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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

신학생들, 남북 분단 현장에서 ‘평화·화해’ 염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김주영 시몬 주교)는 6월 30일부터 7월 4일까지 ‘2025 민족화해관심 신학생 연수’를 마련했다. 부제 1명과 신학생 17명이 참여한 올해 연수는 남북 분단과 6·25전쟁, 남북 화해의 의미를 묵상할 수 있는 접경 지역과 북향민 관련 시설을 방문하고 북한 문제 전문가들의 강의를 듣는 시간들로 구성됐다. 신학생들은 첫째 날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센터에 모여 오리엔테이션으로 일정을 시작해 평화감수성 교육을 받고, 북한대학원대학교 김성경 교수로부터 ‘분단 문화’ 주제 강의를 들었다. 둘째 날인 7월 1일에는 6·25전쟁 발발 전후 시기 이념 대립 속에 목숨을 잃은 강화도 민간인 희생자 묘역을 찾았다. 또 강화 평화전망대와 교동 망향대를 방문해 북녘을 바라보며 남북이 하나 되는 날을 염원했다. 둘째 날 일정을 마치며 민족화해센터에서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남덕희(베드로) 신부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평화’라는 주제로 신학생들에게 강의했고, 조별 토론도 진행했다. 2일 오전에는 경기도 안성 하나원을 방문해 하나원에 대한 소개를 들었고 같은 날 오후에는 민족화해센터로 다시 이동해 북향민들과 만남의 시간도 가졌다. 예수회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김연수(스테파노) 신부는 ‘북한 천주교회 역사’를 주제로 강의하며 북한 지역 교구와 본당 역사를 상기시켰다. 3일에는 파주 임진각과 파티마 평화의 성당, 연천 유엔군화장장, 파주 북한군 묘지를 방문하며 남북 분단과 6·25전쟁이 남긴 아픔과 그 아픔을 승화시켜야 하는 종교인들의 의무를 묵상했다. 신학생들은 특히 1952년부터 6·25전쟁 휴전 이후에도 짧게 운영됐던 유엔군화장장, 묘비 대부분에 ‘무명인’이라 적혀 있는 북한군 묘지 앞에서 국적과 남북을 초월한 평화와 화해를 위해 기도했다. 이날 민족화해센터에서 저녁 식사 후에는 광주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황성호(미카엘) 신부가 광주하나센터 활동을 신학생들에게 소개했다. 춘천교구 김찬(안드레아) 신학생은 “머리로만 생각하고 무관심하기 쉬웠던 북한에 대해 피부로 느낄 수 있어 감사했다”며 “앞으로도 민족화해 문제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2면

