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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현 기자

ogoya@catimes.kr

악의 평범성

‘자기결정권’(헌법 제10조) 행사는커녕 기초 의사소통도 어려운 중증 발달장애인들 편에서 강제 탈시설에 반대해 온 가톨릭 사회복지계에 상처를 준 사건이 석달 전 있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4월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애도 기간에 서울대교구 혜화동성당 종탑을 무단 점거하고 탈시설 주장 플래카드를 내걸며 농성과 집회를 벌였다. 한 수도권 교구 주교좌성당에도 허락 없이 들어가 교황 빈소의 영정을 배경으로 플래카드를 내걸고, 조문 온 신자들에게 ‘성부와 성령의 이름으로 투쟁’이라는 공격적 언사도 했다. 6월 30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장애인거주시설 혁신방안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이중교 신부(야고보·수원교구 중증 발달장애인 거주시설 ‘둘다섯해누리’ 시설장)는 이를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으로 해석했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계 독일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분석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개개인으로 보면 상식과 대화가 통하던 인간이 집단화하자,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비합리적 수단도 동원하고 아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개개인은 선량할 시민들이 집단 논리에 매몰돼 ‘대수롭지 않게’(Banal) 이행한 이해타산 때문에 최중증 발달장애인들이 실제로 피해를 봤다. 2022년 1월부터 탈시설 시범 사업이 진행되며, 장애인 당사자 중 3개월 만에 욕창 패혈증으로 사망하거나 2주 만에 장폐색으로 죽는 일이 속출했다. 그래서 기원하게 된다. 우리 모두 집단 헤게모니를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 관계를 맺으며 더 큰 참극을 막을 수 있기를.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23면

인천 연수본당 소년 Pr. ‘상아탑’, “오카리나 연주로 신앙 키워요”

인천교구 연수본당(주임 이민주 요한 세례자 신부)에는 오카리나 연주를 통해 신앙의 즐거움을 체험하는 레지오 마리애 소년 쁘레시디움 ‘상아탑’(단장 최순규 레이몬드, 이하 상아탑)이 있다. 상아탑은 2018년 본당의 성인 레지오 단원, 초등부 교사단, 사목자들이 뜻을 모아 설립했다. 어린이들이 신앙을 단순한 배움의 대상으로 여기기보다 ‘믿음을 살아내는 기쁨’을 체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지혜의 전당’을 뜻하는 이름처럼, 단원들은 묵주기도와 전례 봉사뿐 아니라 매주 회합 시간에 30분간 오카리나를 연습하며 ‘신앙은 성당에서 함께할 수 있는 기쁨’이라는 지혜를 몸소 배운다. 오카리나는 음악 교사인 최순규 단장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회합 기도 시간을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 아이들이 좀 더 즐겁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음악을 접목한 것이다. 여러 악기 가운데 오카리나를 택한 이유는 소리가 맑고 배우기 쉽기 때문이다. 단원들은 오카리나 연주를 통해 성모님과 관련된 성가를 자연스럽게 익히고, 일상에서도 성모님을 떠올리며 신심을 키워 간다. 본당 전례와 사제 영명축일 등 행사에서 연주 봉사를 하며, 매년 성모성월과 묵주기도 성월에 열리는 묵주기도 및 성모의 밤 행사에도 참여한다. 공연을 준비하며 동료 단원들과 호흡을 맞추는 과정은 아이들이 성모님의 협조, 인내, 겸손의 덕을 닮아가는 배움의 시간이기도 하다. 최 단장은 “고사리손으로 정성껏 기도를 바치고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키 크듯 자라나는 신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춘기로 접어들며 하느님과 멀어질 수 있는 시기, 상아탑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기억’이라는 신앙의 연료를 선물한다. 2018년 창단 당시 상아탑에 들어온 6학년 단원들이 8년이 지난 지금 청년이 되어 본당 청년부와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중학생이 되며 쁘레시디움을 떠난 아이들 역시 가방을 멘 채 “선생님~” 하고 반갑게 인사하며 레지오 회합과 공연에 종종 찾아오곤 한다. 서보경(폴리세라) 부단장은 “아이들이 연주를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신앙을 표현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은총이 넘치는 순간”이라며 “성당이 아이들에게 기도와 음악, 친구와 선생님이 함께하는 편안하고 즐거운 신앙의 공간으로 남도록 사랑으로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5면

