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의 마태오 효과

‘마태오 효과(Matthew effect)’라는 경제 용어가 있다.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 25,29)라는 복음에서 유래했다. 1969년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동일한 연구 성과를 놓고도 저명한 과학자가 무명의 과학자에 비해 많이 보상받는 현실이 이와 같다고 주장하며 처음 사용했다. 무료급식소를 취재하며 오늘날 마태오 효과가 벌어지는 현장을 봤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일어난 후 방위산업체들의 주가 상승 기대가 커졌다. 실제로 발발 직후 주요 방산 기업의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반면 전쟁이 초래한 물가 상승은 누군가의 밥 한 끼를 앗아갔다. 라면 하나, 빵 한 쪽으로 저녁을 때우는 이들에게 그마저도 빼앗아 갔다. 급식소에서 만난 한 이용객은 저녁을 못 먹을 것에 대비해 맨밥만 한가득 퍼 두었다. 동시에 희망도 목격했다. 누군가의 한 끼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이들이 존재했다. 돈이든 물품이든, 가진 것을 내놓는 이가 있었다. 정성스럽게 밥을 차리고 정리하는 이도 있었다. 역시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천 명을 먹인 기적을 실현하는 이들이었다.(마태 14,13-21 참조) 마태오 효과가 다른 뜻을 갖길 꿈꾼다. 하느님 나라의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는 다르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마태 20,16)처럼 말이다. 돈과 권력이 아니라, 누군가의 온기가 더 많은 이익을 불러일으킨다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쓰이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발행일 2026-06-14 제3495호 23면

내일도 같은 시간, 일터로 간다는 것

“직업재활시설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공공 일자리가 장애인 노동의 중심축을 단기적인 공공 참여와 상징적 활동 쪽으로 이동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5월 28일 서울가톨릭장애인복지시설협의회 세미나에서 서울 서초구립 한우리보호작업장 정영수(체레알리스) 원장은 공공 일자리가 내실이 있으려면 직무훈련과 직업적응, 보호고용, 전환지원으로 이어지는 체계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고령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일회성 참여가 아니라, 매일의 리듬을 유지하고 건강 변화에 대응하며 관계와 소득을 지속시키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일자리’라는 말을 다시 생각했다. 우리는 흔히 장애인 일자리의 성과를 참여 인원, 예산 규모, 활동 건수 등 수치로 확인한다. 산술적 참여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직업재활의 본질을 대신하는 순간, 일은 삶을 지탱하는 기반이 아니라 일회성 행사처럼 소비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장애·비장애를 막론하고, 인간에게 일터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삶의 필수 여건이다. 우리는 일터에서 자기 효능감을 찾고, 일상 리듬을 지키며, 돌봄·부양 부담을 덜고, 인간관계를 맺으며, 내일도 같은 시간 출근해 삶을 이어갈 이유를 얻는다. 더욱이 일터는 고령장애인에게는 복지 수혜자 입장을 넘어 존엄하게 늙어갈 수 있게 해주고 돌봄, 건강, 관계, 소득을 종합 보장하는 삶의 축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사회 회칙 「노동하는 인간」도 “인간 노동은 전체 사회문제의 열쇠”(3항)라고 밝힌다. 그래서 기도하게 된다. 장애인 노동이 시혜나 참여 실적을 넘어 ‘인간’이 존엄하게 늙어 갈 수 있는 구조로 자리 잡기를.

발행일 2026-06-07 제3494호 23면

내 목소리와 얼굴을 지키는 방법

2025년 7월 수원교구는 사제들을 대상으로 생성형 AI(AI)의 기본 원리와 활용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AI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폐단을 줄이고 바람직한 활용 방법을 고민하기 위해서다. 기술을 활용해 사목적으로 신자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긍정적 이야기와 방대한 가톨릭 정보 속에서 진짜를 식별할 수 없다는 우려가 공존했다.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났다. 빠르게 진화한 AI 기술은 더 똑똑해졌고 더 정교하게 인간을 닮아갔다. 편리성의 가면을 쓴 이 기술은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왔다. 휴대전화를 켜고 AI를 향해 질문 한마디를 던지면 어려운 일은 쉽게 해결됐다. AI 기술이 가져다주는 달콤함을 누리는 와중에 누군가는 ‘내가 사라질 것 같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는 기술을 사용하면서 우리는 인간다움을 더 갈망하게 된 것이다. 그 고민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5월 21일 수원교구에서 열린 ‘AI 리터러시 통독반’ 강의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였다. 가장 획기적이고 현대적인 기술을 앞에 두고 참가자들은 몇천 년 전 복음이 전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하느님과 관계 맺고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는 인간. 참가자들은 육체와 지성을 가진 인간의 고유함은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AI 시대에 우리가 얼굴과 목소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하느님이 주신 인간의 고유함을 되찾는 것이다. 상상력을 발휘해 생각하고,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연대하고 공감하는 것.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나를 스스로 기억할 때 내 얼굴과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발행일 2026-05-31 제3493호 23면

