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글 쓰는 의사’ 윤홍균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윤홍균 원장(토마스 아퀴나스·서울대교구 상암동본당)이 2016년 출간한 「자존감 수업」은 140쇄 100만 부를 돌파했다. 대한민국에 ‘자존감 열풍’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아시아, 유럽, 중동, 북미 30개 국가에서 번역 출판되며 ‘전 세계가 선택한 자존감 교과서’로 불린다. 윤 원장은 이후 「사랑 수업」, 「마음 지구력」 등의 책을 펴내며 꾸준히 사람들의 마음 곁을 지켜왔다. 열등감과 불안, 상처가 쌓여가는 세상에서 어떻게 나를 북돋우고 사랑할 수 있을까. 자존감과 신앙, 마음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조카를 대하듯, 나를 대하라 그가 사람의 마음에 관심을 두게 된 출발점은 언제나 자신의 마음이었다. ‘마음이 왜 이렇게 힘든지’,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좀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 정신과로 이끌었다. 수많은 이론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붙든 핵심어는 ‘자존감’이었다. 내 마음을 달래려고 시작한 공부였는데, 결국 그 답이 전 세계 독자들과 맞닿았다. 자존감이라는 말은 이제 익숙해진 단어지만, 막상 ‘나를 사랑하라’고 하면 당혹해하는 이들이 많다. “‘이웃을 사랑해라’, ‘부모님을 사랑해라’ 등 ‘사랑하라’는 얘기는 평생 들었습니다. 거기에 목적어로 ‘나를’ 붙이니까, 주어와 서술어는 익숙한데 목적어가 낯선 거죠.” 해법은 복잡하지 않다. 조카가 태어났을 때를 떠올리면 된다. 성적이 떨어져도 미워하지 않는 그 마음, 시험에 떨어진 조카에게 “최선을 다했잖아, 다음 기회가 있어”라고 해주는 것처럼,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주면 된다. 윤 원장은 “다들 이미 해본 것이고 받아본 것이어서, 대상만 치환시키면 된다”고 했다. 자존감과 자기애(나르시시즘)의 차이에 대해서도 분명히 했다. “자기애가 나만 사랑스럽고 남은 배제하는 것이라면, 자존감은 나를 돌보는 힘이 세져서 결국 타인을 더 잘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예수님의 빵 나눔을 떠올렸다. “예수님이 빵을 나눠주실 때 굶으시면서 나눠주셨다는 내용은 없어요. 제자들 빵을 뺏어서 준 것도 아니고요. 나를 잘 보살펴서 건강해지면 남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자존감이 이 시대에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다. 가족과 지역 공동체의 연대가 느슨해지고 경쟁이 가속화되는 시대다. SNS로 소통은 넘쳐나지만 정작 누구에게도 잘 털어놓지 못하고 각자의 고민 속에 버거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자존감을 ‘정신 건강의 척도’라고 부르는 이유다. 환경이 좋지 않을수록 건강한 마음으로 무장한 자신이 가장 좋은 무기다. 윤 원장은 책에서 “건강한 자존감은 이런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강력한 스펙”이라고 썼다. 사실 윤 원장이 가장 쓰고 싶었던 책은 「자존감 수업」이 아니라 그 뒤에 출간된 「사랑 수업」이었다고 한다. 사랑을 하지 못해서, 사랑받지 못해서 받는 상처가 모든 마음 상처의 시작이자 해결점이어서다. 그 얘기를 하려다 보니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이야기부터 하게 됐고, 그래서 「자존감 수업」 안에 그 씨앗을 미리 심어두었다. 그가 독자들에게 가장 닿기를 바라는 대목은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며 사는 것, 누구나 바라지만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그 길을 함께 바라보고 꿈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하느님이 날 사랑하신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때 하느님 사랑과 자존감의 관계를 물었다. 미국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M. 스캇 펙이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인생을 ‘지도’에 비유한 것을 예로 들었다. “삶의 롤 모델이 있고, 그 롤 모델처럼 살면 된다고 알려주는 말씀이 있으면 인생이 뚜렷해집니다. 재산, 학력, 명예 등 세속적인 기준 안에서도 신앙인들은 ‘내가 추구하는 것이 이런 모습이다’라는 목표가 있으니까, 외롭지도 지루하지도 않고 방향을 잡기도 쉽죠.” 그는 현실도 솔직하게 짚었다. “하느님이 날 사랑하신다는 것, 잘 안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누군가 나를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이 출발점이 될 수 있어요. 가끔이라도 ‘하느님이 날 사랑하시는 것 같네’라고 느끼는 순간, 그것이 인생의 정거장 혹은 안전지대가 돼 줄 수 있다고 봅니다.” 글 쓰는 의사 의사이자 작가, 강연자, 방송인 등 여러 역할을 함께 해오고 있지만, 윤 원장은 자신의 정체성을 ‘글 쓰는 의사’로 규정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1년짜리 글쓰기 과제를 계기로 글을 좋아하게 됐고, 동화를 완성해 본 경험도 있다. 이후 소셜 미디어에 꾸준히 글을 써왔고, 지금도 진료 후와 주말 저녁 등을 글쓰기 시간으로 확보한다. 예수님은 그의 글쓰기 스승이다. ‘주님의 기도’를 군더더기 없는 명문이라고 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이 부분은 ‘용서받으려고 했더니 이미 나는 해버렸네.’ 이런 구조잖아요. 작가로서 참으로 탐나는 구절이죠.” 예수님을 의사로서의 스승으로도 여긴다.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떠올리며, “친절한 말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낫게 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100만 부 베스트셀러의 성공과 명성, 신앙 사이에서 그는 ‘부채 의식’을 긍정적으로 품고 산다. “많은 이에게 받은 사랑에 상응하는 나눔과 봉사를 생각한다”며 ‘뭔가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밥 살 각오’를 해야 한다는 비유로 설명했다. 본당이나 교회 기관의 강의 요청에 가능한 한 응하는 것도 그런 마음가짐의 일환이다. “가톨릭이 좋고 성당에도 가고 싶지만, 신앙과 교리는 잘 모르겠다는 분들을 위해 ‘신앙 초보자 길잡이’ 같은 책도 언젠가 써보고 싶다”는 그는 “한국 사회에서 비중이 커지고 있는 다문화 가족들을 돕는 방안도 구상 중”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마음 건강 비결을 청했다. 단번에 돌아온 답은 ‘잠’이었다. 밤 11시 전후로 잠들고, 오전 9시 이전에 일어나 햇볕을 쬘 것. 신앙인들에게는 한 가지를 더 권했다. “성가를 많이 들으세요.” 윤 원장은 현재 중독과 ‘끊어내기’를 주제로 한 새 책을 집필 중이다. 자존감과 더불어 ‘중독’은 그의 주요 관심 분야다.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 새로운 수도회의 시작, 라테라노 성전의 꿈

