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사순, ‘미디어 단식’을 생각한다

사순 시기는 단식과 절제를 통해 신앙을 돌아보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시간이다. 전통적으로 단식은 음식이나 기호품을 절제하는 방식으로 실천돼 왔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이의 일상을 차지하는 것은 음식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일지도 모른다.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하루 종일 디지털 기기에 매몰된 채 살아가는 모습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디지털 미디어의 과도한 사용이 인간관계를 빈곤하게 만들 수 있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교황은 특히 “소셜미디어가 진정한 만남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강조하며, 온라인 소통이 실제 인간관계를 약화시킬 위험을 지적했다.(2019년 제53차 홍보 주일 담화) 필리핀 주교회의가 올해 사순 시기 발표한 사목 서한 「음식을 넘어선 단식: 디지털 미디어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기」 역시 같은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주교회의는 디지털 기술이 비록 유익하지만, 과도한 사용은 기도와 침묵의 시간을 빼앗고 인간적 관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아침과 취침 전 휴대전화 사용을 줄이고, 식사 시간에는 디지털 기기를 내려놓거나 끄고 기도와 성경 읽기, 가족과의 대화에 할애하는 ‘미디어 단식’을 제안했다. 사순 시기의 단식은 단순히 욕구를 참는 행위가 아니다. 극기를 통해 삶의 중심을 다시 하느님께 향하도록 하는 영적 훈련이다. 잠시 화면을 내려놓고 침묵 속에서 가족과 이웃을 바라보는 시간,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단식일지 모른다. 그렇게 비워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다시 기도하고, 하느님께 마음을 향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 신앙인에게 ‘미디어 단식’은 삶의 중심을 하느님께 돌려놓는 작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발행일 2026-03-15 제3482호 23면

서울 WYD, 더욱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준비가 보편교회와의 협력을 통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서울 WYD 조직위원회는 최근 로마를 방문해 대회 준비 상황을 공유했다. 조직위원장 정순택 대주교를 만난 레오 14세 교황은 한국에서 전 세계 젊은이들과 만날 날을 기대하며 준비에 감사를 전했다는 후문이다. 보편교회와 조직위원회가 서울 WYD를 향해 발걸음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국제적 관심과 기대에 비해 국내 준비 상황은 여전히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WYD는 단순한 교회 행사를 넘어 수십만 명의 청년이 참여하는 세계적 규모의 국제행사다. 그럼에도 정부 차원의 지원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세계청년대회 특별법’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논의가 지연되고 있다.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서는 행정과 재정, 인프라 지원이 필수적인 만큼 정부와 정치권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협력이 요구된다. 준비 과정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과제는 대회의 핵심 행사인 폐막미사 장소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WYD 밤샘기도와 폐막미사는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상징적 순간이자 대회의 절정이다. 그만큼 안전, 교통, 숙박, 공간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면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서울 WYD는 신앙의 축제일 뿐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평화의 메시지를 세계에 전하는 소중한 기회다. 이제 준비에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교회와 정부, 사회가 함께 지혜를 모아 보다 체계적이고 치밀한 준비에 나설 때, 서울 WYD는 세계 젊은이들에게 오래 기억될 희망의 축제가 될 것이다.

발행일 2026-03-15 제3482호 23면

대학가 유사종교 포교활동 경계해야

‘도를 아십니까?’, ‘인상이 좋으시네요.’ 길거리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질문이다. 직접 듣지는 못했더라도 이 말들이 유사종교 단체가 포교 활동을 벌이며 던지는 질문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행히 이러한 수법은 이제 많이 알려져 대부분 자리를 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의 포교 방법도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새 학기가 시작되는 시기, 대학가를 중심으로 교묘한 포교 활동이 만연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청된다. 이들은 신분을 위장한 채 MBTI 검사, 심리테스트, 봉사활동이나 동아리 활동 등을 내세우며 접근해 친분을 쌓고 서서히 자신들의 단체에 빠져들게끔 한다. 설문조사를 가장해 이름, 연락처, 학과 등 개인 신상을 적도록 유도하거나 행운권 추첨 등을 미끼로 개인 정보를 수집하기도 한다. 특히 새로운 환경과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신입생들에게 주로 접근해 친절을 베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사종교 포교 활동이 계속되면 정상적인 동아리 가입 권유도 의심하게 되고, 타인의 친절 또한 믿을 수 없게 된다. 올바른 신앙생활은 물론이고 일상생활마저 어렵게 만들고, 학생들 사이에 신뢰를 무너뜨려 공동체에 해를 끼치게 된다.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한 이유다. 더 이상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사전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회는 2017년 한국천주교 유사종교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대응하고 있고, 일부 대학에서도 올바른 신앙 문화 정착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는 등 예방 활동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올바른 교리 학습을 비롯한 개인의 노력과 신앙에 대한 확신이 더해진다면 현혹되지 않고 건강한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발행일 2026-03-08 제3481호 23면