어른의 교회, 어른인 교회

한국교회의 고령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2019년에 65세 이상 신자 비율이 20%를 넘어섰고, 2025년에는 28.9%에 달했다. 반면 젊은 세대는 줄어, 이제 정작 청년 자리가 비어 있는 청년미사의 씁쓸한 풍경도 다반사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앞둔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취재처에서 만난 한 사제는 “세계 ‘청년’ 대회인데 준비하는 봉사자나 관련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 대부분이 청년이 아닌 ‘어른’”이라며 답답한 속내를 비치기도 했다.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청년위원회가 개최한 토크쇼 ‘홀로, 그리고 같이’도 발표는 청년이 했지만, 행사를 준비한 청년위원회 위원장도, 행사에 온 청중도 청년이 아닌 어른이었다. 청년 없는 청년 행사. 언뜻 모순 같지만 청년의 목소리를 경청하려는 어른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날 발표한 자립준비청년들은 “어른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지자체 등을 통해 여러 지원을 받지만, 정말로 세상에 홀로서는 데 힘이 된 것은 고민을 들어주고, 같이 밥을 먹어주고, 곁에 있어 준 어른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어른의 존재가 어떻게 자립에 도움이 됐는지 증언했다. 그저 어른끼리 모이고 마는 ‘어른의 교회’에는 미래가 없다. 청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년들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어른인 교회’라면 어떨까? 불안과 어려움에 지친 청년들이 기댈 수 있는 어른이 되어준다면 말이다. 박경숙(마르가리타) 청년위원장의 말이 와닿는다. “우리가 이 청년들에게 희망이 되어줄 때, 이 청년들도 우리의 희망이 되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는 청년들에게 ‘어른의 교회’일까 ‘어른인 교회’일까?

발행일 2026-05-24 제3492호 23면

발달장애인 화가 전시회에 다녀와서

서울대교구 가양동본당이 관할구역 내 ‘기쁜 우리 복지관’에서 활동하는 발달장애인 화가들의 작품을 성당 1층 로비에서 전시한다는 소식을 본당 주보 공지에서 보았다. 발달장애인 화가들의 전시 소식은 가끔 접할 때가 있었지만 본당 차원에서 복지기관과 협력해 마련한 전시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아 한 번 더 살펴보게 됐다. 5월 10일 주일 취재에 앞서 기쁜 우리 복지관 홍보 담당자와 통화하면서 이번 발달장애인 화가 전시의 취지와 개요를 먼저 들었다. 복지관에서는 미술 방면에 독특한 재능을 지닌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특성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발달장애인들이 그린 작품을 대중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전시회를 개최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복지관 홍보 담당자는 가양동본당 신자들이 복지관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는 등 서로 인연을 맺어오던 중에 본당에서 발달장애인 화가들의 전시 기회까지 마련해 준 것에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가양동본당 발달장애인 화가 전시회를 취재하면서 가톨릭교회 본당과 지역사회 협력의 소중함과 더불어 무의식중에 가지고 있던 장애인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었다. 유독 본당 여성 신자 한 분이 한 작품 한 작품을 유심히 오랫동안 감상하고 계셨다. ‘최수진 안나’라고 이름과 세례명을 밝힌 그 신자가 직업 화가이거나 미술계에 몸담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이 들어 물었다. 그는 “미술과는 관계없다”고 답하면서 “작품들을 발달장애인이 아니라 ‘화가’가 그렸다고 생각하고 감상했다”는 말을 했다. 발달장애인 화가의 작품은 장애인이 아닌 화가의 작품과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부터가 장애인에 대한 편견임을 문득 깨달았다.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23면