다미아노 성당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직후 프란치스코의 회개의 행동은 빨랐습니다. 아버지에게 받을 유산을 가난한 아시시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복음적 삶을 살겠다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아버지로부터 심한 질책과 감금을 불러왔고, 결국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의 극단적인 결단으로 이어졌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미친 프란치스코를 집으로 데리고 올 수 없음을 깨달은 아버지는, 사법권을 가지고 있던 아시시의 귀도 주교에게 프란치스코가 자신의 재산을 더 이상 쓰지 못하도록 재판을 청하였습니다. 조토 디 본도네의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장면들>을 통해 이후 프란치스코의 행보를 살펴봅니다. 이상하고도 재미있는 이 재판을 보기 위해 아시시의 어린아이들까지 모여들었습니다. 주교좌였던 성모 마리아 대성당 광장 한가운데서 맨몸의 프란치스코는 손과 시선을 하늘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곳 구름 사이로 나타난 하느님의 손은 지상과 천상이라는 대비되는 상황을 위아래로 보여줍니다.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손을 바라보며 육적인 아버지에게 세상과의 결별을 선언합니다. “이제부터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겠습니다.” 프란치스코가 벗어준 옷을 받으며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격분합니다. 그는 오른손 주먹을 불끈 쥐고 한 발을 내디디며 프란치스코를 한 대 때릴 기세입니다. 하지만 뒤에 있던 아내이자 프란치스코의 어머니 피카 부인은 프란치스코의 뜻을 알아차린 듯 남편의 손목을 꽉 잡으며 말리고 있습니다. 반면 프란치스코의 신앙심과 알몸에 놀란 귀도 주교는 자신의 망토로 프란치스코를 감싸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옷을 벗어 알몸이 된 것은 세상을 포기하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그 알몸을 감싸 주는 주교의 망토는 프란치스코가 교회의 사람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이러한 대치되는 상황은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왼편에는 부자들인 세상 사람들이 서 있고, 프란치스코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교회의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당시 건물들의 모습은 현실감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하늘에 보이는 하느님의 손은, 마치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받고 올라오실 때 울려 퍼졌던 말씀처럼, 하느님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프란치스코에게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프란치스코는 1209년과 1210년 사이 수도회 인준을 받기 위해 로마로 갑니다. 당시는 십자군 전쟁을 통해 교황의 힘이 세속 권력 위에 군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교회 가난의 중요성을 외쳤던 사람이 프란치스코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하며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프란치스코와 형제들 또한 같은 위험에 처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부자들의 자식들이었던 프란치스코와 형제들이 마을을 떠돌며 구걸하는 모습을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교와 구걸을 나갔던 형제들이 매를 맞고 돌아오는 일이 허다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복음적 삶을 살며 형제들을 보호할 방법은 수도회 인준뿐이었습니다.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을 알현하고 자신들의 수도 생활을 적은 새로운 회칙에 대한 인준을 청하였지만, 몇몇 추기경들은 프란치스코의 생각이 너무나 새롭고 실현 불가능하다고 여겼습니다. 결국 교황은 잠시 생각하기 위해 당신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깜빡 잠이 들며 꿈을 꾸게 됩니다. 꿈속에서 교황은 모든 교회의 어머니이자 머리인 라테란 성전이 기울어져 가는 것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거지 한 명이 나타나 자신의 어깨로 기울어 가던 라테란 성전을 떠받쳐 다시 세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거지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조금 전 자신을 알현하였던 프란치스코였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교황은 프란치스코와 그의 형제들을 황급히 불러들입니다. 교황의 축복 없이는 황제가 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권한을 지니고 있던 교황은, 가장 가난하고 가장 겸손한 프란치스코의 새로운 회칙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이를 구두로 인준하며 오른손으로 축복했습니다. 사실 수도회 인준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인준 이전에는 반드시 증명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증명은 성령 하느님께서 해주시는 것입니다. 창립자의 카리스마로 시작되는 수도회에 얼마나 많은 회원이 늘어나는지, 그리고 그 카리스마를 통해 얼마나 많은 성령의 열매가 맺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지를 오랜 시간 두고 지켜봅니다. 교회는 새로 시작되는 수도회 안에서 성령 하느님께서 활동하시는 것을 확인한 뒤 인준합니다. 그러기에 수도회 인준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에게는 그러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의 순간적인 꿈을 통해 모든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준서를 써 줄 시간도, 필요도 없었습니다. 교황은 프란치스코가 가져온 회칙을 받으며 구두로 인정해 줍니다. 이로써 베네딕도 수도회가 탄생한 지 700년 만에 새로운 정신의 수도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설교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고, 수도회 생계를 이어가는 방법으로 하느님의 자비와 섭리에 온전히 의탁하는 구걸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탁발 수도회’ 혹은 ‘설교자 수도회’라고 부르게 됩니다. 강력한 힘만이 교회의 평화를 가져온다고 모두가 말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나눔의 밑바탕인 가난과 성경 안에 보여주신 예수님 삶의 재실천만이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느님께서 이를 인준해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수도원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이 인준이 곧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

발행일 2026-03-15 제3482호 13면

[사순 특집] 숫자로 만나는 사순(3) - 일곱 가지 죄 ‘7’

