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여름 특집-안녕夏세요?] (2) 기후 재난 최전선, 응급구호 펼치는 이들

이호재
입력일 2025-07-16 08:48:01 수정일 2025-07-16 11:31:53 발행일 2025-07-20 제 3451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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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자매 관상 선교 수녀회·한국가톨릭노숙인복지협회·(재)바보의나눔, 응급구호 활동 실시
수녀들, 생수·라면 싣고 거리로 나서…“도움 필요한 사람 있다면 어디든 찾아가야죠”

기후 변화가 초래하는 폭염과 폭우 등 이상기후는 이제 더 이상 예외적 현상이 아닌, 일상의 재난이 되고 있다. 레오 14세 교황은 7월 2일 발표한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9월 1일) 메시지에서 “인간이 초래한 기후 변화로 인해 극단적인 기후 현상이 점점 더 잦아지고 강해지고 있다”며 “이로 인해 가장 먼저 고통받는 이들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이라고 전했다. 이어 “환경 정의는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신앙과 인간성의 표현이고, 이제는 행동으로 옮길 때”라고 강조했다. 기후 재난의 최전선에 놓인 쪽방촌. 이곳에서 ‘안녕하지 못한 여름’을 살아가는 주민들과 함께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의 연대 현장을 소개한다.

“수녀님, 오늘도 나오셨네요. 정말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형제님, 옷 갈아입으셔야겠다. 여기 옷이랑 양말 받아 가세요.”

7월 3일 오후 8시, 서울 영등포역 3번 출구 인근. 수도자들이 노숙인과 인근 쪽방촌 주민들에게 음식과 옷가지 등을 나눠 주고 있었다. 이날 서울은 밤 최저기온이 섭씨 25도를 웃도는 열대야였지만, 이들은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 먹을 거리와 물품을 받고 있었다. 

작은 자매 관상 선교 수녀회(지부장 천복련 사비나 수녀), 한국가톨릭노숙인복지협회(회장 이병훈 요한 세례자 신부, 이하 한가노협),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이사장 구요비 욥 주교)이 마음을 모아 함께하는 ‘여름철 폭염 대비 응급구호 활동’ 현장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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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자매 관상 선교 수녀회, 한국가톨릭노숙인복지협회,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의 ‘여름철 폭염 대비 응급구호 활동’ 취재를 위해 찾은 7월 3일 서울 영등포역 3번 출구 모습. 이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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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일 서울 영등포역 3번 출구 인근에서 노숙인들과 인근 쪽방촌 주민들이 물품을 배급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호재 기자

여름철, 작지만 꼭 필요한 것들

응급구호 활동은 2022년 시작됐다. 지난해부터는 영등포역 일대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올해도 7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석 달간 계속된다. 수녀회 서울 분원 소속 수도자들과 봉사자들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직접 찾아가는 ‘아웃리치’(Outreach)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한가노협과 바보의 나눔은 이 활동에 필요한 재정과 물품을 지원하고 있다.

이날 현장에는 아녜스·안젤라 두 명의 수도자가 함께했다. 오후 7시부터 물품들을 준비한 이들은 8시부터 영등포역 일대에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수도자들은 각각 하나의 카트를 맡아 분주히 움직였다. 앞쪽 카트에서는 컵라면, 커피, 쌍화차, 생강차 등을 나눴고, 뒤쪽 카트에서는 라면과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붓고, 필요에 따라 소금빵과 생수, 옷 등을 배분했다. 아녜스 수녀는 “노숙하는 분들에게만 옷과 양말을 드리고 있다”며 “중복 수령을 막기 위해 수령하는 이들의 이름을 따로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원한 생수 또한 집이 없는 이들을 선별해 지급했다. 안젤라 수녀는 “운반할 수 있는 물의 양이 제한돼 있어, 꼭 필요한 분들에게만 드리려고 한다”고 전했다.