“장애인 거주시설 정책, 장애 정도·유형 고려해 재설계해야”

거동은 물론, 최소한의 의사 표현조차 어려운 중증 발달장애인에게는 장애인 거주시설의 24시간 돌봄이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이들에게 ‘탈시설’은 지역사회로의 통합 기회가 아니라, 오히려 생존권 위협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증 발달장애인 가족과 거주시설 관계자, 관련 전문가들이 토론회를 열고 장애 당사자 특성에 맞는 거주시설 다양화, 신규시설 증설, 효율적 예산 운용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단법인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 부모회(회장 김현아 딤프나, 이하 부모회)는 6월 30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장애인 거주시설 혁신방안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모든 장애를 ‘심한 장애’, ‘심하지 않은 장애’ 두 가지로 분류하며 획일적 탈시설 방향으로 추진돼 온 장애인 복지정책의 한계를 지적하고, 장애 정도와 유형을 고려한 거주시설 정책 설계를 촉구하고 대안을 공유했다. 김현아 회장은 종합토론에서 “자립지원주택에서는 장애인 거주시설과 달리 한시적 돌봄에 따른 ‘돌봄공백’으로 인해 갑자기 발생하는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많은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일상생활 및 직업 훈련, 체육활동, 지역사회 연계 활동을 지원하는 등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에 바탕을 둔 자립 지원에 힘을 쏟고 있다”며 “거주시설 장애인들이 시설을 선택하든, 자립지원주택을 선택하든 장애인과 그 가족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전했다. 수원교구에서 운영하는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둘다섯해누리’ 시설장 이중교(야고보) 신부는 제1발제에서 “요양원에 있는 어르신들에게 우리의 궁극적 목적은 사회복귀이므로 요양시설을 벗어나 체험홈에서 자립을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직업재활시설에 홀로 출퇴근 가능한 중증 발달장애인과, 거주시설에서 홀로 화장실 가기도 어려운 중증 발달장애인을 같은 잣대로 놓고 정책을 시행하는 것 자체가 오류”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케이원챔버 임무영 변호사는 제2발제에서 현행 장애인관련법과 탈시설 주장의 문제점을 짚었다. 이어 법의 실무적 실천 방안으로 ▲현재 설치된 시설에 우선적으로 예산을 투입해 환경을 개선하고 ▲추가 예산으로 새 시설들을 설치해 중증장애인을 전부 수용하며 ▲이후 중증·비중증 장애인을 아울러 생활과 주거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예산이 순차 집행돼야 함을 명시할 것을 제안했다. 서울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김붕년 교수는 제3발제에서 미국 뉴저지주의 성인 발달장애인 맞춤형 돌봄체계를 중증 발달장애인 주거와 돌봄의 대안으로 소개했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장애 당사자의 일상생활 능력과 의학적 요구, 행동 조절 등을 고려해 거주시설을 찾고 적합한 지원 수준을 결정하는 복지 모델이다. 김 교수는 “장애 당사자들이 개인화한 정기적 평가와 맞춤형 지원을 받으며 존엄을 지키는 체계가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6월 장애등급제를 폐지했고, 지적·자폐성 장애인에 대해서도 장애 정도에 따른 구별을 없앴다. 이에 따라 2027년 시행 예정인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자립지원법)도 국가의 지원이 가장 많이 필요한 중증장애인들을 오히려 더 위험한 상태로 몰 수 있는 탈시설법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4면