사순 시기를 지내며 회개의 시간을 보내는 우리에게 ‘7’은 죄를 성찰하게 해주고, 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한 무한한 용서를 기억하게 해주는 숫자다. “행운의 7”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여러 문화권에서 7은 긍정적인 의미로 통한다. 그리스도인에게도 7은 중요한 숫자다. 성령의 은사도 일곱, 성사도 일곱이다. 하느님께서는 천지창조 때 이렛날에 쉬셨기에, 일곱 날을 기준으로 일주일을 지내고, 희년도 일곱 해의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다음 해인 50년을 기준으로 한다. 이렇듯 교회 안에서 7이 자주 쓰이는 이유는 이 숫자가 ‘완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7이 꼭 긍정적인 의미에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바로 죄종(罪宗)의 수가 일곱인 것이 그렇다. 칠죄종은 다른 많은 죄의 원인이 되는 일곱 가지 죄, 바로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를 말한다. 우리가 고해성사에서 고백하는 모든 죄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일곱 가지 죄종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만큼 판공을 하는 우리가 자신의 악습을 성찰하는 데도 죄종을 돌아보는 일은 중요하다. 특히 하느님께서 주신 것 이상으로 자신을 높이는 교만은 “모든 죄의 단초”, 물질적인 것에 대한 지나친 애착인 인색은 “모든 죄의 뿌리”라고 불리는 죄종이다. 성적 쾌락, 음식·술 등은 필요한 욕구지만 이를 무질서하게 탐하면 음욕과 탐욕으로 이어진다. 다른 사람의 선을 마치 자기의 악으로 받아들이는 질투, 정당하지 않게 타인을 벌하려는 분노, 선을 얻기를 거부하는 나태 등에서도 다른 죄들이 생겨난다. 7은 또한, 죄를 고해하는 이유가 우리의 고해에 앞서 하느님의 용서가 있었기 때문임을 묵상하게 해준다. 4개 복음서에 걸쳐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은 모두 일곱 말씀으로 가상칠언으로 불린다. 이 가상칠언의 첫 말씀이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이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십자가 나무 위에서 거룩하신 당신 수난으로 우리에게 의로움을 얻어주셨다”며 우리 죄를 지고 십자 나무에 달리신 예수님의 희생 제사를 설명한다.(「의화에 대한 교령」 제7장) 그리고 또 7은 이러한 용서가 무한함을 기억하게 한다. ‘주님의 기도’에 담긴 일곱 가지 청원 중에는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는 청원이 담겼다. 또한 예수님은 형제가 죄를 지으면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루카 17,4)라고 7이란 수를 사용해 용서에 대해 가르치신다. 교회는 이 말씀을 두고 “본질적으로 하느님의 용서는 한도 없고 끝도 없다”고 말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845항)

발행일 2026-03-15 제3482호 4면

[사순 특집] “올해 사순에는 ‘미디어 단식’ 도전해 보세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손이 먼저 움직인다. 알람을 끄고 카톡을 확인하고 뉴스 헤드라인을 훑는다.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우리는 이미 수십 개의 메시지와 이미지 속에 잠겨 있다. 출퇴근길에서, 식탁에서도, 잠들기 직전 이부자리에서도 휴대폰 화면은 하루의 빈틈을 거의 남김없이 채운다. 2025년 기준 전 세계인은 하루 평균 약 6시간30분 이상을 인터넷 사용에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디지털 통계 리포트 「디지털 2025: Global Overview Report」에 따르면 전 세계 인터넷 이용자는 55억6000만 명, 소셜미디어 이용자는 52억4000만 명에 이른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4 인터넷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이용자의 주간 평균 이용 시간은 20.5시간, 하루 약 3시간 수준이다. 특히 10~40대는 평균보다 더 오래 사용해 실제로는 하루 4시간 안팎을 인터넷과 모바일에 쓰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처럼 미디어가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대에 “올해는 무엇을 끊을까”라는 사순의 물음에 ‘미디어 단식’은 오늘의 현실을 가장 정직하게 비추는 답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형태의 금식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2년 사순 담화에서 ‘욕망이 죄로 우리를 이끄는 여러 길들 중 하나’로 디지털 미디어 중독을 지적하며, “이것이 인간관계를 빈곤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문자 메시지, SNS, 영상·게임 중독 등이 대면 관계와 진정한 만남을 해치는 요인이 됨을 우려하면서, 동시에 사순 시기를 “이러한 유혹들을 저지하고, 진정한 대면의 만남을 통해 더 온전한 인간적 소통을 키우는 시간”으로 초대했다. 레오 14세 교황의 올해 사순 담화는 ‘단식’을 언급하며 ‘말’의 절제를 강조한다. 직접적으로 ‘미디어 중독’이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지만, “이웃을 불쾌하게 하고 상처 주는 말을 삼가라”는 내용 속에서 소셜 미디어와 정치 담론 속 폭력적인 언어 또한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런 흐름에서 필리핀 주교회의(CBCP)가 2026년 사순을 앞두고 내놓은 사목 서한 「음식을 넘어선 단식: 디지털 미디어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기(Fasting Beyond Food: Inviting Christ into Digital Media Use)」가 주목을 받는다. 필리핀 주교회의는 “디지털 기술은 선물이지만, 과도한 사용은 주의를 빼앗고 기도에 집중하는 능력을 약화하며, 침묵과 관계를 위축시킨다”며, 디지털 미디어 단식을 현대적 회개의 표현으로 실천할 것을 촉구했다. 기술을 주인 자리에서 끌어내려 도구로 되돌리는 것, 그것이 미디어 단식 실천의 목표다. 일상을 파고든 AI의 현실 속에서도 되새겨볼 만한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작게 시작하라 미디어 단식을 마음먹었다면, 먼저 자신의 사용 습관을 점검하고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미국 가톨릭 언론 「내셔널 가톨릭 레지스터(National Catholic Register)」는 ▲미디어 사용 점검표 작성 ▲문제가 되는 앱과 기기 파악 ▲과도한 사용을 유발하는 계기 확인 ▲휴대전화·컴퓨터·태블릿의 스크린 타임 기능 확인 등을 통해 자신의 미디어 사용 패턴을 먼저 파악하라고 권한다. 아침에 일어난 직후와 잠자리에 들기 전, 스크린을 끄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김용은 수녀(제오르지아·살레시오수녀회)는 “잠자기 전은 뇌가 하루를 정리하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며, 아침에 일어나 마주하는 것은 그날 하루의 정서를 움직일 수 있다”며, “5분이라도 잠시 멈춰서 성경 한 구절을 읽는다든지, 성호를 긋고 기도해 보는 노력을 한다면, 하루는 물론 사순 시기가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필리핀 주교회의가 제시한 미디어 단식 실천 방식도 거창하지 않다. ▲아침·취침 직전 폰 사용 줄이기 ▲식사 시간에는 기기 내려놓기 ▲하루나 주말 동안 24시간 디지털 금식 ▲그 시간을 기도·성경·가족 대화·봉사에 쓰기 등이다. 미국 애링턴 교구는 2025년 3월 28일을 ‘교구 디지털 금식의 날(Diocesan Day of Unplugging)’로 공식 지정하고, 이날 하루 동안 디지털 화면과 기기를 끄고 기도와 가족·이웃과의 관계에 투자하는 단식을 제안한 바 있다. 이처럼 교구·본당·단체 차원에서 함께 실천할 때 미디어 단식은 더 큰 효과를 낸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다.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는 2020년 3대 실천 과제 중 하나로 ‘스마트폰 쉼 운동’을 선정하고, 사순 시기를 기해 교구와 연계한 시범 본당 운영 계획을 밝히는 등 신앙 안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문화 조성에 앞장섰다. 김민수 신부(이냐시오·서울대교구 상봉동본당 주임)는 예수님이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디지털 시대에 구현하기 위해 본당에서 여러 차례 ‘사순 시기 디지털 금식 캠페인’을 진행한 바 있다.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을 정하기’, ‘한 번에 20분 이상 SNS 금지’ 등을 구체적 방법으로 제시했다. 김 신부는 "본당 공동체가 디지털 금식 선서를 하고 캠페인에 동참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함께하는 과정에서 파급 효과가 더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미디어 단식은 기계에 종속되지 않고 주체성을 확보한다는 뜻에서 중요하고, 절제를 통해 아날로그적인 활동을 함께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신앙인들은 성체조배나 성경 필사 등을 통해 미디어에 쏟는 시간을 하느님을 향한 시간으로 돌려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발행일 2026-03-15 제3482호 10면