5년간 노숙 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길벗사랑공동체 서울역 해피인 이정윤(바오로) 멘토는 “여름철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들에게 생수 지원은 가장 필요한 지원 중 하나”라며 “단순히 더위를 식히는 데 그치지 않고, 장마철에는 수돗물에서 약품 냄새가 나 마시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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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일 서울 영등포역 쪽방촌에서 안젤라 수녀와 아녜스 수녀가 생필품을 실은 카트를 끌고 쪽방촌으로 향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열대야 속 영등포역 ‘아웃리치’(Outreach)

물품 배급을 마친 수도자들은 이번엔 현장에 나오지 못한 이들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영등포역 5번 출구 인근 광장에서는 수도자들과 매주 만난다는 노숙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광장 한쪽 구석에서 지내고 있는 박기범(가명) 씨는 “모기가 너무 많아 더워도 긴팔, 긴바지를 입고 잔다”고 했다. 무대 구석에서 잠을 잔다는 김민정(가명) 씨는 왼쪽 다리가 심하게 부어 있었다. 김 씨는 “모기 물린 곳을 계속 긁다가 염증이 생겼다”고 말했다.

수도자들은 모기 기피제와 가려울 때 닦을 수 있는 물티슈 한 통을 건네며, 증상이 심해질 경우 인근 자선의료기관인 요셉의원을 찾아가길 권했다. 수녀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리를 떴지만, 잠시나마 안부를 나눈 이들의 표정에는 온기가 돌았다.

‘교도소 같은 방에서 사느니 차라리 죽여라!!’

요셉의원 뒤편 쪽방촌으로 들어서자, 공공주택지구 정비사업에 따라 임시주거시설에 가야할 주민들의 불만을 표하는 현수막들이 눈에 띄었다. 안젤라 수녀는 “정비사업으로 살던 곳에서 쫓겨난 주민들이 많아 근처 노숙인과 주민들이 많이 예민해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골목 안은 바깥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거리에는 누워 자는 사람들,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는 이들, 구석에 모여 술판을 벌이는 무리도 보였다. 먹다 남긴 음식, 빈 술병, 천막과 매트로 급조한 집들이 곳곳에 있었다. 낯선 분위기였지만 수도자들이 도착하자 이들은 조용히 줄을 서서 음식을 받았고, 감사 인사를 건네며 미소를 지었다.

단 한 끼일지라도, 이들에게는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아녜스 수녀는 “노숙인 중에는 음식 없이 술만 마시는 분들이 많아, 여름철에는 수분과 영양을 함께 보충해줘야 한다”며, 잠든 이들 곁에 조심스럽게 빵과 생수를 내려놓았다. 이어 “거동이 불편하거나 외부로 나오는 걸 꺼리는 분들이 많다 보니, 우리가 직접 찾아다니며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 시 병원으로 연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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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일 서울 영등포역 쪽방촌에서 아녜스 수녀가 주민들의 안부를 묻고 있다. 이호재 기자

지속 가능한 연대를 위해 필요한 것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들은 여름철 폭염에 특히 취약하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역대 가장 무더웠던 지난해 여름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를 통해 신고된 온열질환자는 3704명이며, 이 중 65세 이상 고령자는 30.4%를 차지했다. 

서울시가 발표한 쪽방 거주민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이 같은 취약성은 드러난다.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 관내 쪽방 주민의 약 70%가 60대 이상으로, 더위에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여름철 응급구호 활동은 결식과 탈수를 예방하고, 상담을 통해 병원이나 복지시설로 연계하는 등의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어렵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가노협 조성증(프란치스코) 상임이사는 “홈리스 복지사업은 정부 예산 배정에서 항상 후순위로 밀려 단기 지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중장기 지원 체계를 만들고 싶어도 예산 문제로 번번이 막힌다”고 말했다.

조 이사는 예산 확대뿐 아니라 정부 정책의 전환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홈리스 복지는 민관이 함께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하는 영역”이라며 “홈리스가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사업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홈리스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은 관련 사업의 실질적 운영을 지방자치단체에 맡기고 있어, 일관된 정책 추진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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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일 서울 영등포역 쪽방촌에서 안젤라 수녀가 주민에게 컵라면을 건네고 있다. 이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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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일 서울 영등포역 쪽방촌에서 아녜스 수녀가 비닐 텐트 안 노숙인에게 생수를 전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이호재 기자 ho@catimes.kr