드브레드 주교가 구한말 남긴 편지…「드브레드 주교 서한집」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조한건 프란치스코 신부)가 ‘서울대교구 설정 200주년 자료 총서’ 서한집 세 번째로 「드브레드 주교 서한집」을 간행했다. 서한집에는 파리 외방 전교회 드브레드(Émile Alexandre Joseph Devred, 한국명 유세준(劉世俊), 1877~1926) 주교의 신부 시절 서한, 부주교로 임명된 이후의 서한과 관련 문서 등 총 164건이 수록돼 있다. 드브레드 주교가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로 한국교회에 파견될 때부터 선종하기까지 쓴 여러 서한은 물론, 연례 보고서, 주교 축성식 팸플릿, 소포 수령증, 전보, 사망증명서, 선종 추도사 등 다양한 문서들을 볼 수 있다. 또한 드브레드 주교의 연보와 함께 전남대학교 사학과 윤선자(도미니카) 명예교수의 해제와 주석을 실어 당시 시대와 교회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조한건 신부는 간행사에서 “이 서한집을 통해 당시의 교회 모습을 좀 더 생생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고, 다소 잊혀 있던 드브레드 주교의 활약상이 더 자세히 드러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드브레드 주교는 1899년 9월 23일 파리 외방 전교회에서 사제품을 받고 같은 해 11월 15일 한국 파견 선교사로 임명됐다. 1900년 5월 13일 원주본당(현 원주교구 주교좌원동본당) 주임으로 부임했다. 1906년 8월 8일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교수로 임명됐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징집명령을 받고 1914년 8월 9일 프랑스로 귀국해 참전했다. 이후 1919년 10월 15일 용산 신학교에 복귀했다. 1920년 8월 20일 계승권을 가진 조선대목구 부교구장으로 임명됐으며, 1926년 1월 17일 점심 식사 후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져 그 이튿날 선종했고, 1월 21일 서울 용산 성직자 묘역에 안장됐다.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15면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순교신심 따라야”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위원장 구요비 욥 주교)는 7월 5일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콘솔레이션홀에서 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 주례로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시복 10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미사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장 박현동(블라시오) 아빠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 부위원장 원종현(야고보) 신부를 비롯한 교구 사제단이 공동집전했으며, 1000명이 넘는 신자들이 참례해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79위의 순교신심을 기렸다. 특히, 미사 중에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가 총 1000쪽 분량으로 편찬한 「기해·병오박해 자료집」을 봉정해 79위 시복 100주년의 의미를 더했다. 한국교회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받는 「기해·병오박해 자료집」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비변사등록 등 정부기관에서 작성한 공식 기록에서 기해박해(1839), 병오박해(1846)와 관련된 내용을 발췌해 번역한 것으로, 증언 중심의 기존 연구 성과들과 비교해 높은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정순택 대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비오 11세 교황님에 의해 1925년 7월 5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시복식이 거행됨으로써 한국교회 순교자현양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었다”며 “79위 시복 100주년을 맞아 79위 중 41위가 순교한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에서 기념미사를 봉헌하게 돼 가슴 벅차다”고 밝혔다. 이어 정 대주교는 “시대의 풍조를 거슬러 하느님의 사랑과 영원한 생명을 증거하고자 온몸을 던진 신앙 선조들을 본받아야 한다”며 “우리도 물질적 가치관을 거스르고 하느님 안에 있는 참된 생명을 증거하며,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참 신앙인으로 살아가자”고 전했다.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3면

서울 발산동본당, ‘해외선교후원회’ 설립

서울대교구 발산동본당(주임 김숭호 안드레아 신부)이 최근 본당 사목회 소속 ‘해외선교후원회’를 설립했다. 해외선교후원회는 사목회 주관으로 정관(회칙)을 제정하고, 초대 회장에 임경헌(요아킴), 총무에 김자호(로마나) 씨를 선임하는 등 조직을 갖춰 약 8개월 간의 준비 과정을 거친 끝에 올해 5월 정식 출범했다. 해외선교후원회 설립은 2024년 5월, 본당 사목위원과 신자 40여 명이 일본 나가사키 성지순례 중 김성천(스테파노) 신부를 만나면서 계기가 마련됐다. 발산동본당 보좌신부로 사목했던 김 신부는 현재 일본에서 선교 활동 중이다. 순례 참가자들은 이 자리에서 해외 파견 선교 사제들이 겪는 다양한 어려움을 처음 접하게 됐다. 마침 본당에서 15년 동안 명맥을 유지해 오던 ‘북중선교회’가 부득이 활동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북중선교회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후원 대상과 지역을 확대한 새로운 후원회를 조직하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김숭호 신부는 “북한과 중국을 선교 대상으로 했던 조직이 현실적인 활동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재정 후원뿐만 아니라 기도로써 해외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해외선교후원회를 새롭게 조직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길상(루치오) 본당 사목회장은 특히 “해외 현지에서 성소 후원과 관련된 도움을 청하면 본당 성소후원회와 해외선교후원회가 밀접하게 협력해 지원 방안을 찾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임경헌 회장도 “올해 5~6월 본당 신자들에게 지속적인 홍보를 한 결과 현재 180여 명의 회원이 모였다”며 “우선 본당과 인연이 있는 해외 선교사를 중심으로 후원할 계획이지만, 인연 여부와 관계없이 도움을 요청하는 선교사들이라면 역량이 되는 대로 도움을 드리려 한다”고 밝혔다.