[사순 특집] ‘사순 시기’, 절제하고 단식하는 이유는?

사순 시기 단식의 출발점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준비하고 그 신비에 동참하기 위해서다. 이 관습은 초대교회부터 시작됐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신 것(마태 4,2)과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40일 단식한 구약의 전통(출애 34,28)이 그 뿌리다. 「가톨릭대사전」은 이 시기의 고행과 단식은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와 연관을 가질 때 그 뜻이 살아난다”고 설명한다. 사순 시기가 원래 세례 준비자들의 정화 기간이었으며, 기존 신자들도 함께 단식하며 부활을 준비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단식의 의미는 네 가지로 요약된다. 신학적으로는 ▲인간 존재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하고, 실존적으로는 ▲삶을 더 진지하고 책임 있게 살겠다는 선택과 투신이다. 임상적으로는 ▲욕망으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며, 참회적으로는 ▲죄에 대한 참회와 회개, 마음의 정화를 뜻한다. 절제 역시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절제를, ‘욕구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 성숙에 봉사하도록 적절히 조절하는 긍정적 덕목’으로 이해했다. 예언자 이사야는 “굶주린 이에게 나눠 주고, 억울한 이를 풀어 주는 것”(이사 58,6-7)이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단식이라고 선포했고, 베드로 크리솔로고 성인은 “단식은 기도의 영혼이며, 자선은 단식의 생명”이라고 가르쳤다. 교부들도 자선과 연계되지 않는 단식은 가치가 없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올해 사순 담화에서 단식을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우리 자신을 준비하는 구체적인 길”로 정의하며, “음식의 절제를 통해 육체적 욕구를 조절하고, 하느님과의 친교를 깊게 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발행일 2026-03-15 제3482호 10면

[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교회와 함께 민족과 함께] (41) 전주교구 문정현 신부 납치 사건