발달장애인의 존엄을 앞에 둔 탈시설 정책 추진해야

“내 아이보다 단 하루라도 더 살고 싶다.” 장애를 지닌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들의 바람이다. 그만큼 장애 자녀를 돌보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는 장애인이 거주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장애인 탈시설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탈시설 논의에 장애 유형 및 중증도 등이 간과되고 있고, 지역사회에서의 자립을 지원하는 인프라도 부족하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한국카리타스협회 정책토론회는 무연고 최중증 발달장애인의 탈시설 과정에서 드러난 심각한 공백을 환기했다. 충분한 의료·돌봄·의사결정 지원 없이 추진된 정책은 자립이라는 이름과 달리, 오히려 가장 약한 이들을 위험에 내몰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발달장애인은 특성과 정도가 매우 다양하다. 직업재활이 가능한 이가 있는가 하면, 평생 전적인 도움이 필요한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획일적 탈시설 기조가 유지되면서 의료 공백과 돌봄 부실, 의사결정 왜곡 논란이 반복돼 왔다. 특히 의사 표현이 어려운 최중증 장애인의 거주 이전이 행정적 판단에 좌우되는 현실은 심각한 문제다. 정책 추진의 근거인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의 핵심은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누가, 어떤 절차로, 누구의 이익을 위해 결정하느냐’에 있다. 탈시설을 목표로 삼기보다, 각 개인의 의학적·사회적 특성을 반영한 주거·의료·돌봄 지원을 촘촘히 설계하는 것이 우선이다. 국가는 가장 약한 이들의 생명을 실험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발달장애인의 삶이 이념이나 행정 편의가 아니라 존엄과 안전 위에 서도록, 정책의 무게중심을 근본적으로 재조정해야 할 때다.

발행일 2026-03-08 제3481호 23면

프란치스코 성인을 따르는 특별 희년

교회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을 맞아 ‘성 프란치스코의 해’ 특별 희년을 지내고 있다. 교황청 내사원은 전대사 교령을 반포했고, 한국교회도 2월 20일 기준 전국 61곳의 전대사 수여 성당과 수도회를 안내하며 신자들을 은총의 잔치로 초대하고 있다. 특별 희년은 2027년 1월 10일까지 한 해 동안 성인의 복음적 삶을 현양하며 우리 신앙의 뿌리를 되찾는 소중한 기회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가난한 작은 이’로서 모든 피조물을 형제자매로 고백한 생태 영성의 선구자다.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심으로 가득한 현대 사회에서 성인의 삶은 참된 소유가 무엇인지 묻게 한다. 특히 레오 14세 교황이 특별 서한에서 강조했듯, 성인의 영성은 전쟁과 분열로 얼룩진 이 시대에 ‘진정한 평화의 원천’을 가리키고 있다. 신자들이 성인을 따라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를 가장 완벽하게 닮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신앙인에게 전대사는 단순한 혜택이 아니다. 죄의 상처를 씻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은총의 계기다. 신자들은 지정된 성당을 찾아 성인의 삶을 묵상하며, 하느님 그리고 이웃과의 화해를 청해야 한다. 특히 세상이 경계를 세울 때 다리를 놓았던 성인의 용기를 본받아, 삶의 현장에서 평화의 증거자가 되어야 한다. 특별 희년이 일회성 행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 사순 시기를 지내는 지금, 프란치스코 성인의 가난과 평화의 영성을 신앙의 중심에 바로 세우자. 갈등이 있는 곳에 용서를,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가져다주는 ‘평화의 도구’로 거듭날 때, 희년의 은총은 우리 사회를 치유하는 살아있는 복음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발행일 2026-03-01 제3480호 23면