발행일 2025-07-06 제3449호 5면

‘제1회 떼이야르 드 샤르댕 연구회 학술 심포지엄’ 개최

프랑스 출신 사제이자 과학자였던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예수회, 1881~1955)의 자연과 하느님 이해를 학술적으로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 떼이야르 드 샤르댕 연구회(회장 오수영)와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소장 최영균 시몬 신부)는 6월 28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7층 강당에서 ‘제1회 떼이야르 드 샤르댕 연구회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오수영 회장은 제1발표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학사상 입문: 「자연 안에서 인간의 위치」’에서 샤르댕 신부가 사제이면서도 인간 진화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신앙적 사명에서 20년 이상 지질학과 고생물학을 연구했다고 소개하며, 샤르댕 신부의 사상 입문서라고 할 수 있는 「자연 안에서 인간의 위치」가 어떤 목적으로 집필됐는지 설명했다. 오 회장은 “샤르댕 신부는 자연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경험적으로 규정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자연 안에서 인간의 위치」를 썼다”며 “인간은 우주의 비밀을 푸는 열쇠의 자리 또는 중심축에 위치해 있어 우리가 사람을 참으로 이해한다면 실제로 우주를 이해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 샤르댕 신부의 사상”이라고 말했다.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곽진상(제르마노) 신부는 제2발표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그리스도론’을 맡아 “샤르댕 신부가 본 하느님은 형이상학적이거나 추상적인 관념도 아니고 막연한 원리 속에 계신 분도 아니라 지금 세계 안에 살아 있는 실재, 물리적인 것 속에 현존하는 하느님”이라고 풀이했다. 이어 "하느님의 숭고한 뜻은 모든 인류와 만물을 포함하는 집단적, 공동체적 구원”이라며 “전통적인 신앙을 보존하고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자 했던 샤르댕 신부에게 신앙을 보존한다는 것은 신앙을 다시 살리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전 전주교구장 이병호(빈첸시오) 주교는 제3발표 ‘떼이야르 눈으로 본 AI 현상’에서 “AI의 등장은 과학계와 사람에게 던져진 전대미문의 충격”이라고 규정한 뒤 “샤르댕 신부는 AI를 내다본 혜안을 지니고 있었으며, 진화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원동력, 수렴자 그리고 흔들림 없이 진화가 진행되도록 힘을 주는 이로서 신이 개입하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발행일 2025-07-06 제3449호 4면

서울 순교자현양위, 「기해·병오박해 자료집」 발간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위원장 구요비 욥 주교, 이하 현양위)가 기해박해와 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시복 100주년을 맞아 「기해·병오박해 자료집」을 발간했다. 현양위가 지난해 발간을 결정했던 「기해·병오박해 자료집」은 79위 시복 100주년 기념일인 7월 5일 오후 3시 서울대교구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에서 봉헌하는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시복 100주년 기념미사’ 중에 봉정할 예정이다. 미사가 열리는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는 79위 순교자 가운데 41위가 순교한 성지이자, 단일 성지로는 가장 많은 수의 순교자가 성인품에 오른 한국 최대의 순교성지이기도 하다. 1925년 7월 5일 교황청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시복식은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한국 천주교회가 보편교회 안에서 그 독립적 존재를 인정받았던 중요한 사건이었다. 「기해·병오박해 자료집」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비변사등록 등 정부기관에서 작성한 공식 기록물 중 기해박해와 병오박해 관련 내용을 발췌해 번역하고 정리한 첫 사례로 그 의미가 크다. 특히 형조, 포도청 등에서 오간 지시문, 보고서, 신문(訊問) 기록 등 정부 차원의 공식 문서를 바탕으로 구성해 기존의 증언 중심의 사료와는 차별화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또한 한문 원문과 번역문을 동시 수록해 한문을 읽는 데 어려움이 있는 일반인은 물론 한국교회사 연구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기념미사 후에는 1925년 열린 바티칸 선교박람회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기획전시 ‘Anima Mundi’(세상의 영혼) 개막식이 열린다. ‘세상의 영혼’ 전시는 1925년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제약 속에서도 ‘조선 천주교회’가 독립적인 주체로서 바티칸 선교박람회에 참가한 사실을 조명한다. 바티칸 민족학박물관의 협조 아래 당시 ‘조선관’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조선의 문화적, 민족적 특징이 담긴 출품작들을 통해 조선 말기의 시대적 정황과 외국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조선의 모습을 되짚어볼 예정이다. 1925년 희년을 맞아 비오 11세 교황이 개최한 바티칸 선교박람회는 이전의 서구 중심 박람회와는 달리, 각국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춘 행사였다. 이를 통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존엄하다”는 인식을 널리 퍼트리며 전 세계 다양한 민족과 문화의 공존을 지향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현양위 부위원장 원종현(야고보) 신부는 “이번 행사를 통해 순교자들의 신앙을 다시금 되새기고, 「기해·병오박해 자료집」 간행이 한국교회사 연구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발행일 2025-06-29 제3448호 4면