“전주교구 문정현 神父 피랍 15시간 - 15시간 불법 강제 피랍에 항의, 단식에 들어갔던 전주교구 장계본당 주임 문정현 신부가 단식 7일째인 21일 당국이 정식 사과함으로써 단식을 풀었다. 이와 함께 20일부터 가톨릭센터에서 집단 단식 농성 중이던 일부 성직자 및 평신도 40명도 ‘사과’를 듣고 해산했다. 5·18민주화운동 5주기를 앞둔 15일 오전 9시30분경 문 신부를 강제 납치, 88고속도로를 거쳐 동해안 고속화도로를 경유, 경북 백암온천 입구까지 연행했다가 16일 새벽 1시경 장계성당에 돌려보낸 기관원들은 문정현 신부의 단식을 필두로 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평신도사도직협의회의 항의가 강력해지자 21일 오후 4시경 교구청을 방문, 정평위 비상대책회의와 박정일 주교, 문정현 신부에게 차례로 사과를 했다.”(가톨릭신문 1985년 5월 26일자 7면) 정부와 교회의 갈등 재개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행사와 교황 방한을 전후해, 교회와 정부는 행사 개최를 위해 협조 관계를 유지하며 갈등이 완화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축제의 분위기가 걷힌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정부와의 갈등은 다시 본격화됐습니다. 그 바탕에는 독재정권의 억압적 통치와 급격한 산업화의 그늘 속에서 고통을 겪는 민중들에 대한 교회의 관심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민주화 운동 그리고 노동, 빈민, 인권 등 부조리가 만연한 제반 영역에서 참된 복음화와 인간화를 위한 노력에 적극 참여하게 됩니다. 당시 정부와 교회의 첨예한 긴장과 갈등이 본격화된 사건이 5.18민주화운동 5주기인 1985년 5월 전주교구 문정현(바르톨로메오) 신부 납치 사건입니다. 가톨릭신문 1985년 5월 26일자 7면은 불법 납치에 대해 항의하며 7일간 단식하던 문 신부가 당국의 사과로 단식을 중단한 소식이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지면에는 전국 각 교구의 5주기 추모행사 소식이 실려 있었습니다. 문 신부의 납치와 단식 그리고 5주기 추모 소식이 나란히 실린 지면은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문 신부는 당시 “이번 납치는 5월 17일 광주 남동성당에서 있었던 광주 의거 추모미사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라며 “신부라는 특권을 갖고 산다고 생각하는 내가 이런데 힘없고 가난한 이들은 얼마나 곤욕을 당하겠는가”라며 공권력의 폭력과 인권 유린을 비판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진상 규명 촉구 5.18 민주화운동 5주기인 5월 18일을 앞두고 정부는 추모 행사 저지에 혈안이 돼 있었습니다. 광주에서는 전국에서 온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등 2000여 명이 하루 전날인 17일 저녁 7시30분 남동성당에서 추모미사 및 추모식을 가졌습니다. 광주 정평위가 주최한 이날 추모식에서는 지금까지 금기시됐던 광주 항쟁에 대한 깊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고 광주 항쟁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의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당시 서울 구의동본당 주임이자 정평위 중앙위원이었던 함세웅(아우구스티노) 신부는 5월 17일 광주대교구 ‘5.18 광주의거 추모미사 및 추모식’에서 강론을 통해 “언제까지 광주를 묻어둘 수는 없다”며 “속히 진실을 알려 화합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역사적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추모 행사들을 축소하고 저지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이러한 예비 검속 과정에서 문 신부가 납치됐던 것입니다. 문 신부는 이에 대해 항의, 단식에 들어갔고 20일부터는 일부 성직자와 평신도 40여 명이 가톨릭센터에서 집단 단식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교회 내의 항의가 거세짐에 따라 21일 오후 4시경 납치했던 기관에서 전주교구청으로 박정일(미카엘) 주교와 문정현 신부, 그리고 정평위 비상대책위를 차례로 방문, 사과함으로써 모두 단식 농성을 풀었습니다. 전방위적인 사회 참여 독재정권의 억압적 통치는 우리 사회 전 영역에서의 부조리를 양산했습니다. 그 속에서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가난한 민중들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고통을 겪었습니다.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과 교회의 사회교리에 바탕을 두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정부와 극심한 대결 구도를 형성하게 됩니다.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는 1984년 7월부터 노동자들의 단결권 보장 등 노동관계법 개정을 위한 전국 서명운동에 돌입했습니다. 그 결과 불과 반년 만인 1985년 2월 25일까지 총 12만4941명의 서명을 모아 5월 국회에 청원서를 제출했습니다. 또한 가톨릭노동청년회(JOC)는 1985년 3월 근로자의 날을 맞아 정부 당국에 노동자들의 최저생계비를 충족시킬 수 있는 ‘최저임금제 실시’와 정당한 교섭을 위한 ‘노동 3권 보장’을 강력히 촉구하며 노동 운동에 불을 지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인권과 빈민 문제로도 확산됐습니다. 정평위는 1985년 4월 11일 정치범과 양심수들의 조속한 석방을 정부에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여기에는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관련자를 비롯해 민청학련, 오송회, 남민전 사건 관련자들과 김대중, 문익환 등 재야 정치인 및 종교인들의 사면과 복권 요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울러 1985년 하반기에는 서울 목동과 신정동 일대 신시가지 개발 계획으로 대규모 철거민 사태가 발생하자, 목동본당 신자들을 중심으로 ‘목동지역 철거대책 추진위원회’가 구성됐습니다. 이들은 무허가 철거민들의 생존권 보호를 위해 ‘선입주 후철거’ 및 철거 건물에 대한 현실적 보상을 요구하며 서울시 당국과 크고 작은 충돌을 감내하며 끝까지 연대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한국교회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자신의 예언자적 소명을 가장 열정적으로 수행합니다. 그 여정은 고단하고 험한 길이었습니다. 당시 교회는 시대의 양심이었고 반독재 저항의 강력한 구심점이었습니다. 독재 권력은 학생 시위를 봉쇄하기 위한 학원안정법 제정 시도, 문정현 신부 불법 납치, 부천서 성고문 사건 은폐 등 폭력으로 대응했지만 이는 오히려 천주교회 전체의 저항과 연대를 촉발하며 국가 권력의 부도덕성을 폭로하는 자충수가 됐습니다. 마침내 무소불위의 제5공화국 철권통치는 온 나라를 뒤흔든 1987년 6월 민중 항쟁으로 무너져 내릴 운명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한가운데 한국교회와 명동성당이 있었습니다.