[인터뷰] 사별 가족 동반 프로그램 ‘위로의 샘’ 여는 김명호 신부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 김명호 신부(요셉·남미 이주민사목 담당)가 7월 19일부터 매주 토요일 2시간씩 수도회 부천 역곡동 본원에서 사별의 아픔을 겪는 이들을 동반하는 ‘위로의 샘’ 제2기 프로그램을 연다. 사별의 아픔을 몸소 경험한 김 신부가 직접 동행해 프로그램은 더욱 의미를 갖는다. 남미에서 10년간 선교한 김 신부는 선교 중이던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부모와 사별했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팬데믹도 한창인데 아마존 정글에서 교통편을 쉽게 구할 수 없어 슬퍼하며 출국을 단념했다. 1년 후 어머니가 위독하자 새벽에 쪽배로 정글 강을 거슬러 지역 소도시에 도착했지만, 국제공항이 있는 수도로 가는 경비행기는 수리 중이었다. 임종 4일 뒤에야 한국에 닿은 김 신부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는 염습 전 어머니께 병자 성유를 발라 드리는 것뿐이었다. 한국에서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후회와 상실감은 그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깊이 잠든 적이 거의 없다”는 그의 말처럼, 부모의 부재는 검은 호수처럼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하느님도 야속했어요. 선교사 소명을 처음으로 원망했을 만큼요. 선교 중이라는 핑계로 아무것도 못 해 드렸다는 후회는 지금도 가슴에 남아있죠.” 우울증까지 앓던 김 신부에게 힘을 준 건 함께하는 이들이었다. 김 신부는 아버지이자 형님, 오랜 친구 같은 ‘아버지 신부님’ 최종수(윤호 요셉·전주교구) 신부에게 내면을 털어놓으며 위로받았다. 2024년 사별 가족 동반자 양성 프로그램에 지원하고 수료 직후 제1기 위로의 샘을 열게 된 것도, 사별 가족들을 오래 동반해 온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손 카리타스 수녀의 공감 어린 권유 덕분이었다. 공감의 치유력을 여실히 체험한 김 신부는 위로의 샘 참가자들이 유대감 위에 아픔을 나누고 스스로 치유의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그중 1박2일 야외 피정은 참가자들이 지난 삶의 시공간을 벗어나, 갇혔던 감정을 건강하게 해소하는 시간이다. 섬마을에서 피정했던 제1기 위로의 샘 참가자들은 사별한 이에게 마음의 편지를 적어 종이배로 만들어 바다에 띄워 보내고, 조약돌과 조개껍데기를 모아 그의 이름을 쓰고 ‘나 잘살고 있을게, 지켜봐 줘, 사랑해’라고 바다를 향해 마음껏 외쳤다. 사별은 그 누구도 기꺼이 끌어안을 수는 없는 어둠이다. 그 속을 똑같이 걸었던 김 신부가 전하고자 하는 위로는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이자 시작”이라는 통찰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가 사무치는 건 사실 그의 현존이 내가 미처 의식하지 못할 만큼 내 삶에 나 자신보다도 깊게 들어와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당신을 부자유하게 하던 슬픔을, 같은 아픔을 지닌 이웃들과의 공감대를 통해 마음껏 표현해 보세요. 다 듣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인도하시는 위로의 빛을, 우리 함께 찾아 떠나요.” ※‘위로의 샘’ 신청 문의: 010-4518-9907 김명호 신부, 032-345-9907 수도회 부천 역곡동 본원