성모 마리아와 아이들

3월의 유럽은 아직 겨울 끝자락이었다. 포르투갈의 파티마, 프랑스의 루르드, 벨기에의 보랭과 바뇌 등 네 곳의 성모 발현지를 취재하는 내내 한 가지 물음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왜 아이들이었을까. 1858년 루르드의 베르나데트 수비루는 열네 살이었다. 아버지는 실직한 방앗간 주인, 가족은 폐기된 감옥 창고에서 살았다. 1917년 파티마의 세 목동 루치아, 프란치스코, 히야친타는 겨우 열 살, 아홉 살, 일곱 살이었다. 양 떼를 몰던 산골 아이들이었다. 1932년 벨기에 보랭의 다섯 아이와 바뇌의 마리에트 베코도 다르지 않았다. 공장 노동자의 딸, 가난한 농부의 자녀들. 세상이 눈길조차 주지 않던 아이들이었다. 마리아 역시 로마 제국의 변방, 갈릴래아 지역 나자렛의 가난한 처녀였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곳, 아무것도 아닌 신분이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바로 그 낮은 자리를 들어 쓰셨다. 발현지의 아이들은 그 선택의 연장선 위에 있는 듯했다.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는 그 아이들에게만 머물지 않았다. 루르드의 샘물은 지금도 수백만 순례자의 발길을 모은다. 파티마의 기도 요청은 교회 전체를 관통해 흐른다. 보랭에서는 "착한 아이들이 되어야 해"라는 단순한 말이, 바뇌에서는 "나는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야"라는 한 마디가 그 발현지 영성의 뿌리가 되었다. 아이들의 입을 빌렸지만, 세상을 향한 말씀이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에 성모님이 찾아가실 '아이들'은 누구일까. 가난하고, 무시당하고, 세상이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 그 자리, 어쩌면 그곳이 지금도 발현의 자리일지 모른다. 마리아는 언제나 낮은 곳을 먼저 아셨으니까.

발행일 2026-05-10 제3490호 23면

우리는 왜, 어떻게 달리는가

‘제17회 성지순례 222 울트라마라톤대회’ 참가자들은 내가 봐왔던 러너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5㎞, 10㎞가 아니라 무박으로 이틀, 길게는 사흘간 달리는 상상하기 어려운 여정이었다. 내가 뛰는 것도 아닌데 괜한 긴장과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앞에 모인 100여 명의 선수들은 달랐다. 긴장한 기색은커녕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내가 힘을 얻는 느낌이었다. 6명의 지인과 함께 참가한 한 그룹이 눈에 띄었다. 그중 가장 해맑게 웃고 있던 참가자에게 물었다. “긴장되지는 않나요. 왜 이렇게까지 뛰시나요. 이번 대회 목표는 무엇인가요.” 구체적이고 거창한 답이 돌아올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겸손히 뛰겠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답이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고 썼다. 고통은 선택할 수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문제라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그 태도는 어쩌면 ‘겸손’과 닿아 있다. 고통을 억지로 이겨내려 하기보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몸의 신호에 귀 기울이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 ‘겸손히 뛰겠다’는 참가자의 말에는, 인생의 고통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오랜 깨달음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가 완주했는지, 중도에 멈췄는지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우리 인생에도 수많은 아픔과 슬픔이 찾아온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어떤 자세로 마주하고, 어떻게 다시 나아갈 것인가다. 우리는 각자 여러 이유로 달린다. 그 길 위에서 언젠가는 그 참가자처럼 삶의 자세를 배우고, 언제 멈추고 쉬어야 하는지도 아는 사람이 되길 희망한다.

발행일 2026-05-03 제3489호 23면

작은 곳에서부터의 평화

평화는 어디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까. 연일 이어지는 전쟁 소식을 접하며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레오 14세 교황은 전쟁을 멈추고 평화로 나아갈 것을 거듭 호소하고 있지만,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총성이 멎지 않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4년째 이어지고 있고,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 간 충돌은 휴전 속에서도 계속된다. 교황이 순방 중인 아프리카 대륙 역시 내전의 상처를 안고 있다. 평화가 멀게 느껴지던 때, 서울대교구 위례성모승천본당과 거여동본당의 행사 현장을 찾았다. 모두 공동체의 화합을 위한 행사였다. 함께한 현장에는 공동체의 사랑이 현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평화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씨앗을 볼 수 있었다. 평화학의 창시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은 저서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에서 평화를 전쟁이나 물리적 폭력이 없는 ‘소극적 평화’와 물리적 폭력의 원인이 되는 구조적 폭력도 없는 ‘적극적 평화’로 구분했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평화는 국가 간 외교나 협상 이전에 일상적 관계 속에서부터 시작된다. 신앙생활에 있어 일상적 관계를 형성하는 곳이 바로 본당이다. 본당에서 시작해 교구, 지역교회, 보편교회 나아가 교회 밖의 존재에게까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한다. 본당 공동체 내부의 화합이 점차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 다녀오고 회의를 거두기로 했다. 본당 공동체가 나누던 사랑이 마음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리스도의 큰 사랑 안에서 빚어낸 작은 사랑이 갈퉁이 말한 적극적 평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게 됐다. 이젠 낙담하기보단 평화가 도래할 수 있다는 희망을 택하기로 했다.