발행일 2026-03-15 제3482호 12면

[특별기고] 「충실한 백성의 어머니」 공지에 따른 레지오 마리애 선서문 수정의 의미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 2월 10일 한국 레지오 마리애가 제출한 선서문 수정 시안을 승인했다. 이에 본지는 교황청 신앙교리부의 ‘구원 사업에서 마리아의 협력과 관련된 마리아의 일부 호칭에 관한 교리 공지’ 「충실한 교회의 어머니」의 내용에 비춰 레지오 마리애 선서문 수정의 이유에 대해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 위원 박준양(요한 세례자) 신부의 기고를 통해 알아본다. 누구든 등산하러 가서 깊은 산속 골짜기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었을 때 거듭 울려 퍼지며 되돌아오는 메아리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높은 산을 오르내려야 하는 우리의 험난한 인생 여정에서, 성모 마리아는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거듭 알려주는 메아리이다. 그것은 자기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비를 통한 하느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온 누리에 울려 퍼지게 하는 아름다운 메아리이다.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를 통한 삼위일체 하느님의 구원 역사 안에서, 성모 마리아는 우리를 일깨우는 어머니의 자비로운 손길처럼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 의지를 알려준다. 이런 점에서, 성모 마리아를 거의 신적인 지위에까지 높이고자 하는 과도한 신심은, 성경에서 마리아께서 몸소 보이셨던 삶의 모습과 들어맞지 않는다. ‘과유불급’이란 말처럼 지나치면 오히려 해가 된다. 성모 마리아께 지나치게 과장된 공경을 드려 거의 삼위일체 하느님과 비슷하게 들어 높이려 하는 것이 과연 합당하고도 진정한 공경인가? 실상 마리아의 삶은 하느님께 대한 순종과 겸손으로 점철되어 있고, 마리아의 자기 이해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 전적으로 동참하는 겸손한 “주님의 종”(루카 1,38)이었다. 그래서 이는 성부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성자에 의해 세워지고 성령에 의해 생명력을 얻어 구원 활동을 시작한 교회 공동체의 ‘전형’이자 ‘모범’이 된다. 공의회 정신에 비추어 쇄신되는 성모 신심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3년 서한에서, “몽포르의 루도비코 성인의 가르침은 본질적으로 타당성을 갖고 있는 것이면서도 오늘날에는 공의회에 비추어 재독 되고 재해석되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요한 바오로 2세가 강조한, 마리아 신학을 위한 기준점이 되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이란 곧 「교회 헌장」 제8장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시는 천주의 성모 복되신 동정 마리아’라는 제목의 「교회 헌장」 제8장은 모든 마리아 신심과 신학이 그 빛에 비추어 재해석되어야 할 교도권 가르침의 기준점이 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의 2001년 교서 「새 천년기」 57항을 인용해, “이제 막 시작된 이 세기에 우리의 위치를 확인할 확실한 나침반을 우리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발견”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성모 신심의 전통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빛에 비추어 쇄신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른 신학적 성찰이 현재의 여러 성모 신심 운동 안에서 충실히 이루어지고 있는가? 단적으로, 레지오 선서문에 나타난 성령과 성모 마리아의 관계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에 성령론이 제대로 발전하지 않고 그 대신에 마리아 신심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던 시대의 시각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해서, 한국 레지오 마리애는 선서문의 새로운 수정 번역을 진행하여 최근에 주교회의 승인을 받았다. 성모 호칭 수정 가능해 교황청 신앙교리부가 2025년 11월 4일 발표한 문헌 「충실한 백성의 어머니」는 ‘구원 사업에서 마리아의 협력과 관련된 마리아의 일부 호칭에 관한 교리 공지’란 부제가 말하듯이 가톨릭교회의 마리아 신학에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충실한 백성의 어머니」는 현재의 성모 신심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 쇄신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과장된 성모 호칭들에 대한 지침을 제시한다. ‘공동 구속자’라는 호칭은 언제나 부적절하며(22항), ‘모든 은총의 중개자’ 호칭 역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이루는 인격적 관계와는 별개로 마리아를 영적 선이나 힘을 분배하는 존재로 제시할 위험이 있기에 마리아의 고유한 위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한계를 지닌다.(67~68항) 하지만 마리아를 ‘은총의 전구자’이며 ‘은총의 세계에서 우리의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 은총의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그분께서 하느님께 청하시기 때문이며, 동시에 우리 마음이 하느님의 사랑에 열려 있도록 그분께서 준비시켜 주시기 때문이다.(54항, 69~70항) 성모 신심 전통에서 과거에 사용하던 호칭들은 절대 불변이 아니라 수정 가능한 것들이다. 가톨릭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에 따르면, 역사 안의 ‘개별 전승들(traditions)’은 ‘사도적 전승(Apostolic Tradition)’에 비추어 ‘강화’나 ‘수정’ 아니면 ‘폐기’가 가능하다. 개별 전승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그것이 오늘날 교회의 살아 있는 신앙에 잘 어울리고 상응하게끔 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다. ‘사도적 전승’에 대한 비판은 적절하지 않지만, ‘개별 전승들’은 언제나 비판에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교회가 자신의 유일한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를 토대로 하여 항구한 자기 쇄신을 거듭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혜롭고 관대한 교회가 신자들의 대중 신심을 오랜 기간 인내로 관찰하다가, 어느 시점에 단호한 교리적 결정을 내리고 이를 사목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보편교회의 전통적 관례이다. 이번 문헌 역시 그러하다. 교회 교도권이 마침내 공식 발표한 가르침에 따라 성모 신심의 호칭들에 대한 복음적 쇄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하나의 개별 전승으로서 그 신심 운동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대중적인 성모 신심 운동이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에 따라 수정, 쇄신되지 않는다면 곧 오류와 미신에 빠지게 되고 마침내 이단으로 판단되는 것은 교회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서울세나뚜스 영적 지도자 직무를 지난 3년간 수행한 필자의 직접적인 관찰에 의하면, 현재 레지오 선서문의 수정 번역에 대해 일부 극소수를 제외하고 일선 현장의 분위기는 환영과 신뢰의 마음이 압도적이다. 바로 이것이 올바른 신학적 바탕 위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대다수 한국 레지오 단원들의 건강한 신심 수준이다. 사랑과 겸손의 자세로 신앙 살아가야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도권 문헌은 성모 마리아께 대한 적절한 공경을 제시하며 마리아의 겸손과 성덕을 강조한다. 성모 마리아께서 우리에게 모범으로 보여주시듯이,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협력하는 가장 뛰어난 길은 하느님 뜻에 대한 사랑 가득한 겸손의 자세로 우리의 신앙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다. 자기를 내세우고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경향, 그래서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삶의 모습들이 세상 안에 횡행하는 오늘날, 성모 마리아께서는 자신의 모범을 통해 사랑 가득한 겸손의 길, 하느님 뜻에 순종하는 아름다운 구원의 길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신다. 글 _ 박준양 요한 세례자 신부(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 위원·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교수)

발행일 2026-03-15 제3482호 8면

‘가난의 대물림’ 낳는 구조적 빈곤…“근원적 해결책은 교육”