입력일 2025-07-09

[‘희망의 순례자’ 본당 공동체, 이웃에게 희망을] (4) 서울대교구 한남동본당 이웃 돕기 사업

서울대교구 한남동본당(주임 김종호 야고보 신부)은 2011년부터 지역사회 내 고립된 이웃들을 돕기 위한 사회복지 사업 ‘한남동의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섬김’을 꾸준히 펼쳐왔다. 올해부터는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회장 정진호 베드로 신부)의 ‘본당사회복지 공모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본당 사회사목분과(분과장 정혜란 카타리나, 담당 김민숙 요세파 수녀)가 독거노인, 여성 노숙인, 이주노동자 가정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지원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사업은 특히,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장 고립된 이웃에게 공동체의 손길을 전한다’는 취지를 중심에 둔다. 올해 본당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독거노인 24명에게 매주 고기와 생선이 포함된 반찬을 만들어 전달하고 있다. 한 후원자의 기부로 마련한, 매번 반찬 구성이 달라지는 도시락도 매주 지원 대상자당 2개씩 제공한다. 성당에 직접 오기 어려운 어르신들에게는 신자들이 직접 방문해 반찬을 전한다. 설과 추석 명절에는 따뜻한 명절 음식도 나눈다. 사업은 독거노인들이 마음을 열고 일상 속 활력을 되찾도록 돕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매주 성당에 음식을 받으러 오는 길은 이들에게 외출의 동기를 부여하며, 자연스럽게 본당 봉사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산책하거나 이웃을 방문하는 기회로 이어진다. 배달 봉사자들도 방문 시 말벗이 되어주며, 이는 고립으로 인한 우울감 해소와 고독사 예방에 실질적 도움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자신을 지지해 주는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위로가 된다. 본당은 또한 4년 전부터 부활·성탄 대축일마다 여성 노숙인 쉼터 ‘디딤센터’의 30여 명과 이주노동자 가정 아동들이 다니는 ‘열국학교’ 학생 10여 명에게도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여성 노숙인들에게는 화장품, 실내복, 슬리퍼 등 스스로 마련할 수 없거나 다른 입소자가 쓰던 것을 물려 쓰던 물품들을 선물한다. 이주노동자 아이들에게는 과일과 과자 등 간식을 주로 전한다. 출근한 부모를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야 하는 아이들이, 성장기 특유의 배고픔과 정서적 허기를 채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아이들은 올 여름방학 때 본당 신자들과 함께 서울시티투어도 떠날 예정이다. 과거 자신이 돌보던 독거노인과 해마다 한 번씩 노래방을 함께 가곤 했다는 사회사목분과 임영주(아가타) 씨는 “지상에서 우리와 함께하셨던 그리스도처럼, 단절된 이웃에게 마음을 터놓을 벗이 돼주는 것이야말로 가톨릭 사회복지의 핵심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호 신부는 “마음을 둘 곳 없는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약자”라며 “가난한 이를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사회교리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본당 봉사자들을 앞으로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회장 정진호 베드로 신부, 이하 복지회)는 지역사회에서 사회복지 활동을 전문적으로 하려는 서울대교구 내 본당들을 발굴해 매년 ‘본당사회복지 공모지원사업’을 열고 지원하고 있다.