서울대교구 민화위, 한반도 평화 위한 과제 모색…“美·日 교회와 협력 필요”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는 설립 30주년을 맞아 6월 22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영성센터에서 기념학술회의를 개최하고, 30년 역사 속 남북 관계의 변화를 살펴보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교회의 과제를 모색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조한건(프란치스코) 신부는 제1발표 ‘서울대교구 민화위 30년의 교회사적 의미’에서 “광복 50주년을 맞아 민족화해위원회를 결성한 서울대교구는 북한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나누고자 노력을 경주하는 등 남북 관계 악재 속에서도 기본적인 사업들을 꾸준히 이어왔다”고 평가했다. 조 신부는 서울 민화위가 30년 역사를 이어오고 있지만 더욱 많은 사제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야 한다는 과제를 제기하고, “연구와 교육 분야에 있어 현대의 사회학·통계학적 연구와 병행해 과거의 생각과 옛 연구 내용을 다시 검토하는 역사적 연구도 이뤄져야 한다”고 요청했다. 박태균(가브리엘)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제2발표 ‘지난 30년 남북 관계의 변화, 희망과 좌절: 교회의 고민과 과제’에서 “남북 관계는 국가적 차원과 민족적 차원이 공존하는 동시에 협력적·대결적 관계도 공존한다는 특징이 있어 진보와 보수 정부를 기준으로 남북 관계를 규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30년 동안 남북 관계가 변화하는 흐름에 작용한 동인과 관련해, “북한 내부 문제와 더불어 남한과 북한 사회가 통일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남북 관계가 달라진 측면이 있다”면서 “북미 관계와 한중 관계 그리고 미국 내 공화당과 민주당 정책에도 남북 관계는 영향을 받아 왔다”고 분석했다. 단절된 남북 교류에 대해 ‘조급할 필요 없다’는 견해와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견해가 모두 존재하는 상황을 언급한 박 교수는, 중요한 것은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라고 지적하면서 “남북 교류 재개를 위해서는 학술 단체들의 역할과 스포츠 행사 개최 등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변진흥(야고보)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 자문위원은 제3발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우리 교회의 역할과 과제’에서 현재의 한반도 정세를 먼저 개괄한 뒤, 남북한 ‘두 국가론’이라는 잠정적 현실 앞에서 교회의 과제를 살폈다. 변 위원은 “2010년 5·24조치 이후 실질적인 대북 인도적 지원은 중단됐고, 북한도 이제는 인도적 지원 방식을 거부하고 있어 한반도 두 국가론에 맞는 접근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 위원은 이어 “재북(在北) 교회의 교구장 서리 체제는 한반도 분단이라는 특수성에 기인한 한시적 조치이므로 한국교회는 긴 호흡으로 교황청과 북한의 관계 개선 필요성을 포함해 교구장 서리 체제를 진단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교회 차원에서 지속적인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북미, 북일 관계 개선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한국교회는 미국·일본 주교회의와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발행일 2025-06-29 제3448호 2면