2015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17개의 ‘2030 지속가능발전목표(UN SDGs)’ 가운데 네 번째 목표인 SDG4는 모두를 위한 포용적이고 공평한 양질의 교육 보장과 평생학습 기회 증진을 명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사회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지구촌 곳곳에서는 끊임없는 분쟁과 폭력, 구조적 빈곤과 재난으로 수많은 아동·청소년이 배울 권리를 빼앗긴 채 가난과 고통을 대물림하고 있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국제개발협력 사업 가운데 아동·청소년 교육 지원이 지니는 중요성을 짚어보고, 한국교회 국제개발협력 주체들의 실천을 살펴본다. 유혈 사태, 구조적 빈곤… 학교 밖으로 내몰린 아이들 2023년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2억7200만 명의 아동·청소년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학령기임에도 미취학 상태인 비율은 고소득 국가에서는 3%에 불과하지만, 저소득 국가에서는 36%에 이른다. 국가 간 소득 격차로 인한 교육 불평등은 세계 곳곳의 분쟁으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란, 시리아, 예멘, 남수단, 콩고, 미얀마 등 50개 이상 국가에서는 유혈 충돌로 학교가 파괴되거나 휴교와 수업 중단이 이어지고 있다. 군부 쿠데타 이후 유혈 탄압이 계속되고 있는 미얀마에서는 지난 5년 동안 최소 8만92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비교적 안전한 지역으로 여겨졌던 카친주에서도 군사 충돌이 확산되면서 공교육 체계가 사실상 붕괴되고 있다. 주민들은 임시 학교를 운영하고 있지만 군부의 폭격을 피해 산과 강가로 수시로 피신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희망재단이 센터를 세워 지원했던 장애 아동 특수교육 프로그램도 이러한 이유로 여러 차례 중단됐다. 구조적 빈곤으로 학업을 포기한 아동·청소년의 현실도 심각하다. 라오스 후아판주 교육청에 따르면, 2025년 4월 기준 후아판주 내 고등학생 1만7921명 중 50% 이상이 학업을 중단한 상태다. 지역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가 거의 없어 많은 청소년이 수도 비엔티안이나 인접국에서 가사도우미 등 저임금 노동을 하고 있다. 세계 10대 차 생산국인 방글라데시는 차 재배 지역 학생들의 학업 단절이 심각하다. 부모들이 장시간 농장에서 일하면서 아동 보호와 초기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2021년 국제노동기구 조사에 따르면, 차 재배 가구의 63%는 근무 시간 동안 6세 미만 아동을 방치하고 있으며, 28%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12세 미만 형제자매가 어린 동생을 돌보고 있다. 빈곤이 세대를 넘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배울 수 있게, 대물림을 끊을 수 있게’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과정이다. 유네스코 ‘글로벌 교육 모니터링 보고서(GEM)’에 따르면 모든 학생이 기초적인 읽기 능력을 갖춘 채 학교를 졸업할 경우 약 1억7100만 명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세계 빈곤율도 약 12% 감소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빈곤국에서 진행되는 국제개발협력 사업 가운데서도 아동·청소년 교육 지원은 중요한 분야로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발맞춰 한국교회 국제개발협력 주체들도 아동·청소년 교육 지원을 우선순위로 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한국희망재단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9개국에서 교육 접근성 확대, 방과 후 학습 지원, 심리·사회적 지원, 취약 청소년과 미성년 한부모 역량 강화, 성평등과 아동 권리 보호, 지역사회 인식 개선 등을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재난과 분쟁으로 교육 기반이 무너진 지역에서는 학교와 기숙사를 건립해 기본적인 교육 환경을 마련하고, 교사 양성과 성평등 교육, 직업기술 교육 등을 통해 교육의 질과 지속 가능성도 높이고 있다. 우간다에서는 2021년 3월 여성 직업 기술 교육훈련센터인 ‘우간다 요셉학교’를 개교해 7개 직업 기술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목공, 건축, 금속가공, 태양광 등 기존에 남성 중심이던 분야에 여성 참여를 확대해 성 역할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아동 결혼과 청소년 임신 문제를 줄이는 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 2025년에는 취업지원센터와 건축 컨설팅 회사를 설립해 졸업생들의 취업을 지원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차 재배 지역에는 커뮤니티 기반 보육 센터도 설립하고 있다. 1~6세 아동 180명을 대상으로 안전한 돌봄 환경과 기초 학습, 영양 관리, 보호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아동 노동의 악순환을 근절하며 교육 출발선의 격차를 완화하는 예방적 개입이다. 사단법인 평화삼천은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 등에서 20여 개 학교를 지원하며 교육 환경 개선과 학습 지원, 직업교육 기반 조성에 힘쓰고 있다. 공교육에서 소외된 아동·청소년을 발굴해 지역 상황에 맞는 지원을 제공하고,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필리핀 리살주 산마태오군 빈민 밀집 지역에 세운 ‘반올림희망학교’는 학업이 중단된 아동·청소년들에게 기초 학습과 무료 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이곳은 단순한 공부방을 넘어 성 착취 등 위험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졸업생들은 후배들의 멘토가 되거나 평화삼천이 진행하는 치과 의료 봉사 활동에 참여해 환자 모집, 접수, 통역 등을 맡고 있다. 일방적 수혜자 이상의 세계시민으로, ‘받는 사람’에서 ‘나누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선순환이다. 평화삼천은 창립 20주년을 맞은 2023년을 기점으로 청소년·청년의 실질적 자립을 위한 기술교육 분야도 강화하고 있다. 베트남 까마우성 한베직업전문대학에는 컴퓨터그래픽 교육 과정을 도입했고, 라오스 후아판주에는 기술교육센터를 설립해 재봉과 IT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희망재단과 평화삼천은 정부나 대형 NGO의 지원이 상대적으로 적은 지역을 중심으로 교육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한국희망재단 이사장 서북원(베드로) 신부는 “우리의 사명은 가난과 장애, 분쟁,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로, 혹은 학교가 멀다는 이유만으로 교육에서 밀려난 아이들이 다시 배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삼천 운영위원장 박창일(요한 사도) 신부는 “평화는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의 삶을 연결하며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며 “후원자와 자원봉사자, 현지 주민과 아이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작은 변화들이 모여 지구촌 평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발행일 2026-03-15 제3482호 17면