발행일 2025-07-06 제3449호 5면

‘청설모’, 주변인 아닌 ‘주체자’로 교회에 목소리 내는 청년들

청년들은 ‘질문하는 신앙’을 존중하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교회를 꿈꾼다. 하지만 청년들은 현실 속 교회가 세상과 신앙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받아들이기보다, 자신들을 봉사자나 마스코트로만 여긴다고 생각하며 교회에서 멀어진다. 젊은이들이 교회와 사회, 신앙과 일상의 경계에서 떠오르는 질문을 마음껏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한 시점이다. 질문을 거리낌 없이 던지고 답을 모색하며 교회 안에서 ‘말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해 가는 ‘청설모’(청년들이 설치는 모임)를 대안으로 소개한다. 목소리 내는 청년들 청설모는 오랜 기간 평신도 청년 신학운동에 헌신한 우리신학연구소 이미영(발비나) 선임연구원이 2024년 5월에 모집한 신학하는 청년 모임, ‘신청모’에서 출발했다. 신청모는 청년들이 신학이라는 학문적 틀을 벗어나 신앙과 이어진 관심사를 자유롭게 나누고 토론하는 장으로 자리 잡았다. 이 가운데 몇몇 회원이 “신학을 더욱 삶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더 자주 만나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해 보자”는 취지로 올해 청설모를 결성했고, 2월 첫 모임을 열었다. 이후 청설모는 매달 회원 한 명이 자유 주제를 정해 발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온라인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청설모는 노동과 생태, 정치 비평, 여성주의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 있는 회원들이 소그룹을 구성해 자율적으로 주제를 정하고 발표를 이어가고 있다. 늘 다양한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가는 단체 채팅방에서는 어려운 신학 개념을 함께 풀어가며 교회와 사회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있다. ▲교회 내 성평등과 여성의 역할 문제 ▲청년 세대의 신앙 이탈과 그 배경에 대한 분석 ▲전례와 미사에서 경험하는 소외감 ▲기후위기와 불평등, 젠더폭력 등 사회문제에 교회는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가 ▲청년들이 마주한 노동 불안정성과 영성의 접점 등의 다양한 주제를 시공간의 제약 없이 토론하고 있다. 청설모는 이처럼 만남과 친교를 통해 믿음과 질문을 나누는 신앙 공동체의 성격을 띤다. 여느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청년 회원들은 교회가 전례 중심의 신앙 외에는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사회와 단절된 공간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이들이 던지는 질문은 신앙과 사회적 삶을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갈 것인가를 모색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회원 노랑이(별칭, 로사리아)는 “지난겨울 12·3 계엄이 선포됐을 때 교회도 성명을 내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실질적 신앙생활이 펼쳐지는 본당과 청년회 등 기초단위 공동체에서는 언급조차 꺼리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이어 “성과 속의 분리를 넘어 우리의 선택이 무엇보다 사회 주변부에 속한 이들을 위한 것임을 인식하고, 이를 고유한 신앙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덧붙였다.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다 청설모는 청년들이 교회에서 느껴온 피로감을 고백하는 공간이자, 그 마음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로 기능하고 있다. 신청모 때부터 회원들은 청년들이 주로 전례 보조나 행사 진행 등 실무 중심 봉사자, 혹은 ‘분위기 메이커’ 역할에 머무르며 신학적 사유나 교회 내 의사 결정 과정에서는 배제돼 왔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청년들을 초대해 경청하는 자리도 종종 있었지만, ‘열심히 이야기했는데 정작 중요한 자리에서는 발언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허탈감이 쌓여 온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청설모는, 단순히 아쉬움을 토로하는 모임을 넘어, 스스로 ‘연구’하고 ‘실천’하며 목소리를 내는 주체적 공동체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지난 4월 19일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소장 박상훈 알렉산데르 신부)가 주최한 ‘다시 만날 세계’ 집담회에서도 청설모 회원 3명이 발제자와 논찬자로 나서 여성, 장애인, 이주민, 노동자,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과의 연대 경험을 나눴다. 이들은 신학자 케네스 리치 신부의 「영혼의 친구」를 인용해 “진정한 의미의 우리는 거침없이 경계를 건너 ‘변두리’로 나아가는 것, 그로써 서로 기댈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할 때 형성된다”고 입을 모았다. 회원 주황이(별칭, 루치아)는 “청년들이 교회에서 단지 봉사자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사회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탐색하고 행동하는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는 상징적 선언으로 청설모를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청설모 결성 주도한 청년 평화학자 이보나 씨, “불편한 침묵으로 유지된 평화 넘어 갈등 풀어내는 교회 되길” 강원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평화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이보나(보나) 씨는 청설모 결성을 주도한 신청모의 구성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교회가 진정한 평화의 공동체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청설모를 결성했다”고 밝혔다. 30대의 청년 평화학자인 그는 평화를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갈등을 통해 드러난 부조리들을 고치며 공동체가 정의를 향해 한층 성장해 나가는 과정’으로 설명했다. 그러면서 “모두가 의견을 내기를 두려워해 갈등조차 없는 교회가 더 비평화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청년들 사이에서도 ‘신부님 말씀이 맞겠지’라며 무조건 따라가고, 소신을 말하기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일방적으로 신부님에게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입장을 스스로 취하기도 하죠. 이는 교회가 청년들을 수동적인 존재로 여기는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겉으로는 고요해 보여도 정작 서로 마음의 문을 닫는 공동체로 변질할 수 있는 거죠.” 청설모는 청년들이 서로 동등한 발언권을 지니고 교회와 사회에 대한 의문을 주고받으며 함께 목소리를 내고 실천한다는 점에서 ‘시노달리타스’의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의문을 제기하는 것보다 침묵을 지키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지 않을까. 이 씨는 “교회 구성원들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오히려 관계가 발전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환대하는 하느님을 향한 믿음은 모두가 같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잖아요. 그 다양성 때문에 교회 안에서 서로가 아직 조심스러워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때로는 모순처럼 느껴지는 교회의 가르침들에 의문을 제기하더라도 돌아오는 건 마치 자동응답기 같은 해명뿐일 때가 있어요. 하지만 ‘태아도 여성도, 그 어떤 생명도 차별 없이 존엄하다’는 신념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잖아요.” 이 씨는 “우리 모두가 교회의 협력자이듯 청년은 이미 교회의 협력자”라며 “가르쳐야 할 미성숙한 성인으로 보기보다 동반자로 대해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제게 하느님은 모두를 환대하시는 분이세요. 저는 그런 하느님을 믿어왔고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싶어, 신학 전공자가 아님에도 스스로 신학을 알아나가고 있어요. 그 누구도 자신이 교회에 오기 마땅치 않다고 느껴 배제되지 않도록, 교회가 실제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반영해 줬으면 합니다.”