발행일 2026-04-26 제3488호 23면

좌절한 이들의 마지막 보루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개신교 강경 우파는 국내 극우의 대명사처럼 떠올랐다. 하지만 이들이 어떤 계기로 이렇게 갑작스럽게 강경 우파가 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을 계기로 단순히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는 집단을 넘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여겨지기 시작한 다음에야 사람들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4월 11일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센터에서 열린 ‘평화의 눈으로 진단하는 한국의 극우화’ 포럼에서 개신교 일부 신자들이 특히 극우 대열에 집단으로 합류하게 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대형 개신교회 구성원이 중산층화되면서, 경쟁에서 밀린 중하위 계층 중 일부가 개신교 주류를 떠나 이단으로 넘어가거나 극우화됐다는 견해였다. 소외된 계층의 종교 이탈이라는 설명은 천주교에서 일어나는 구성원 변화와 유사했다. 신자의 중산층화는 천주교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중산층화에 대한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공동체를 떠난 이들은 결국 다른 어떤 무언가를 대체재로 삼았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천주교든 개신교든 자존감이 낮아지고 패배감을 맛본 이들에게 종교마저도 안식처가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사실 교회의 중산층화 현상은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어려운 문제다. 현상 자체만 놓고 보면 긍정과 부정 평가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신교의 사례에서 보듯, 종교의 관심 부족으로 밀려난 이들이 이단이나 극우단체와 같은 집단으로 넘어간 사례를 기억해야 한다. 또한 이같이 소외되고 좌절한 사람들의 마지막 보루가 바로 종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발행일 2026-04-19 제3487호 23면

오직 고통받는 신만이

“아내가 살던 마을은 군부의 공습·방화로 잿더미가 됐고, 처남은 불길을 피하다 다리가 부러졌어요. 심장 질환 치료가 시급한 장인어른은 약도 못 구한 채 피난 다니고 계십니다. 군부는 제가 한국에서 시민군을 지지하는 걸 알고 본가를 급습해 형을 납치·고문했어요. 청년들은 강제 연행해 총알받이로 내몰고, 가족 등록부에 없는 사람은 시민군으로 몰아 박해하고 있습니다.” 3월 28일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별사랑이주민센터 수녀들의 이주민·난민 가정 방문에 동행하며 경기도 부천의 한 주택에서 만난 미얀마 난민 쿠알 응아이 망(37) 씨가 들려준 미얀마 내전의 참상이다. 수녀들 도움으로 난민 신청 등 할 수 있는 모든 싸움을 이어가는 부부의 품에는 4살과 15개월 된 두 아들이, 고향에서 일어나는 학살과 가족 앞에 드리운 죽음을 전혀 모르는 얼굴로 안겨 있었다. 미얀마 내전은 인도차이나의 먼 땅에서 6년째 진행 중인 참상을 넘어, 바로 우리 곁에 숨어 지내며,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숨을 쉬는 비극이었다. 어떤 간절한 기도만이 힘이 될까. 개신교 목회자인 쿠알 씨는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치 독일에 저항하던 끝에 감옥에서 순교한 그는 「옥중서간」에서 “오직 고통받는 신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고 남겼다. 빛이 아니라 오히려 어둠 속에서 완결된 그 믿음은 이데올로기화한 신에 대한 맹신도, 죄책감 따위가 동기가 된 종교적 집착도 아니었다. 똑같이 고통받는 인간과 하느님이 서로의 짓무른 상처를 닦고, 구원을 주고 받는 관계를 넘어, 경계 없이 동화된 사랑이었다. 그 순간, 부천시 어느 주택에서 네 사람의 모습으로 내 앞에 숨 쉬고 계신 하느님을 발견했다.

발행일 2026-04-12 제3486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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