어떤 삶의 형태로 뿌리내렸는지를 확인하는 일에 가깝다. 수도원을 찾는다는 것은 결국 질문을 보존하는 일이다. 교회가 끝내 놓지 않았던 그 본질을 오늘 다시 선택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일이 아닐까.

발행일 2026-01-04 제3473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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