수원교구 곽진상 주교의 서품을 축하하며

수원교구 곽진상 주교의 주교 서품을 축하한다. 곽 주교는 수원교구 보좌주교로서 교구장을 도와 교구를 돌보는 사명을 맡는다. 곽 주교가 서품식에서 밝힌 것처럼 주교직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여정이며, 교회의 일치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봉사이다. 곽 주교의 서품을 계기로 역동성과 잠재력을 지닌 수원교구가 복음 안에서 더욱 깊이 하나 되기를 기대한다. 수원교구는 넓은 지역에 걸쳐 도시와 농촌 등 다양한 신앙 공동체를 품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교회는 상처 입은 이들, 아파하는 이들, 도움을 청하며 문을 두드리는 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새 보좌주교의 사명 또한 이러한 시대적 요청 가운데 교구장과 함께 복음의 빛을 밝히고, 사제단과 수도자, 평신도를 한마음으로 모으는 데 있다. 말보다 삶으로, 명령보다 동행으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사목자의 모습이 더욱 절실하다. 그러나 주교의 사목은 한 사람의 열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교회의 일치는 함께 걸을 때 비로소 자라난다. 곽 주교가 신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고 약속하고, 자신의 발걸음에 신자들의 동반을 요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의 말처럼 새 주교를 평가하기보다 기도로 동행하고, 기대만 앞세우기보다 신앙 안에서 협력할 때 교회는 더욱 복음적인 공동체로 성숙할 수 있다. 새로운 사목 여정을 시작한 곽 주교가 교구장을 충실히 보필하며 수원교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이끌 수 있기를 함께 응원하자. 아울러 곽 주교가 자신에게 맡겨진 길을 온전히 걸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협력하자. 주교와 신자들이 함께 걸을 때, 수원교구는 더 따뜻하고 희망찬 신앙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발행일 2026-03-01 제3480호 23면

이웃에 희망 주는 뜻깊은 사순 시기 보내자

다가오는 2월 18일 재의 수요일부터 올해 사순 시기가 시작된다. 이 시기 동안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 죽음을 묵상하면서 회개하고, 절제와 희생 등을 실천한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 안에 다가올 부활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사순 시기에 우리가 실천하는 절제와 희생 또한 단순히 참고 견뎌야 하는 고통에 그치지 않고 이웃을 향한 구체적인 사랑 실천으로 희망을 전하는 것이어야 한다. 최근 익명의 비신자가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에 50억 원을 기부했다는 소식이 알려져 눈길을 끈다. 이 기부자는 이름도 얼굴도 밝히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을 통해 기부 문화가 널리 퍼져 나가길 바란다며 거액을 선뜻 기부했다. 기부한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어려운 이웃을 위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누는 그 마음이 깊은 울림을 전한다. 큰 금액을 기부하지 않더라도 일상 안에서 작은 나눔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도 많다. 대전교구가 펼치고 있는 ‘한끼100원나눔운동’도 좋은 사례다. 한끼100원나눔운동본부는 2025년 한 해 동안 7억여 원의 기금을 배분하며 적극적인 나눔 활동을 펼쳤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실천들이 모여 큰 사랑을 일궈냈다. 한 끼 식사를 할 때마다 100원씩 기부하는 이 운동은 평소에 소외된 이웃들을 생각하며 나눔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이끈다. 이는 사순 시기 절제와 희생을 실천하는 의미와도 잘 어울린다. 앞선 사례들을 기억하면서 올해는 이웃에게 희망을 전하는 보다 뜻깊은 사순 시기를 보낼 수 있길 바란다.