발행일 2025-07-06 제3449호 16면

교황청 재단 ACN, 지난해 2050억 원 모금…137개국에 사목 원조

교황청 재단 고통받는 교회돕기(Aid to the Church in Need, 이하 ACN)가 최근 ‘ACN 2024년 연간보고서’를 발행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ACN은 2024년 1억3926만1868유로(약 2050억 원)를 모금해 총 137개국에서 5335건의 사목 원조 사업을 지원했다. ACN은 2024년 전 세계 23개 지부에서 약 36만 명 후원자와 기부, 유산 증여 등을 통해 기금을 모금했고, 기금의 79.8%를 사목활동 연계 비용으로 지출했다. 연계 비용 중 84.7%는 사목 원조 사업에, 나머지는 박해로 고통받는 교회와 신자들을 알리고 대변하는 활동에 쓰였다. 사목 원조 사업 지원금은 ▲아프리카(30.2%) ▲아시아 및 오세아니아(18.7%) ▲라틴 아메리카(16.8%) ▲중동(17.5%) ▲우크라이나 등지(15.9%)에 투입됐다. 가장 많은 지원을 받은 아프리카 교회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빈곤과 이슬람 극단주의의 공격과 테러 확산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는 2022년 전쟁 발발 이래 3년 연속으로 ACN의 지원을 가장 많이 받은 국가다. ACN은 전 세계 성당, 신학교, 사목센터 등의 건설·보수 755건, 오지 사목활동을 위한 운송수단 구입 1141건을 지원했다. 또 총 9961명의 신학생 양성에도 지원했다. 전 세계 신학생 11명 중 1명이 ACN의 지원을 받은 셈이다. ACN은 전 세계에서 183만6591대의 미사 예물을 지원했다. 역대 최고치로, 전 세계 사제 10명 중 1명꼴인 4만2252명이 ACN의 지원을 받아 사목활동을 수행할 수 있었다. 또 ACN은 여성 수도자 6030명에게 생활과 사도직 활동 비용을 지원했다. 또 ACN은 전체 예산의 10.7%인 1000만 유로를 긴급 구호 지원금으로 투입했다. 무력 분쟁이 격화한 레바논과 시리아 등 중동 국가가 82% 이상의 긴급 구호 지원을 받았다. 레지나 린치 ACN 수석대표는 “박해와 전쟁, 극심한 가난에 직면한 수십만 명 형제자매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신 전 세계 신자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발행일 2025-06-29 제3448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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