[인터뷰] 미수습 전사자 유해 발굴과 영원한 안식 위해 기도하는 이충호 할머니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위패봉안관에 갈 때마다, 어딘가 묻혀 있을 오빠의 유해를 하루라도 빨리 찾아 양지 바른 곳에 모셔야 한다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이충호(제노베파·93·수원교구 군포 용호본당) 할머니는 해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 되면 6·25전쟁 중 전사했지만 75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해를 찾지 못한 오빠 이종호 씨 영혼을 위해 더욱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오빠가 1948년 육군사관학교 8기생으로 입교한 뒤 한 번도 만나지 못했어요. 1950년 11월 26일, 강원도 양구·화천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나중에서야 듣게 됐지요. 아직까지 유해를 찾지 못해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것이 여전히 가슴 깊은 한으로 남아 있어요.” 이 할머니는 오빠의 유족이라고는 이제 자신밖에 없다는 안타까운 생각에 위패를 모신 국립서울현충원을 찾는다. 혼자 힘으로는 어려워 아들이나 손자녀들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꼭 발걸음을 옮긴다. “좁은 공간에 무려 10만4000여 명의 미수습 전사자 이름이 검은 오석에 빼곡히 적혀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전사자 유해를 발굴했다는 소식이나 수습한 유해가 최고의 예우 속에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장면을 뉴스에서 접하면, 우리 오빠를 비롯해 수많은 미수습 전사자 유해도 하루 빨리 찾아 정성껏 비석을 세우는 날이 오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이 할머니는 미수습 전사자들이 한국교회와 사회에서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섭섭함도 토로했다. “성직자들과 정치인들이 국립묘지에 찾는 경우가 자주 있지만, 미수습 전자사 위패봉안관에 모셔진 분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어렵습니다. 혈육이 아니라고 이렇게 무관심해서는 안 되지요.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분들임에도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다면 교회와 사회가 더욱 합당한 예우를 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발행일 2025-06-29 제3448호 21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 김주영 주교, “갈등 해결 위해 ‘희망’ 잃지 않아야”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김주영(시몬) 주교는 2025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6월 25일)을 맞아 ‘꺼지지 않는 희망을 품고 평화의 순례 길을 함께 걸어갑시다’ 제목의 담화를 발표하고, 광복 80주년이 되는 올해 한반도 갈등 해소와 평화 정착을 기원했다. 김주영 주교는 “광복은 1948년 한반도의 분단으로 완성되지 못한 독립으로 남아 현재까지 아픈 역사로 이어지고 있고, 우리는 광복 80주년을 벅찬 마음으로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분단을 아파하며 살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민족의 화합과 평화를 이루는 데 마음을 모을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고 고민해 줄 것을 당부한 김 주교는 “2, 3년 전부터 이어진 남북한의 대치와 갈등은 멈출 줄 모르는 시계추와 같았고, 지난 해에 적대적으로 주고받은 무인기와 전단지, 오물 풍선은 서로 증오심만 키웠다”면서 “우리는 일상의 평화가 얼마나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문단 삭제 가능) 우리 사회 가장 큰 문제는 나라를 두 쪽으로 갈라놓는 ‘불신과 갈등의 늪’이었다는 한국 보건 사회 연구원 보고서를 인용한 김 주교는 “실제로 거리와 광장뿐 아니라 국회와 사법 기관에서도 이해와 대화보다는 혐오와 비방으로 뒤엉킨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서적 내전 상태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그 골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며 “무엇보다도 지난 겨울부터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일련의 일들은 분단 동안 쌓인 이념의 갈등을 압축해서 보여 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주교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맞아 폭력과 증오가 아닌 평화와 화해의 길을 이룩하고자 했던 모든 이를 기억하며, 한반도 분단이 남긴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거두어 낼 수 있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며 “모든 갈등을 이겨 내는 첫 걸음은 갈등을 풀어낼 수 있는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하루빨리 한반도에 갈등이 해소되고 평화가 깃들기를 함께 기도하며, 평화를 지키시는 주님의 제자가 돼 꺼지지 않는 희망을 품고 평화의 순례길을 함께 걸어가자”고 당부했다.

발행일 2025-06-22 제3447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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