[함께 살기, 다시 쓰는 가족] 더하기가 아니라 비우기로 배우는 가족

우리는 공부를 ‘더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더 풀고, 단어를 더 외우고, 경험을 더 쌓아야 안심합니다. 아이가 뒤처질까 불안한 마음에 자연스럽게 무엇인가를 얹습니다. 더 많이 가질수록 안전해 보입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만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다른 길을 보여 줍니다. 유대교 전승에 따르면 율법은 육백여 개가 넘는 조항으로 정리됩니다. 수백 가지 세세한 규정 속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어디까지가 깨끗한지, 누구와 함께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구분하며 살아갔습니다. 삶은 복잡해지고, 신앙은 무거워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모든 율법을 단 두 문장으로 묶으십니다. “네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그 많은 규정이 두 가지 사랑으로 수렴됩니다. 복잡함은 사랑 앞에서 단순해집니다. 많이 지키는 신앙이 아니라, 무엇을 식별하여 남길 것인가를 묻는 신앙이 됩니다. 쌓는 공부가 아니라 덜어 내는 공부입니다. 신학은 이를 ‘케노시스’, 곧 자기 비움이라 부릅니다. 자신을 비워 하느님의 뜻이 머물 자리를 내어 드리는 길입니다. 비움은 포기가 아니라 식별입니다. 무엇을 더할지보다 무엇을 남길지를 분별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공부법에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질문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던지신 질문은 수백 번에 이릅니다. 반면 예수님이 받은 질문에 직접적이고 단정적으로 답하신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정답을 보여주는 답안지 제공자이기보다, 멈추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질문자에 가까우셨습니다. “무엇을 찾느냐?”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질문은 멈추게 합니다. 그리고 자기 안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빠른 답으로 제자들을 안심시키기보다, 질문 속에서 스스로 변화하도록 기다리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사회는 ‘더하기’의 방향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2024년 통계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의 80%가 사교육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아이 열 명 중 여덟 명이 학교 수업이 끝난 뒤 또 다른 시간표로 살아갑니다. 그 시간을 떠받치는 것은 부모의 시간입니다. 교육의 흐름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면 더 일하고 더 벌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아이는 배우느라 바쁘고, 부모는 마련하느라 바쁩니다. 함께 머무는 시간은 사라집니다. 식탁과 거실은 각자의 화면 불빛 아래 흩어집니다. 그만큼 대화는 짧아지고, 질문은 멀어집니다. 오늘의 가족은 멈추는 삶을 잃어갑니다. 멈춤은 뒤처짐이라고 여깁니다. 이 지점에서 예수님의 공부법이 다시 떠오릅니다. 육백여 개의 복잡함을 두 가지 사랑으로 덜어 내셨던 분. 수백 번 질문하시며 사람을 멈추게 하신 분. 예수님의 공부법은 더 채우는 기술이 아니라, 덜어 내는 용기입니다. 사랑만 남기고, 나머지를 비워 내는 일. 우리 가족의 거실과 식탁이 정답을 점검하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질문과 마음을 나누는 자리라면 어떨까요. 더 빨리 가는 가족이 아니라 더 깊이 머무는 가족.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비움의 공부로 초대하십니다. 글 _ 유형선 아우구스티노(가족인문학연구소 공동운영자)

발행일 2026-03-15 제3482호 16면

서울대교구 구파발본당 ‘탄소포집벗’, 어린이 환경신문 창간

서울대교구 내 첫 어린이 하늘땅물벗인 구파발본당 ‘탄소포집벗’이 최근 환경신문 창간호를 펴냈다. ‘탄소포집벗’ 1기는 2025년 한 해 동안 이어온 생태 활동을 환경신문에 담았다. 초등부 어린이 30명은 매달 마지막 주일 모여 생태 감수성을 키우고 생활 속 환경 실천을 이어왔다. 환경신문 제작을 위해 어린이들은 1월 25일, 1년간의 활동을 돌아보며 단신 기사와 기획 기사, 특집 기사 등을 직접 작성했다. 남은빈(콜레타) 초대 단장의 기고문을 싣고, 부모들의 글을 받아 칼럼을 구성하며, 본당 부주임 최정현(힐라리오) 신부를 인터뷰해 생태 보호의 의미를 담았다. 기사 작성과 편집, 구성까지 모든 과정을 어린이들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완성된 신문은 본당 주보 사이에 간지로 삽입됐다. 어린이들은 2월 14일과 21일 본당 어린이미사 전 신자들에게 직접 신문을 나눠주며 환경 보전의 중요성을 알렸다. 신문은 1년간 이어온 실천을 정리한 결과물이자, 본당 공동체에 생태 감수성을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흙으로 만든 맑은 물’ 제목의 특집기사를 작성한 윤진우(라파엘·13) 군은 “흙공을 직접 만들어 하천에 방류하는 활동은 처음이었다”며 “흙공이 하천을 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여전히 쓰레기가 과도하게 발생하고, 분리배출을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중학생이 되어서도 탄소포집벗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며 “동생들에게도 재미있고 유익한 활동이라고 꼭 추천하고 싶다”고 밝혔다. 탄소포집벗은 지난 1년간 다양한 생태 활동을 펼쳤다. 그림 작가와 함께 멸종위기 동물을 그리며 사라져가는 생명을 기억했고, 하천 정화를 위해 EM 흙공을 만들어 던졌다. 자전거 페달을 굴려 친환경 전기를 생산하는 체험을 진행했으며, 2025년 6월 15일 열린 본당의 날 행사에서는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피켓 캠페인도 벌였다. 한편 본당 탄소포집벗 2기 32명의 어린이 생태사도는 2월 28일 창단 미사를 봉헌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발행일 2026-03-08 제3481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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