발행일 2026-02-15 제3479호 23면

공소는 한국교회의 역사이자 미래다

공소는 한국교회의 시작이었고, 지금도 신앙의 뿌리다. 사제가 부족했던 시절, 신자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복음 말씀을 나누고 기도를 이어갔다. 공소는 제도 이전에 삶으로 신앙을 증거한 공동체였고, 그 안에서 한국교회는 성장했다. 파리외방전교회 보두네 신부가 공소에서 초대교회를 떠올린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 공소는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사회적 흐름 속에서 공소 공동체를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공소의 소멸을 불가피한 결과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다. 공소는 단순한 전례 공간이나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어떤 신앙의 길을 걸어왔는지를 증언하는 살아 있는 기억이기 때문이다. 공소를 지키고 살리려는 교회의 노력은 분명 의미가 있다. 원로사제의 공소 거주, 교구 간 사제 파견, 귀촌 신자들과의 연대는 공동체가 다시 숨 쉬게 하는 마중물이 되고 있다. 동시에 모든 공소를 유지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교회사적 가치가 큰 공소를 보존하고 순례와 교육의 장으로 살리려는 시도 역시 중요하다. 공소가 간직해온 신앙의 기억과 공동체 정신은 여전히 계승해야 할 교회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공소는 ‘교회의 못자리’다. 이 기억을 잃는다면 한국교회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조차 잊게 된다. 공소 보존은 향수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한국교회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교구와 본당, 신자들이 함께 공소의 의미를 다시 묻고 지켜야 할 이유를 공유할 때, 공소는 한국교회의 역사이자 미래로 남을 것이다.

발행일 2026-02-15 제3479호 23면

착한 사마리아인을 다시 생각하며

레오 14세 교황은 2월 11일 제34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에서 복음 속 ‘사마리아인의 정신’을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으로 제시했다. 환대와 용기, 헌신과 지지의 태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둔 형제애가 우리 삶에 항상 반영되기를 바란다는 당부다. 병자를 돌보는 일은 선택적 선행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에 닿아 있는 소명임을 환기한다. 특히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태도가 삶 안에서 어떻게 구현돼야 하는지 분명히 짚는다. 오늘날 병자들은 병상 위에만 있지 않다. 제도 밖으로 밀려난 이들, 의료 접근권을 잃은 이들, 사회적 관계가 끊어진 이웃들 또한 우리 시대 병자들이다. 이들의 고통은 질병에 더해 고립과 빈곤, 심리적 상처가 겹겹이 쌓인 복합적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교회의 역할은 더욱 분명해진다. 서울 쪽방촌을 중심으로 의료 사각지대 이웃들과 동행해 온 요셉의원의 활동은 치료를 넘어 삶의 회복을 향한 동반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방문 진료와 심리 상담, 복지와 법률 지원을 아우르는 현장에서의 실천은 병자들의 삶에 깊이 개입하며, 교회가 현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지 증언하고 있다. 상처 입은 이를 가엾이 여기고 멈춰서 치료해 준 사마리아인의 모습(루카 10,33–35 참조)은 그 자체로 교회의 소명을 드러낸다. 다가가 상처를 씻기고, 함께 걷고,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야말로 신앙의 구체적 증언이다. 병자 곁에 머무는 교회, 낯선 이의 고통을 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정신은 오늘 우리의 거리에서, 가정에서, 시설과 병원에서 다시 구현돼야 할 교회 공동체의 사명이다.

발행일 2026-02-08 제3478호 23면

핵발전이 아니라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정부가 핵발전소 2기의 신규 건설을 공식화했다. 정부는 여론조사 결과와 인공지능 시대의 전력 수요를 근거로 들지만, 핵발전이 안고 있는 구조적 위험과 그 부담이 누구에게 전가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핵폐기물 처리 문제, 사고 위험, 송전선로 갈등, 그리고 미래 세대에게 떠넘겨질 환경 부담에 대한 해법 없는 추진은 결코 ‘현실적 선택’이라 할 수 없다. 가톨릭교회는 오래전부터 핵발전의 윤리적 문제를 지적해 왔다. 한국 주교회의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성명을 통해 핵발전소 사고의 위험성과 고준위 핵폐기물이 지닌 돌이킬 수 없는 위협을 경고하며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촉구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에 집약돼 있다. 교황은 기술적 효율성과 경제 논리가 생태계와 인간 존엄 위에 군림하는 것을 경계하며, 오늘의 선택이 미래 세대의 삶의 조건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환경 보호가 아니라 ‘세대 간 정의’의 문제다. 핵발전은 수도권의 전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비수도권 지역에 위험을 집중시키는 구조 위에 서 있다. 이는 힘없는 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사회 전체를 원치 않는 죄의 구조 안에 묶어 두는 방식이다. 이는 교회가 말하는 공동선과 정의에 어긋난다. 에너지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재생에너지가 단기간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겠지만, 생태적 회심과 사회 구조 전환이라는 방향성에 그 궤를 같이한다. 정부는 핵발전이라는 익숙한 길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감당할 수 없는 짐을 남기지 않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발행일 2026-02-08 제3478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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